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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모조리 씹어먹어 줄게-5화 (5/180)

광고? 모조리 씹어먹어 줄게 5화

5화. 초코볼 게임(2)

준비된 화면에 콘티가 떠올랐다. 그림으로 만들어진 콘티는 장면을 묘사하는 그림으로 구성되었다.

등장인물이 나오고 스토리보드로 준비한 대사들이 그 안에 배치된 상태.

“안녕하십니까. 지원자 안덕모입니다.”

구상을 만들고 스토리보드를 짜고 솜씨 좋은 학교 후배에게 맡겨 콘티를 완성했다. 늘 완성된 콘티를 평가하는 자리에 있었기에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일이었지만.

“제가 준비한 광고 속 제품은…….”

이번 기획안에 필생의 노력을 담아냈다.

면접관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면접장이 조용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입술을 뗐다.

“가상의 직수입 제품입니다. 프리미엄 고가 포지션을 취하고 있어 쉽게 구할 수 없다는 컨셉입니다. 브랜드명은 골드 핑거입니다.”

익숙한 얼굴들이 보인다. 팔짱을 낀 진광인 대표. 그리고 그 옆엔 키가 큰 여자, 차혜민이다.

“그럼 골드 핑거 광고 기획 시연을 시작하겠습니다.”

* * *

눈을 통해 들어온 활자는 주인의 머릿속 지식과 융합해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미지화된 콘티는 영상을 만들어낸다.

콘티에 대한 설명이 시작되자 면접관들의 머릿속에 한 편의 광고가 재연되기 시작했다.

배경은 어느 학교. 남녀공학인 어느 고등학교의 평범한 교실이다. 지금은 쉬는 시간. 교실 안 자유롭게 휴식을 취하는 학생들이 비치고 카메라 앵글이 천천히 이동한다. 이동하던 앵글이 멈추자 거기 두 학생이 등장한다.

키가 작은 학생이 오늘의 주인공. 그가 안경 쓴 친구에게 묻는다.

“숙제 다 했냐?”

“당연하지.”

“그럼 빌려줘. 일찍 자는 바람에 못 했다.”

“얼마에?”

“뭐?”

주인공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친구끼리 이러기야?”

“친구?”

안경 쓴 학생이 진지한 얼굴로 답한다.

“숙제도 엄연히 지적재산이야. 거래에 대가가 있어야 한다는 거지. 그게 자본주의 시스템이야.”

“아! 됐고 얼마?”

녀석이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 든다. 안경 학생이 손가락 두 개를 펼친다.

“골드 핑거 두 개.”

“뭐? 그게 뭔데?”

“에휴.”

안경이 길게 한숨을 내쉰다. 그가 손을 뻗어 한쪽을 가리킨다. 주인공의 고개가 그쪽으로 향한다.

“답답아, 주변을 봐. 누가 돈으로 거래를 하냐?”

주인공의 눈동자를 향해 카메라가 줌인한다. 눈동자에 비친 교실의 모습이 화면 가득 채워진다.

배경음이었던 웅성거림이 대화로 변해 들려온다.

“골드 핑거 5반 상장이 오늘인가?”

“그래. 5반은 오늘이고 6반은 모레. 참고로 어제 6반에서 페레로 상장 취소됐어. 공급 물량 터지는 바람에.”

“쯧쯧. 희소성 없다고 얘기를 해도.”

“금융자산의 기본도 모르는 것들이지.”

“골드 핑거 보유율은?”

“너랑 나랑 합하면 대략 5퍼센트.”

“너무 작은데.”

“그럼 재혁이네랑 손을 잡자. 걔네랑 합하면 10퍼센트쯤 될 테니까.”

화면이 바뀐다. 작은 학생의 동공에 또 다른 모습이 펼쳐진다.

“문구점에서 골드 핑거 받기로 했다며?”

“그래. 아직 공식 발표는 아닌데. 발표되면 가격 확 오를 거야.”

“시간 별로 없네. 매물은 있나?”

“정보 모르는 애들이 조금씩 내놓고 있어.”

“그럼 호가 올려서 매입하자. 발표전에 싹 사들여야지.”

“오케이.”

이번엔 다른 장면이다. 칠판에 쓰인 것들을 지우는 주번. 그가 한구석에 뭔가를 적어 넣는다.

[페레로 전일 대비 -35%]

[골드 핑거 전일 대비 +23%]

[M&M 상장 폐지. 정리매매는 반장에게.]

