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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식당 리얼갑부-251화 (에필로그) (251/251)

# 251

에필로그

진짜 올해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았다. 거의 모든 흥망성쇠를 다 겪었던 것이다.

메르스 사태 때문에 정말 죽다가 살아났다.

일단 그동안 벌었던 돈을 거의 다 까먹었다.

여기에 사총사 형들의 투자금까지 바닥이 났고, 마지막에는 대용 삼촌의 손을 빌려야 했다. 대출 없이 버텨보겠다고 했지만 끝내 감당하지 못해 노후 자금(?)을 끌어 쓰고 말았던 것이다.

매출이 회복된 건, 그마저도 거의 한계에 이르렀을 때였다.

강형우가 12월 결산을 해보니 지성분식 2호점이 월 천만 원대 수익을 내기 시작했고, 3호점 역시 이천만 원 가까이를 벌기 시작했다.

화끈한 형제들 남천본점은 그보다 조금 더 나왔고, 마지막으로 서면점이 겨우 적자를 면하게 됐다.

애초에 월세도 비쌌고 인건비와 공과금들이 여타 가게를 합친 것 이상으로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그게 딱 저번 달이었다.

강형우는 수익이 들어오는 대로 대용 삼촌의 투자금에 이자를 붙여주기로 약속했다.

그때 천경 어르신의 말이 떠올랐다.

인생을 살면서 귀인 세 명을 만나게 될 거라고 했다.

아무 조건 없이 무조건 도와줄 사람이란다.

첫 번째는, 공지혜였다. 두 번째는 역시 주혁이 형이고, 세 번째는 대용 삼촌 같았다.

왜 그런 생각을 들었느냐?

공지혜는 내가 가장 어려울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함께였다.

지성분식이 망해서 모든 걸 날릴 뻔했다. 그때도 묵묵히 내 옆을 지켜주었고, 응원해 주었으며, 든든하게 받쳐주었던 것이다.

아마 공지혜가 없었다면 2호점, 3호점 확장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 같았다.

그건 주혁 형도 마찬가지였다.

따지면 일종의 멘토였다. 한 번에 수백, 수천만 원을 받아도 될 만한 컨설팅을 무료로 해주었고, 내가 만드는 음식을 평가해 주기도 했다.

또, 여러 차례 재기할 수 있는 기회도 만들어줬으며 내가 깨닫지 못했던 많은 것을 일깨워 주었다.

제일 고민했던 건 장사의 목표였다.

하지만 주혁 형의 조언대로 몇몇 음식점을 들리다가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리게 되었다. 게다가 몇 번이나 이야기했던, 가게의 정체성에 대해 깨달음까지 얻게 된 것이다.

그건 의외로 간단했다.

‘너는 어떤 음식점을 하고 싶으냐? 그걸 다른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이해시킬 수 있느냐?’였다.

강형우는 결정을 내리자마자 홍태구를 불렀다.

지성분식과 화끈한 형제들에 걸 포스터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모든 음식은 정성을 다해 만듭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자식들에게 좋은 음식을 해주듯이, 내 가족이 먹는다는 생각으로 음식을 하겠습니다.

매일 새벽 도정한 쌀로 밥을 짓고.

뜨거운 불 앞에서 몇 시간씩 정성을 더해 육수를 만들고.

몸에 좋다는 재료들만을 선별해서, 아이들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맛을 만들겠습니다.

세 시간마다 바뀐 깨끗한 기름으로 튀깁니다.

매 시간 조리 기구들을 세척하고, 매일 소독을 하며, 매일 식자재를 받고, 남은 건 정해진 규칙에 따라 폐기를 합니다.

또, 매달 정기적으로 전문 업자들의 도움을 받아 가게를 대청소합니다.

마지막으로, 흔들림 없이 약속을 지켜가겠습니다.

이런 다짐을 적어 홍태구에게 맡겼더니, 정말 그럴듯하게 뽑아왔다. 이걸 회사 약력과 더불어 입구에 크게 보이게 해놓았던 것이다.

동시에 이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한 짓도 벌였다.

