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모조리 씹어먹어 줄게 61화
61. 그라운드 제로(4)
너튜브는 이제 인생의 한 부분이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새로운 피드를 검색하고 화장실에서 양치를 하면서도 손가락은 끊임없이 볼만한 영상을 검색한다.
회사로 출근하는 지하철은 아예 본격적인 감상 시간이다. 10분짜리 동영상 세 개면 집 앞 역에서 출발한 지하철이 회사 앞에 도착하고 가끔은 영상에 집중하다가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치기도 했다.
회사에서는 일을 하니 너튜브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지만 저녁이 되고 퇴근 시간이 되면 너튜브는 다시 남자의 삶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밥을 먹을 때, 샤워를 할 때, 심지어는 TV를 틀어놓고도 남자는 핸드폰 영상을 보았고 그건 밤이 되어 잠자리에 누웠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게임, 정치, 영화 리뷰, 상식은 물론 다 보고 나면 내가 뭘 본거지 싶은 영상까지. 남자의 취향은 다양했고 그래서 알고리즘은 그가 관심 있어 할 만한 주제를 끊임없이 띄워대고 있었다.
‘딱 하나만 더 보자.’
이제 시간이 너무 늦었다. 여기서 끊지 못하면 내일 회사생활에 지장이 생기기에 남자는 고르고 고른 3분짜리 영상 하나를 화면에 띄웠다.
동영상이 시작되기 전 떠오르는 광고. 누구보다 너튜브를 오랜 시간 감상하는 남자였지만 광고 없이 영상을 볼 수 있는 프리미엄 서비스엔 절대 돈을 쓰지 않는 그였다.
[끼익. 끽.]
반복적으로 들려오는 목재의 뒤틀림.
정체를 짐작할 수 없는 광고였다. 세상 모든 고뇌를 진 것 같은 남자들이 갑판 위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띠링. 반건조 오징어 10마리 주문.]
광고 필수 감상 시간이 끝나 스킵을 누르던 남자의 손가락은 그대로 멈추었다. 3분짜리 영상보다 왠지 광고가 더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내 배에 타려면 그 썩어빠진 정신부터 버리라고 했지?]
심각한 등장 인물들의 연기, 촌철살인 대사는 누워있는 남자의 웃음벨을 끊임없이 자극해 대고 있었다.
“흐흐…… 흐.”
이건 웃음소리가 아니다. 말하자면 시동을 거는 소리다. 이제 한 방이면 이 남자는 터진다.
[가자!]
[덤벼라!]
[뿌우!]
“푸학!”
그리고 마침내 터졌다. 남자가 누운 자세 그대로 배를 잡고 좌우로 구르며 피티 8번을 한다.
끼익 끽.
텅 빈 갑판이 화면에 등장하는 헤드카피.
[고객과의 약속에 목숨을 겁니다.]
“아하하하.”
세컨드 임팩트.
남자가 다시 터졌다. 너무 웃어서 핸드폰도 놓치고 말았다. 한참을 미친 듯 구르던 남자는 결국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는 새벽 두 시까지 수십 번 광고를 돌려 보았다. 자기 직전의 웃음이 만들어낸 엔돌핀과 빛 공해로 인한 각성효과로 남자는 세시가 넘도록 잠을 자지 못했다. 이제 못 자면 큰일 나겠다고 생각하니 머릿속에 갑판 위 남자들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끅…… 끅.”
마음껏 웃지도 못하고 베개 귀퉁이를 입에 문 채 남자는 웃으면서 울었다.
다음 날 아침, 남자는 결국 지각했다.
서둘러 봐야 지각을 피할 수 없다고 느끼면 여유가 찾아오는 법. 남자는 충혈된 눈으로 느지막이 회사에 출근했고 한 시간 동안 팀장에게 모진 정신 교육을 받았다.
남자의 충혈된 눈에 눈물 한줄기가 흘렀다. 그는 문득 억울하다고 느꼈다. 자기가 겪은 일을 많은 사람이 겪게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 광고를 사방팔방 퍼뜨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 *
“오호라.”
모니터에 떠오른 너튜브 영상. 그 아래 찍힌 조회 수와 좋아요, 그리고 ‘ㅋ’ 자가 유독 많이 들어간 댓글들을 보며 난 만족스레 웃었다.
이번 광고, 전설의 두족류 광고는 쉬우면서도 어려웠다.
어선의 갑판과 배우들의 대사로 이루어진 간단한 구성, 배 두 대만 있으면 반나절 만에 찍을 수 있는 단출한 연출은 쉬운 부분이었다.
