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고 모조리 씹어먹어 줄게-2화 (2/180)

광고? 모조리 씹어먹어 줄게 2화

2. 광고에 미치다(2)

끼룩끼룩.

어두웠던 화면이 점차 밝아진다. 그리고 드러나는 드넓은 바다.

투두두두.

엔진음을 내며 바다 위를 항해하는 한 척의 어선.

검은 정장의 한 남자가 화면에 등장한다. 갑판 난간에 기댄 남자가 우수 어린 시선을 수평선에 던진다. 이제 막 아침 해가 떠오르기 직전, 서서히 밝아오는 수평선을 바라보는 남자의 뒷모습.

갑판을 따라 부드럽게 움직이는 화면 앵글이 느와르 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한다.

“형님. 준비됐습니다.”

“그래.”

남자가 난간에서 몸을 떼낸다. 천천히 걸어가는 남자를 따라 앵글이 이동한다. 앵글은 갑판 위를 비춘다. 거기 세 사람의 검은 정장의 남자가 등장한다. 손에 하나씩 둔기를 지닌 남자들에게 둘러싸인 녹슨 드럼통 하나가 화면 중앙에 잡힌다.

“어때? 이제 얘기할 마음이 생기셨나?”

“읍읍!”

“야 입 좀 풀어줘 봐.”

부하로 보이는 사내가 손을 뻗는다. 앵글이 이동하며 드럼통 안을 비춘다. 그 안엔 남자가 들어 있다. 만신창이인 얼굴, 일부러 벗긴 건지 찢어진 속옷 차림의 남자. 입을 가린 재갈이 풀리자 남자가 애원한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깡.

부하의 손에서 둔기를 뺏어 든 주인공이 드럼통을 후려쳤다. 그 안의 남자가 움찔 굳는다.

“살고 싶으면 말을 하라고, 영진이 파 맞지?”

“영…… 영진이 파요?”

남자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린다. 입술 역시 바르르 떨린다.

“저…… 저는.”

힘겹게 열린 입술. 그 사이로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영준이 아빤데요?”

끼룩.

찾아오는 정적. 때마침 들려온 기러기 소리가 아주 적절하다.

“영준이가 누구냐? 그쪽 애들 중에 영준이라는 놈이 있었나?”

부하들이 고개를 젓는다. 남자의 눈에 살기가 풀풀 피어오른다.

“뭐 그만하면 알겠어. 짜식, 적이지만 그래도 멋지네.”

남자가 품을 뒤진다. 그 안에서 나온 지갑. 지갑 안에서 잡히는 대로 지폐를 꺼낸 남자가 중얼거렸다.

“저승길 노잣돈이야. 멋진 놈이라서 특별히 챙겨주는 거야. 알겠지?”

남자가 손을 뻗는다. 지폐 다발이 드럼통 안 남자의 입에 물린다.

“읍! 읍!”

입이 막힌 채 비명을 지르는 남자. 남자의 눈이 경악으로 물든다. 화면이 줌인 된다. 공포에 가득한 남자의 동공이 커지며 어제의 상황이 펼쳐진다.

콰앙!

굉음과 함께 문이 부서져 나갔다.

“뭐야?”

“저놈 뭐야?”

문 안에 검은 정장의 남자들이 한가득. 놀란 그들이 분연히 일어서며 누군가를 보호한다.

“형님 이쪽으로.”

반백의 남자는 이곳의 보스. 그를 보호한 채 부하들이 뒷걸음을 친다. 화면이 이동하며 문을 부순 남자를 잡는다.

남자 역시 정장 차림. 그런데 이상하다. 양 볼은 물론 코까지 새빨갛다. 약간 풀린 눈으로 남자가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사장 누구야? 사장 나오라 그래!”

“뭐 하는 놈이야?”

“잡아!”

그랬다. 모든 건 술 때문이었다. 회식에서 과음한 남자는 이성을 잃었다. 인사불성인 상태로 찾은 곳은 술집이 아닌 전국구 폭력 조직의 사무실.

취객은 난입을 했고 조직원들에게 붙잡혔다. 그리하여 지금 상황이 벌어진 것.

화면에 다시 남자의 눈이 잡힌다. 남자의 눈에서.

주륵.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린다.

“동튼다. 그만 보내라.”

“네. 형님.”

부하들이 깍듯이 고개를 숙인다. 화면이 서서히 암전된다. 남자의 쓸쓸한 독백이 들려온다.

“거 죽기 딱 좋은 날씨네.”

완전히 어두워진 화면, 그 위로 떠오르는 헤드카피.

