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모조리 씹어먹어 줄게 73화
73. 스토리의 힘(3)
“어 거기, 거기.”
안주미는 멍한 얼굴로 카페 블랙 타이드의 홀을 바라보았다. 지금 이곳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상태.
“살짝 위로 올려보자. 은정아, 뷰 체크해 봐.”
하지만 커피를 마시려고 찾아온 사람들이 아니다.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연신 정체불명의 기계와 장비를 설치하는 중.
“오케이, 딱 좋아요.”
화면을 보던 여자가 대답했고.
“고정해.”
찍, 찌익.
사다리에 올라 남자가 테이프로 카메라를 고정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는 남자, 콧수염의 사내가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
“카메라 네 대 설치 끝났어. 2층은 좀 어때?”
[네. 여기도 장비 세팅 끝나가요. 근데 의자가 부족하네요? 한 세 개만 더 구해주세요.]
“알겠어.”
[참. 밥 시간 되지 않았어요? 슬슬 배고픈데.]
“아이고 시간이 이렇게 됐네?”
콧수염의 남자가 안덕모에게 다가간다.
“점심 어떻게 할까요? 오면서 보니까 맛집 많던데. 나가서 드시고 오실까요?”
안덕모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안 돼요. 좀 있으면 배우들 올 거예요. 걔들 들어오는 장면까지 찍어야 해서 시간 없어요.”
그러면서 자신을 바라본다.
“주미야. 이 근방에 주문하면 빨리 오는 식당 있냐?”
“……어? 있지. 중국집.”
카운터에서 홍보용 전단지 한 장을 꺼내오는 안주미. 그것을 안덕모에게 내민다.
“먹어봤는데 짜장 괜찮더라.”
광고판을 손에 든 안덕모, 그가 콧수염의 사내를 보며 씩 웃는다. 콧수염이 작게 한숨을 내쉰다.
“역시나 중국집이구만?”
“빨리 먹는 데 이만한 게 있나요?”
쓰게 웃은 안덕모가 묻는다.
“늘 시키는 대로?”
“오늘은 세트 2번으로 갑시다.”
이런 일이 너무도 익숙한 듯한 두 사람. 고개를 끄덕인 안덕모가 자신을 바라본다.
“주문 좀 해줘. 짜장 넷 짬뽕 셋 볶음밥 셋, 그리고 탕수육 큰 거 두 개. 참. 잊지 말고 양파랑 단무지 많이 달라고 하고.”
“어? 그래.”
“거기 너 먹을 거 추가해서 시켜. 참, 계산은…….”
그가 품속에서 카드 하나를 꺼내 내민다. 동남풍의 이니셜이 새겨진 카드.
“이걸로 하고.”
안주미가 카드를 받아 든다. 마무리 작업에 한창인 홀을 바라보며 안덕모가 짝짝 박수를 쳤다.
“자! 식사 주문했으니까 도착하기 전에 설치까지만 끝냅시다. 조금만 더 서둘러 주세요.”
“예예.”
“에고 밥 한번 먹기 힘들다.”
“뭐해. 빨리 올라가.”
투덜댐과 동시에 빨라지는 손길들. 콧수염의 남자가 쓰게 웃는다.
“아주 그냥 우리 직원 다 되셨네. 이제 저 없어도 알아서 하시겠다. 그쵸?”
“그럼 월급 주시든지요.”
“에이…… 귀찮게 뭐하러 그래요?”
콧수염이 안덕모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다.
“그냥 대금 보낼 때 빼고 보내면 되지.”
“진짜 그럴까요?”
안덕모가 웃는다. 하지만 동시에 손에 든 핸드폰에 답장을 입력하는 중.
“……음”
주미는 안덕모가 일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카피라이터라고 해서 자료만 만들어 넘기면 되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는 스튜디오 판타지아의 직원들과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일을 감독하고 지휘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틈틈이 노트북을 확인하고 알 수 없는 상대와 통화를 하고. 그래서 감히 말 붙이기도 힘들 만큼 그는 바쁘고 또 열정 넘쳤다.
‘……뭐야? 폼 나잖아?’
만만하던 오빠는 온데간데없었다. 지금 안덕모는 제법 빛나 보였다.
모든 일은 이틀 전 안덕모의 이야기에서 시작되었다. 하루 종일 손님은 단 두 테이블. 마감이 끝나고 가족들을 앉힌 테이블에서 그는 말했다.
“우리 일주일만 가게 문 닫아요.”
이유를 묻자 녀석은 말했다.
“이 카페 촬영장으로 쓰고 싶어요.”
