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고 모조리 씹어먹어 줄게-8화 (8/180)

광고? 모조리 씹어먹어 줄게 8화

8. 신한제약 속평수(2)

아침 기획 2팀.

펑퍼짐한 모자티에 화장기 없는 얼굴을 큼직한 안경으로 가린 기획 2팀장 이미래가 사무실로 들어섰다.

“아침부터 진짜 더럽게 막히네, 빌어먹을 거.”

손에 커피를 들고 터덜터덜 자리로 걸어오던 그녀가 덜컥 멈추었다.

“……아, 뭐야.”

이미래 팀장은 디자이너들을 이끌고 있는 기획 2팀의 팀장인 동시에 광인 기획의 수석 디자이너. 책상 위를 빼곡하게 채운 모니터 너머 반갑지 않은 얼굴이 보였다.

“아침부터 왜 이래?”

“굿모닝, 미래 팀장.”

1팀과 2팀은 편하기만 한 관계가 아니다. 1팀에서 기획을 짜서 전달하면 2팀은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하는 팀. 시키는 팀과 시킨 일을 해야 하는 팀이다 보니 기본적으로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 관계다. 게다가.

“굿모닝이고 베드 모닝이고 또 뭔데?”

저렇게 팀장이 찾아와 진을 치고 있는 건 2팀 입장에서는 절대로 반가운 일이 아니다. 지난밤 클라이언트로부터 긴급 수정 지시가 있었거나 두 시간 안에 이미지를 만들어 달라는 등의 어처구니없는 부탁을 해왔기 때문이었다.

팀원들 역시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파티션 너머로 양 팀장을 살피는 눈동자엔 불안함이 한가득이었다. 작게 한숨을 내쉬며 이미래가 자리에 앉는다.

“봐줬으면 하는 게 있어서.”

“뭘 봐줘? 우리 팀장 못난 얼굴??”

“아니, 아니.”

김형철이 두 손을 휘휘 저었다. 급히 파티션 아래로 고개를 감춘 팀원들이 킥킥 웃음소리를 냈다.

“뭔데?”

“이거.”

1팀장이 뭔가를 내민다.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받아 드는 이미래 팀장.

“속평수? 아 영업팀에서 따온 거?”

“맞아.”

“기획안 나왔나 보네?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어. 그냥 넘겨주면 될 걸 왜 아침 출근길부터 길막을 하실까?”

“잘 봐봐, 그거.”

김형철의 입에서 한숨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두 개거든? 둘 중에서 골라줘.”

큼직한 안경알 너머 이미래 팀장의 눈이 두 번 깜빡였다.

* * *

“형네 팀도 골치 아프네. 어쩌다 그렇게 견원지간이 됐을까?”

회의실. 두 팀장이 마주 앉았다. 두 사람은 같은 대학 같은 과 출신. 그래서 직원이 보지 않는 곳에서 이미래는 김형철을 형이라 부르고 있었다.

“나도 몰라. 사사건건 죽자고 덤비는 바람에 머리 아파 죽겠어.”

“내가 전에도 말했지? 선배한테 직장생활 안 맞다고.”

“시끄러.”

“이해가 안 가. 힘들면 그만두면 되는 양반이.”

학교 선후배 때부터 서로를 알았다. 직장생활까지 포함하면 얼굴 보고 산 시간이 십수 년.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 두 팀이지만 문제없이 잘 굴러가는 건 두 사람의 관계 때문이었다. 물론 사석이건 공석이건 티격대는 건 여전하지만.

“내가 잘못했지. 미희를 너무 키워줬어.”

“알면 뭐해? 고치지도 못할걸.”

“…….”

“이거 새겨들어 형. 그 팀 흘러가는 상황 여기서도 다 보여. 미희랑 용재도 문제지만 그 아래 새로 온 걔도 문제야.”

“하나?”

“그래. 전에 제삼 기획 있었다고 했잖아? 그래서 내가 레퍼런스 좀 돌려봤거든?”

이미래의 목소리를 줄였다. 김형철이 의자를 당겨 앉으며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마찰이 생겨서 그 위 팀장이 둘이나 관뒀대. 팀원들도 걔랑 세 달을 못 견디고 튀어 나갔다는 거야. 메인 카피라이터가 나간다는데 제삼이 팔짱만 끼고 있었던 이유가 있더라고.”

“흐음.”

김형철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몇 년간 강미희를 데리고 있었던 그였기에 그런 류의 부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그였다.