완전 오픈(?)을 선택한 것이다.

<어묵 국밥은 어린 시절 오뎅 공장 근무자들이 간단히 한 끼를 만들어 먹던 음식에서 유래했습니다.

화끈한 형제들은 그때의 추억을 되살려 3,0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각 메뉴의 유래를 홍보했으며.

돈가스 소스에는 면역력을 활성화시켜 주는 몇몇 약재가 들어갑니다.

김밥은 각종 야채와 버섯을 끓여 넣은 맛 간장으로 조리를 합니다.

사골탕면은 자체 조리 공장에서 12시간을 꼬박 우린 육수를 사용합니다.

새우탕면은 일 년에 한 번 제일 품질이 좋을 때 대량 매입한 새우를 가공해서 맛을 냅니다.

나름 강형우가 연구한 맛을 만들어내는 노하우까지 알려주었으며.

<냉라면은 일종의 퓨전 요리입니다.

부산의 대표적인 여름철 음식인 밀면을 기반으로 초계탕과 일본식 냉라면, 소바를 연구해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바꾸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각 음식에 대한 설명까지 덧붙였다.

한마디로, 다 공개해 버린 거다.

게다가 이걸로 끝이 아니었으니.

<인성식품 홈페이지에 접속하시면, 자체 조리 공장 내부를 구경하실 수 있습니다>

6시 내부 청소.

7시 식자재 세척, 조리 준비.

8시 육수 우리기…….

이런 식으로 작업 시간표까지 공개해 버린 것이다.

물론 실제 접속자는 하루 백 명도 되지 않았고, 그마저도 나날이 줄어들었다. 그냥 호기심에 한 번씩 들여다보는 수준에 그친 것이다.

하지만, 공개를 결정하고 나니 의외로 손님들 반응은 뜨거웠다. 이렇게까지 하는 음식점은 본적이 없다면서 더욱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이런 내용들이 잠시 인터넷에 이슈가 되어 방송국에서도 몇 번 연락이 왔었다.

어쨌든 이것도 하나의 방식이라며 알려준 사람이 바로 주혁 형이었다. 실제 두루 컴퍼니도 이 같은 방식으로, 많은 가맹점을 유치했다는 것이다.

확실히 주혁 형은 대단했다. 따지면 지성분식의, 아니, 내 성공의 숨은 공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대용 삼촌의 경우는 달랐다.

지성분식의 초창기를 공지혜와 함께했다고 하면, 대용 삼촌은 앞으로 나아갈 미래를 함께할 사람이었다.

우선 대용 삼촌은 여러 사람들을 데려왔다.

화끈한 형제들 3호점 예비 점장, 4호점 점장 후보였다. 한 명은 대용 삼촌의 30년지기 친구였고, 또 다른 한 명은 자신이 직접 가르쳤던 제자라는 것이다.

나름 무도를 수행했다는 그쪽 사람(?)들답게 성격도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밑바닥부터 배워서 자격이 되면 자신들 돈을 투자해서 화끈한 형제들을 차리고 싶다는 것이다.

하지만 강형우는 프랜차이즈 가맹점 식으로는 하고 싶지 않았다.

원하는 건, 직영점이었다. 음식의 퀄리티와 서비스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그런 방식을 고집한 것이다.

그렇게 설명했음에도 두 사람은 괜찮다고 했다.

사장이 아니어도 좋으니 함께 갈 수만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어쨌든 강형우는 두 사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대용 삼촌의 인맥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3호점과 4호점 자리를 벌써 구했다는 것이다.

건물주가 동문수학한 친구들의 집안 어르신들이라고 했다.

터무니없이 월세 올릴 사람들도 아니었고, 오래 함께 할 사람들을 찾고 있었단다.

어쨌든, 대용 삼촌은 그런 식으로 강형우의 일에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따지면 인성식품의 영업 이사 수준으로 일거리를 착착 물어왔던 것이다.

덕분에 강형우는 벌써 내년 계획까지 다 세울 수 있었다.

애초에 일 년에 가게 하나씩 확장하기로 마음먹었는데, 벌써 예약자(?)만 셋이나 됐으니까.

