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모조리 씹어먹어 줄게 70화
70. 어쩌다 보니 농수산물 전문(9)
“광고라는 게 참 무섭네요. 한 달 전만 해도 망해가던 공장이 이렇게 되살아 날줄이야.”
다시 찾은 완도. 활기가 넘치는 공장을 바라보며 조합장이 중얼거렸다.
“확실히 분위기가 달라졌네요.”
기꺼운 마음으로 대답했고.
“그러게요. 저기 화물차 좀 봐요.”
김다미가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그곳엔 김 원초를 실은 화물차들이 끊임없이 공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광고 나가고 김 어민들 형편도 한결 나아졌어요. 수입이 늘어나니까 동네 전체에 활기가 돈달까요?”
서현석의 말처럼 활기가 넘치는 건 공장만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도착한 이곳엔 내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은 날 보며 깊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덕분에 우리 김이 다시 살아났어요.’
‘사돈에 팔촌까지 전화로 그럽디다. 김 있으면 한 박스만 달라고.’
제각기 한마디씩 보태는 주민들은 웃고 있었고 더 이상 궁핍과 적대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김다미가 웃는다.
“조합장님하고 주임님 얼굴도 좋아지셨어요. 하긴 품절 김 만드시니 당연한 건가?”
“하하.”
서현석이 머쓱하게 뒤통수를 긁는다.
“참, 그 사람은 어떻게 됐나요?”
돌아간 물음, 대답은 서현석이 돌려주었다.
“강창식 과장이요? 하긴 이제 우리 직원 아니니까 그냥 강창식 씨라고 해야겠다.”
이번 광고 성공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건 서원식품이었다. 최상급의 원초를 저가에 싹쓸이했던 그들이었기에 충격이 더 크게 느껴졌을 것이다. 게다가 완도 바다 김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까지 나타났다.
품질도 떨어지고 원초 매입가는 올라갔으며 경쟁자로 인해 매출 타격까지 받는 상황, 돈을 받고도 값어치를 하지 못한 하수인을 쳐내는 건 나름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돈 받았다는 제보가 있었던 모양이더라구요. 본사에서 감사팀 내려와서 책상 다 털어가고 본사로 끌려가 조사받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결국 며칠 못 가고 그만뒀죠. 듣자 하니 받았던 돈도 다 토해내야 한다고…….”
조합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무실에 물건 챙길 것도 없더라구요. 빈손으로 인사도 못 하고 도망치듯 떠나는데 사람들이 앞을 막고 어찌나 욕을 했던지.”
서원식품의 하수인들의 정체가 탄로 났다. 양식 어민들의 분노는 정당한 것이었다. 다니던 직장에서 잘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결국 그는 참아왔던 분노를 온몸으로 감당해야 했다.
“다행히 얻어맞고 그러진 않았어요. 그래도 보고 있기 민망할 지경이더군요. 결국 그날 저녁에 어디론가 조용히 떠났다고 들었습니다.”
인과응보.
강창식과 하수인들은 자신이 한 짓으로 인해 단죄되었다. 뭐 덕분에 이쪽은 해피엔딩.
“참 워크숍 오셨다면서요? 이거 너무 시간을 많이 빼앗았네요.”
난 조합장에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저희 발로 나온걸요. 지금 펜션 가봐야 술만 진탕 먹을 것 같으니까…….”
애초에 첫 완도행이 워크숍을 겸한 것이었다. 하지만 급박한 이곳 상황에 워크숍은 합숙이 되었고 첫날 기차 타고 사진 몇 장 찍은 걸 빼면 워크숍이라 부를 수 있는 건 없었다.
워크숍을 다시 하고 싶다는 김다미의 요구는 타당한 것이었고 마침 광고도 끝나자마자 펜션 하나를 예약했다.
우리 직원은 물론 스튜디오 판타지아 담당자들을 싹 완도로 끌고 와 펜션에 몰아넣어 두었다. 이제 여섯 시간쯤 되었으니 그곳에 어떤 풍경이 벌어지고 있을지는 안 봐도 알 것 같다.
“그래도 가야 돼요. 언제 오냐고 촬영감독님이 계속 전화하고 있단 말이에요.”
실시간으로 진동하고 있는 김다미의 핸드폰,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슬슬 가자. 조합장님 저희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보답으로 받은 바다 김이 트렁크 가득 실린 차를 향해 돌아서려 했다. 그때였다.
“아! 잠깐만요. 중요한 얘기를 안 했는데.”
서현석의 목소리에 발걸음이 멈추었다.
“조합장님 금산에서 연락 왔던 거요.”
“아! 내 정신 좀 봐.”
그가 짝 박수를 쳤다.
금산?
뒷얘기를 듣지 않았지만 이미 온몸엔 닭살이 올라온 상태였다. 그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상 따뜻한 얼굴의 조합장이 중얼거린다.