무척 뜬금없는 얘기였다. 카페를 촬영장으로 쓴다. 여기서 대체 뭘?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내일 촬영 준비하러 선발대 내려올 거예요. 그다음 날은 배우까지 다 모여서 제작 미팅할 거고.”
촬영 준비, 제작 미팅. 그의 일은 이미 진행되어 있었다.
“공식적으로 저희 회사에서 진행하는 일이에요. 홀 촬영은 삼사일 정도 걸릴 거고, 그거 끝나고 인서트랑 배경 촬영하고 편집하고 하면 다해서 일주일쯤 걸릴 거예요. 카페 문 닫는 동안 대관료도 지급되니까…….”
어차피 장사 안되는 카페다. 나쁘지 않은 일이라 생각하는데 안덕모의 다음 말이 들려왔다. 그 말 때문에 안주미는 지난 저녁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주미도 출연해야 돼요.”
홀을 돌아다니며 준비 상태를 체크하던 안덕모가 뒤돌아보았다.
“야, 시켰어?”
“아!”
그녀가 후다닥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지금 시킬게.”
주문을 위해 번호를 누르는 손가락, 그 손가락이 가늘게 떨렸다.
* * *
블루 아일랜드 흥행 대박, 대박의 키워드는 두 가지.
하나는 주·조연이 날 따르는 녀석들이라는 것과 다른 하나는 드라마의 주 무대가 카페라는 것이었다.
아주 좋은 카드 두 장에 손에 들어왔다. 우리만의 오리지널 영상과 함께 카페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카드.
방향이 잡히자 난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를 밀어붙였다.
첫 번째로 필요한 건 너튜브 측과 협상, 채널 동남풍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그들은 이번 제안을 제법 흥미로워했다.
“촬영 현장을 실시간으로 내보냈으면 해요.”
물론 공룡 플랫폼인 그들은 흥미로 모든 걸 오케이 하지 않는다.
“근데 화제성이 있겠어요?”
실시간 영상은 까다롭다. 잘 연출되고 재미있는 부분만 짜깁기한 것들과 달리 매 순간 재미를 보장하기 어렵기 때문. 하지만 그런 건 우리에겐 해당하지 않는다.
“그 점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왜요?”
전화기 너머 담당자가 물었고.
“블루 아일랜드 주·조연이 출연하니까.”
“네?”
게임 끝이었다. 이번 기획에 대한 보고는 즉시 상부에 보고 되었고 우린 메인 페이지 고정이라는 프로모션을 받아냈다.
다음으로 필요한 건 시청의 협조였다. 이번 촬영이 카페 안에서만 이뤄지는 건 아니기에 용두 해변과 주변 몇 개 지역에 대한 촬영협조를 위해 시청에 연락을 했다.
하지만 관광 진흥과 공무원의 목소리는 성의가 없다 못해 건조하기까지 했다.
너튜브 때와 같았다. 결국 출연자에 대한 정보를 오픈했고 보령시 관광진흥과는 쑤셔놓은 벌집 같은 상태가 되었다.
전화를 끊고 한 시간도 안 되어 시청 관계자들이 들이닥쳤고 끝없는 진위 확인 절차가 이루어졌다. 연예기획사를 통해 최종 확인이 끝나고 날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백팔십도 달라져 있었다.
“저희 석화 축제도 지금 한창인데, 여유 되시면 그쪽 영상도 한번 찍어주시면.”
난 묵묵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필요한 건 촬영 장소 협조지 보령시 홍보가 아니다.
“촬영 잘하시고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난 명함 한 장을 꺼내 관광진흥과의 과장에게 내밀었다.
“혹시 광고하실 일 있으면 연락 주시고.”
명함을 받은 사내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프로젝트 기본 구성이 끝나자 이후의 일은 일사천리로 흘러갔다. 카페를 세트장으로 바꾸기 위해 사람들이 도착했다. 본사에선 이미래와 김다미가 스토리라인을 잡아 내려주었고 난 거기에 수정을 더해 촬영을 위한 대본을 완성했다.
그리하여 프로젝트 시작 이틀 후. 마침내 도착한 익숙한 얼굴들이 밴에서 쏟아져 나왔다.
“어이, 병아리들!”
“형님!”
“오빠! 오랜만이에요.”
허윤태, 조성환, 정유나, 그리고 서지수. 오래전 강원도 양 떼 목장에서 눈밭을 가로막는 기획사 직원과 불청객으로 만났던 네 녀석이 한꺼번에 날 덮쳐왔다.
“이야 차 좋네. 니들 많이 컸다?”
난 여전히 녀석들을 햇병아리라 하지만 누가 봐도 이 네 사람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스타 배우들이다.
