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모조리 씹어먹어 줄게 68화
68. 어쩌다 보니 농수산물 전문(7)
[완도의 깨끗한 바다를 여러분의 식탁 위로.]
광고의 마지막, 드론으로 촬영한 석양의 완도 바다. 그 아름다운 모습이 이어지며 마지막 광고 문구가 떠오른다.
[원초부터 다릅니다. 완도 바다 김.]
광고가 끝났다.
“와…….”
“잘 만들었네.”
“역시 전문가는 전문가야. 화면빨이 다르구만?”
제법 긍정적인 어민들의 반응들, 강창식 과장은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별거 없네.’
광고 상영 전 단상에 오른 안덕모의 말 때문에 바짝 긴장했던 그였다.
그의 말은 완도 김에 대한 어민들의 자긍심을 자극하는 것이었고 동시에 김 생산지 리스트에서 완도를 지워버리고 매해 가격을 깎아 완도 김 양식 어민들을 생활고에 빠지게 한 원흉, 바로 서원식품에 대한 직격탄이었다.
어민들과 한자리에 앉아 안덕모의 연설을 들었기에 그는 알 수 있었다. 어민들의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걸.
이 자리의 대부분이 최소 20년 이상 김 양식을 했던 사람들, 과거 완도 김의 영광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20년간 김 양식은 바뀐 게 없다. 바뀐 거라곤 과거 원초를 한 장 한 장 말려 수가공으로 포장해 완도 김이라는 브랜드를 붙여 팔던 것이 서원식품의 원료로 납품되었다는 것뿐.
하지만 그 결과 어민들은 궁핍해졌고 완도 김은 세상에 자취를 감추었다.
다양한 산지의 김 원초를 한데 섞어 조미 기름을 바르고 소금을 쳐 판매되는 서원의 브랜드 김은 완도 김이라 할 수 없으니까.
안덕모의 연설이 끝날을 때 강창식은 눈앞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서원식품이 완도 김을 지워버리게 만든 일등공신이 그였기 때문이었다.
“제기랄.”
놈이 고개를 숙이고 단상에 내려서고,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른 체육관 대형 스크린에 광고가 시작되었을 때 그의 입에선 튀어나온 말.
안덕모가 멍청한 어민들을 자극하고 광고가 대중의 관심을 모은다면 수협 김 공장은 정상 가동된다. 그걸 막기 위해 자신에게 갖은 공을 들인 서원식품이 이일을 그냥 참아 넘길 리 없다는 걸 잘 알기에.
‘제발, 제발.’
대단한 광고가 나오지 않기만을 바라고 바랐다.
“방금 보신 광고는 이번 주말부터 온라인, 에, 그러니까 너튜브와 수협 사이트에 게시된답니다. 다들 관심 가지고 봐주시고 주변에 알려주세요.”
사회자의 정리 멘트, 강창식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완도수협의 홍보마케팅 담당자다. 아무리 시골에서 근무한다지만 그 역시 마케팅과 홍보에 정통한 실무자요, 너튜브와 온라인에 삶의 큰 부분을 할애하고 있는 현대인이었다.
동남풍 애드 솔루션의 광고는 흔하디흔한 브랜드 홍보 광고일 뿐이었다. 물론 공들인 흔적은 역력했다. 김 양식장을 배경으로 땀 흘리는 어민들의 모습은 더없이 다이나믹했고 특히 현대식 김 공장의 모습은 먹거리에 대한 불안감을 한 방에 불식시킬 정도로 잘 뽑혔다.
하지만.
‘저 정도로는 택도 없지.’
매일 수백만 개 영상이 쏟아지는 너튜브, 관계자가 아니면 누구도 찾지 않는 수협 홈페이지에 저런 걸 올려봐야 그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다.
“이상 총회를 마치겠습니다.”
사회자의 종료 선언, 동시에 그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핸드폰을 쥔 채 빠른 발걸음으로 구석진 자리로 다가가 전화를 받는다.