“이번 광고로 선생님 회사 적자 본 거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일 도저히 모른 척 넘어갈 수가 없겠더군요.”
광고 스케일이 결정되었을 때부터 적자는 확정이었다. 그렇다고 편성 끝난 수협의 광고비를 증액할 순 없었다. 적자라도 이번 광고는 꼭 필요한 것이라 판단했고 결국 독단으로 적자를 무릅쓰고 광고를 찍어 내보냈다.
그 부분을 신경 쓰는 광고주의 마음이 싫을 리 없건만.
‘금산…… 충남 금산.’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난 그가 어떤 말을 할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온몸에 일어난 닭살은 지금 터지기 일보 직전.
“아닙니다. 적자가 큰 것도 아니고 김도 잔뜩 주셨는걸요? 그냥 잊으세요. 저희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선생님, 그런 말씀 마세요.”
조용히 도망가려는 옷깃을 붙잡은 조합장. 제길 도주 실패다.
“어찌 이 은혜를 갚아야 하나 고민이었는데 마침 좋은 일이 생겼단 말입니다. 제 동창의 친구 놈의 형님이 충남 금산에 있거든요.”
난 속으로 빌었다.
‘농수산물 이제 그만!’
“그 형님이 인삼 농사를 하십니다. 들어보셨지 않나요? 금산 인삼.”
쿠궁.
내 머릿속엔 재앙급의 천둥이 내려치고 있었다.
“……인삼이요?”
“예. 그 형님이 금산 농협에 건의를 했나 보더군요. 인삼 광고 선생님 회사에 맡기자고.”
“하하…….”
내 입에선 허탈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고.
“그건 저희랑 달리 광고비도 큽니다. 적자 보신 거에 비하면 반의반도 되지 않는 보답입니다만.”
조합장의 주름진 눈이 반달처럼 휘어졌다.
“선생님께서 인삼 광고를 만들어주십시오.”
* * *
광란의 워크숍이었다. 귀한 바다 김 한 트렁크와 인삼 광고를 받아 펜션으로 돌아간 직후.
완도의 저녁 바다, 조용히 파도치는 명사십리 백사장에 난 얼굴을 파묻었다. 조영찬이 구해주지 않았다면 만취해서 모래사장에 빠져 죽은 희귀 케이스가 될 뻔했다.
올라오는 차 안. 난 내내 회전목마를 타는 기분을 느껴야 했고.
“두 번 다시 판타지아랑 술 먹나 봐라!”
결국 판타지아와 회식 금지 조치가 결정되었다.
“진짜 사장님 주량 문제 있다니까? 사업하는 사람이 그렇게 알쓰면 어떻게 해요?”
이미래의 지적에 김형철이 물었다.
“알쓰? 알쓰가 뭐야? 아랐스 그런 건가?”
이번엔 또 왜 따라온 건지, 김형철을 보며 이미래가 눈으로 욕을 했다.
“알쓰. 알코올 쓰레기요.”
김다미의 대답에선 알코올 대신 쓰레기라는 단어만 선명하게 들려왔다.
아무튼 다음 광고는 확정이었다. 어쩌다 보니 농수산물 광고 전문이 되어버린 동남풍 애드가 인삼 광고를 고사할 필요는 없었고 다시 한번 금산과 서울을 오가는 일정이 시작되었다.
[촬영 어디서 한다구요?]
판타지아 촬영감독의 전화에 난 목소리를 키웠다.
“산이요, 산.”
[아니, 왜?]
완도에서의 앙금은 여전히 남았다. 가장 많은 술을 먹인 게 그였고 덕분에 난 콧구멍에서 일주일간 콧물에 모래가 섞여 나오는 희귀한 경험을 해야 했다.
“그럼 인삼 광고를 산에서 하지 바다에서 해요?”
그래서 돌아간 대답은 까칠했고.
[……허.]
고객의 모진 요구에 판타지아 촬영감독은 헛숨만 들이켰다.
“다 같이 모여서 올라갈 거니까 시간 맞춰 주차장으로 와요.”
그렇게 동남풍 애드 솔루션의 광고 촬영이 다시 시작되었다.
다시 며칠이 지나고.
“아웅. 또 졸리네.”
모처럼의 휴가, 늘어지게 늦잠을 잔 남자가 길게 하품했다.
“몸이 허한가? 왜 자도 자도 피곤하지?”
아내는 출근했다. 아이들은 학교로 유치원으로 떠났다. 홀로 남아 소파에 몸을 붙인 채 발가락으로 리모컨을 끌어당기는 그의 모습이 참으로 인간적이다.
“어디 TV나 볼까요.”
