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모조리 씹어먹어 줄게 69화
69. 어쩌다 보니 농수산물 전문(8)
“다미야. 반응은 좀 어때?”
미팅이 끝나고 돌아온 사무실. 난 돌아왔다는 인사 대신 물었다. 녀석이 피식 웃는다.
“좋아요. 좋다구요.”
“아니, 구체적으로.”
“일단 첫 편 조회 수 어젯밤에 100만 넘었구요. 2편 하고 3편도 각각 80만 넘겼어요. 주요 온라인 사이트 인기글에 전부 올랐구요. 지금도 포탈 열어보시면 메인 페이지에 해당 뉴스 올라와 있구요. 에 또…….”
녀석이 손가락으로 슥슥 볼을 긁었다.
“아침에 서현석 씨한테 연락받았는데 바다 김 공장 지금 쌩쌩 돌아간답니다.”
“그거 잘됐네.”
이번 영상을 많은 사람들이 보도록 만들기 위해 난 주미 친구 박선영과 그녀의 회사와 접촉했다.
지난번 광고회사 K 이야기로 재미를 봤던 그녀의 회사는 이번 광고에도 적극적인 협조를 약속했다.
수많은 구독자를 보유한 소속 크리에이터들의 지원사격에 ‘최고의 뇌물을 찾아서’ 첫 영상은 업로드되자마자 폭발적인 조회 수를 기록했다. 작정하고 투입한 배우진, 높은 영상 퀄리티가 합쳐져 이번 광고에 대한 관심은 최고조.
“참, 사장님. 좋은 소식 추가요.”
이번엔 다른 목소리, 이미래였다.
“반도 자동차에서 직원들 선물용하고 매장 판촉용으로 대량 구매 결정했답니다. 어제 오더 넣었다고 들었구요.”
그리고 대답은 김다미가 해주었다.
“아. 그래서 죽겠다고 그랬구나?”
“뭐가?
김다미의 눈이 반달처럼 휘어진다.
“김 공장 말이에요. 지금 주문이 쏟아져 들어오니까. 근데 반도 차 물량까지 쳐내려면 24시간 공장 돌려도 답 없는 상황인가 보더라고요.”
이미래가 슥슥 뒤통수를 긁었다.
“그래? 그럼 큰일이네? 오늘 최종 편 나가면 더 난리 날 텐데.”
“음 그러게요?”
턱에 검지를 붙이며 곰곰이 생각하는 김다미.
“진짜 광고 내용처럼 품절 김 되고 프리미엄 붙고 그렇게 될 수도 있겠네요, 뭐.”
좋은 소식들이다.
지난 완도 체육관에서 우린 진짜 패를 숨긴 채 광고 내용 중 극히 일부만을 잘라내 어민들에게 보여주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내가 오천 쌀 광고 시연장에서 비슷한 상황을 겪어봤다는 것. 트렌디한 광고, 게다가 최신 트렌드에서도 늘 두어 발자국 앞서 있는 동남풍 애드 솔루션의 광고는 농민이나 어민들이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들다.
그래서 총 네 편의 시리즈 광고 중 극히 일부만을 편집해 시연에 써먹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진짜 패는 숨겨야 하니까.’
이번 바다 김 광고에서 대척점은 명확했다. 상대는 서원식품과 사주받은 수족들. 그들은 수협은 물론 어민들 중에도 있었고 이번 광고의 모든 걸 오픈하면 그에 맞춘 대응책을 내놓았을 것이다.
그래서 적당한 광고를 준비했다. 흔하고 뻔한 광고라 생각한 저들은 광고가 올라갈 때까지 적당한 대응을 하지 못했고, 덕분에 저쪽은 지금 소는 사라지고 무너져 버린 외양간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태.
“최종 편 업로드는?”
“이제 해야죠. 영찬아, 준비됐지?”
“네. 완료요.”
“오케이, 잠시 대기.”
자리에서 일어선 김다미가 내 등을 떠민다.
“왜, 왜?”
그리하여 도착한 곳은 조영찬의 컴퓨터 앞. 약속이나 한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선 조영찬이 준비가 완료된 모니터를 내 쪽으로 돌린다.
“마지막은 사장님이 하세요.”
김다미가 내 손을 잡아 마우스에 가져다 댔다.
“별 쓸데없는.”
무심하게 손을 뻗어 녀석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아 진짜!”
녀석이 헝클어진 머리에 발끈한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럼 올린다.”
“네. 올려버려요.”
어느새 다가온 이미래, 김다미, 그리고 조영찬. 직원들의 기대 어린 시선을 받으며 이번 광고의 대망의 최종화, 법정공방 편 업로드 버튼을 클릭했다.