[취하면 죽는다. 죽기 전에 확깨수!]

첨벙.

화면 너머 들려온 소리. 조금 밝아진 화면에 수중 촬영을 통해 드럼통 하나가 물속으로 침강하는 장면이 흘러나온다. 컴컴한 심해를 향해 내려가는 드럼통에서는.

뽀글뽀글. 꼬르륵.

누군가의 단말마처럼 몇 개의 기포만이 빠져나왔다.

[KJ식품 확깨수 30초. END]

광고가 끝나고 출력된 화면, 수십 명의 사람이 모인 시연장에 한줄기 정적이 감돌았다.

* * *

팍.

시연이 끝난 회의실에 불이 밝혀졌다. 작동이 끝난 노트북을 닫으며 차혜민은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은 채였다.

지금 이 자리엔 임원만 세 사람, 팀장급이 다섯 명, 실무자는 그 둘을 합한 것의 곱절의 인원이 참석해 있지만.

“…….”

머리 위에 말 줄임표를 달고 있는 것처럼 누구도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난 바삐 눈동자를 돌리며 분위기를 살폈다.

“으흠!”

침묵을 뚫고 가장 먼저 입을 연건 황 이사였다.

“아니, 이게…… 지금 장난합니까?”

입을 연 줄 알았더니 열린 건 포문이었다.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황 이사가 언성을 높였다.

“내용이 순 억지잖아요! 게다가 광고에서 사람을 묻다니 당신들 지금 제정신입니까?”

“기가 막혀서.”

“근데 이거 방송은 가능한 거야?”

황 이사의 의견에 동조한 사람들이 한마디씩 보탠다. 목소리를 낸 사람들을 확인해 보니 대부분 임원이나 팀장들.

“마음에 안 드신다니 유감이군요.”

앵커가 뉴스를 낭독하는 듯 한마디 한마디 똑똑 부러지는 발음, 안정되게 착 가라앉은 중저음의 톤. 얼어붙은 회의실을 녹이는 봄바람 같은 목소리는 단번에 이목을 사로잡았다.

“우선 정정부터 할게요. 묻는 장면은 없어요. 대신 물에 빠뜨렸죠.”

“……킥.”

눈치 없는 누군가의 입에서 터져 나온 웃음. 그가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방송 가능 수준이야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희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광고는 과장과 억지가 기본인데 쓸데없는 걱정들을 하시네요.”

좋은 목소리다. 그녀의 목소리는 또박또박하면서도 마음을 움직이는 마력이 깃들어 있었다.

“광고의 목적은 과장과 억지를 써서라도 타깃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데 있습니다. 좋은 광고는 그것에 충실한 광고를 말하죠.”

어느새 짐을 챙긴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컨펌 없이 작업하는 부분은 합의된 사항이었고, 시연 끝났으니 저희는 그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녀가 미련 없이 걸어간다. 직원들이 그녀를 뒤따른다.

또각또각.

회의실에 울려 퍼지는 도도한 하이힐 소리. 내겐 마치 승전보처럼 들렸다. 황당한 얼굴을 한 채 그녀를 노려보던 황 이사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이봐요! 광고를 이따위로 만들어 놓고 어딜 가?”

또각.

하이힐 소리가 멈춘다. 그녀가 빙글 뒤돌았다. 긴 생머리가 그림처럼 펼쳐지며 어깨 위로 가지런히 내려앉는다.

“그건 그쪽의 개인적인 평가인 거 같은데…….”

“……뭐?”

“안덕모 대리님이 누구신가요?”

그녀의 입에서 내 이름이 흘러나왔다. 봄바람 같은 목소리에 난 붕 떠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네?”

“이번 광고 책임자 맞으시죠?”

눈이 마주쳤다. 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 평가는 됐어요. 근데 책임자 평가는 한번 들어보고 싶네요.”

봄바람이 불어와 온몸을 감싼다. 부웅 떠올랐던 몸은 봄바람을 타고 기분 좋게 비행을 시작했다.

“이번 광고 어떠셨어요?”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오랜 시간 회사의 광고 홍보 업무를 담당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쏟아진 수많은 광고를 접해볼 수밖에 없던 자리였다. 수많은 광고인들의 고민의 결과물은 오직 수요자의 이목을 사로잡기 위해, 그리하여 자신의 제품을 뇌리에 각인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과장과 억지를 써서 타깃의 이목을 사로잡는다. 차혜민의 말처럼 광인 기획의 광고는 그 목적에 너무도 충실하다.

