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고 모조리 씹어먹어 줄게-62화 (62/180)

광고? 모조리 씹어먹어 줄게 62화

62. 어쩌다 보니 농수산물 전문(1)

“그래. 사장님 된 기분은 어때?”

“뭐 기분이랄 게 있나? 생소하고 앞으로 회사가 잘 될까 막막하고 그렇지 뭐.”

“막막하기는. 회사 만든 지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 첫 광고 찍었던데.”

회사 근처의 카페.

내 앞의 경하나는 내가 기획사를 차렸다는 사실을 광고를 통해 알았다. 얼마 전 너튜브에서 방송되기 시작한 전설의 두족류 광고.

거기 출연한 배우들이 이상하게 낯이 익었던 녀석은 광고를 찍은 회사에 대해 알아보게 되었고 생소한 기획사 대표 이름에 내 이름이 박혀 있는 걸 보자마자 전화를 해왔다.

“광고 좋더라. 컨셉도 잘 잡았고.”

건어물 광고는 대박이 났다. 동남풍 애드의 너튜브 채널에 올라간 영상은 당초의 예상을 깨고 20만을 조회 수를 훌쩍 넘겨버린 데다 거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재미있는 광고라는 제목을 달고 빠르게 퍼져 나가는 중이었다.

“너라는 거 알고 나니까 사실 섭섭하더라. 회사를 차렸으면 차렸다고 얘기 정도는 해줄 수 있었던 거 아니었어?”

기다렸던 물음, 하지만 난 고민 없이 대답했다.

“미안.”

녀석의 얼굴빛이 금세 칙칙하게 변한다.

“아냐. 미안은 무슨…….”

그러면서 말끝을 흐린다

녀석이 뭘 묻게 될 줄 알았고 오면서 생각했던 대답은 미안이 아니었다.

‘나랑 일하면 지금까지처럼 빛 보기 힘들 거야. 그래도 나랑 일할래?’

녀석 앞에 도착하기 전까지 생각했던 대답. 그리고 녀석과 대화하며 수십 번 고민을 반복했고 결국 난 결론을 내렸다.

“아직 너처럼 능력 있는 카피라이터 데려다 쓸 만한 여유가 없어. 괜히 고생만 시키게 될 것 같아서 말 못 했어. 미안하다.”

억지웃음을 지은 녀석이 휘휘 손을 흔든다.

“이해해. 미안은 무슨.”

마음 한구석이 이상하다. 조금 가려운 것 같기도 하고.

“참. 새 직장은 어때?”

그래서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녀석이 무겁게 고개를 가로젓는다.

“오라고 했는데 안 갔어.”

“뭐? 왜?”

“그냥……. 새로운 사람 만나는 거 좀 싫기도 하고.”

간지럽던 가슴이 이제는 쿡쿡 찔려온다. 뭐지? 뭐가 잘못된 거지?

“신경 쓰지 마. 좋은 기회잖아? 이제 회사 다니면 원할 때 쉬지도 못하고 맨날 야근해야 하는데 이럴 때 쉬어보는 거지 뭐.”

너스레를 떨던 녀석이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한다.

“야. 시간이 이렇게 됐네? 나 그만 갈게.”

녀석이 후다닥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자리를 벗어나는 그녀를 향해 내 손이 조금 나아갔으나.

잡아서 어쩔 건데?

반짝반짝 빛나야 할 녀석이 내 그림자에 묻혀 시들어가는 걸 다시 볼 건가? 언제 망해도 이상할 게 없는 불안한 신생회사에 녀석을 데려다 놓고?

또다시 녀석을 발판으로 써먹는 건 지나치게 이기적인 짓 아닌가?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들, 그 결과 나아가던 손은 재빨리 거두어졌다.

“어, 그래.”

찰나의 순간이지만 보고 말았다. 스쳐 지나가는 녀석의 눈빛에 안타까움이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힘내. 항상 응원할게. 사업 잘되면 꼭 한턱 쏘고.”

“……그래.”

녀석은 빈껍데기 같은 말들을 던지며 카페를 빠져나갔다.

* * *

“잠깐만. 어디라고?”

“오천이요. 경기도 오천.”

“아니, 지역 말고.”

“농협이요, 농협.”

“농협?”

“네, 농협.”

“그러니까 농업협동조합?”

“네. 그렇다구요.”

거듭된 질문에 버럭 한 김다미가 짜증스레 팔짱을 낀다.

“오천농협! 쌀 광고라구요.”

난 놀란 눈을 몇 차례 깜빡였다.

사무실로 돌아오니 김다미가 책상 위에 새로운 광고 의뢰를 출력해 놓았다. 서류를 보며 설마 했던 했는데 진짜였던 모양이다.

“잠깐만. 오천 쌀 엄청 유명하잖아.”

“네. 유명하죠.”

“그런데 왜 우리한테 광고를?”

녀석이 어깨를 들썩거린다.