딸깍.
영상이 업로드되었다. 0이었던 조회 수는 매초 천 단위로 치솟아 올랐다.
* * *
충남 보령. 오픈 준비에 한창인 바닷가 카페.
인테리어가 끝난 매장에서 노트북을 쳐다보고 있던 안주미가 고개를 돌렸다.
“엄마, 엄마!”
“왜?”
“오빠 거 영상 마지막 편 올라왔어.”
“아 그래? 근데 이것만 마무리하고 가면 안 될까?”
“안 돼 안 돼. 지금 봐.”
작게 한숨을 내쉬며 하던 일을 놓으신다.
“같이 보면 나도 도와줄 테니까.”
“아이구, 여태 탱자탱자 놀아놓고?”
고무장갑을 벗어놓고 노트북이 있는 홀로 다가선다.
두 달 전.
남편이 곁을 떠나고 홀로 남은 그녀가 두 아이를 키울 수 있게 만들었던 회사, 그 회사가 하루아침에 자신을 자른 이유는 덕모를 통해 들었다.
보령으로 내려가야 하냐를 두고 심각하게 고민하던 시기 안덕모는 말했다.
‘제 탓이에요. 어머니.’
뜬금없는 이야기였지만 이야기가 끝났을 때 그 말이 사실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광고가 대기업의 심기를 건드렸고 그로 인해 보복을 당했다. 아들이 다니던 회사는 문을 닫았고 그 여파에 자신도 평생을 바친 회사에서 쫓겨났다.
‘괜찮아. 네 잘못 아니야.’
가해자는 명확했다.
힘 있는 자가 힘 없는 자를 짓밟은 것이고 그녀의 아들이 대기업의 견제를 받아야 할 만큼 큰일을 하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그래서 미련 없이 보령행을 선택할 수 있었다. 세 가족이 오순도순 카페를 운영하자는 계획은 바뀌었지만 그녀는 아들의 결정을 존중해주었다.
“짜식, 카페 버리고 회사 만든다더니 제법인데?”
안주미의 평가처럼, 안덕모는 그 어느 때보다 지금 순간 빛나고 있었다.
“여기 앉아.”
주미가 옆자리를 두드린다.
“오냐.”
사람들은 영상 속 배우들의 연기에 열광하지만 두 사람은 알고 있다. 배우들이 열연을 펼칠 무대도, 영상 속 스토리와 대사도 모두 덕모 같은 카피라이터가 만든다는 걸.
“시작한다?”
“그래.”
안주미가 영상을 클릭했다. 노트북 화면엔 이번 시리즈의 마지막 편, 법정공방 편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지난 며칠간…….]
주인공, 대기업 총수를 법정에 세운 검사. 이번 편은 그의 독백과 함께 시작되었다.
[우린 K 회장의 김을 조사하기 위해 현장을 낱낱이 파헤쳤다.]
2편과 3편에서 다루었던 주인공 일행의 완도 김 탐사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증거물 박스에 김을 쓸어 담는 모습.
전국의 김을 다 모아놓고 한 조각씩 살피고 맛보던 직원들.
김 공장에서는 문전박대를 당하고, 양식 어민들을 졸졸 따라다니며 김에 대해 묻는 모습까지.
주인공의 시선이 맞은편으로 향한다. 다수의 변호인과 함께한 K 회장. 주인공과 눈이 마주치자 비릿한 미소를 짓는다.
[오늘 당신은 준엄한 법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독백이 끝났다. 그제야 들려오는 변호인의 음성.
“고작 김이었을 뿐입니다. 문제가 있었던 부분 인정하지만 뇌물이라 할 수 없는 의례적 선물일 뿐이죠.”
말을 멈춘 그가 눈을 돌려 주인공을 바라본다. 그의 얼굴에 이미 승리자의 오만함이 떠올라 있었다.
[강 변, 네놈의 연승도 오늘 끝날 테고.]
“이상 변론을 마치겠습니다.”
“그럼 검사 측?”
“네.”
“의견 개진하세요.”
주인공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검사석을 돌아 재판을 방청석으로 향한 그가 입술을 뗐다.
“피고인 K는 다수의 국회의원과 공무원에게 김을 건넸습니다. 저는 그것이 어떤 김인지 확인하기 위해 완도에서 피고인이 선물한 것과 똑같은 김을 확보했습니다.”
그가 빙글 뒤돌아선다.
“재판장님, 증거를 제출합니다. 그리고 증거물을 다 함께 맛볼 수 있도록 해도 되겠습니까?”
“음…….”
잠시 고심하던 재판장의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하세요.”