성수 기획에서 만들다 두 손 들고 내다 버린 광고, 음료가 아닌 그걸 들고 있던 몸값 더럽게 비싼 여배우만 기억나던 광고, 30초나 바라봤지만 10초 안에 봤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했던 광고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아주 좋았습니다.”

“……야, 안덕모! 너 미쳤어?”

선배가 옆구리를 쿡쿡 찔러왔다. 차혜민의 입술이 좌우로 찢어졌다.

“그래요. 책임자는 광고를 좀 아시네.”

빙글.

그녀가 뒤돌아섰다. 문이 열리고 사라지는 광인 기획 사람들. 그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문이 닫혔다. 봄바람이 사라진 곳엔 한겨울 한파가 찾아왔다.

“뭐? 마음에 들어? 야, 안덕모. 너 진짜 저딴 게 마음에 들어?”

황 이사의 질책을 시작으로.

“기가 막히네. 저런 놈이 마케팅 책임자라니.”

“이사님 이제 어쩔 겁니까? 저거 그대로 내보낼 거예요?”

“출시가 코앞인데 내보내야지 어떻게 합니까?”

“이거 문제 되면 누가 책임지죠?”

“그야 당연히 광고 책임자가…….”

겨울이 찾아온 회의실, 차갑고 날카로운 비수들이 날아와 꽂혔다.

* * *

확깨수가 출시되었다.

미리 준비를 마친 영업부서에서 생산된 제품을 다양한 유통채널로 내보내기 시작했다. 편의점에 마트에 온라인에 ‘탁월한 숙취 제거 효과’라는 기능성 홍보문구와 함께 제품이 진열되었다.

내 집 앞 편의점에도 확깨수가 들어오던 그 날. 광인 기획이 만든 광고가 첫 주파수를 탔다.

KJ식품은 수많은 성공한 음료 라인업을 가지고 있지만 숙취해소 음료 도전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낌없는 예산이 투입되었다. 공중파는 물론 대부분의 케이블 채널 골든타임에 확깨수 광고가 배치되었다.

[취하면 죽는다. 죽기 전에 확깨수!]

원룸 TV에 떠오른 헤드카피를 난 초조한 심정으로 함께했다.

그날 황 이사를 비롯해 시연장에 참석한 대부분의 간부들이 혹평을 했다.

‘그렇게 안 좋았나? 난 좋은데…….”

담당자지만 당시 광고는 보아왔던 그 어떤 광고보다 임팩트가 컸다. 게다가 보면 볼수록 잘 만든 점들이 눈에 보였다.

섬세한 앵글과 카메라 워크, 적당히 절제되어 세련된 화면 연출, 영화 한 장면으로 넣어도 손색이 없는 배우들의 열연.

‘에휴, 모르겠다.’

무려 KJ 회장이 직접 밀어붙인 제품이다. 실패한다면 욕받이로 죽기 딱 좋은 상황이 펼쳐질 거다.

억울하다. 똥 싼 놈은 따로 있는데.

달그락.

냉장고를 열어 맥주를 꺼냈다. 방치되어 미라가 된 육포도 함께.

‘까짓거 때려치우면 되지.’

난 이미 절반쯤 포기한 상태였다.

우울할 땐 영화가 최고다. 본 영화 다시 보면서 맥주 홀짝이는 건 국 룰이고. 너무 많이 봐서 대사까지 달달 외우고 있는 영화의 재생 버튼을 눌렀을 때였다.

우웅.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하니 팀 선배다.

“네. 선배.”

[덕모야. 큰일 났다.]

선배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무슨 일인데요.”

[핸드폰 봐. 아무 포탈이나 열어서 실검 확인해 봐.]

“네 실검?”

[빨리.]

실시간 검색 순위를 확인하라고?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자주 찾는 포탈을 열었다. 그 위에 표시된 실시간 검색 순위.

룰렛처럼 1위부터 10위까지의 검색 순위가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어?”

난 놀란 눈을 깜빡였다.

확깨수.

확깨수 광고.

숙취 음료 확깨수 광고.

KJ식품 확깨수.

[야. 지금 실검 10위안에 확깨수가 네 개야! 다른 포탈도 똑같고, 지금 너튜브 광고 영상도 조회 수 폭발이라고.]

선배의 목소리는 한 귀로 들어왔다가 머리를 거치지 않은 채 다른 쪽 귀로 빠져나갔다. 하지만 다음 말. 선배의 입에서 나온 다음 말은 달랐다.

[광고…… 그 광고가 대박이 났다고.]

그의 말은 뇌리 한구석에 깊숙이 틀어박혔다. 차혜민이 말했던 좋은 광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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