소설리스트

광고 모조리 씹어먹어 줄게-74화 (74/180)

광고? 모조리 씹어먹어 줄게 74화

74. 스토리의 힘(4)

“자. 카메라 테스트 시작한다. 1번 어때?”

“좋습니다.”

“2번?”

“이상 없습니다.”

“3번은?”

“오케이.”

“각자 담당 출연자 위치 확인하고, 특히 스태프들 앵글 안에 안 잡히게 동선 다시 체크하고.”

카메라 감독의 지시에 일사불란하게 돌아가기 시작하는 촬영장.

“지미집 준비됐나?”

“네 완료요.”

“오케이. 첫 샷 지미집부터 간다. 전 카메라 스탠바이, 배우들 정 위치.”

블랙 타이드 2층. 진행본부로 변신한 작은 공간은 열 명의 촬영 스태프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고 있었다.

영상을 모니터링하기 위해 테이블마다 설치된 모니터, 바닥 가득 깔린 수많은 전선들, 촬영을 위해 쌓아놓은 각종 장비까지.

메인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촬영감독이 긴장한 얼굴을 한 채 무전기에 입을 가져다 댔다.

“지미집 큐!”

멀리 서해 바다를 조망하던 지미집이 주변을 비추더니 서서히 카페로 접근한다. 화면에 잡힌 유리창 너머 카페 안의 사람들이 보인다.

타다닥.

스태프 한 명이 키보드를 두드렸고.

[너튜브 오리지널 시트콤.]

[웰컴 투 대환장 카페, 1화.]

준비된 자막들이 떠오른다. 어느새 화면은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천천히 카페 내부를 조망하는 앵글 속 배우와 주요 제작진들의 이름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선명하게 떠오르는 마지막 자막.

[제작 : 동남풍 애드 솔루션.]

자막이 사라졌다. 움직이던 앵글은 한 곳에 멈추었다. 거기 이번 작품의 주인공이 있다. 카메라 감독과 함께 메인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던 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조영찬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상황 어때?”

카페에서 촬영된 영상은 2층 현장 본부에서 실시간으로 너튜브에 업로드 중.

[시청자 2만 명 넘겼습니다. 메인 페이지에 노출돼서 그런가 유입이 빨라요. 이제 2만5천 넘었어요. 계속 늘어납니다.]

“좋아, 만 단위로 문자 보내고 채팅글에 특이사항 보이면 전화 줘.”

[네, 사장님.]

카메라가 주인공을 향해 부드럽게 줌인해 들어간다. 그때 문자가 도착했다.

띵동.

[3만입니다.]

잘생긴 주인공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움직임에 이마로 흘러내린 머리가 자연스럽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타이밍을 재던 카메라 감독이 무전기를 들어 올렸다.

“3번 카메라로 전환, 다들 긴장 놓지 마. 본 게임 시작이다.”

[…….]

조용해진 진행본부, 무전기에 돌아온 대답은 없었다.

* * *

앞치마를 걸친 허윤태. 그는 이 카페의 주인이다.

스륵스륵.

주인공에 돌리고 있는 건 핸드 그라인더. 가득 찬 커피 원드를 가는 그의 손놀림이 더없이 익숙하다.

마침내 분쇄를 마친 커피 가루가 거름망에 채워진다.

탁탁.

그라인더를 내려놓은 그가 하얀색 주전자를 들어 올린다. 주둥이가 긴 주전자에서 뜨거운 물이 떨어지고 잠시 후 커피 가루가 가득 찬 거름망에 차오른다.

보글보글.

숨이 죽지 않은 커피 가루에서 기포가 방울방울 솟아난다.

똑똑똑.

거름망을 통과한 커피가 용기에 떨어진다. 흐뭇한 얼굴로 그걸 바로 보던 허윤태. 주전자를 내려놓은 그가 홀로 시선을 돌린다.

타닥, 타다닥.

시선이 향한 곳엔 노트북을 두드리는 한 여자가 있다. 편한 복장에 화장기 없는 얼굴, 큼직한 뿔테 안경과 기름진 머리를 가린 모자. 테이블 한편엔 책이 한가득이다.

단서로 알 수 있듯 그녀는 공무원을 준비하는 공시생.

“후우…….”

그녀가 길게 한숨을 내쉰다. 이제 노트북을 밀어 놓고 교재 하나를 펼쳐 든다.

블루 아일랜드의 유명한 초반 시퀀스다. 우리 영상은 그걸 고스란히 따라 했다. 해변에서부터 카페로, 다시 내부에서 주인공으로 이어지는 카메라 워크도 마찬가지.

