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모조리 씹어먹어 줄게 66화
66. 어쩌다 보니 농수산물 전문(5)
“형님. 어떻게 됐어요?”
회의가 끝나고 나오는 길, 사무동에서 수협 창고로 이어진 길을 지키고 있던 남자가 강 과장의 앞을 막아섰다.
“어떻게 되긴 어떻게 돼.”
강 과장이 점퍼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든다. 남자가 재빨리 그에게 라이터를 가져다 댄다.
“광고 찍는 것도 짜증 나는데 지들한테 우리 김을 알려달래. 귀찮아 죽겠네, 정말.”
강 과장과 함께 담배 한 대를 피워 무는 사내, 그가 이빨 사이로 찍 침을 뱉어냈다.
“형님. 서원에서 이번 일 눈여겨보고 있는 거 아시죠?”
“…….”
사내는 식품회사인 서원의 직원이었다. 말이 없는 강 과장, 사내의 목소리는 은근해졌다.
“설마 모자랐던 거예요? 그럼 말씀을 하세요. 좀 더 챙겨줄 수 있으니까.”
“아니야.”
강 과장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아니야. 조합장, 그 빌어먹을 영감탱이가 문제지 내 마음은 한결같다고.”
사내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어요. 조합장이 직접 나선 일이니 광고 찍는 건 어쩔 수 없겠죠. 저도 윤 부장님한테 최대한 잘 얘기해 볼게요. 근데 이거 하나만 기억해요.”
예의 바르던 사내는 오간 데 없었다. 강 과장을 향한 그의 눈엔 살기까지 피어올랐다.
“정상가동은 절대 안 돼요.”
담배를 비벼 끈 강 과장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가 손가락을 들어 부둣가에 설치된 큼직한 건물 하나를 가리켰다.
“저거 제대로 돌아가는 날엔 저도 형님도 끝나는 겁니다. 아셨죠?”
“알았어.”
탁.
사내가 땅바닥에 담배꽁초를 거칠게 내려쳤다. 아까와 같은 사람인지 의심스러울 만큼 기세가 사나워진 사내가 뒤돌아섰다.
“제기랄, 빌어먹을 영감탱이.”
강 과장의 입에서 악에 받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 *
“우왕!”
“너무 좋다! 세상에 바다가 코앞에 보여.”
회의가 끝나고 안내를 받아 도착한 숙소. 우릴 안내해 준 젊은 직원이 밝은 목소리를 냈다.
“저희 영빈관입니다. 근데 지은 지 오래돼서 불편하실까 봐 걱정이네요.”
완도 수협은 바다가 훤히 내다보이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곳은 수협 본사 옆 부속건물. 조합장의 배려로 우린 3층짜리 건물 꼭대기 영빈관을 쓸 수 있었다.
넓고 깨끗하다. 직원의 말처럼 오래되긴 했지만 신경 써서 유지한 깨끗한 가구와 집기들, 그리고 손님을 위해 세심하게 준비한 먹거리는 넘칠 만큼 만족스럽다.
“불편하긴요. 그런 말씀 마세요.”
밝은 표정의 이미래가 밝게 대답했고.
“와. 팀장님 방도 네 개예요. 각자 하나씩 써도 되겠는데요?”
벌써 한 바퀴 정찰을 마친 김다미가 소리쳤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과분한 대접을 받네요.”
“아니에요. 조합장님 손님이신데 소홀히 할 수가 있나요.”
이 젊은 직원 아까 강 과장과는 딴판이다. 똑같은 조합장이라는 단어지만 극과 극의 온도 차가 느껴진달까?
“서울까지 올라가셔서 어렵게 모셔오셨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부족하거나 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그가 내게 명함 하나를 내밀었다.
[완도 수협 김 가공부, 서현석 주임.]
조심스레 그의 명함을 받고 내 명함을 돌려주었다.
“김 가공부? 김 공장에 계신 겁니까?”
“아 네.”
그가 얼굴을 붉혔다.
“내일 라인투어 때 제가 안내해 드릴 거예요.”
서현석 주임, 서글서글한 인상에 첫인상이 좋은 남자다. 그는 근처 마트며 식당까지 머물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일러주고서야 뒤돌아섰다.
“그럼 아침 일찍 모시러 오겠습니다. 오늘은 푹 쉬십시오.”
“감사합니다.”
그가 현관을 빠져나갔다.
“우와 너무 좋아.”
“정말 끝내주네요.”
