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고 모조리 씹어먹어 줄게-72화 (72/180)

광고? 모조리 씹어먹어 줄게 72화

72. 스토리의 힘(2)

“음…….”

따뜻한 커피 한 모금이 입안으로 들어온다. 적당한 고소함과 산미, 그리고 풍부한 거품.

나쁘지 않다. 아니, 솔직히 이 정도면 제법이다.

이번엔 포크를 들어 케이크를 노려본다. 조심스럽게 닿은 포크로 여러 가지를 알 수 있다. 관리를 잘해서 굳지 않은 케이크, 적은 힘만으로도 베어져 나오는 질감이 훌륭하다. 그렇게 포크에 달려 올라온 조각을 입에 넣는다.

“흐음.”

제법이다. 직접 만든 게 아니라서 대기업 맛이 나긴 하지만 과하지 않은 달달함은 커피와 좋은 궁합을 이룬다.

[플라이 투 더 문…….]

때마침 스피커를 통해 전해지는 선율이 귀를 만족시키고 고개를 들면 깨끗하게 닦아낸 투명한 유리창 밖으론 구불구불 소나무 너머 백사장과 서해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톡톡.

다시 한 모금 커피를 입에 머금고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린다.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귀로 들어온다.

“어떠신가요? 손님.”

고개를 돌렸다. 영업용 억지 미소를 얼굴에 장착한 안주미가 눈에 들어온다.

오래전부터 커피를 좋아했다. 믹스커피의 달달함이 싫어 어른이 되자마자 아메리카노를 입에 달고 살았고 덕분에 커피에 대해 기본은 다져놓은 상태였다.

게다가 보령으로 내려올 준비를 하면서 짧지만 공부도 했다. 전문가에겐 명함도 못 내밀겠지만 최소한 좋은 커피와 나쁜 커피 정도는 구분할 수 있다.

우리 가족 커피숍이지만 난 안주미에게 카드를 주고 계산을 했다. 그건 최대한 객관적으로 카페를 평가해보기 위함이었다.

몇 모금 마시지 않았지만 살면서 경험해 본 수많은 커피들 비교해 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그렇게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커피 좋네. 이 정도면 수준급이야.”

그리고 다시 한번 아담한 홀을 바라보았다.

“역시 손님이 너무 없는 게 문제야.”

“그렇다니까.”

안주미가 길게 한숨을 내쉰다.

여행지의 커피숍은 단골 장사가 아니다. 손님 대부분이 한차례 찾고 떠나는 뜨내기손님들. 커피 맛이 훌륭하고 인테리어가 만족스러워도 모두 안에 들어와서 마셔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다.

“안에 사람이 없으니까 밖에서 두리번대다가 그냥 간다니까. 속 터져 죽겠어, 정말.”

뜨내기손님들의 절대적인 방문 지표는 선객의 수다. 주차장을 가득 채운 선객들의 차량, 계산대에 줄을 선 사람들을 보고 들어갈지 말지를 결정한다는 말이다.

해변으로 향하는 길이 새로 생기면서 찾는 이가 뜸해지고 그렇다 보니 선객 수도 적어지고 간혹 이 앞을 지나는 사람들도 선뜻 들어서지 못하는 악순환.

퇴직금과 서울에서 집을 판 돈 대부분을 투자한 카페 ‘블랙 타이드’는 지금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우리 카페 광고 좀 만들어주면 안 될까? 그럼 좀 나아질 것 같은데.”

위기가 시작된 건 대략 두 달 전, 녀석이 어머니 몰래 내게 전화를 한 이유였다. 전화를 받고 나서 진지하게 고민했고 난 이미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그건 안 돼.”

“아니, 왜?”

“광고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거든.”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녀석이 미간을 찌푸린다. 난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2시 넘었네.”

그리고 안주미를 바라보았다.

“점심은 먹었냐?”

녀석이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다. 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가게 문 닫아. 잠깐 브레이크타임 하자.”

벗어둔 외투를 걸치고 걸어가는 걸어가는 등 뒤, 안주미의 멍한 시선이 계속 느껴졌다.

* * *

“프랜차이즈였다면 광고를 할 수 있지. 근데 이런 카페는 안 돼.”

테이블 너머 안주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해가 안 가는데? 네가 만드는 광고도 제품 많이 팔리게 하려는 거고 우리 카페도 많이 알려져서 잘 팔리면 장땡이지. 뭐가 달라?”

이 녀석 광고 마케팅의 기본도 모른다. 난 배움이 필요한 동생에게 최대한 친절한 목소리로 설명을 했다.

“이런 카페는 광고를 내보내야 할 타깃이 불분명해. 손님들 대부분이 지역주민이 아니라 여행객이잖아. 언제 이곳을 찾을지 모르는 사람한테 광고를 해봐야 아무런 효과가 없어.”