“감사합니다.”
직원들이 준비된 김을 나눠주기 시작한다. 접시에 먹기 좋게 담긴 김들이 방청객들에게 제공되자 놀란 사람들이 웅성인다.
“이번 기소는 하나의 의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각자 김이 담긴 접시를 받아 든 사람들이 주인공에게 집중한다.
“세상엔 많은 김이 있습니다. 하지만 K 회장은 오직 완도 바다 김을 고집했다는 관계자의 증언을 확보했습니다.”
법정에 녹음된 음성이 울려 퍼진다.
[회장님 바다 김은 품절입니다. 다른 김으로 하시면…….]
[무슨 소리야! 바다 김 아니면 안 돼.]
회장 K와 직원 간의 대화 녹취였다. 주인공이 바다 김 한 장을 들어 올린다.
“그는 왜 꼭 완도 바다 김을 고집했을까?”
법정 한구석에 준비된 화면에 사진이 떠올랐다. 바다 김과 함께 다양한 김들이 비교된 화면이었다.
원초의 영양성분, 양식 환경, 생산공정은 물론 완성품까지.
특히 눈길을 잡아끄는 건 조직의 조밀함을 살피기 위해 빛을 투과시킨 사진이었다.
“이 김은 다른 김과 차원이 달랐습니다. 특히 뭉친 곳 없이 잘 펴진 조밀함은 그야말로 예술적이더군요. 아마 입에 넣으시면 살살 녹는다는 느낌을 받을 겁니다.”
방청객들이 김 한 장을 손에 들고 조명에 비춰본다. 주인공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명품가방에 대해 다들 아실 겁니다. 물건을 담아 들고 다니는 똑같은 용도의 가방이지만 디자인과 품질이 뛰어나고 희소성까지 갖추면 그걸 명품이라고 부르고 높은 가격을 매겨도 삽니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
“압도적인 원초 품질, 깨끗한 최신식 제조설비로 구현된 비교 불가한 맛, 게다가 쉽게 구할 수 없는 희소성까지……. 저는 이 김이야말로 명품이라 불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웅성이는 방청석, 재판에 대해 열심히 기사를 적어 나가던 기자가 옆자리 후배를 바라본다.
“나만 그런가? 이거 왜 김 광고 같지?”
“김 광고니까요.”
“아,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다시 기사를 적어 나간다.
이제 주인공이 피고인석을 향한다.
“국가공무원에게 책가방을 주는 건 큰 문제라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명품가방을 주면 우린 그걸 뇌물이라고 부릅니다. K 회장은 보통 김이 아닌 명품 김을 공무원에게 주었고 그 결과 추진 중인 리조트 사업은 비정상적인 프로세스로 승인되었습니다.”
척.
주인공이 들어 올린 손가락이 K 회장에게 향한다.
“의례적 선물이라고?”
그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그려진다.
“아니. 바다 김은 최고의 뇌물이야.”
웅성웅성.
법정은 소란에 빠져들었다.
“이상 발언 마치겠습니다.”
“아니…….”
심각한 얼굴로 자신 앞에 놓인 김을 바라보는 판사.
“이건 언제 먹어요? 지금 먹어도 돼요?”
의미심장하게 판사를 올려다보는 주인공.
끄덕.
그의 고개가 작게 끄덕인다.
화면이 바뀐다. 첫 화에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는 완도 바다 김 공장에 있다. 위생모를 쓰고 생산된 김들이 라인을 타고 이동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기자가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네. 저는 K 회장 구속에 결정적인 증거가 된 완도 김 생산공장에 나와 있습니다. 이례적 판결 이후 품절 대란을 겪으며 생산되는 족족 팔려나가는 통에 이곳 공장도 골치가 아픈 상황이라고 하는데요. 과연 그 맛은 어떤지…….”
발걸음을 옮긴 그녀가 앞에 생산된 김이 그득히 쌓여 있다.
“제가 한번 먹어보겠습니다.”
홀린 듯 손을 뻗는 기자.
턱.
그 손은 공장 직원의 손에 붙잡혔다.
“국민의 알 권리가 있는데…… 딱 한 장만요.”
“안 됩니다.”
김과 카메라를 번갈아 보던 기자, 그녀가 애처로운 눈빛을 한 채 마지막 대사를 입에 올린다.
“이상으로 바다 김 광고를 마치겠습니다.”
화면이 전환되고 석양이 진 완도 바다 위로 떠오르는 헤드카피.
[당신을 위한 최고의 뇌물, 완도 바다 김.]
[완도 바다 김, 최고의 뇌물을 찾아서, 온라인 Ver 최종화,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