“아까 통화했는데 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하자네요. 내일 오전에 한번 내려와 달래요.”

“오천에?”

“네. 경기도 오천! 농협이요!”

다음 날 아침. 난 이른 새벽부터 차를 몰아 경기도 오천으로 향했다.

한파가 끝나고 날씨가 풀리려는지 고속도로엔 안개가 가득했고 덕분에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한적한 길로 접어들어 들었을 때 난 생각했다.

‘꼭 미스트(The Mist, 2007) 같네.’

미스트, 영화판에 두루 회자되는 반전영화의 대표작이다. 평범한 마을과 마트가 미지의 짙은 안개로 차오르는 서막은 충격이었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갯속에 무언가 살고 있다는 설정은 보는 이로 하여금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게 만들었다.

“으…….”

안개 저 너머 뭔가 무서운 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난 어깨를 움츠렸다.

조금 달리니 안개가 걷혔고 그제야 오천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추수가 끝난 논이 끝없이 펼쳐진 평야. 서울에서 멀지 않지만 도시와 동떨어진 풍경이었고 그 모습은 이곳이 쌀의 본고장이라는 걸 온몸으로 어필하고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내비게이션이 안내를 마쳤다. 건물 주차장에 주차를 한 후 차에서 내렸다. 오래된 건물 위 ‘오천농협’이라는 간판은 더없이 고색창연했다.

“아이고, 날도 궂은데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한 사람은 뚱뚱하고 한 사람은 말랐다. 그중 5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뚱뚱한 사내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네 동남풍 애드 솔루션 안덕모라고 합니다.”

“하하. 잘 봤어요. 그 오징어 광고.”

그가 빼빼남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다.

“이 친구가 우리 쌀 광고 맡은 친구거든요, 선생님 오징어 광고를 엄청 인상 깊게 본 모양이더라구요.”

“아…….”

일종의 연쇄효과다. 광고가 대박 나면 가끔 벌어지는 효과. 광고를 재미있게 본 다른 광고주가 일을 맡기고 기획사는 그렇게 사업 기반을 다진다.

이상한 호칭이긴 해도 ‘선생님’이라 불러주는 것도 나쁘지 않고. 그래서 확실하게 광고주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난 재빨리 가방에서 준비한 물건들을 꺼냈다.

“안 그래도 최근 쌀 광고들 한번 분석해 봤습니다. 오천농협이 작년에 만드신 광고도 봤구요. 나쁘지 않던데 혹시 따로 원하는 컨셉이 있으신 건가요?”

흥미 가득한 얼굴로 가방에서 나오는 태블릿과 노트북을 보던 뚱뚱남.

“역시 전문가 선생은 다르시네. 가방에서 사무실이 나오네. 사무실이.”

어리둥절해 있는데 그가 짝 박수를 친다.

“이런. 손님 모셔놓고 제가 커피도 안 드리고 이러고 있었네?”

“괜찮습니다. 커피라면 오면서 마셨습니다.”

“그래요? 멀리까지 오셨는데 이렇게 맹숭맹숭하면 예의가 아닌데…….”

그가 뒤통수를 슥슥 긁었다.

“식사할까요? 아침 드셨어요?”

맥락 없는 질문, 그래서 대답도 뇌를 거치지 않고 튀어 나갔다.

“아니요.”

“잘됐네요. 여기서 이러지 말고 밥이나 먹읍시다.”

“네?”

“요 앞에 해장국 기가 막힌 데가 있어요. 선지 못 먹고 그렇진 않죠?”

“네…… 먹습니다.”

“그럼 갑시다.”

신이 나 앞장서 걸어가는 뚱뚱남, 가자고 손짓하는 빼빼남을 보며 난 몇 번 멍한 눈을 깜빡였다.

“사실 쌀 광고 식상하죠. 나이 드신 분들만 쌀 먹는 거 아니잖아요?”

탁.

그가 테이블 위에 빈 소주잔을 내려놓았다. 난 재빨리 소주병을 들어 그의 잔에 채웠다.

“작년 광고도 그랬고 그전 광고도 똑같아요. 우리 광고하면 생각나는 게 트로트 가수랑 허접한 CG밖에 없단 말이죠.”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다 광고 결재하는 윗놈들이 꼰대라 그래요. 젊은 사람들 이해하려고도 안 하고 새로운 거 배울 생각도 안 해요.”

높아진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내온다.

“이참에 좀 바꿔야겠다 싶더라구요. 그래서 선생님 뵙자고 한 거예요.”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다.

주문도 안 했는데 해장국보다 먼저 소주가 나왔고 덕분에 몇 잔 마신 술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중.

하지만 상관없다. 취했으면 취중 회의를 하면 된다. 내가 광고 골라 받는 콧대 높은 카피라이터도 아니고 난 고객의 눈높이에 맞출 준비가 된 코딱지만 한 광고 회사 사장일 뿐이다.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오천 쌀 모르는 사람 없지 않나요? 굳이 돈 들여 광고를 할 필요가 있나요?”

