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모조리 씹어먹어 줄게 45화
45. 당신을 위해 다시 기본으로(2)
“오빠. 이모랑 시내 다녀올 건데.”
고개를 돌렸다. 외출 준비를 마친 안주미가 눈에 들어온다.
“같이 안 갈…… 아니, 못 가겠구나?”
기름과 땀으로 엉망이 된 작업복을 본 녀석이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다. 쓰게 웃어주었다.
“카드 잘 챙겼지?”
녀석이 고개를 끄덕인다.
“가서 맛있는 거 사드려. 옷도 한 벌 사드리고.”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거든?”
그때 준비를 마친 이모가 들어섰다.
“덕모 오늘도 일하는 거야? 여보 적당히 좀 부려먹어! 얘 쉬러 왔는데 저러다 쓰러지겠다.”
“아니, 내가 뭐 그러고 싶어 그러나?”
오늘도 이모부는 차 아래서 씨름을 벌이시는 중.
“덕모야. 공구통 좀.”
“네.”
공구통을 건네받아 뒤적거리며 그가 투덜거렸다.
“이게 다 덕모 친구 놈들 때문이잖아.”
카센터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카센터 앞엔 수리 대기 중인 차들이 다섯 대.
“죄다 한 대씩 끌고 와가지고 사람 쉬지도 못하게 하고 있어, 망할 놈들이.”
그랬다. 이곳에서 중, 고등학교를 보냈고 그때의 친구들은 대부분 이곳 보령에서 자리를 잡았다. 딱히 친구들을 보려고 연락을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곳은 작은 동네. 어디서 소문이 샌 건지 내가 내려왔다는 소식이 퍼졌고 보령에 도착한 지 하루도 되지 않아 학창 시절 친구 놈들에게 납치를 당했다.
“이야, 유명인!”
“살다 살다 CF 모델을 눈앞에서 다 보네.”
“가만히 있어. 사진 한 장 찍어야 되니까.”
지난 달콤 광고 이후 전화로 날 달달 볶아대던 녀석들. 그놈들이 대부분 보령의 친구들이었다.
녀석들에게 난 보령이 낳은 유명인이자, 이곳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연예인들을 데리고 일을 하는 부러움의 대상 그 자체.
납치당해 끌려간 술자리에서 놈들은 어떤 연예인이 제일 예쁜지를 물었고 있을 리가 없는 연예인과의 섬씽에 대해 집요하게 물어왔다.
특히 놀라웠던 건.
“너랑 같이 출연했던 그 모델 있잖아. 누구야? 무지하게 이쁘던데.”
놈들이 경하나를 연예인으로 알고 있었던 것.
“연예인 아니고 안 이쁘니까 신경 꺼라.”
“오오. 뭐야? 이놈 그 아가씨랑 뭐 있나 본데?”
술자리는 즐거웠다. 성인이 되기 전 순수했던 시절 친해진 녀석들이었고 다 커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제법 흥미진진했다.
농사를 짓는 놈도 있고 아버지 농지가 개발되는 바람에 졸지에 건물주가 된 놈도 있었으며 공무원, 선생님. 참으로 하는 일도 다양했다.
“참, 너희들 차 있지? 혹시 손볼 일 있으면 이모부 카센터에 좀 맡겨라. 카센터 30년 하신 베테랑에 내 친구니까 잘해주실 거다.”
어려운 카센터 생각에 해본 말의 파급력은 대단했다. 녀석들 대부분이 30대 초반. 한창 차에 관심이 많을 나이였고 친구의 친척이 운영하는 카센터란 나름 매력이 충분했던 모양.
다음 날 아침 약속이나 한 것처럼 한 대 두 대 녀석들의 차가 줄을 서기 시작했다.
“이러니 덕모가 날 도와야 되겠어, 안 되겠어?”
이모부의 투덜거림에 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게요. 시골 인심 참 무섭네요.”
“에휴. 뭐 알아서들 하시고, 우린 갑니다.”
주미가 이모 팔짱을 끼고 멀어진다.
“아우. 우리도 잠시 쉬었다 하자.”
차 아래에서 들려온 소리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 * *
“담배 아직도 안 끊으셨어요?”
얼려놓은 생수를 볼에 붙인 채 담배 연기를 피워 올리던 그가 씩 웃었다.