이제 올해 정리할 일은 딱 하나였다.

***

“너 인마, 진짜 생각 없어?”

두루 컴퍼니의 대표 강주혁.

그 형은 이제 정치를 하겠다고 했다. 내년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겠다며 두루 컴퍼니의 후계자를 물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 일이기는 했다.

하지만 강형우는 진심을 말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죠. 전 인성식품까지가 딱 제 능력의 한계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형네 회사는 너무 커요.”

두루 컴퍼니는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가맹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국내에만 몇천 개요, 일본과 중국을 넘어서 현재 동남아까지 진출하는 상황.

게다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PC방 사업이 축소되어 망해가고 있는데, 두루 컴퍼니는 오히려 반대였다. 음식 노하우를 응용해 다양한 먹거리를 개발했고, 무인 결제 시스템을 벌써 도입해서 대형 PC방 위주로 차근차근 확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황당한 건, 이걸 벌써 10년 전에 계획하고 있었단다.

어쨌든 그런 큰 회사의 관리직으로 들어오라고 하니 어찌 엄두가 나겠는가?

게다가 조건도 너무 파격적이었다.

“사외 이사 해라. 일종의 감시역이라고 보면 돼. 일 년에 네 번만 회의에 참석하고 보고만 받으면 되거든. 그리고 이상한 거 있으면 나한테 연락하면 되고.”

연봉 2억에 출퇴근도 없었다. 그래서 욕심이 났지만, 숨은 뜻을 알기에 본능적으로 꺼려졌다.

주혁 형이 말하길 공식적으로 국회의원이 되면 대기업을 운영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두루 컴퍼니 같은 거대 공룡은 언제 어떻게 돌변할지 모른다고 했다. 지금껏 자신이 키우고 가꿔왔는데, 사장이 바뀜으로써 회사의 정체성이 흔들릴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강형우도 조언을 들은 이후, 가게의 정체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달았다.

우선 홍태구를 정식으로 인성식품에 끌어들였다.

일종의 마케팅 팀장이자, 디자인 노예(?)였다.

어쨌든 화끈한 형제들, 그리고 지성분식과 인성식품의 정체성과 추구하는 바를 홍보하고 난 이후로 매출의 등락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충성 고객들이 확 늘어난 것이다.

물론 단점도 있었다. 가게가 정체성을 포기하는 순간, 바로 실망하고 떠날 가능성이 컸으니까.

만약 두루 컴퍼니가 욕심을 부리기 시작해서 정체성이 변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주혁 형이 말하기를.

가맹점주 수천 명이 힘들어질 것이고, 거기에 속한 수만 명의 직원들이 어려워질 거다. 또 직계 가족들까지 치면 수십만 명에게 안 좋은 영향이 미칠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수백만 단골들을 배신하는 일이 되기도 한단다.

확실히 이쪽 스케일은, 너무 커서 여전히 적응이 어려웠다.

“원래 모든 프랜차이즈가 나쁜 건 아니거든. 하지만 윗대가리가 얼마나 욕심을 부리느냐에 따라 확 달라지는 거라고. 지금이야 내가 있으니 괜찮지만, 나중에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는 법이야.”

주혁 형은 이미 이사회와 감사부와 몇몇 주요 요직에 자신의 사람들을 꽂아놨다고 했다.

그럼에도 외부에서 냉정하게 볼 수 있는 이들 역시 필요하단다.

철진 기획을 따로 떨어뜨려 놓은 것도 그래서라나?

“진짜 그걸 꼭 제가 해야 해요?”

“내가 믿는 사람이니까.”

너무 당당하고 뻔뻔스럽게 말하는데, 그게 더 당황스러웠다.

“넌 이게 얼마나 큰 기회인 줄 모르는데… 나중에 직원들 포섭해서 중추로 들어가면, 운만 좋으면 그 큰 회사를 집어삼킬 수도 있어. 그리고…….”

주혁 형 입에서 정말 상상도 못 할 온갖 공작과 모략들이 한참이나 이어졌다.

