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모조리 씹어먹어 줄게 71화
71. 스토리의 힘(1)
“아니…….”
책상 위에 올려진 한 장의 정산 내역, 놀라서 커진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진짜 이만큼이나 나왔다고?”
“네. 그럼요.”
책상 앞에 공손히 두 손을 모은 조영찬.
“벌써 구독자 10만 넘었는걸요.”
녀석이 해맑게 웃었다.
동남풍 애드 솔루션은 너튜브 채널을 운영한다. 회사를 만들 때부터 뻔히 예상되는 수익 불안정을 해소하기 위한 일종의 고육책이었다.
우리같이 작은 회사에 늘 찍을 광고가 있을 리 없기에 채널 운영을 통해 다만 얼마라도 수익을 내준다면 회사 운영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시작된 일종의 부업이었다.
우린 광고를 만들었고 그 영상은 광고주의 동의하에 너튜브 채널에 올리기 시작했다. 문제는 첫 영상부터 제법 대박이 났다는 것.
‘전설의 두족류’ 광고는 여러 온라인 사이트에서 두루 회자되었고 덕분에 오리지널 영상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우리 채널을 찾았다.
그렇게 구독자가 늘다 보니 채널 ‘동남풍’은 광고를 찍을 때마다 뇌리에 남았다. 우리가 오직 광고주와 제품만을 위한 광고를 만들지 않은 이유.
그 안에 반전과 웃음을 숨기고 완성된 기승전결을 욱여넣고자 했던 이유의 상당 부분이 바로 이 채널 때문이었다.
그렇게 세 달, 내 책상 위엔 조영찬이 관리하고 있는 채널 동남풍의 첫 번째 수익 정산서가 올라와 있었고 그 금액은 예상보다 컸다.
“의외네. 구독자 10만에 이 정도라니.”
“구독자도 구독자지만 영상 조회 수가 컸죠. 완도 김만 해도 4편 다 백만 넘었고 금산 인삼 편도 며칠 안에 백만 넘길 것 같으니까요.”
그래서 난 조금 허탈하게 웃었다. 이거 잘하면 광고비 수익보다 채널 수익이 더 크겠는데? 그런 생각에 열심히 행복 회로를 돌리고 있을 때였다.
“근데 사장님.”
“응?”
“제가 영상 댓글들 분석을 좀 해봤는데…….”
난 놀란 눈을 깜빡였다. 혼자 회사 내부 관리하랴 채널 운영하랴 바빠 죽을 맛이었을 텐데 그런 건 또 언제 했데?
“저희 오리지널 콘텐츠를 보고 싶다는 의견이 많아요.”
“오리지널 콘텐츠?”
“네. 제품 광고 말고 순수하게 너튜브 채널에 올리기 위한 만든 영상, 크리에이터들이 만드는 그런 영상 말이에요.”
갑작스레 떨어진 화두, 난 까칠한 턱을 슥슥 매만졌다.
“안덕모는 좋겠다. 무슨 신생회사가 이렇게 잘 나가? 만든 지 세 달 만에 광고 몇 개를 만든 거야? 아주 물 제대로 들어오는구만?”
둘둘 만 크림 스파게티를 입에 넣는 김형철.
“슬슬 직원 더 뽑고 법인 전환 들어가자. 그래야 빨리 지분을 받지.”
그리고 손에 든 피자를 작게 베어 문 차혜민.
“어이구. 잘나가는 게 아니라 멀리 나가고 있는 거거든요? 요즘 우리 광고 찍는 거 보면 뭐 느끼는 거 없어요?”
요즘 살쪘다며 샐러드만 하나 시켜 깨작대고 있는 이미래.
“죄다 농수산물 광고라구요. 이쪽 광고는 사시사철 있는 게 아니라서 언제까지 지금처럼 잘될지 장담 못 해요.”
“그래도 참 대단하더라. 살다 살다 인삼 광고를 그런 식으로 할 줄이야.”
김형철이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다.
“아이디어가 좋았지. 우리 사장님 아이디어야 전부터 대단했고 요즘엔 다미가 아주 다크호스야.”
“그래?”
김형철의 물음에 차혜민이 고개를 끄덕인다.
“하긴 김다미는 광인에서 신입으로 뽑을 때부터 싹수가 보였어. 실력도 실력이지만 애가 성향이 너무 좋더라.”
대화가 이어진다. 동남풍 애드에 대한 얘기부터 시작해 도착한 곳은 역시나 광인 기획 이야기.
“참 진광인 대표님은 아직 병원에 계신가요?”