후욱.

눈동자를 줌인했던 화면이 빠르게 줌아웃한다. 황당한 얼굴의 주인공이 화면에 잡힌다.

“이게 뭐야?”

“뭐긴. 살아 있는 경제의 현장이지.”

뻐끔대는 주인공의 입. 힘겹게 열린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

“초코볼을 이렇게 쓴다고?”

학생이 창밖을 바라본다. 창문 너머를 바라보는 학생의 시선을 따라 화면이 멀어지며 교실 전체의 풍경이 보인다.

열심히 대화를 나누는 학생들. 그들의 머리 위에 그래픽으로 처리된 차트와 시세 따위의 각종 지표들이 떠오른다.

화면은 더 멀어진다. 이제 옆의 교실도 화면에 들어온다. 옆 반도 그 옆 반도 똑같은 상황. 화면에 마침내 학교 전체 모습이 잡힌다.

조용하고 한산한 운동장.

툭.

한 학생이 축구공을 툭툭 차며 운동장을 가로지른다. 느릿하게 축구공을 차며 지나가는 모습은 썰렁한 운동장과 좋은 대비를 이룬다.

학교를 배경으로 등장하는 헤드카피.

[먹지 마라. 이제 투자하라.]

[골드 핑거는 자산이다.]

END.

“허…….”

콘티 설명은 끝났다. 정적이 찾아온 회의실에 누군가 헛숨 들이켜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그리고 난 소리의 주인을 금세 찾아냈다.

“허…… 하하.”

헛숨은 웃음소리로 바뀌었다. 웃음의 주인은 진광인.

“파하하하!”

그가 크게 웃었다. 책상까지 두드리며 파안대소하는 광인 기획의 대표. 난 불안한 심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최종 평가는 끝났다. 지원자들은 돌아갔고 정리가 끝난 면접장엔 두 사람만이 앉아 있었다.

“어떻게 생각해?”

한 사람은 진광인 대표. 질문을 받은 여자가 안경을 벗어 놓는다.

“생각하고 말고 할 게 있나요?”

안덕모를 끝으로 4인의 최종 면접이 끝났다. 발표가 끝났을 때 면접관들은 각자의 기준으로 채점을 했다. 그리고 차혜민의 앞엔 종합된 결과가 올라와 있었다.

“심플한 결과인걸요.”

“그렇겠지.”

그 역시 성적표를 보았다. 결과는 명확했다. 압도적인 평가를 받은 한 사람의 지원자. 그리고 탈락이 확정된 세 사람.

보통 면접관 성향에 따라 결과가 갈리기도 하지만 최종합격자는 다섯 명 면접관에게 동시에 최고 점수를 받았다.

“그럼 됐네. 다른 데서 채가기 전에 연봉 조율 시작하지.”

게임은 끝났다. 차혜민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광인이 팔짱을 끼었다.

“제삼 기획도 한심하네. 저런 인재를 놓치다니.”

최종 승자는 세 번째 지원자. 컬이 큰 갈색 파마머리의 경하나였다.

“대표님?”

“그래.”

“마지막 지원자 말입니다.”

“마지막?”

시종일관 무표정했던 진광인의 입꼬리가 길게 말려 올라갔다.

“초코볼은 자산이다? 그 친구 말이구만.”

“네. 어떻게 보셨는지요.”

“하하.”

진광인이 다시 웃었다.

“솔직히 엉망진창이야. 그런 광고를 내보냈다가는 난리가 나겠지. 방통위에 시민단체에 교육청도 펄펄 뛸걸?”

그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품위를 훼손했네, 청소년 가치관에 악영향을 미치네 하면서 말이야.”

차혜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2020년대 대한민국은 여전히 유교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나라다. 그래서 누군가 불편한 영상이 있어서는 안 된다.

섹슈얼한 광고는 전파를 탈 수 없다. 밀레니엄 이전 여과 없이 연출되던 흡연 씬도 엄금되었다. 특히 도박을 연상시키는 비유와 상징은 범죄로 취급되었다. 이런 대한민국에서 학교, 청소년인 학생이 등장하는 광고는 그 기준이 훨씬 더 까다롭다.

안덕모의 광고는 참신했다. 쉽게 구하기 어렵다는 제품의 희소성을 뜨거운 이슈인 암호 화폐에 빗댄 발상의 전환은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그 광고는 대한민국에서 존재할 수 없는 광고다.