술자리다 보니 이 정도의 공격적인 질문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에이, 안 그래요.”

뚱뚱남이 까칠한 턱을 슥슥 매만진다.

“전엔 오천 쌀 하면 그냥 끝이었어요. 근데 요즘 지역마다 브랜드 쌀 엄청 많이 나와요. 임금이다, 수라다. 다 우리랑 비슷하게 브랜드 만들고 로고 만들어 붙여서 팔아요.”

뚱뚱남의 말은 빼빼남이 받는다.

“요즘 쌀 브랜드 경쟁 치열해요. 세일도 많이 하고 광고하고 이벤트 하고 출혈경쟁인 거 맞아요. 근데 그렇게 안 하면 매출 유지가 안 되니까. 그래서 다들 모델로 가수 세우고 유명인사 세우고 그러는 거예요.”

“따로 생각하신 컨셉은 있으신가요?”

두 남자가 눈을 맞춘다. 미리 얘기해둔 게 있었던 모양. 빼빼남이 흠흠 헛기침을 한다.

“다른 거 없어요. 맛이에요, 맛. 아류들은 절대 따라올 수 없는 맛.”

뚱뚱남이 짝 박수를 친다.

“맞아요. 소중한 내 가족한테 먹이고 싶은 밥. 누가 만들어도 맛있는 밥 나오는 쌀. 뭐 그런 걸 저번 오징어 광고처럼 재미있게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태블릿에 열심히 적어 나갔다.

“좋네요.”

“뭐가요?”

“소중한 내 가족한테 주고 싶은 귀한 쌀.”

그가 환히 웃는다.

“역시 전문가 선생. 정확히 핵심을 찌르시네. 자, 한 잔 더 합시다.”

자비 없이 내 잔에 차오르는 소주, 난 불길한 느낌에 질끈 두 눈을 감았다.

* * *

취중 미팅이 끝났다. 술자리 회의였지만 놓친 건 없었다.

해장국집에서 광고주의 의도를 파악해 컨셉을 잡았고 옛날식 카페에서 노른자를 띄운 쌍화차를 홀짝이며 광고비를 산정하고 계약서에 사인을 받아냈다.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 참고 있던 취기가 한꺼번에 몰려온 건 모든 걸 마치고 두 남자가 돌아간 뒤였다.

“다미야, 큰일 났다.”

지금 난 차를 세워둔 주차장에서 방황하는 중. 전화기 너머에서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취하셨어요?]

“어. 땅이 빙빙 돌아.”

[술도 못하시는 분이! 못 드신다고 얘기를 하시지.]

“어떻게 그러냐? 영업도 내 일인데.”

녀석이 한숨을 내쉰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바로 모시러 내려갈게요.]

“아니, 아니. 그럴 필요 없어 대리운전 불러서 올라가면 돼.”

[그럼 바로 집으로 가세요.]

“그럴 거야. 그래서 전화한 거야.”

남은 시간은 고작해야 이삼 분. 그 시간이 지나면 난 쓰러진다. 지금 상태라면 못해도 반나절은 자야 정신을 차릴 거다. 하지만 그러면 하루를 통째로 날리게 된다.

“좀 받아 적을래? 내일 해야 할 일이니까 좀 챙겨줘.”

[네, 준비됐어요.]

가방에서 태블릿을 꺼냈다. 손이 미끄러졌지만 다행히 액정이 박살 나는 참사가 벌어지지는 않았다.

“이번엔 스튜디오 촬영해야 돼. 판타지아에 연락해 줘. 출연자는 연기력 검증된 20대 초반 여자 한 명, 40대 중반 엄마랑 아빠. 그리고 고등학생쯤 되는 남조연 한 명…… 이렇게 네 사람.”

[네. 20대 여자가 주인공인가 보네요?]

“맞아.”

숨이 점점 가빠왔다. 덕분에 난 빠르게 숨을 몰아쉬었다.

“세트는 가정집, 주방 식사 장면 원테이크로 갈 거야. 내일 오전에 판타지아랑 미팅할 거니까 시간 잡고 배우 리스트 미리 뽑아달라고 부탁해.”

[네. 이제 나머지는 알아서 할 테니까 그만 대리운전 불러요.]

“어…… 음 그래야 하는데.”

한계는 급작스레 찾아왔다. 비틀대던 다리는 결국 힘이 빠졌고 이젠 핸드폰을 들고 있을 힘도 주차장에서 내 차를 찾을 여유도 대리운전 번호를 누를 정신도 없다.

털썩.

어디라도 상관없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눕는 것뿐이었고 때마침 평평한 주차장 바닥은 마치 푹신한 침대처럼 느껴졌다.

[사장님? 사장님!]

전화기 너머 김다미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졸려. 그만 잘래.”

난 주차장 바닥에 누워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에 떨며 동그랗게 몸을 움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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