“이걸 어떻게 끊어? 나처럼 몸 쓰는 사람은 이거 절대 못 끊는다.”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넌 담배 안 피우지?”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다. 이건 아예 안 배우는 게 좋은 거야. 그 맛을 알면 하루를 끊으나 십 년을 끊으나 평생 잊지를 못하거든.”
들어본 적 있다. 흡연자들의 다양한 예찬론들. 유일하게 담배 연기만이 내 속을 들락날락해서 못 끊는다고 했던 어느 베테랑 배우의 말 같은 것들.
“근데 중원 차가 많긴 많네요.”
“많지. 국내 차 8할이 거기 거니까.”
자동차에 대해 많은 걸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국내 자동차 판도에 대해서는 문외한도 안다. 과거 중원, 반도 양강체제였던 국내 완성차 업계의 판도는 이제 완벽한 중원 우위.
그걸 증명하듯 이곳에서 지난 삼 일간 카센터에서 본 차들 대부분이 중원 자동차였다.
“근데 중원 차 영 별로야.”
그가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중얼거렸다. 휴가가 끝나면 만들어야 할 광고가 자동차 광고였기에 난 치솟는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왜요?”
“왜긴. 내가 30년간 이 짓을 했잖아. 매일같이 만지고 뜯고 닦다 보면 자동차 회사가 어떤 생각으로 차를 만드는지 모를 수가 없거든.”
난 나도 모르게 숨을 참고 있었다.
“중원 차가 껍데기는 이뻐. 디자인도 기가 막히고 특히 인테리어에도 신경 많이 쓰지. 그래서 사람들도 좋아하는 거고.”
양강이었던 내수 완성차 시장이 중원에게 쏠린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공통적인 포인트를 짚어낸다.
시대를 앞서간 익스테리어, 그리고 인테리어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 디자인에 대한 중원의 투자와 노력은 나름 대단했다.
물론 노력이 처음부터 좋은 결과로 나오지는 않았다. 과거의 디자인과 너무 이질적인 디자인을 본 사람들은 혹평을 쏟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꾸준한 노력은 결국 성과를 만들어냈다. 오늘날 중원 차의 아이덴티티로 자리 잡은 몇 가지 그들의 디자인은 해외 브랜드에도 전혀 밀리지 않는 그들만의 경쟁우위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근데 자동차의 핵심은 디자인이 아니란 말이야.”
“그럼요?”
다 피워버린 담배를 비벼 끄며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차는 이동수단이잖아. 핵심은 눈에 보이는 데 있는 게 아니라.”
탕탕.
그가 수리 중인 차의 보닛을 경쾌하게 두드렸다.
“이 속에 있는 법이거든.”
자기 손으로 30년 동안 차를 만져온 사람, 난 알 수 있었다. 권위 있는 전문가의 평가보다 능력 있는 마케터의 분석보다 경험을 통해 나온 그의 말이 더 정확하다는 것을.
“이모부.”
“음?”
“휴가 끝나면 저 자동차 광고를 만들게 돼요.”
“이야…… 정말? 어디 거?”
“반도 자동차요.”
그가 뿌듯한 눈으로 날 바라본다.
“근데 전 차에 대해 잘 몰라요. 사실 반도 차가 어떤 점이 좋고 뭘 강조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거든요.”
이모부가 수리 중인 차의 보닛. 난 그곳을 경쾌하게 두드렸다.
“이 속에 있는 핵심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주시겠어요?”
“하하. 이것 참.”
가벼운 웃음과 함께 그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조카한테 이런 식으로 기술 전수를 하게 될 줄은 몰랐네.”
“잠깐만요. 기술 전수 아닌데…….”
하지만 그는 콧노래를 부르며 차 아래로 내려섰다.
“일단 하부부터 보자고. 그다음 엔진, 메인 프레임하고 제어 시스템까지 비교해서 볼 게 산더미야. 일단 여기로 내려와.”
큰일이다. 아무래도 이모부의 열정이 불이 붙어버린 모양.
“네. 이모부.”
하지만 난 밝게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하여 보령, 동네 카센터에서 자동차 특강이 시작되었다.
이모부는 늦은 밤까지 카센터 불을 밝히고 자동차에 대해 열강을 해주었다.
“이렇게 보면 알겠지? 중원이랑 반도 기본적인 부품도 이렇게 차이가 나.”
양손에 들어온 중원과 반도의 부품. 핸들을 돌릴 때 전방 좌우 균형을 잡아주는 데 쓰이는 길쭉한 부품은 비슷해 보이면서도 분명한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중원 거가 확실히 가볍네요.”