혹자는 암호화폐 투자를 도박으로 인식한다. 그걸 학생들이 한다는 광고는 엄청난 논란을 불러올 것이다.

매년 수많은 광고가 사회적 금기로 엎어지고 논란의 대상이 된다. 논란의 대상이 되는 순간 돈 들여 만든 광고는 회사 이미지를 깎아 먹는 독이 된다.

진광인이 폭소를 터뜨린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금기지. 그걸 자랑스럽게 발표를 하다니……. 갈 길 먼 초보고 우리가 원하는 인재라고 할 수 없지.”

“그 친구 KJ식품 마케팅, 음료 파트 홍보 책임자였습니다.”

“뭐?”

“대표님도 본 적이 있는 걸로 압니다. 확깨수 광고 때.”

“아.”

진광인의 입이 크게 벌어진다.

“그래, 기억나! 그 친구를 어디서 봤나 했더니.”

진광인이 짝짝 박수를 쳤다.

“그 친구, 금기를 몰랐던 게 아닙니다.”

“일부러 했다는 말인가?”

“네. 누구보다 금기에 민감한 클라이언트였으니까요.”

차혜민의 목소리가 은근해졌다.

“제 생각이 맞다면 우리 회사의 모토, 그걸 고민한 게 아닐까 합니다만.”

“우리 모토라…….”

대표가 두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 오래전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 세웠던 한 줄의 모토가 떠올랐다. 오래되어 퇴색된, 심지어 대표의 머릿속에서도 잊힌 그것.

“음…….”

그러면 말이 된다. 안덕모의 광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자의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 모토에 충실한 것이었으니까.

“한 번 더 기회를 줬으면 합니다.”

“그럼 세 번째를 떨어뜨리고 그 친구를 붙이자고?”

“아뇨. 공식적으로 탈락한 지원자인데 그럴 수야 없지요.”

벗어둔 안경을 들어 올리며 차혜민이 웃었다.

* * *

불안하다. 기획안 발표가 끝나면 뭔가 반응이라도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결과는 고사하고 기획안에 대한 평가도 일절 돌아온 건 없었다.

-연락을 기다려 주세요.

직원의 사무적인 대답. 그게 전부였다. 그 뒤 할 수 있는 거라곤 기다리는 것뿐.

[어이. 안 죽고 살아 있냐?]

KJ식품 조준용 선배. 그는 가끔 전화로 안부를 물어오는 중이었다.

“잘 먹고 잘 자고 사람처럼 살고 있지요.”

[좋겠네. 여긴 개판이거든.]

“개판이요?”

[그래. 황 이사 새 별명 생겼잖아. 미친개라고.]

이유는 간단했다. 확깨수 매출이 꺾였기 때문. 회장의 애정을 듬뿍 받은 제품이었기에 임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바탕 살풀이가 있었고 적당한 핑계가 필요했던 영업본부는 후속 광고 실패를 부진의 원인으로 고해바쳤다.

마케팅엔 대혼란이 찾아왔고 미친개로 변한 황 이사는 매일같이 직원들을 물어뜯었다.

“그 자식답네요.”

[대표한테 작살 났을 때 얼굴을 찍어놨어야 하는 건데.]

“하하.”

[근데 발표는 아직이냐?]

“네. 아직.”

그때였다.

우웅.

핸드폰이 진동했다. 메시지 도착을 알리는 신호. 전화기를 내려 메시지를 확인했다. 문자의 첫 구절을 확인한 순간 난 숨을 죽였다.

[광인 기획입니다.]

“마침 왔나 보네.”

[뭐가?]

“면접 결과요.”

[…….]

선배의 침묵, 두근대는 심장을 느끼며 화면에 메시지를 띄웠다.

[지원자님과 함께할 수 없게 되어…….]

떨어졌다. 전화기 너머에서도 분위기를 감지한 모양.

[덕모야. 성수 기획 건 아직 유효해.]

“아…….”

[아니다. 상심 클 텐데 일단 끊자. 생각 바뀌면 전화하고.]

“네. 고마워요.”

전화가 끊어졌다. 묵직한 실망감이 온몸을 짓누른다.

우웅.

그때 또 다른 메시지가 도착했다.

[차혜민입니다. 지금 통화 괜찮나요?]

차혜민 본부장?

손가락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연결음이 들리는 짧은 시간. 난 고산병에 걸린 사람처럼 호흡이 가빠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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