원작은 주문받은 커피를 나르던 허윤태가 발을 헛디뎌 여주인공의 책에 커피를 쏟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다들 손꼽히는 명장면이라 극찬을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어지간한 요즘 커피숍은 점원이 손님에게 커피를 나르지 않는다. 부르거나 진동벨을 쓰거나. 게다가 책에 커피를 쏟은 점원에게 저녁 한 끼 사라는 식의 관용을 부리는 사람도 없다.

그런 이유로 원작을 따라 한 건 초반 시퀀스까지만. 이제 우리만의 전개가 시작된다.

쪼륵.

다시 한번 거름망에 물을 채운 허윤태가 다른 곳을 바라본다. 거긴 커플이 있다. 손에 든 핸드폰이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깔깔대며 바라보는 두 사람. 허윤태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진다.

어느새 용기가 커피로 적당히 채워졌다. 거름망을 치우고 잔에 커피를 담는 주인공의 손길이 섬세하다. 쟁반 위에 완성된 커피를 올려놓은 허윤태가 고개를 든다.

거긴 또 다른 손님이 있다. 다리를 꼬고 앉아 핸드폰을 귀에 붙인 여자. 화면이 그녀를 비추자 목소리가 들려온다.

“진짜 어이가 없다니까? 너 같으면 그 상황에 아 그렇군요 했겠어? 정말 경찰에 확 신고해 버리고 싶었다니까.”

목소리는 날카롭다. 이어지는 수다에 주인공의 입에서 한숨을 흘러나온다.

화면 너머 그의 속마음이 들려온다.

[몇 달 전 피치 못할 사정으로 도망치듯 이곳에 내려왔다. 조용한 이곳, 작은 카페를 열기 딱 좋은 곳이라 생각했고 그렇게 내 카페, 블랙 타이드가 문을 열었다.]

[한적한 곳이라 걱정했지만 의외로 금세 단골이 생겼다.]

“손님, 따뜻한 커피 한잔 나왔습니다.”

핸드폰녀가 이쪽을 바라본다.

“어, 잠깐만, 커피 좀 가져오고.”

그녀가 카운터로 다가온다. 핸드폰은 여전히 귀에 붙인 채. 두 손으로 쟁반을 들어 올린 순간까지 어깨로 핸드폰을 고정한 채였다.

“아니, 그쪽이 먼저 사과를 해야지. 내가 잘못한 게 뭐 있어? 처음부터 얘길 했으면 될 거 아냐. 일부러 그런 거라니까. 일부러…….”

아슬아슬 쟁반을 들고 가면서도 수다는 끊어지지 않는다. 그 뒷모습을 공시생이 불만스레 노려본다.

주인공이 벽시계를 바라본다. 지금 시간 오전 11시.

[오픈한 지 한 시간, 오늘도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 가게의 단골들.]

“저기요!”

그때 커플녀가 주인공을 바라본다.

“네, 손님.”

“노래 좀 신나는 걸로 틀어주면 안 돼요?”

갑작스러운 요청.

[그래, 언제 시작하나 했다.]

“노래가 아침부터 너무 축축 처지잖아요?”

[그럼 클럽으로 가라고…….]

공시녀와 수다녀가 그쪽을 바라본다. 그 시선이 무척 날카롭다. 그러거나 말거나 커플은 눈치 보지 않는다. 시선 따윈 개의치 않고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까르르 웃음을 터뜨린다.

“네, 신나는 노래라…….”

주인공이 음악을 바꾸기 위해 노트북 앞에 섰을 때였다.

“잠깐만요. 스탑!”

“네?”

이번엔 공시생, 교재에서 시선을 떼어낸 그녀가 카운터를 노려본다.

“저 공부하거든요? 지금 노래 빡집중하기 딱좋다구요. 그러니까 바꾸지 말고 그대로 둬주세요.”

[넌 그냥 독서실로 가라고…….]

커플녀가 참고 있을 리 없다. 귀에 걸린 큼직한 귀걸이가 크게 흔들린다.

“이봐요. 카페 전세 냈어요?”

공시생도 지지 않는다.

“그럼 그쪽이 전세 냈어요? 여기 다 같이 쓰는 카페예요. 에티켓 몰라요? 공공장소 에티켓.”

[공공장소 아니거든?]

허윤태가 길게 한숨을 내쉰다.

“시끄러 죽겠네. 통화를 못 하겠어 정말!”

지금껏 한 번도 귀에서 떨어지지 않던 그녀의 핸드폰이 드디어 떨어졌다.