[형님, 좀 어때요?]
발신자는 서원식품 황 차장, 몇 년 전부터 자신을 비롯한 주요 어민들을 관리해온 서원의 직원이었다.
강창식의 입술이 기분 좋은 호선을 그렸다.
“걱정하지 마. TV CF도 아니고 온라인에 백날 저런 거 올려봐야 아무것도 변하는 것 없을 테니까.”
제각기 수군대며 출구로 향하는 어민들. 출구를 지키고 서서 어민들과 인사를 나누는 조합장과 안덕모.
“윤 부장한테 얘기해서 예산이나 증액하라고 말해줘. 당분간 원초 매입가도 신경 쓰고 뿌릴 것도 필요할 것 같으니까.”
시작할 때와 다르게 화기애애한 출구 쪽 분위기를 보며 강창식이 중얼거렸다.
한편 같은 시간 출구에선.
“근데 광고가 좀 맹숭맹숭한 거 아냐?”
“이 사람이 뭘 모르네. 광고는 길면 절대 안 봐요! 그냥 채널 돌려버리지. 짧은 게 좋은 거야. 게다가 화면빨 좀 봐. 안 보게 생겼나.”
“그런가?”
“그 핸드폰이나 바꿔. 여태 구식 폰 쓰는 사람이 어디 있어? 자네가 그러니까 세상 물정을 모르는 거야.”
“세상 물정 알아야 되나? 김 키우는 사람이 바다랑 김만 잘 알면 되지.”
“에헤이. 이 사람이 아까 연설 듣고서도 깨친 게 없네.”
“응?”
남자의 목소리는 더없이 진지했다.
“아니야. 알아야 돼. 아까 그거 못 봤어? 나도 몰랐다고, 완도 김이 그렇게 쪼그라들었다는 거.”
“흠.”
무언가를 결심한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바꾸자. 까짓거 바꿔 버리지 뭐.”
다시 투덕대며 체육관을 빠져나가는 마지막 어민들, 나와 김다미는 긴장한 표정으로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후아…….”
녀석이 참았던 한숨을 토해냈다.
“잘된 것 같지?”
“네. 좀 아슬아슬 하긴 했는데 통한 것 같네요.”
“선생님.”
고개를 돌렸다. 거긴 조합장과 서현석 주임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중. 아까보다 좀 더 환해진 얼굴의 조합장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난 재빨리 허리를 굽혔다.
“아이고, 아닙니다. 이러지 마세요.”
“이 늙은이가 심지가 여려서 오는 내내 불안했어요. 그런데 역시 전문가시네요. 그런 명연설을 해주실 줄이야.”
마주 허리를 숙인 두 사람을 보며 서현석이 중얼거렸다.
“사람들을 들었다 놨다 아주 찢어놓으시던걸요.”
어느새 그와 많이 친해진 김다미도 입을 연다.
“제 생각엔 우리 사장님 천직은 카피라이터 아니에요.”
그제야 허리를 편 두 사람이 그녀를 바라보았고.
“정치 어때요? 당장 제 한 표 주고 싶은데.”
“하하. 동감입니다.”
가벼운 웃음이 오간다. 입가에 웃음을 지워낸 내 목소리는 다시 진지해졌다.
“저희는 이 길로 서울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말씀드린 대로 작업 진행할 겁니다. 조합장님과 주임님께서 해야 할 일은 아시죠?”
마찬가지로 진지해진 얼굴들이 작게 끄덕인다.
“아직 활은 시위를 떠나지 않았어요. 마지막까지 긴장 늦추시면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자, 그럼.”
일분일초가 급하다. 체육관을 등지고 걸어가는 발걸음엔 더욱 힘이 실렸다.
* * *
그 후 며칠이 지났다.