“그래. 중원은 이걸 경량화라고 선전하더라. 근데 재질 강성 자체가 비교가 안 돼. 그리고 이것도 한번 봐봐.”
그가 다른 부품 하나를 내밀었다. 생긴 건 중원 것과 똑같은데 확실히 더 묵직하다.
“중원이 5년 전까지 쓰던 거야. 그땐 저게 부러져서 들어온 차는 없었어. 근데 딱 저렇게 바꾸고 나서 충격으로 부러져서 들어오는 차가 생기더라.”
“원가 절감이군요.”
“그렇지. 해서는 안 될 부분까지 원가 절감을 한 거지.”
체험을 통한 교육의 효과는 엄청났다. 내 머릿속엔 지난 수십 년 중원이 추진해온 일들이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경쟁우위에 서기 위해 눈에 보이는 디자인에 초점을 맞추었다. 하지만 한쪽에 집중하면 다른 한쪽은 부족해지는 법. 디자인에 많은 투자가 들어가다 보니 그 외의 부분에선 원가 절감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강판을 줄이고 재질을 바꾸고 필요도가 적은 장치는 빼는 방식으로.
그들은 중량을 줄여 연비를 맞추었고 원가를 줄여 가격을 맞추었다.
“근데 반도 차는 좀 달라.”
그가 한쪽에 주차된 다른 차로 다가갔다.
탕. 탕.
그가 몇 차례 보닛을 내려쳤다.
“소리가 완전 다르지? 중원 거랑.”
“정말 그러네요.”
“요즘 젊은 사람들 반도 차 별로 안 좋아하지. 이쁘지가 않거든. 디자인도 예전에 쓰던 거 그대로 쓰는 거 같고.”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내 보기엔 얘들은 지켜야 할 건 지키고 있단 말야. 강판 재질도 예전 두께 그대로고 덜 쓰인다고 빼고 그런 게 전혀 안 보여. 확실한 건 리프트로 차 들어보면 알아. 중원 건 가볍고 반도 건 묵직하거든.”
그때 문이 열리고 이모가 들어섰다.
“아니, 이 시간까지 뭐 해요?”
“아 이것만 하고 들어갈 거야.”
“아까도 그랬잖아요. 지금 밤 11시예요.”
“뭐? 11시?”
놀란 이모부가 두 눈을 치켜떴다.
“늦었네. 이것만 하고 갈게.”
“에휴…….”
이모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뒤돌아섰다.
“중원이 원가 절감한 거 자동차 수리 업자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야. 근데 그 업자들이 이 문제 가지고는 입도 뻥긋 안 해왔어. 왜 그런지 알겠어?”
퀴즈를 풀어보라는 듯 그가 빙긋 웃었다.
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머릿속엔 이미 중원 자동차의 전략이 완성되어 있었다. 원가 절감, 그로 인한 운전자의 안전 문제가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 잠잠했던 이유.
그 사실을 수리 업자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다?
“그래야 고장이 나고 고칠 차가 많아지니까?”
자연스러운 결론이 도출되었다.
“빙고. 정답.”
흐뭇한 얼굴로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자, 오늘 수업 끝. 들어가자.”
* * *
휴가가 끝났다. 놀러 와서 카센터 조수 노릇만 하다가 올라가는 조카에게 이모는 끝내 미안해하셨다.
“바빠서 멀리 못 간다.”
오늘도 이모부는 차 수리에 삼매경. 얼굴에 기다란 기름 자국을 남긴 채 손을 흔드는 그에게 난 깊이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이모부.”
버스를 타고 올라오는 길.
마른오징어 다리를 우물거리며 안주미가 물었다.
“차 고치는 게 재미있던? 휴가 내내 그것만 하다 가네?”
난 녀석의 손에 들린 오징어 다리를 낚아채며 말했다.
“재미있지. 또 몰랐던 것도 알았고.”
“뭘 알아?”
녀석이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날 바라본다.
“이모부 덕에 반도 차에 대단한 무기를 숨겨져 있는 걸 알게 됐다는 거지.”
녀석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진다.
“무기가 있어? 그럼 반도 차는 막 미사일 나가고 그러나?”
“…….”
“왜? 뭐.”
녀석다운 창의적인 생각, 난 한동안 멍한 얼굴로 녀석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