결론은 내가 잘하기만 하면 두루 컴퍼니를 집어삼키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순간, 덜컥 겁이 났다.

음식 장사만 하던 놈이 대기업 내부 쟁탈전에 뛰어들다니.

“전 못해요. 절대 못합니다.”

“정말 못해?”

“예. 목에 칼이 들어와도 못합니다. 전 제 그릇을 깨달았어요. 그냥 열심히 장사나 하고, 기부나 하면서 살아야지 욕심내면 망해요.”

“내가 뒤를 봐주겠다는데도?”

“아이쿠,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죠.”

진심으로 손을 마구 내젓는데, 주혁 형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이 새끼는 진짜, 밥상 다 차려줘도 못 먹네. 에휴, 그 고집이 참 너답다. 너다워.”

생각해보니 언젠가 한 번 들었던 말 같았다.

아마 천경 어르신이 그랬을 거다.

용상 걷어찰 놈이라고.

“근데, 형!”

“왜 인마.”

“나 궁금한 게 있는데… 형은 왜 나한테 잘해줘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인연이다 싶었다.

나중에는 진짜 형 같았고, 인생 사부 같기도 했었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 이유를 모르겠다는 거였다.

대체 뭐가 아쉬워서 나한테 잘해주는 건지…….

잠시 내 눈을 보던 주혁 형은, 피식 웃었다.

그런 뒤, 사무실 장식장에서 양주 한 병을 꺼내더니 단숨에 한 모금을 마셔 버렸다.

“너 내 비서 알지? 정태오라고…….”

처음에 심부름 다니는 걸 몇 번 봤다. 그러다 주혁 형이 입원했을 때, 제대로 존재를 인식했다.

뭔가 운명의 끈 같은 게 느껴졌던 것이다.

“내가 어느 날, 긴 꿈을 꿨어. 거기선 인생의 실패자였거든? 그리고 재기하려다 돌 맞아 죽었다?”

“예?”

“뭐, 그냥 그런가 해. 그런데 그 꿈에서 너랑 나랑 같이 식당을 했단 말이야. 단돈 4,000원짜리 비빔밥 뷔페 전문점이었는데, 대박이 났어. 가맹점을 스물인가 서른인가 냈는데…….”

“그러니까, 그게…….”

“말 끊지 말고 들어. 그때 나는 영업을 했고, 넌 음식을 만들었지. 우린 대박이 났는데, 내 실수로 그걸 정태오한테 다 뺏기고 만 거야. 결국 너랑 나랑 쪽박을 찬 거지.”

눈빛을 보니 진심이었다. 단순한 꿈 이야기로 넘기기에는 섬뜩할 정도였던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아마 내 장례식 때 네가 내 관을 들었을 것 같더라고.”

“아니, 그게…….”

“그게 내가 널 돕는 이유야. 정태오를 내 옆에 붙여놓고 개처럼 부리는 이유고.”

순간 말이 나오질 않았다.

이 형이 무서운 사람인 건 알고 있었지만, 고작 꿈 때문에 한 사람의 인생을 붙잡아 버리다니.

그런데 왜 진실처럼 느껴지는 건지 모르겠다.

“뭐, 태오는 이제 사람 됐지. 게다가 내부적으로는 내 공식 후계자이기도 하고. 하아, 그래서 더 골치 아프단 말이지. 여기 부장 시켜준다는 것도 싫다고 하고, 그냥 나 따라만 다니겠다고 달려드니…….”

의외로 주혁이 형의 말투와 눈빛은 따뜻했다.

어쩌면 방금 전 생각했던 그런 상하관계가 아니라는 느낌까지 들었다.

하긴, 정말 원수였다면 주혁 형이 구해주지 않았을 거다. 정태오 대신 자재에 깔려서 의식불명이 되었다고 들었으니까.

“됐고. 정말 안 할 거냐? 이거 진짜 좋은 기회인데? 우리 회사랑 연계하면, 너네 회사도 금방 클 수 있어? 마음만 먹으면 수백억 버는 것도 금방이라고.”

