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고 모조리 씹어먹어 줄게-3화 (3/180)

광고? 모조리 씹어먹어 줄게 3화

3. 광고에 미치다(3)

벼랑 끝에 몰려 광인 기획을 끌어들여 만든 논란의 광고. 방송 직전까지 날 불안에 떨게 만들었던 금단의 광고는 끝내 대박이 났다.

유통을 통해 나간 제품은 빠르게 소진되었다. 숙취 음료 후발주자인 확깨수는 광고 한 달 만에 제품군 선두주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히트상품 반열에 올랐다.

후속 제품 공급 요청에 영업부는 환호성을 터뜨렸다. 회사엔 활력이 돌았고 너튜브에 올려놓은 확깨수 광고의 다양한 버전들은 나란히 백만 이상의 조회 수를 달성했다.

[KJ 식품 확깨수, 성공 비결은 파격 광고.]

[부진했던 숙취 음료 시장을 되살리는 마법, 화제의 신제품 확깨수.]

[KJ식품의 유쾌한 소통방식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다.]

경제면을 장식한 기사처럼 모두가 입을 모아 광인 기획의 광고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덕모야, 축하해.”

“마음고생 많았지? 그래도 네가 한 건 할 줄 알았다.”

주변에서 축하가 쏟아졌다. 그리고 대차게 똥 싼 놈, 직속 임원인 황 이사는 예상대로 움직였다.

“그때 내가 딱 알아봤지. 좀 이상하긴 해도 그 친구들 광고 하나는 기똥차게 만들어줄 것 같더라니까?”

손바닥 뒤집듯 태세를 전환한 것. 새로울 건 없었다. 뭐 이번 성공의 과실 대부분을 그가 가져가겠지만 그 아래서 숨죽이고 있으면 떡고물이라도 떨어지겠지.

“덕모야. 그쪽이랑 미팅 좀 잡아봐.”

“네? 광인 기획이요?”

“그래. 후속 광고 내야지.”

“후속 계획은 없었지 않습니까?”

“그래, 없었지. 근데 생겼어.”

회사는 광고의 맛을 제대로 보았다. 기세를 이어가기 위해 후속 광고를 요구했다.

“어려울 거 없어. 첫 광고에 컨셉 제대로 잡혔잖아. 1 편하고 비슷한 컨셉 잡고 시리즈로 가자고.”

“…….”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월급을 받는 이상 지시를 따라야 했다.

결국 광인 기획을 불렀고 이번엔 대표 대신 회사로 들어온 차혜민 본부장은 말했다.

“시리즈요? 대리님은 좀 다를 줄 알았는데…… 이거 실망인데요?”

냉랭한 목소리. 차가운 대답은 심장을 후벼 팠다.

“시리즈 안 돼요. 후속 광고는 새컨셉으로 가야죠. 그리고 시리즈 생각이 있었으면 처음부터 말씀을 하셨어야죠.”

전부터 느낀 거지만 그녀의 말은 상식적이다. 좋은 목소리와 발음은 설득력을 더하고.

“이번 편은 단편으로 완결된 광고예요. 다음 편 생각 안 하고 만든 거니까요. 이제 와서 시리즈로 만들어봐야 재탕 아류작이 될 뿐이에요.”

슥.

테이블 위 광고 제안서. 그녀가 보지 않고 내 쪽으로 밀어 놓는다.

“미안하지만 우린 이런 거 안 해요.”

영화계에는 이런 말이 전해진다.

1편만 한 속편은 없다.

광고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녀가 후속 광고를 거부한 이유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 있었다.

결국 광인 기획의 거부 사실을 내 의견과 함께 보고했다.

‘1편의 아류가 아닌 새 컨셉으로 가야 한다.’

“필요 없어. 예산 더 써도 되니까. 다른 데 알아봐.”

물론 한 번 성공을 맛본 황 이사에게 먹힐 리가 없었다.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다른 기획사와 후속 작업을 하게 되었다.

대박 친 1편과 비슷한 전개, 배우와 상황만 바꿔놓은 비슷한 상황. 콘티가 결정되었을 때 대부분 좋다고 박수를 쳤지만 난 생각했다.

‘이게 억지스러운 거지.’

모델이 결정되고 본 촬영이 시작되었다. 난 알 수 있었다. 이번 광고가 1편의 발끝에도 따라가지 못하는 평가를 받게 될 거라는 걸.

그리하여 광인 기획의 거부가 있던 한 달 후.

확깨수의 후속 광고이자 급조된 시리즈 편이 전파를 탔다. 주인공은 남자에서 여자로 배경은 배에서 부산행 기차로 바뀌었다.

흉내 낸 영상미, 앵글과 카메라 워크. 반면 비교도 되지 않는 모델의 어색한 연기.