차혜민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좋아지긴 했는데, 그래도 당장 퇴원은 힘든 모양이더라. 본인도 이참에 쭉 쉬었으면 하는 눈치고.”
오가는 대화 속에 내 목소리는 없다. 정확히는 내내 생각에 빠져 있는 상태. 나누던 이야기가 정리될 즈음 난 모두에게 물었다.
“다들 동남풍 애드가 오리지널 콘텐츠 만드는 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뭐?”
“뭔 오리?”
제각각 반응하는 사람들에게 오늘 조영찬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전했다.
오늘은 회사의 고문들과 함께하는 점심 자리다. 차혜민은 공식 외부 고문, 이미래는 내부 고문, 김형철은 고문보다는 고문관에 가깝지만.
거창한 모임은 아니고 그냥 옛 광인 기획 직원들끼리 모여 밥 한 끼 하는 자리다 보니 다양한 주제가 테이블 위에 올라온다.
그래서 내내 머릿속을 맴돌던 고민을 털어놓았고 예상한 대로 반응은 각각 달랐다.
“야. 동남풍 광고회사야. 광고가 메인이어야 한다고. 그런 거 만들어서 올리면 그냥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되는 거잖아? 잘못하면 이도 저도 아니게 될 수도 있어.”
김형철은 반대.
“아냐, 괜찮은 생각이야. 여러 콘텐츠로 구독자가 늘어나면 앞으로 너희가 찍을 광고의 파급력도 그만큼 올라가는 거야. 어차피 이 시장 성장 멈춘 레드오션이야. 동남풍이야 신생회사니까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봐.”
차혜민은 찬성.
“그래도 지금은 신중해야죠. 지금 동남풍 사장님 포함 직원 고작 네 명이에요. 방향을 열어두는 건 좋지만 그건 회사가 좀 커지면 고민해 볼 일이라고 생각해요. 직원 열 명쯤 되면 광고팀하고 콘텐츠 팀을 나눠서 운영할 수도 있겠죠.”
이미래는 중립.
“흐음.”
내내 고민했던 것처럼 방향이 갈린다.
“네 생각은 어떤데?”
그래도 오랜 고민의 결과 난 하나의 결론에 도착한 상태였다.
“전 괜찮은 것 같아요. 다만 계기 없이 갑자기 만드는 것도, 몇 안 되는 직원을 그 일에 돌리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럼 안 만든다는 소리 아냐?”
차혜민의 지적.
“네. 결국 해보고는 싶은데 지금은 여력이 없다 정도가 되겠네요.”
“뭐야, 그게.”
“결론은 지금은 못 만든다는 거죠, 뭐.”
“짜식이. 사장되더니 쓸데없이 말투가 심오해지는 거 같다?”
쓰게 웃었다. 그때였다.
우웅.
품속 핸드폰이 진동했다. 발신자를 확인하니 안주미.
“저 통화 좀 하고 올게요.”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래, 주미야.”
전화기 너머에서 어머니와 함께 보령으로 내려간 동생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 *
며칠 후 난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늘 막히던 서해안 고속도로는 평일이라 그런지 더없이 한산하다.
막힘없이 뻥 뚫린 도로를 내달리는데 차창 너머 서해안의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부웅.
커지는 엔진음과 함께 조금 전 사무실에서의 기억이 떠오른다.
“보령이요?”
보령에 며칠 내려갔다 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김다미가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머드축제 광고예요?”
“아니.”
“그럼 설마 석화?”
“아니.”
난 피식 웃었다. 이 녀석 이제 어디 지역 이름만 나오면 광고를 생각한다.
“개인적인 일이야. 우리 가족들 거기가 있거든.”
“아…….”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
“내려가면 며칠이나 걸릴지 모르겠다. 나 없는 동안 네가 우리 회사 공식 카피라이터야.”
“네?”
그리고 놀란 눈이 동그래진다.
며칠 전 안주미의 전화를 받고 그제야 알았다. 퇴직을 하고 보령으로 내려가 차리신 어머니의 가게, 그러니까 카페에 문제가 생겼다.
몇 차례 통화를 하면서 작은 문제가 아니라는 걸 확인했고 그 뒤로 직접 내려갈 일정을 조율했다. 내가 사장인 동시에 우리 회사의 메인 카피라이터 역할을 하고 있기에 며칠이나 회사를 비워도 되는지 확신은 서지 않았다.
꼭 가야 한다면 큰 광고가 끝나고 새 광고 계획이 없는 지금이 적기.