두 여자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거긴 아련한 눈빛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두 여자 너머 붉게 타오르는 석양이 끝없이 펼쳐졌다.
“으음.”
이렇게 푹 자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잠 못 자서 고생해 본 적이 없는데 동남풍 애드 솔루션을 창업한 이후 편히 자본 기억이 없다. 낯선 곳이라 걱정했지만 아주 잘 잤고 그래서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아직 동트기 전.
몸을 일으켜 창밖으로 다가섰다. 새벽부터 조업이 한창인지 드넓은 완도 바다 군데군데 고깃배가 불을 밝히고 있었다.
드륵.
창문을 조금 열었다. 아찔한 찬바람이 들어와 남아 있던 잠을 날려준다. 추워도 문을 닫지는 않았다. 언젠가 들었던 찬바람을 몸에 쐬는 풍욕이라는 건강법에 대한 이야기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쏴아. 철썩.
찬바람에 실려 들려오는 파도 소리.
“……좋네.”
마음의 소리는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이번 광고를 맡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크숍도 겸한다는 이번 광고의 취지에 맞게 어제는 동남풍 애드 솔루션의 팀워크를 제대로 다진 시간이었다.
우린 파도 소리가 들리는 운치 있는 횟집에서 저녁 식사를 했고 맥주와 안주를 숙소로 가져와 모자란 알코올을 채웠다.
뭐 알코올에 약한 난 일찍 잠이 들었지만. 대한민국 반대편 끝이어서 그런지 한 잔 한 잔 술이 들어갈 때마다 유대감이 쌓이는 걸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여행이 목적이라면 충분히 만족스럽지만 일은 그렇지 못하다. 어제 만난 강 과장이라는 남자. 그의 삐딱했던 태도는 내내 기분 좋았던 어제도 순간순간 머릿속에 떠올랐다.
‘뭘까?’
수협 조합장이 초빙했다. 대단한 환대를 기대한 건 아니지만 최소한 그토록 삐딱한 시선은 예상 못 했다.
‘김을 왜 몰라요? 흔하디흔해 빠진 게 김인데.’
그는 완도 김의 홍보와 마케팅을 책임지는 사람, 내가 그의 입장이라면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자기 제품 광고를 맡아줄 기획사 직원 앞에서?
아무리 상황을 바꿔놓고 생각해 봐도 정답은 나와 있다.
‘아니, 그럴 수 없다.’
자신이 책임지는 제품을, 자신의 월급을 만들어주는 소중한 제품을 흔하디흔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분명 정상적이지 않다.
바다가 내다보이는 조용한 시골 도시, 완도 김을 둘러싼 이곳 사람들 중 그만이 예상의 테두리 밖을 서성이고 있다.
“어우, 추워.”
감기 걸리겠다. 난 재빨리 창문을 닫고 이불 속에 몸을 파묻었다.
“이쪽이 물김을 세척하는 수조입니다.”
서현석의 안내를 받아 시작된 김 공장 투어. 거대한 수조 속에 그득그득 쌓인 김과 빙글빙글 돌아가는 기계를 바라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해수로 두 번, 마지막으로 민물로 한번 세척하고 고르게 풀어진 김이 라인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생산 중인 공장은 기계음으로 시끄러웠지는 그의 발음이 선명한 덕에 알아듣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철컥, 철컥.
반복적이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기계, 각 잡혀 재단된 김들이 줄지어 이동하는 컨베이어, 사람 없이 김을 쌓고 정리해 포장 마무리까지 해주는 라인까지.
단계에 맞춰 김은 익숙한 모양이 되고 제품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우리 설비가 대한민국에서는 가장 최신일 겁니다.”
투어의 마지막은 완성 제품이 쌓이는 창고였다.
완성된 제품을 뿌듯하게 바라보던 서현석이 위생모를 벗으며 활짝 어깨를 폈다. 과연 그의 말대로였다. 김 생산공장이라고 해서 그저 적당히 햇볕 잘 드는 데 널어놓고 말리지 않을까 하던 생각은 산산이 깨어졌다.
공장은 현대적이었고 대규모였으며 무엇보다 위생적이었다. 자동화 라인 덕에 관리 인력이 무척 적다는 점도 눈에 띄었고.
하지만 이상하다. 이 정도 공장이라면 응당 있어야 할 창고 그득한 완성품도, 완성품을 나를 화물차도 보이지 않는다.
“혹시 이 공장 언제 완성된 겁니까?”