모처럼 이른 아침 출근하는 강창식의 입에선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어젠 번화가에서 황 차장을 만나 한우를 얻어먹었다. 헤어지는 길 품속을 파고들던 두둑한 봉투는 일종의 보너스였다.
기분 좋게 잠이 들었고 그날 밤엔 좋은 꿈까지 꾸었다. 그 좋다는 돼지도 나오고 용도 나오고. 한 마리도 아니고 떼를 지어 나타난 돼지와 용들은 지축을 울리며 자신에게 달려들었다.
그래서 출근길에 로또도 샀다.
‘당첨되면 미련 없이 떠나야지.’
완도에서 나고 자란 그였지만 이런 시골에서 썩긴 자신이 아깝다고 생각해온 그였다.
오래된 수협 건물, 먼지 냄새나는 사무실이 언제나 싫었던 그였지만.
휘익.
오늘은 휘파람이 절로 나왔다.
“무슨 좋은 일 있으신가 봐요?”
“좋은 일?”
부하직원의 물음에 늘 짜증으로 답하던 그였지만 오늘 그의 얼굴엔 웃음이 만연했다.
“그럼. 좋은 일이 있지.”
“그래요? 무슨 일이신데요?”
“그런 게 있네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어디 보자.”
오늘 그가 기분 좋은 이유는 하나. 오늘이 바로 조합장과 그 서울 광고쟁이가 만들어낸 광고가 업로드되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반응 따윈 없을 거다. 많은 예산을 쓴 건 아니어도 이번 광고 실패는 조합장과 완도 김 공장에 분명 치명타가 될 거다.
딸칵.
화면에 너튜브를 띄웠다. 프로그램이 로딩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강창식은 생각했다.
‘조회 수백? 아니면 오백? 천 이상이면 좀 부담스러운데.’
마침내 창이 떠올랐다. 검색을 위한 돋보기를 향해 움직이던 마우스 포인터가 그 자리에 멈추었다. 너튜브 사이트의 메인, 즉 인기 동영상 리스트에 익숙한 이름의 동영상 하나가 올라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완도 바다 김, 최고의 뇌물을 찾아서.]
영상의 조회 수를 확인한 순간 강창식은 돌처럼 굳었다.
30만, 완도 주민의 수를 더하고 수협 관계자의 수를 모두 더해도 그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숫자.
그가 멍한 얼굴로 동영상을 클릭했다. 화면이 재생되고 뉴스센터의 앵커가 화면에 등장한다.
“잠시 후 K 회장이 검찰청에 전격 출두합니다. 현장에 나가 있는 리포터 연결하겠습니다. 한나연 기자?”
화면이 분할되고 나타난 리포터, 그녀의 목소리는 무척 긴박했다.
“네. 지금 현장에 나와 있습니다. 아! 지금 막 K 회장이 탄 것으로 추정되는 차량이 등장했는데요.”
카메라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찍어, 찍어!”
“바짝 붙으란 말이야.”
삐익! 삐익.
소란스러운 현장의 모습에 보도센터 두 앵커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검은색 세단 한 대가 멈춰 서고 앞뒤로 멈춘 차량에서 검찰 관계자와 회장의 비서들이 차량을 감싼다.
“나온다!”
어느 기자의 목소리를 시작으로
“회장님! 이번 소환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시죠.”
“리조트 사업을 위한 로비였던 겁니까?”
“지금 심경이 어떠신지요.”
퍼버버벙.
사방에서 플래시가 터졌고 반백의 머리를 한 회장이 입을 꾹 닫은 채 직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검찰청으로 걸어간다.
“국회의원과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뿌린 것으로 드러났는데.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뇌물?”
그 단어는 트리거였다. 발걸음을 멈춘 회장이 기자들을 향해 뒤돌아선다.
“그게 뇌물입니까? 세상이 웃을 일이군요.”
퍼버버벙.
다시 한번 플래시가 터졌다. 형형색색의 마이크를 회장에게 들이미는 기자들, 그들을 한번 둘러본 회장이 말했다.