“나 없는 동안 이 팀장님이 봐주실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화면에서 시선을 떼어낸 이미래, 얼마 전 내 사정을 들어 미리 알고 있는 그녀가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네 걱정 말고 다녀오세요. 무슨 일 있으면 전화 드릴게요.”
직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보령행에 올랐다. 그리하여 도착한 가족의 카페, 오픈하고 두 달이나 됐는데 난 가족 카페를 처음 와보았다.
예쁘게 잘 꾸며놨다. 작은 규모지만 실내는 포근함을 잘 살렸고, 홀에 앉아 서해 바다를 볼 수 있어 위치도 제법 신경 쓴 티가 났다.
작지만 2층 자리도 있어 번잡함을 피해 조용함을 즐기려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도 좋다. 전반적으로 오밀조밀 예쁘다. 하긴 안주미가 해놨으니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드러운 홀의 공기에 선율 좋은 음악이 울려 퍼지고 그새 은은하게 밴 커피 향이 더해진다.
다 좋은데 꼭 있어야 할 게 없다는 게 문제지만.
“손님이 아무도 없네?”
지금 시간은 오후 한 시 반, 점심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커피 한 잔씩 하기 딱 좋은 카페엔 손님은 고사하고 파리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손님이 없으니 둘이나 가게를 지키고 있을 필요가 없어 가게를 비우신 어머니.
“처음엔 이러다 좋아지겠거니 생각했거든?”
혼자 텅 빈 홀에 앉아 노트북만 쳐다보고 있던 안주미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 오픈했을 때는 나름 괜찮았어. 카페 오가는 사람들도 좀 보이고. 근데 어느 날부터 손님도 사람도 싹 사라진 거야. 알고 보니까 요 아래 해변으로 향하는 길이 새로 생겼더라고.”
가족 카페로 올라오던 길이 떠오른다. 큰길에서 해변으로 이어지는 길, 원래라면 우리 카페를 지나야 갈 수 있었던 길은 이제 두 갈래가 되었다.
그리고 내 차와 비슷한 시간에 해변을 찾은 차들은 대부분 새로 난 길로 방향을 잡았다.
“게다가 그쪽 길에 또 카페가 몇 개 생겼어. 거기는 규모도 다르더라고, 빵도 직접 구워 파는 베이커리 카페도 있고.”
한마디로 모든 상황이 나빠졌다. 카페 근처 유동인구는 줄고 강력한 경쟁자까지 나타났다.
우리 같은 작은 규모의 자영업자는 이런 상황을 버티기 힘들다. 직원 없이 가족이 운영하기에 망정이지 수입 없이 나가는 인건비 때문에 적자가 난다면 그 고통은 더 크고.
“이런 일이 있었으면 진작 얘기를 했어야지.”
“아니, 난 하려고 했거든?”
녀석이 억울한지 목소리를 높였다.
“엄마가 하지 말라고 했다고.”
“뭐? 왜?”
“아니, 너 바쁘잖아. 우리 여기 와 있어도 너네가 만든 광고 하나도 안 빼놓고 봤어. 뭔 광고를 보름에 하나씩 찍어내더구먼. 바빠서 한번 내려오지도 못하는 거 뻔히 아는데 어떻게 말하냐고.”
“하아…….”
가슴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치솟았다.
이 카페는 내가 만든 흔적 같은 거다. 잘 나다니던 회사에서 밀려나 이곳에서 카페를 시작한 이유도 나 때문이고, 남자 하나 없이 여자 둘이서 내려오게 만든 것도 나다.
그러니 이 카페가 이대로 망하게 둘 수는 없다.
“어머니는?”
“아. 이모네 가셨어. 저녁때쯤 오실 거야.”
“오늘 개시는 했냐?”
“아니…….”
녀석이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다.
“그럼.”
난 만든 지 얼마 안 돼 여전히 깔끔한 메뉴판을 올려다보았다.
“여기 따듯한 아메리카노 두 잔이랑 초코케이크 한 조각 내와 봐라.”
“뭐?”
녀석의 미간이 잔뜩 일그러진다. 난 그런 녀석을 보며 피식 웃었다.
“뭐긴 뭐야? 오늘 첫 손님께서 주문하시는데.”
난 품속에서 지갑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신용카드 한 장을 빼 내밀었다.
“일단 개시부터 하자. 맛도 이상 없는지 꼼꼼히 살펴볼 거니까 제대로 만들어봐.”
내민 카드를 바라보던 녀석. 녀석이 군말 없이 그걸 받아 든다.
“네, 손님. 준비되면 진동벨로 알려드릴 테니 자리에서 기다리세요.”
카드를 포스에 꽂아 넣으며 중얼중얼 흘러나온 말에 난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