하지만 신생회사의 첫 광고였고 스튜디오 판타지아 같은 전문 제작사와 일을 할 수 없었던 부분은 어려움으로 다가왔다.
여기저기 연락을 돌려 촬영 스태프를 꾸렸고 과거 몇 차례 일해본 조연들과 연락해 겨우 일정을 맞추었다. 주문진항에 작은 배 두 대를 빌려 진행한 반나절 동안 촬영.
흔들리는 배는 뱃멀미를 몰고 왔고 촬영이 끝나고 모든 걸 비워내 속이 텅 빈 껍데기 상태로 땅을 밟아야 했다.
“유입 좋네요. 조회 수 오만 회는 무난하게 넘기겠어요.”
“첫 영상에 오만이라.”
동남풍 애드는 아직 작은 회사다. 사장 하나에 여직원 하나니 작다는 말도 민망할 지경이다. 그래서 너튜브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홍보도 되고 혹시 운이 좋아 조회 수가 많아지면 수익창출도 노려볼 수 있으니 더 좋고.
다행히 우리의 첫 광고는 광고주에겐 주문 건수 수직상승, 그리고 우리에겐 관심 폭발이라는 멋진 선물을 안겨주고 있었다.
“참. 두족류 사장님 다음 주에 미팅 잡혔어요.”
김다미의 목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또?”
“후속 광고 계약하고 싶으시다고.”
“광고 나간 지 며칠이나 됐다고 뭔 후속 광고를 찍어?”
“후속만이게요? 아까 얘기 들어보니까 한 달에 한 편씩 해서 세 편 계약하려고 하시는 거 같던데.”
“세 편?”
난 귀를 의심했다.
“네. 그 사장님 장사 수완이 좋은 거예요.”
김다미가 고개를 끄덕인다.
“첫 광고로 제대로 재미 봤잖아요. 그래서 아는 거지요. 지금 아니면 이 가격으로 우리랑 광고 못 찍는다는 거.”
스타트가 좋다. 이 정도면 쾌조의 스타트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제가 괜히 큰 회사 좋은 자리 다 걷어차고 여기서 이 고생하고 있는 게 아니라니까요? 전부터 느꼈지만 선배님 광고는 특별해요.”
“흐흠.”
난 민망해진 뒤통수를 슥슥 긁었다. 회사 홈페이지, 광고 의뢰를 확인한 김다미가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봐요. 광고 또 들어왔어요. 아무래도 직원 채용 좀 서둘러야겠는데요?”
“그래야겠네.”
난 책상 한쪽에 쌓인 서류 뭉치를 녀석에게 내밀었다.
“이게 뭐예요?”
“이력서.”
“네?”
“직원 뽑아야지. 너 대신 홈페이지랑 너튜브 채널 관리하고 사무실에서 잡무 해줄 직원 후보야. 다미 네 밑에 두고 써야 하니까 직접 한번 골라봐.”
녀석이 놀란 눈을 키웠다.
“제가요?”
뭘 저리 놀라는지.
아무리 작아도 우린 기획사다. 규모와 상관없이 기획사가 해야 할 업무는 있고 그걸 커버하기 위해서 최소 다섯 명은 필요하다.
“내일까지 골라둬. 연락을 해도 좋고 면접을 봐도 좋고 방식은 네가 원하는 대로.”
가방을 손에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 가세요?”
“만날 사람이 있어. 만나고 바로 퇴근할 거니까 너도 정리하고 오늘 일찍 들어가.”
외투를 걸치고 걸어가는데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덕분에 첫 후배 생기겠어요.”
녀석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난 휘휘 손을 흔들며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차를 몰아 도착했다. 여긴 광인 기획에서 지하철로 내려가는 길에 있던 카페, 회사로 올라가는 길에 있어서 미팅 끝나고 가끔 땡땡이치곤 했던 그 카페.
안으로 들어서니 익숙한 얼굴 하나가 앉아 있었다.
“좋아 보이네요.”
핸드폰을 바라보던 얼굴이 내게 향한다.
“뭐가? 내 얼굴?”
“네.”
“푹 자고 잘 먹고 맨날 뒹굴거리는데 좋아야지.”
“에이…….”
난 그녀를 향해 씩 웃어 보였다.
“연애하셔서 그런 거면서.”
내 앞엔 전 기획 2팀장, 늘 풀어헤치고 다니던 헤어스타일을 가다듬고 상징 같던 큼직한 안경을 벗으니 한층 물오른 미모. 팀장이면서 디자인 업무 대부분을 직접 맡아 처리했던 실무형 리더, 이미래 팀장이 있었다.