곰곰 생각에 잠겼던 녀석이 마침내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 광고판을 세우거나 관광객들을 상태로 전단지 정도는 나눠줄 수 있겠지. 근데 입장 바꿔서 생각해 봐. 네가 여행객이라면 어떨지.”

“별로…… 안 가고 싶을 것 같네.”

“그래. 블랙 타이드 같은 카페는 카피라이터인 내 입장에선 참 어려운 광고주인 셈이지. 적당한 광고 수단이 없으니까.”

핵심 제품이 싸고 훌륭하면 먹히는 보통의 업종과 카페는 명확하게 구분된다. 커피의 맛, 점원의 서비스, 분위기, 입지 게다가 적당한 선객들까지.

종합적인 요인들이 성패를 좌우하지만 아이러니한 건 다른 제품에서는 제일 큰 구매 결정 요소인 가격에 대한 민감도는 무척 낮다는 것.

“그래, 알겠어. 근데 여긴 왜 온 건데?”

녀석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주변을 살핀다.

녀석을 데리고 들어온 곳은 새로 생겼다는 인근 카페, 직접 구워낸 빵과 함께 커피를 파는 대형 베이커리 카페였다.

“일단 먹어. 배고프잖아.”

난 한 조각에 오천 원이 훌쩍 넘는 빵들이 담긴 바구니를 녀석에게 밀어 놓았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패라잖냐. 먹으면서 좀 알아보자고. 우리 경쟁자는 왜 이렇게 잘나가는지 말이야.”

어마어마한 층고에 널찍한 공간, 그 아래를 가득 메운 사람들을 보며 난 적당한 빵 하나를 입에 가져다 댔다.

“근데 사업은 잘돼?”

“뭐, 나쁘지 않아.”

사실은 아주 좋다. 고작 두 명으로 시작한 광고 기획사였고 간판 단지 일주일도 안 돼서 제법 큼직한 광고를 맡아 성공시켰다.

이후 빼곡하게 이어졌던 농수산물 광고들, 완도 김 광고를 빼면 제법 수익이 좋은 의뢰들이었고 덕분엔 내 통장엔 광인 기획에서 근무하며 벌었던 돈보다 훨씬 많은 돈이 들어와 있는 상태.

그러다가 문득 잊고 있던 게 생각났다.

“참. 이거 받아라. 오다 주웠다.”

테이블 위로 올려놓은 하얀색 봉투, 한눈에 보기에도 두툼한 두께에 놀란 녀석이 묻는다.

“뭔데?”

“용돈. 웹툰도 준비할 거라며, 아까 보니까 노트북 많이 낡았더라.”

“…….”

말없이 손을 뻗은 녀석, 손에 들린 봉투 안에 든 지폐를 살펴본 녀석의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허…… 왜 이리 많아? 노트북 다섯 대는 사겠는데?”

뿌듯함을 숨기기 힘들다. 월급 받을 때도 가끔 주곤 했던 용돈이지만 그땐 많아봐야 오만 원, 십만 원. 그것도 부담스러웠던 과거와 달리 난 이제 이 정도의 지출은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

“좋은 걸로 사고 또 필요한 거 있으면 사서 써. 장사 안 된다고 기죽어 있지 말고.”

“우와…….”

드디어 나왔다. 기다렸던 동생의 존경이 가득한 눈빛.

“야, 잠깐만 있어봐. 사진 한 장만 찍어놓자.”

“됐거든?”

순식간에 정색하며 품속으로 봉투를 숨기는 녀석. 아쉽다. 저런 건 찍어서 두고두고 보관해 놔야 하는데.

“그나저나 이제 말해봐. 여기 느낌은 어때?”

테이블 위에 가득했던 빵과 커피는 어느새 다 비워졌다. 이곳에 온 지 한 시간쯤 되었지만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 한적해야 할 카페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중.

조금 남은 커피를 남김없이 마셔버린 녀석이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솔직히 실망이네.”

내 입술이 살짝 말려 올라갔다. 녀석이 포크로 비워진 빵 바구니를 툭툭 내리쳤다.

“빵은 가격에 비해 너무 평범해. 어디서든 맛볼 수 있는 흔한 맛이야.”

“커피는?”

“최악, 이 정도면 그냥 캡슐커피 내려 마시는 거랑 차이가 없어. 지나치게 묽은 데다 향도 약해. 이 돈 주고 사 먹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 갈 지경인데.”

“오케이, 아주 정확하네. 그거면 됐다.”

녀석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되긴 뭐가 돼?”

“아까 말했잖아?”

난 빙긋 웃었다.

“우리를 알고 경쟁자도 알았으니 이제 이길 일만 남은 거란다.”

“그러니까 어떻게?”

난 쟁반 위에 착착 쌓아놓은 커피잔과 바구니를 녀석에게 내밀었다.

“그건 이제부터 고민해 봐야지.”

“그게 뭐냐!”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쟁반을 들고 일어서는 녀석. 카페 안에 가득한 사람들 속을 헤치고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난 보이지 않는 한숨을 내쉬었다.