광고가 나간 후 1편과 정반대의 평가가 이어졌다. 사실 평가라고 할 것도 없었다. 눈여겨봐 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중은 냉혹했다. 확깨수의 후속 광고는 보고 나면 잊히는 그렇고 그런 광고로 남았고, 그건 차혜민의 광고 철학을 다시 한번 증명해 준 것이었다.

1편보다 예상도 기대도 컸다. 확정된 실패 앞에서 박수 치던 사람들은 내게 비난의 화살을 쏘아 보내기 시작했다.

후속 광고가 전파를 탄 지 보름 후, 결국 난 결심했던 바를 실행에 옮겼다.

스윽.

품에서 꺼낸 봉투. 그 봉투를 황 이사의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봉투에 쓰여 있는 세 글자를 확인한 황 이사의 미간이 사납게 일그러진다.

“덕모 너…….”

순간을 오래 꿈꿔왔다. 상상했던 것처럼 황 이사의 낯짝에 짝 소리가 나게 던지지는 못했지만.

“회사 그만두겠습니다.”

마침내 사표를 냈다. 박수 칠 때 떠나야 했는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못했다.

“제정신이야? 광고 저 꼴 내놓고 수습은 누가 하라고?”

사직서를 꺼내보지도 않은 채 속을 벅벅 긁어댄다.

“이거 참 어처구니가 없네. 그래 이러는 이유가 뭐야?”

이유라.

난 황 이사 밑에서 가장 큰 성과를 만들어준 부하다. 그래도 그가 아끼는 부하라는 평도 많이 들었고.

“이유가 뭐냐면…….”

그런데 어처구니가 없다라.

그래, 나도 마찬가지다. 어이없는 상황이 싫었으면 좋게 말해줄 때 알아 처먹었어야지. 가슴속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치밀어 올라왔다.

“당신처럼 무능한 상사와 더 이상 일 못 하겠으니까요.”

“뭐?”

“당신이 광고에 대해 알아요? 아니, 알려고 노력이라도 해봤어요?”

조용하던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이제 나도 모르겠다. 어차피 그만두기로 한 거 담아둔 말은 전해주고 가야겠다.

“당신이 여기 와서 결정하고 평가했던 거 단 하나도 맞은 게 없어.”

목소리는 결국 호통이 되었다.

“다 틀렸다고!”

갑작스러운 노성에 경악한 황 이사가 주춤 뒤로 물러난다.

그런 말이 있다. 퇴.사.마는 건드리는 거 아니라고.

무슨 말이냐고? 퇴사자와 사형수 마누라는 건드리는 거 아니라는 뜻이다. 사직서를 낸 부하 속을 긁어놓았으니 웃으며 안녕하긴 글렀다.

콰앙!

두 손으로 그의 책상을 힘껏 내려쳤다.

“뭐야? 이게 무슨 소리야?”

“이사님 방 아니었어?”

“덕모 목소리 같은데?”

“안덕모? 덕모가 왜?”

굉음 소리는 이사의 집무실 밖에까지 들렸고 결국 집무실 문밖이 소란스러워졌다. 하지만 난 오히려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래, 모두 들어라. 안덕모의 퇴사의 변이다.

“그래, 틀릴 수 있어. 모를 수도 있지! 그럼 그냥 닥치고 있어야 하는 거야. 개뿔도 모르는 놈이 이래라저래라하면 배가 산으로 가는 거라고.”

지난 5년, 단 하루의 결근도 지각도 한 적 없다. 사람들은 날 KJ에 뼈를 묻을 사람이라 불렀고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다.

광인 기획을 만나기 전까지는.

“가만 보니 지금 저희 배가 산에 있더군요. 그래서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대답이 됐나요?”

급격히 공손해진 말투. 의자에 앉은 채 물러서다가 벽에 닿아 더 이상 갈 데가 없어진 황 이사가 멍청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모범 사원 안덕모는 그렇게 회사, 그리고 사람 미치게 만들었던 황 이사와 파국을 맞이했다.

* * *

“야!”

인수인계서는 오래전에 다 써놨다. 복사지 박스 하나만큼의 짐만 챙겨 로비를 빠져나가는 길, 다급하게 부르는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야, 안덕모!”

선배다. 신입사원 때부터 제일 친하게 지냈던 선배. 남산만 한 배를 좌우로 흔들며 달려오는 그를 보며 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그 몸을 해가지고 왜 그렇게 뛰어요?”

“헉…… 아니…… 너…… 아우 잠깐만.”

힘겹게 숨을 고른다. 어지간히 급했던 모양이다.

“이러기야? 나한테 말은 했어야지. 어떻게 사표 던지자마자 이렇게 가냐.”

“그렇게 됐네요.”

“됐고 잠깐 따라와.”

“아 왜요. 짐 든 거 안 보여요? 그리고 아시잖아요. 나 빨리 여기 떠나고 싶어.”