“다들 조용히 좀 합시다? 통화 중인 거 안 보여요?”

공시생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한다.

“그쪽도 마찬가지예요. 통화를 할 거면 좀 나가서 해요. 내가 그쪽 소개팅에 이혼남 나온 것까지 알아야 돼?”

“뭐?”

수다녀가 도끼눈을 치켜뜬다.

“야, 전화 끊어봐. 어 내가 다시 할게.”

전화기가 끊어졌다. 아마 그녀의 이성도 끊어졌을 것이다.

“당신이 뭔데 남 사생활을 엿들어? 이거 그거 뭐야…… 개인정보 무단 도용이거든? 경찰에 잡혀가고 싶어?”

[개인정보 도용 아니야…….]

“아 진짜 참고 있으려니까.”

참다못한 커플녀가 가세한다.

“그쪽이 뭘 잘했다고 신고를 해? 공부하는 사람 있으면 목소리를 줄이든가, 아니면 나가서 통화를 해야지!”

[당신은 왜 그쪽 편을 드는 건데.]

“뭐어?”

수다녀가 자리를 털고 일어서자 커플녀도 참지 않는다. 두 사람의 대화를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보고 있던 공시생도 가세한다.

[그래. 오늘도 시작이다.]

허윤태가 지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본다.

[카페가 여기뿐이라면 그러려니 했을 거다. 근데 반경 백 미터 내에 카페만 네 개. 그런데 이 인간들 여기만 찾아온다. 그래서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여기가 도서관이야? 니들은 좀 떨어져! 덥지도 않냐?”

목소리를 높이는 수다녀.

마침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들이 있었다. 하지만 흉흉한 분위기를 눈치챘고 재빨리 발걸음을 돌린다.

[저 단골들이 있는 한 내 카페는 얼마 못 가 망한다.]

“에이씨. 내가 더러워서 참는다.”

수다녀가 물러선다.

“아 진도 한참 남았는데 이게 뭐야.”

공시생이 다시 책에 집중한다.

“자기야, 그만하고 이리 와.”

남자의 부름에 커플녀가 쌀쌀맞게 돌아선다.

다시 들려오는 주인공의 독백.

[이 카페는 내게 남은 전부. 저 단골들을 카페에서 쫓아내야 한다.]

화면 속 허윤태가 어금니를 악문다.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컷! 좋아요. 잠깐 끊었다가 갑시다.”

카메라 감독의 사인이 떨어졌다. 긴장한 채 굳어 있던 배우들의 표정이 한꺼번에 풀어진다.

* * *

총 10부작 중 3회에 해당하는 분량, 세 시간여의 촬영이 끝났다. 당연하지만 한 방에 다 찍을 순 없었다.

10분 촬영하고 20분 쉬는 식의 촬영이 이어졌고, 그 모든 과정은 빠짐없이 너튜브에 실시간 업로드되었다.

“좀 어땠어?”

난 의자에 앉아 지친 기색이 역력한 녀석들을 둘러보았다.

“지금도 방송 나가고 있어요?”

“아니 끝났어.”

작게 한숨을 내쉰 허윤태가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다.

“카메라가 많으니까 은근 긴장돼요. 대사도 잘 기억 안 나서 절반은 틀린 거 같아요.”

난 빙긋 웃었다.

“괜찮아. 그런 모습 보여주려고 생방송 하는 거니까.”

촬영 중간중간 들어온 조영찬의 브리핑에 따르면 NG 없이 이어진 연기보다 NG 나고 버벅대던 장면에 대한 반응이 압도적으로 좋았다.

이번 작품이 별 탈 없이 마무리된다면 이 녀석들 쉽게 얻기 힘든 색다른 이미지를 얻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방은 어땠어요?”

커플녀를 연기한 서지수가 묻는다. 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좋았지. 끝나기 직전에 7만 넘겼어.”

“와! 칠만?”

7만 명, 세 시간짜리 생방송 컨텐츠가 모았다고는 믿기 어려운 어마어마한 숫자.

“근데 저분 말이에요.”

지수가 손가락을 들었다. 거긴 영혼이 빠져나간 채 껍데기만 남은 공시녀, 까칠한 공시녀 역할에 딱 맞을 거라는 확신으로 캐스팅했고 오늘 인생 처음 해본 연기에서 놀라운 모습을 보여준 안주미가 있었다.

“연기 좋던데, 신인 배우예요? 처음 뵙는 거 같은데.”

“쟤 배우 아니야.”

“그럼?”

서지수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내 동생이야. 친동생.”

“네에?”

놀란 얼굴들이 나와 안주미를 번갈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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