* * *

블랙 타이드로 돌아가니 마침 어머니가 돌아오셨다. 뜻밖의 아들의 등장에 놀라면서도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가족, 장장 세 달간 끊겼던 가족 간의 대화가 오가고 늦은 오후가 되자 두 테이블 정도 손님이 들어왔다.

사장 없는 하루를 끝내고 업무 정리를 위해 이미래와 김다미가 각각 전화를 해왔고 그러다 보니 창밖에 그림 같은 석양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우와! 하늘 좀 봐. 너무 멋지다.”

한 테이블의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연신 핸드폰 셔터를 눌러댄다. 남자가 그런 여자를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린다.

“저기.”

“네. 손님.”

호출을 받은 주미가 출동했고.

“죄송한데 저희 사진 한 장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물론이죠.”

핸드폰을 건네받은 주미가 여러 장의 커플 사진을 찍어준다. 근데 옆얼굴이 왠지 따갑다. 무슨 일인가 싶어 바라보니 어머니가 저쪽 커플과 날 연신 번갈아 보시는 중.

“으흠.”

난 빨리 망할 석양이 끝나기를 빌었다.

“더 찍어 드릴까요?”

“아뇨, 아뇨.”

웃으며 핸드폰을 건네받은 여자, 사진을 확인한 그녀의 입이 쩍 벌어진다.

“우와. 너무 멋지게 나왔다!”

“완전 작품이네.”

찍어놓은 사진을 보며 짝짝 박수를 치는 여자.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다음 말에 난 온 신경을 빼앗기고 말았다.

“이 사진 꼭, 드라마 ‘블루 아일랜드’에서 나온 그 장면 같지 않아?”

블루 아일랜드, 얼마 전 종영된 대박 드라마.

금산 인삼 광고를 찍으며 며칠간 그곳에서 생활을 하는 동안 김다미가 너무 재미있다며 추천해 주었던 드라마였다.

문제는 드라마가 로맨틱 코미디 장르였다는 것. 온몸에 돋아나는 닭살을 억누르며 녀석이 강제로 보여준 화면을 보게 되었고 등장하는 남녀 주인공을 내가 잘 아는 사람이었기에 관심이 생겼다.

이후 퇴근하고 혼자인 집에서 딱히 할 일이 없어 하나둘 힘겹게 다시 보기를 했다. 결국 힘겹게 완결까지 봐버린 바로 그 드라마였다.

드라마의 설정은 너무도 뻔했다.

망해버린 재벌 아들인 주인공, 크고 잘생긴 그가 빚쟁이들의 성화를 못 이겨 도망치듯 향한 제주도의 작은 마을.

그는 그곳에서 바다가 보이는 작은 카페에서 알바를 시작하고 그 카페를 찾은 시골 여자인 여주인공이 만나며 일어나는 알콩달콩 스토리를 그려낸 드라마.

내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뻔한 전개와 결말이었지만 마지막 화에서 두 사람을 만나게 해준 카페로 돌아와 석양이 지는 창을 배경으로 진한 키스를 나누는 장면은 최고의 명장면으로 두루 회자되었다.

물론 그 장면에 심한 욕설을 중얼대고 있었지만.

“아 정말이네? 드라마 마지막 장면하고 똑같다.”

두 사람이 사진을 보며 호들갑을 떤다.

“아…….”

하지만 호들갑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지금 머릿속엔 흩어진 조각들이 이리저리 달라붙으며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내는 중.

대박 드라마의 주인공들, 내가 잘 알고 필요하다면 써먹을 수 있는 바로 그 녀석들.

녀석들을 이용해 뭔가를 만들어낸다면?

동남풍 애드가 고민하고 있던 너튜브 오리지널 콘텐츠에 더해 망해가는 블랙 타이드를 명소로 부활시킬 수 있다면?

내 손은 어느새 전화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통화음이 들리고 다른 사람이라면 절대로 받을 리 없는 배우의 개인 전화는 정확히 세 번의 연결음 만에 통화가 연결되었다.

[형님!]

전화기 너머에서 반가움이 가득한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요즘 촬영 많냐?”

돌아간 물음에 대한 대답은 일 초도 되지 않아 돌아왔다.

[아뇨! 블루 아일랜드 끝나고 쉬고 있어요.]

“다른 애들은?”

[다들 비슷하죠. 안 그래도 넷이 날짜 맞춰서 여행 가려고 생각 중인데.]

“마침 잘됐네. 한 삼사일만 나한테 시간 내줄 수 있냐?”

[당연하죠! 누구 명령인데.]

“그럼 준비되는 대로 부를 테니까 넷이 같이 여행 간다 생각하고 보령으로 와.”

[설마 광고 찍는 거예요?]

“아니.”

심각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어머니와 안주미.

“나랑 작품 하나 같이하자.”

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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