“회사에서 오버했죠. 적당한 거 타도되는데 꼭 저렇게 큰걸…….”
훤칠한 키에 반짝반짝 빛이 나는 외모의 허윤태.
“그래서 넷이서 한 대만 타잖아요.”
만화 주인공 같은 밝은 미소 덕에 수많은 골수 팬을 거느린 정유나.
“너희들 아직도 뭉쳐 다녀?”
“그럼요.”
서지수가 다른 녀석들의 등을 퍽퍽 후려친다.
“우린 한 팀이니까.”
네 사람이 드라마 주·조연을 휩쓸고 다닌 지 벌써 반년, 묘하게도 이 녀석들 여전히 저렇게 넷이 뭉쳐 다니고 있다.
어지간해서 네 사람이 같이 출연하고 여러 매체에서 절친으로 알려지다 보니 대중의 관심도 어느 한쪽에 확 쏠리지 않고 있다.
신인 네 명이 세트처럼 뭉쳐 다닌다는 건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조금 특이한 케이스.
“참 대단하다, 니들도.”
처음엔 무슨 짓인가 생각했지만 어느새 이 녀석들 한 개의 팀으로서 인정받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새 대중들에겐 묘한 기대가 생겨났다.
‘이번엔 넷 중 누가 주연이고 누가 악역이 될까?’
그건 보는 이로 하여금 색다른 기대를 품게 만드는 마력을 지닌 것이었다. 물론 모든 건 이 녀석들이 서로를 절대 이성으로 생각하지 않기에 가능한 것이지만.
“저희 공식 그룹 배우 1호잖아요. 뭐 아이돌만 그룹 하란 법 있나요?”
좋은 발성, 뚜렷한 딕션. 내 시선은 자연스레 그쪽으로 향했다.
그곳엔 신예 연기자 중 최고의 연기파, 압도적인 연기력으로 대선배들의 호평을 쓸어 담고 있는 조성환이 있었다.
“그래, 니들 잘났다. 일단 들어가자.”
난 녀석들의 등을 떠밀며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 * *
“패러디요?”
이번 촬영의 컨셉이 공개되었다.
난 눈이 후욱 커진 허윤태를 보며 빙긋 웃었다.
“뭐 정확하게는 시트콤 기반의 드라마 패러디라고 해야겠지. 그리고 너희 촬영하는 것도 실시간으로 내보낼 거야.”
다른 사람이 먼저 만들어 놓은 특징적인 부분을 모방해 자신의 작품에 집어넣는 기법.
난 이번 영상을 이 녀석들이 출연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보지 않았을 드라마 ‘블루 아일랜드’에 대한 패러디로 잡았다.
“뭐, 딱딱한 영상 아니니까 편하게 찍으면 돼.”
툭, 툭.
무심하게 내미는 두툼한 대본에 녀석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진다.
“농담 아니야. 애드립도 좋고, NG 컷도 웬만하면 살려서 갈 생각이거든.”
이번 영상은 광고도 드라마도 아니다. 이 녀석들의 팬들이 들어와서 보고 즐기고 화재를 일으키면 소기의 목적은 달성된다.
그러니 촬영의 분위기는 딱딱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자기들끼리 웃고 즐기는 편한 분위기가 훨씬 도움이 된다.
“너희들 그동안 바빠서 쉬지도 못했다며.”
“네.”
녀석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모처럼 여행 가려고 했었거든요.”
난 쓰게 웃었다.
“촬영은 삼박 사일, 계획대로라면 본 촬영은 하루 중 네 시간, 길어야 다섯 시간만 하게 될 거야. 대본 외우는 시간 빼도 남는 시간 많을 거야. 그건 너희 알아서 해.”
“오, 정말?”
“그래도 돼요?”
소중한 휴가를 뺏었으니 최대한 배려는 해주기로 했다.
“물론 얼굴은 가리고 다녀야겠지? 또 두세 번은 카메라맨이랑 같이 가야 할 거야. 너희들 돌아다니는 모습도 괜찮은 영상 될 테니까.”
조성환이 얼굴을 밝힌다.
“여기 오다 보니까 저 앞 해변이 너무 좋던데…… 지금 가봐도 돼요?”
이제 막 스무 살을 넘긴 녀석들, 한참 놀고 싶을 나이에 살인적인 스케줄에 시들어가던 네 송이의 꽃.
“뭐 좋을 대로, 참 저녁에 스태프들하고 다 같이 밥 먹으면서 제작회의 하기로 했으니까 늦지 않게 돌아오고.”
“네!”
“가자, 가자.”
돌아간 말에 시들었던 꽃은 환하게 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