일 욕심 많고 팀워크는 안중에 없으며 단거리 주차처럼 홀로 앞장서 달리길 원하는 스타일.

“그럼 미희랑 떼어놔야 하나?”

이미래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지금 조용한 거 두 사람 결이 맞아서 그런 거야. 둘이 떼어놓으면 잘못하다가 제삼 꼴 날걸?”

“그럼 어쩌냐?”

“난 모르지. 그걸 왜 나한테 물어?”

팀장들은 알고 있다. 일 욕심이 많고 타협을 모르는 부류의 직원이 좋은 성과를 내왔다는 걸. 강미희는 이미 회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핵심인재가 되어 있었고 경하나 역시 머지않아 그렇게 되리라는 걸 김형철은 아주 잘 알고 있다.

“에휴. 일단 그거나 잘 골라줘.”

“애들이 알아서 하겠지. 결과야 안 봐도 뻔하겠지만.”

“땡큐.”

“말로만 고맙다고 하시게?”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김형철. 그가 주춤 굳었다.

“그럼?”

“저녁 사. 좋은 걸로.”

“그러든지.”

김형철이 회의실을 나섰다. 홀로 남은 회의실 이미래의 양 볼에 발간 홍조가 피어났다.

한편 같은 시간 기획 2팀.

“얘들아, 회의실로 좀 모여봐.”

팀 차석인 성윤주 과장의 부름, 하던 일을 멈춘 팀원들이 작은 회의실에 모였다.

“얘기 들었지? 1팀에서 기획안 두 개가 왔어. 이 중에서 좋은 걸로 하나 골라야 돼.”

출력된 자료를 팀원들에게 하나씩 나눠주는 성 과장. 먼저 강미희의 기획안을 살핀 팀원 하나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역시 예상대로네.”

“그렇죠? 성격은 거지 같아도 강 대리님 일 하나는 똑 부러지게 한다니까요?”

섣부른 평가는 아니었다. 그간 1팀에서 기획해 온 수많은 광고안을 디자인한 2팀이었고 그래서 강미희의 능력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들이었다.

“그냥 딱 이거다 싶네요. 동음이의어를 이렇게 써먹다니 아이디어 진짜 기가 막히는데요.”

직원의 말처럼 강미희와 경하나는 불을 끈다는 뜻의 소화를 활용했다. 소화가 되지 않는 상황을 속에서 불이난 상황으로 표현했고 속평수는 소방관이 되어 불이 난 속을 진화한다는 아이디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성윤주 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들도 알지? 그 게비수콘 광고.”

“네, 알죠. 그거 인터넷 짤방으로 엄청 돌잖아요.”

“그래. 이 아이디어도 잘 만들면 그런 식으로 써먹을 수 있을 거 같지 않아?”

“그렇긴 한데.”

직원 하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과장님 얘기 들으니까 드는 생각인데. 이거 게비수콘이랑 컨셉 좀 겹치는데요?”

“으흠.”

“걔네 공중파 광고 엄청 태웠잖아요. 컨셉 겹치면 별로일 거 같은데.”

“그런가?”

“다음 것도 한번 봐요.”

“신용재 대리 거네?”

“네 신 대리님이랑 저기 계약직 신입.”

“안덕모 씨?”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덕모의 존재는 기획본부에서 일종의 뜨거운 감자였다. 광인 기획 최초의 계약직 직원이자, 광고회사 경력이 아닌 클라이언트 경력을 가지고 입사한 남자.

하지만 모두의 관심을 끄는 건 따로 있었다. 안덕모의 등장으로 일방적으로 밀리던 신용재가 자기편을 얻었다는 사실이었다.

“신 대리도 진짜 어지간하네. 그만큼 깨졌으면 이제 포기해도 될 텐데.”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신 대리님이랑 일하는 게 훨씬 편하단 말이에요.”

“맞아요. 우리 쪽 사정 봐주는 거 대리님밖에 없어요. 과장님도 아시잖아요, 강미희 대리.”

1팀 요구를 받아 일을 해야 하는 게 2팀이다. 당연하지만 일을 시키는 쪽의 얼마나 배려해 주느냐에 따라 같은 일도 난이도가 하늘과 땅으로 갈린다.

신용재와 달리 강미희는 그런 배려 따윈 전혀 생각하지 않는 스타일.

[내일 아침까지 수정 시안 달래요.]