그녀가 놀라 되묻는다.
“그걸 어떻게 알았어? 김형철이 얘기하던?”
“뭐 꼭 그런 건 아닌데.”
피식 웃었다.
“사실 얘기한 거나 마찬가지였죠, 뭐.”
얼마 전 김형철이 연락을 해왔다. 이미래 팀장 좀 데려다 쓰라고. 그렇지 않아도 디자이너가 필요한 상황이었고 그녀는 무척 탐나는 인재였다.
-지금 하는 일 없이 탱자탱자 놀고 있다. 걔 그러다 살쪄.
“뭐 그렇게 말하는데 눈치가 없을 수 있나요? 사실 두 분 팀장일 때부터 저러다 사귀겠다고 생각은 했었어요.”
오래전 이야기에 이미래의 두 눈이 동그래진다.
“티 났어?”
“네. 많이.”
들어 올린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는다. 툭하면 옆구리 찌르고 때리고 그렇게 스킨십을 해대는데 모르면 바보지.
“그나저나.”
오늘 그녀를 만난 건 전 직장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 아니다.
“어떡하실래요?”
“나?”
고개를 끄덕였다.
“전 꼭 모시고 싶은데.”
동남풍 애드 솔루션은 이제 막 첫걸음을 뗀 신생회사다. 게다가 전 직장 까마득한 후배가 대표인 회사.
규모의 리스크, 신생이다 보니 겪어야 할 다양한 문제들 게다가 지위의 역전. 그 모든 걸 감내하고 일할 수 있는가에 대한 판단은 당사자의 몫이다.
“일하고 싶어.”
“정말요?”
“그래. 새로 생긴 회사니까 일도 별로 없을 거 아냐. 나 놀면서 월급 받고 싶어.”
이미래가 진지한 얼굴로 날 바라본다.
“오래된 로망이란 말야.”
아쉽지만 월급루팡의 로망은 이뤄질 수 없다. 동남풍의 규모라면 분명 영상보다 이미지 광고가 많고 그건 온전히 그녀의 일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걸 지금 얘기해 줄 필요는 없다.
“뭐 그것도 좋겠네요.”
난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일주일쯤 쉬다가 나오세요. 당장 해야 할 일이 있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 돼?”
“네, 그러세요. 근로계약서는 출근하고 쓰는 걸로 하고, 마지막으로 여행이라도 한번 다녀오세요.”
“그래야겠다. 겨울 제주도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는데.”
“그럼 이사님도 좀 데려가요. 인사 청탁하고 맨날 전화해서 괴롭힌단 말이에요.”
“어머. 혼자 갈 거거든?”
그녀가 웃는다. 하지만 잠시 후 웃음기를 지워낸 얼굴로 묻는다.
“근데 하나는?”
“네?”
“안 데려올 거야?”
“…….”
머릿속이 복잡하다. 녀석은 누가 뭐래도 가장 가까웠던 동료.
한국에서도 그랬고 길었던 미국행 내내 내 옆을 지켰다. 하지만 동남풍 애드 솔루션 창업을 검토하면서도 난 녀석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사실 일부러 녀석이 모르게 비밀을 지켰다.
“걔한테 도움 되는 일이 아니잖아요.”
내 옆에 있는 동안 녀석은 보조에 만족해야 했다. 늘 내 자리를 메우는 조연이자 서포트 역할에 만족해야 했다.
“얼마든지 큰 회사 갈 수 있는 앤데 뭐하러 불러서 고생을 시켜요.”
창업 계획을 얘기했다면, 그래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면 녀석은 군말 없이 내 뜻에 따랐을 거다. 그걸 알기에 비밀을 지켰고 지금까지 말해주지 않았다.
“흠.”
이미래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 그래도 알려주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런가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일하고 말고는 다른 문제고 제일 가까웠던 동기잖아. 혼자 모르고 있었다는 거 알면 걔 입장에선 더 열 받지 않을까?”
그때였다.
우웅.
말이 끝나자마자 핸드폰이 진동했다.
“어?”
발신자는 경하나. 녀석이 이 타이밍에 전화를 할 이유는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아무래도 늦었나 보네요.”
“그런가 보네.”
통화를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전화를 받기 위해 카페 밖으로 걸어가느라 그땐 알지 못했지만.
“에휴. 우리 하나 많이 아프겠다…….”
씁쓸한 표정을 지은 이미래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