주혁 형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강형우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예. 전 제 길이 있으니까요.”

“하여간 미련한 놈 같으니라고.”

“세상에 저 같은 사람 많아요. 왜 달인 방송 같은 거 보면 나오잖아요. 한 길만 꾸준히 걸어서 경지에 오르는 사람들요.”

“그래서? 그게 목표라고?”

“예.”

고개를 끄덕이는데, 주혁 형이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내 고집을 꺾는 걸 포기한 모양이었다.

“내가 널 가르치는 게 아닌데. 그냥 적당히 욕심내고 살게 했어야 했는데, 너무 관여한 모양이야. 장사하면서 도(道)를 추구하겠다니.”

“글쎄요. 전 그게 맞는 것 같은데요?”

주혁 형이 준 가르침이 아니었다면, 메르스를 겪기 전의 나였다면, 이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을 거다.

어쩌면 방금 전의 말처럼, 화끈한 형제들을 키우기 위해 미친 듯이 뛰어다녔겠지. 대출을 하고, 빚을 내고, 확장하고… 그렇게 남들처럼 욕심 부리면서.

하지만 이번 일을 겪으면서 많은 걸 깨달았다.

주제에 맞게 사는 게, 정말 행복한 게 아닐까?

갑자기 주혁 형은 양주를 또 한 모금 마시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인생인데… 너 하고 싶은 대로 살아야지. 그게 고행길이라도 선택한 건 너니까.”

강형우는 처음으로 크게 웃었다.

“예. 제가 선택했으니까, 책임도 제가 지는 거죠.”

***

언젠가 술김에, 주혁 형한테 긴 꿈을 꾸었다고 이야기했다.

그 속에서 나는, 투사였다.

돌에 맞아 죽고, 칼에 맞아 죽어봤으며, 전쟁터 한가운데서 심장이 찔리기도 했었다.

시위대의 앞에서 군인들의 총에 죽었고, 혁명과 자유를 외쳤으며 긍지를 가슴에 담고 목이 날아가기도 했다.

그 모든 게, 고집스럽게 내 길을 추구해서였다.

마지막에 꾼 건 장백호의 기억이었다.

거기서 얻은 건 하나의 호흡법, 그리고 당당한 사내의 기억과 그가 가지고 있던 자신감이었다.

그게 어려울 때, 나를 지켜주었다.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붙잡아준 것이다.

주혁 형이 말하길 자신도 진실인지 아닌지 모를 그런 긴 꿈을 꾸었다고 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더라.

그냥 꿈일 수도 있고, 오히려 꿈에 취해 현실을 못 보는 게 더 위험하다고 했다.

맞다. 꿈은 꿈일 뿐이었다.

하지만 꿈속의 기억과 삶은, 잘못된 거라 할 수 없었다.

각자 나름대로 의지가 있고 뜻이 있기에, 자신만의 선택을 한 결과였으니까.

어쩌면 내가 고집쟁이가 된 것도 그래서일지도.

어쨌든 이번 인생에서 내가 정한 길은, 결론이 나려면 아직 한참이나 멀었다.

이제 서른하나, 아니, 열흘만 지나면 서른둘이다.

새해에는 화끈한 형제들도 확장해야 하고, 아직 만들어낼 음식들도 몇 개나 있었다. 여기에 인성식품도 더 키워야 할 거고, 끌어들일 사람도 많았다.

어쩌면 평석이 형네 회사를 인수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그러면 통신 판매 쪽으로도 가능할 거다. 택배 황 소장님이 그쪽으로도 끈이 있다고 했으니까.

그리고 가게가 열 개 넘어가면 건물 하나를 지을 계획이었다.

그런 뒤, 거기에 저렴한 식당을 하나 차릴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7세 이하, 그리고 100세 이상 공짜였다. 할인도 팍팍하고 손해 좀 보더라도 막 퍼주는 장사를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들었던 것이다.

어쨌든 계획대로 욕심내지 않고 하나하나 밟아나가면 언젠가는 남부럽지 않은 부자가 되겠지.

그때가 되면,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난 잘 살아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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