“의례적 선물과 뇌물도 구분하지 못하는 검찰은 절대로 절 구속하지 못할 겁니다. 무리하기 그지없는 검찰의 소환이 옳은 일인지는 국민 여러분께서 판단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그가 뒤돌아섰다. 직원들에 둘러싸여 검찰청으로 들어서는 회장. 그의 모습이 자취를 감추자 혼란을 수습한 기자들이 각자의 카메라 앞으로 다가선다.
“네. K 회장의 말처럼 이번 소환이 구속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뇌물인가 아닌가에 대한 판단에 달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보도센터의 앵커가 묻는다.
“뇌물에 대한 정보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는데요. 혹시 그것과 관련한 검찰 발표는 없었나요?”
“아. 있습니다.”
“어떤 건가요?”
“그건…….”
현장 카메라 너머 손 하나가 나타나 리포터에게 메모를 적어둔 쪽지 하나를 내민다. 리포터가 받아 든 메모를 바라보며 읽어나가기 시작한다.
“네. K 회장이 다수의 국회의원과 고위공무원들에게 제공한 뇌물은…… 김?”
고개를 든 앵커의 눈에 지진이 일어난다. 그건 보도센터도 마찬가지.
“네?”
“그게…… 김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먹는 김 말인가요?”
“네. 까만색, 밥 싸 먹는…….”
어이없는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는 앵커들의 모습이 여과 없이 생방송에 잡힌다.
화면이 바뀐다. 뉴스 장면이 그대로 방송 중인 모니터. 모니터가 놓인 책상이 보이고 이내 한 사내의 뒤통수가 나타난다. 그리고 책상 너머 한 남자가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다.
“야…….”
“네. 부장님.”
“미쳤냐?”
“아닙니다.”
뒤통수의 남자는 부장. 한 손으로 이마를 짚은 그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뒷모습만 보였지만 그의 기세는 지나치게 흉흉했다.
“안 미친놈이 김으로 재벌 총수를 소환해? 너 저번에 나한테 뭐라고 그랬어?”
두 손을 모은 남자, 검사 목걸이를 찬 남자가 주춤대며 뒤로 물러난다. 벼락같은 호통이 떨어진 건 바로 그때였다.
“혐의 입증할 자신 있다며!”
“그게…….”
“뭐! 할 말 있으면 해봐.”
“저거 뇌물 맞습니다.”
“하…….”
부장 검사가 뒷목을 잡는다. 뻐근한 목을 두어 차례 돌려 푼 그가 물었다.
“그래, 캔커피 하나도 뇌물이라면 뇌물이지. 문제는 이걸로 구속할 수 있느냐 없느냐야. 맞지?”
“맞습니다.”
“대답은 잘하네, 망할 자식.”
검사의 망설이던 입술은 천천히 열렸다.
“구속, 자신 있습니다.”
“후우…… 그래, 좋아. 지금부터 내 말 똑똑히 들어.”
내내 숙이고 있던 검사가 고개가 마침내 올라온다. 훤칠한 키에 조각 같은 얼굴이 화면에 드러난다.
“상대는 최고 중 최고로 변호인단을 구성할 거야. 그 자식 구속하고 처벌할 수 있느냐는 그 김에 달렸다고. 지금부터 김에만 집중해. 그 김이 뇌물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걸 증명해 내란 말이야. 알겠어?”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들려오는 주인공의 속마음.
[그렇게 조사단은 이번 싸움의 핵심으로 떠오른 김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 완도로 향하는 차편에 몸을 실었다.]
줌인하는 화면 속 검사의 번뜩이는 눈빛을 끝으로 화면이 암전된다.
[To be continue.]
영상이 멈춘 화면, 체육관에서 시연된 광고가 무엇하나 같은 게 없는 정체불명의 영상.
“뭐야…… 이게?”
강창식은 멍한 눈만 깜빡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