“작년 가을이니까. 일 년 조금 넘었네요.”
일 년이 넘었다. 그 말에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혹시 공장이 제대로 가동되고 있지 않은 건가요?”
“아…… 음.”
당황한 서현석이 대답을 찾지 못한다. 난 넓은 창고 안 이제 막 만들어져서 나오는 완도 수협의 김 브랜드. ‘바다 김’ 하나를 바라보았다.
“문제가 있는 거군요?”
“사실은…….”
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 *
“그랬구나…….”
공장에서 돌아오는 길. 조금 전 이야기를 곰곰이 되새기던 이미래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
“참 아이러니하네. 이렇게 작은 어촌 공동체에도 그런 알력관계가 있다는 게 말이야.”
김형철의 목소리. 난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이권의 문제네요. 싸게 독점을 유지하고 싶은 기업과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공동체.”
“그렇지. 조합장이 서울까지 와서 광고를 부탁한 이유를 이제야 알겠네.”
조금 전 서현석의 이야기를 통해 우린 완도 김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이곳의 실상을 알 수 있었다.
문제의 핵심은 서원식품.
서원식품은 오래전부터 완도를 중심으로 몇 개의 김 생산지를 꽉 잡고 자사 브랜드를 키워왔다.
공들여 양식한 김을 든든한 대기업이 사주니 완도의 어민들로서는 그저 고맙기만 한 기업이었다. 문제는 기업의 생리이자 본능.
이익의 극대화가 존재 이유인 서원식품은 매년 매입 가격을 낮췄다. 그들은 도매업자들이 농산물 매입을 매입할 때 쓰는 구매 방식을 활용했다.
자금 사정이 어려운 어민들에게 미래에 나올 상품의 대가를 미리 지급하고 훗날 제품을 인도하는 방식.
늘 자금난에 허덕이는 어민들은 서원식품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때 새로 조합장이 부임한 완도 수협이 나섰다.
본사에서 대규모 자금을 융통해 완도에 자체 김 생산 공장을 만들어 버린 것.
매년 팔아도 적자인 상황에 처해 있던 완도 어민들은 수협의 전격적인 투자 결정에 크게 환호했다.
‘서원식품 입장에선 눈엣가시였겠죠. 대놓고 공장 가동을 방해한 건 지난 여름부터였어요.’
서현석의 말처럼, 조미 김 시장 3위 안에 드는 대기업인 서원식품은 닥치는 대로 양식 어민들의 김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늘 값을 깎아오던 과거와는 달리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돈을 푼다는 소문도 있어요. 대형 양식장, 어촌계 담당자는 물론 저희 수협 실무자들까지요.’
서원의 목표는 명확했다. 잠재적 경쟁자가 될 수협의 바다 김 생산공장을 문 닫게 만드는 것.
그들의 의도가 성공해 공장이 문을 닫으면 과거가 다시 재현된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조합장과 뜻이 맞는 수협 직원들이 움직였다. 어민들을 만나고 서원식품의 행태를 알리고.
‘돈의 힘이란 대단하더군요. 조합장님이 백방으로 노력하셨지만 원료 수급에 차질이 생겼어요. 결국 지난가을부터는 가동을 쉬는 날이 더 많아졌어요.’
미래의 이익을 생각하기엔 어민들은 지나치게 궁핍했다.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줄 사람들은 돈을 받고 입을 다물었다.
어렵게 만들어낸 공장은 운휴일이 많아지니 가동으로 얻는 수익보다 고정 유지관리비가 더 커지게 되었다.
‘본사에서도 최종 통첩 보낸 모양이더라구요. 이대로라면 우리 공장 몇 달 못 버틸 거예요.’
서현석의 씁쓸한 목소리는 뇌리에 파고들었다.
“사장님.”
지금껏 조용하던 김다미의 목소리.
“우리 이번 광고 정말 제대로 만들어봐요.”
“이야! 우리 다미 드디어 각성한 거야?”
이미래가 녀석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고.
“저 사실 완도 내려오면서도 워크숍만 생각했거든요…….”
고개를 숙인 녀석의 입에선 결연한 뭔가가 진하게 느껴졌다.
“근데 광고로 꼭 바꿔보고 싶은 게 생겼어요.”
“그래.”
지금 김다미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카피라이터다. 흐뭇한 마음으로 녀석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겠다.”
아침, 찬 바람이 부는 완도. 우린 눈앞에 보이는 완도 수협을 향해 다시 한 발자국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