성윤주 과장의 머릿속에 며칠 전 일이 떠올랐다. 강미희의 전화를 받은 건 밤 11시였고 당시 성윤주는 친구 두 명과 제주도에 있었다.

“미희 씨, 지금 밤 11시야. 그리고 나 휴가 중인 거 알잖아. 나 지금 제주도…….”

[과장님 저는 그건 잘 모르겠구요.]

“뭐?”

[수정 안 되면 컴플레인 힘들게 걸릴 거예요. 그럼 저도 본부장님한테 말씀드릴 수밖에 없어요. 성 과장님 휴가 가는 바람에 대응 못 한 거라고.]

“아 정말…… 사정 좀 봐줘라, 미희 씨. 미희 씨? 뭐야, 끊었어?”

경국 성 과장은 그날 직원들과 마라톤 회의를 해야 했다. 직원들이 수정해서 보내준 수정안을 확인하고 부족한 걸 보강하고. 결국 수정을 마쳤을 땐 아름다운 제주 바다 저 멀리 아침 해가 떠오를 즈음이었다.

기분은 엉망진창이었다. 여행을 망친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긴 그도 그래. 뭐 우리 입장에선 남자들 편이 이기길 바라야 하는 건가?”

“그거야 뭐 승산이 있을 때 얘기죠.”

“어디 보자.”

성 과장이 두 번째 기획안을 펼쳤다.

“……어.”

자료의 두 번째 장을 넘길 때 성윤주 과장의 입에서 짧은 탄식이 터졌다.

“어머나, 이게 웬일이야? 이거 왜 이리 신선해?”

“좋은데요, 이거?”

“아이디어 괜찮다. 카피도 확 꽂히는데요?”

그때 이미래가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기획안에 집중하고 있던 성윤주 과장에게 묻는다.

“다 봤니? 이번에도 혹시나가 역시나야?”

“…….”

“왜 말이 없어?”

“역시나가 아니라서요.”

“뭔 소리야?”

성 과장이 기획안을 내민다. 그걸 받아 빠르게 훑어보는 이 팀장. 그녀의 눈이 점점 심각하게 변했다.

* * *

신용재가 외부 일정으로 자리를 비웠다. 팀장은 어딜 갔는지 보이질 않는다.

속평수 기획안도 끝났고 지금 딱히 해야 할 일도 없는 상태.

이미 몇 번이나 봐서 달달 외워버린 카피라이터 업무 매뉴얼을 화면에 띄워놓고 들려오는 목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선배님, 결과는 아직이래요?”

소곤대는 경하나의 목소리.

“글쎄? 왜 불안해?”

“불안한 건 아닌데…….”

안 봐도 어떤 건지 알겠다. 지금 분명 손가락으로 내 쪽을 가리키고 있을 거다.

“저쪽 아이디어 생각보다 잘 나온 거 같더라구요.”

“걱정하지 마. 그래, 아이디어야 좋을 수 있지. 하지만 그래봤자 근육돼지 작품이야. 걔가 있는 한 결과는 뻔해 우리가 질 일은 없어.”

그때였다.

“2팀에서 결판 내주셨다.”

김형철 팀장이었다. 신용재가 없는 걸 확인한 팀장이 턱수염을 슥슥 매만졌다.

“용재 없네? 몰라 그냥 발표할 거야. 귀찮아.”

꿀꺽.

이번 대결은 강미희와 신용재의 대결이지만 그 안에 경하나와 내 대결이 숨어 있다.

그녀와 내가 광고 아이디어를 냈고 두 대리가 그걸 다듬어 최종 기획을 만들었기 때문.

사사건건 까칠하게 구는 여자, 정직원이라서 대놓고 계약직 인턴을 무시하는 선배. 경쟁심이 타오르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신용재 승. 속평수 광고는 그걸로 밀기로 했으니까 그렇게 알아.”

쿨하게 승패를 통보하는 팀장.

“네? 왜요?”

동그래진 눈으로 강미희가 물었다.

“난 몰라. 내가 결정한 거 아냐. 궁금하면 이거 보든지.”

자신을 향한 공격에 절대 맞지 않겠다는 듯 김형철이 가지고 있던 기획안을 강미희에게 넘겼다.

“아무튼 용재가 이번 광고 담당. 걔 오면 그렇게 전해. 난 회의가 있어서…….”

통보를 마친 김형철이 빠르게 멀어졌다.

“뭔 일이야? 이게.”

강미희가 팔짱을 끼었고.

“어이가 없네……. 정말.”

경하나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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