황 이사 앞에서 소리를 질렀다. 아마 못해도 20명 이상 그 소리를 들었을 거다. 장담컨대 한 시간이면 회사 전체에 소문이 날 거고.

“그거 이리 내.”

그가 박스를 빼앗는다. 그걸 들고 성큼성큼 걸어가 경비에게 내놓는다.

“이거 좀 맡길게요. 저 말고 아무한테도 주시면 안 돼요.”

“네. 그럴게요.”

“아, 진짜!”

“넌 나랑 얘기 좀 하고 가.”

“선배!”

“때려치운 놈이 선배는 무슨 선배야. 이제 형이라고 불러.”

“참나. 아시잖아요? 저 집도 멀어요.”

“그건 모르겠고.”

그가 팔짱을 끼었다. 저 인간이 저 자세와 표정을 지으면 아무 말도 통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안다.

“어쨌든 그냥은 못 가니까 포기하고 따라와.”

선언한 그가 앞장선다.

“에휴.”

난 포기하고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헤드헌터가 꼬셨냐?”

“아뇨.”

“그럼 옆집에서 스카우트 제의 들어왔어?”

“아뇨.”

“갈 데는 있는 거야?”

“아뇨. 지금은 없어요.”

탁.

식당 직원이 타이밍 좋게 소주병을 내려놓는다. 그걸 받아 드는 선배.

까득.

뚜껑을 따는 소리가 아주 경쾌하다.

꼴꼴.

그가 내 잔에 술을 채운다.

“그럼 뭔 생각인데?”

질문과 함께 술잔이 다가왔다. 작게 한숨을 내쉬며 소주잔을 들어 그의 잔에 부딪쳤다.

“해보고 싶었던 일이 있어서요.”

쭈욱.

한 호흡에 술잔을 비운다. 아직 안주도 안 나왔는데 어지간히 속이 타는 모양.

“무슨 일인데?”

“광고…… 만들어보고 싶어요.”

“광고?”

“네.”

“…….”

그가 침묵한다. 찬으로 나온 어묵볶음을 한 움큼 집어 입에 넣더니 고무 씹듯 잘근거리며 눈을 맞춰온다.

“순수한 거냐, 멍청한 거냐? 완전 대책 없구나, 너.”

“……순수 쪽이겠죠?”

“하이고.”

영화를 좋아했다. 하지만 영화계로 뛰어들진 못했다.

그럴 만한 용기가 없어 현실적인 선택을 했다. 영화와 비슷한 광고 담당자가 된 건 현실 속에서 찾은 이상이었다.

그리고 선배는 그 사실을 안다.

“그럼 성수 기획 가. 자리 만들어줄게.”

확깨수 광고를 내던지고 도망갔던 성수 기획.

자신들 대신 광고를 맡은 광인 기획이 광고로 대박을 터뜨리자 황 이사가 그랬던 것처럼 성수 기획 역시 하루아침에 태세를 전환했다.

스스로 힘없는 을 신세가 되었고 지금은 책임자 한마디면 설설 기는 그들이었기에 선배의 제안은 충분히 가능한 제안이다.

“원하는 부서가 어디야? 그쪽 상무한테 얘기해 놓을게.”

핸드폰을 꺼낸다. 당장 전화를 할 모양.

성수 기획은 좋은 회사다. 업계에서 탑 티어에 속하며 제법 성공한 광고도 많이 만든 회사다.

“아뇨, 그러지 마세요.”

“야!”

하지만 싫다. 성수 기획을 염두에 두었다면 황 이사에게 그 난리를 치지도 않았다.

“형 말 들어. 너 클라이언트였어. 인맥 끼고 가는 게 답이야.”

“……알아요.”

“알아? 그럼 성수 기획 말고 뽑아줄 데 없다는 것도 잘 알겠네.”

고개를 끄덕였다. KJ식품은 매년 열 개 이상의 공중파 광고를 수주하는 업계의 큰손. 당연히 광고를 만드는 기획사에게 갑 중의 갑이다.

하지만 황 이사의 등장 이후 KJ는 개진상의 지위를 당당히 꿰찼다.

기획사 기피 일 순위요, 업계 욕이란 욕은 다 먹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진상 황 이사와 손발을 맞춰온 나다.

또 황 이사가 아니라도 난 클라이언트 경력뿐이다. 기획사는 나 같은 사람을 뽑지 않는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광고를 만들 사람이지 평가하고 컨펌할 사람이 아니니까.

“가보고 싶은 데가 있어요.”

“어딘데?”

“광인 기획이요.”

광인이 채용 공고를 냈다. 공고를 본 후 난 진짜 퇴사를 결심했다.

“거기서 광고를 만들고 싶어요.”

“하하…….”

그가 허탈하게 웃는다.

“에라, 미친놈아.”

그 말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그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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