콧노래를 흥얼대며 TV를 켰다. 아침이라 볼만한 프로는 없었고 끊임없이 올라가던 채널 번호가 예능을 재방송해 주는 채널에 멈췄을 때였다.
지금은 광고 중.
쾅!
[시원하게 콸콸콸! 남자의 활력 쏘팔! 메토!]
성우의 나레이션에 남자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촌스러운 나레이션, 허접하기 그지없는 애니메이션, 남자는 생각했다.
‘건강식품 광고는 20년이 지나도 변하는 게 없구나.’
[지금 바로, 전화 주세요!]
채널을 돌려버릴까 고민할 때 마침 광고가 끝났다. 화면이 어두워져서 이제 시작하나 보다 생각하는 찰나.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으응?”
깊은 숲속, 88 올림픽 호돌이 같은 호랑이 인형 옷을 뒤집어쓴 남자가 화면에 등장했다. 남자는 정체불명의 영상 앞에 멍한 눈만 깜빡였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그 앞을 지나는 한복 차림의 아낙, 그녀가 머리에 인 바구니에서 떡 하나를 내밀었다.
“여기요.”
“오케이, 넌 패스.”
오케이, 패스? 남자의 미간은 사납게 일그러졌다.
“너도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황당함은 거부감을 불러온다. 하지만 그 황당함이 지나치면 생각이 정지할 때가 있다.
지금 남자가 그러하다. 지금 보는 영상의 정체를 끊임없이 고민하던 남자의 논리는 이제 갈 곳을 잃고 안드로메다로 날아간 상황.
“떡은 없고…… 이걸로 안 될까요?”
“깁 미, 어흥.”
바구니에서 나온 하얀 무언가. 그건 크고 아름다운 인삼이었다. 아낙의 손에 들린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던 호랑이가 버럭 화를 낸다.
“여보쇼! 내가 초식으로 보여? 우리 조상님도 쑥 하고 마늘까지만 입에 대셨어. 지금 어디다 풀뿌리를 들이밀어?”
“풀뿌리라뇨. 이건 그런 게 아닙니다.”
“뭐?”
“면역력을 올리고 신진대사를 활발히 하는 최고의 약재, 인삼입니다.”
아낙이 씩씩대는 호랑이의 팔을 부여잡는다.
“몸이 이래서야……. 사냥은 안 하시고 매일 떡만 드시니 이리된 것이지요.”
“……어?”
거침없는 스킨십에 호랑이가 주춤 물러선다.
“맛은 써도 떡과는 비교도 안 되게 몸에 좋은 겁니다. 금산에서 정성을 다해 키운 6년 근이니까요.”
“아니, 아니, 넌 그냥 패스.”
“가만히 계셔요.”
아낙이 호랑이를 제압하기 시작한다.
“야야! 뼈 뼈!”
결국 힘으로 제압당한 호랑이, 인형 탈의 입에 금산 인삼이 강제 투입된다.
“써! 쓰다고!”
“산을 지키시는 산군께서 아낙의 힘도 감당을 못 하시니…… 앞으로 달포에 한 번씩 찾아오겠습니다.”
호랑이 탈, 인형 눈에 지진이 일어난다. 그리고 화면이 전환된다.
“뭣이? 길을 막고 떡을 뺏는 호랑이가 있어?”
사또 복장의 사내. 그가 우렁차게 외친다.
“내 고을에 호환이라니! 있을 수 없다. 지금 당장 착호갑사를 파견하라!”
지시가 떨어지고 호랑이를 사냥하기 위한 사냥꾼들이 모였다. 잠시 후 숲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냥꾼들.
“쉬잇! 저기 있다.”
앞에서 위협적인 야수의 포효가 들려온다.
“으르렁…….”
그곳에 있는 건 인형 탈이 아닌 정교한 그래픽으로 구현된 거대한 대호.
“아…… 씨.”
대장 사냥꾼이 총을 내려놓고 두 손을 든다. 대장을 따라 다른 사냥꾼들도 번쩍번쩍 손을 들어 올린다. 뒤돌아본 대장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
“뭐 하냐? 떡 꺼내.”
바구니째 진상되는 떡 바구니, 뿌듯한 얼굴로 그걸 바라보는 대호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화면이 암전된다.
[충남 금산의 좋은 기운으로 6년을 한결같이.]
[자식처럼 키운 인삼, 금산 농협 인삼.]
어두워진 화면 너머 호랑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넘치는 사포닌이 지친 당신에게 야생의 활력을! 금산 인삼, 리얼 어나더 레벨!”
광고는 끝났다. 기다리던 예능이 시작되었지만 지금 남자에게 그런 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여보?”
전화기를 귀에 붙인 그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나 인삼 좀 먹어야 할 것 같은데? 아니, 아니. 그런 거 말고, 금산 인삼.”
[금산 인삼, TV CF, 45초 버전,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