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7
247화 버티라는 거죠
메르스 감염자 186명.
사망자 36명이었다.
7월 중순에 공식 발표가 나자마자 시장은 더욱 극심하게 얼어붙었다.
여기에 정부 초기 대응 실패라는 언론 발표가 뒤늦게 있었고, 정부가 댓글로 여론 조작까지 하고 있다는 말이 터져 나왔다.
한마디로 정부 불신이 극에 달한 상황.
물론 주혁 형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쌓였던 불만들이 터져 나온 거지. 대통령이란 년은 소통조차 되지 않은 상병신이었고, 작년에 세월호 사건부터 지금까지… 뭘 하나 제대로 처리한 게 없거든.”
욕설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쥐새끼가 나라 곳간 거덜 냈으면, 채울 생각을 해야지. 그 남은 부스러기까지 쪼아먹겠다고 부리질을 했으니, 경제가 버틸 수가 있나?”
생각해보니 그랬다.
주혁 형은 작년에 의식불명에서 깨어나 나한테 이런 말을 했었다.
언제고 한 번 큰 위기가 올 거란다.
정확히 어떤 일로 그렇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경제 체질이 망가진 이상 이런 사태는 예견된 재해라고 했다.
단지 메르스는 계기일 뿐.
그걸 증명하듯, 아주 난리가 났다.
간간이 가게 팔라던 연락들이 몇 번 왔었는데, 아예 뚝 끊기고 말았다. 지성분식 2, 3호점은 매출 회복이 되질 않았고 화끈한 형제들도 마찬가지였다.
서면점의 경우 더욱 타격이 컸다. 월세만 이천에 인건비 부담도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물론 조금은 안심할 수는 있었다.
주혁 형이 보증금 한도 내에서는 얼마든지 바로 빌려줄 수 있으니 부담 가지지 말라고 했으니까.
하지만 아직도 개운치가 않았다.
넌 장사를 왜 하니?
그 질문에 며칠 내내 머릿속을 괴롭히고 있었던 것이다.
“형우야. 자!”
눈앞에 불쑥 담배가 나타났다.
“대용 삼촌, 이건 뭐예요?”
“뭐긴 뭐야? 담배지?”
“아니. 삼촌 안 피우잖아요? 몸에 안 좋은 건 무조건 안 한다는 사람이…….”
“그건 옛말이지. 요즘 라면, 나만큼 많이 먹는 사람이 어디 있냐?”
강대용은 피식 웃더니 다시 한 번 담배를 흔들었다.
결국 그걸 받아 들고 입에 물었는데, 이번에는 불까지 붙여주더라.
“삼촌은요?”
“나, 담배 안 피잖아?”
“그런데 왜 들고 다녀요?”
“너처럼 심란한 친구들이 많아서…….”
자기는 안 피우는데, 필요한 사람이 많아서 한 갑씩 들고 다닌다고 했다. 애들 다독이는 데 가성비가 이만한 게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마디를 더 내뱉었다.
“담배값 올린 새끼들은 다 죽여야 돼!”
그 과장된 행동과 말투는, 거의 어린이 영화 속 악역과 닮아 있었다. 너무 어색해서 웃음이 나올 정도였던 것이다.
강형우가 담배 한 개비를 마무리 짓자, 그제야 강대용이 말했다.
“많이 힘드냐?”
“남들도 다 힘든데요. 뭘.”
“하긴, 다들 죽는다고 곡소리하더라. 친구 한 놈은 이참에 아예 가게 정리했대. 권리금 일억이나 주고 얻은 식당인데 이래저래 퇴직금까지 다 까먹었댄다.”
나름 위로라고 하고 있는데, 주변에 망한 사람이 그렇게 많은 줄은 몰랐다. 심지어 처갓집 사돈네도 난리가 났다는 것이다.
메르스 증상이 독감하고 비슷해서, 조류 독감하고 오해한 사람들이 그렇게 많단다. 덕분이 20년이나 운영해 온 치킨집을 닫고 말았다는 것이다.
거기까지 들으니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형우야. 난 네가 참 고맙다. 요즘 점장 해보니까, 네가 전에 했던 말이 이해가 되더라. 장사? 진짜 보통 일이 아니네.”
강형우가 화끈한 형제들 서면점에 매달린 게 벌써 넉 달이었다.
그때, 3월에 강대용이 점장이 되었기에 벌써 그만큼이나 지난 것이다.
처음 주방 짬 처리에서 냉장고 관리와 재고 정리로, 거기서 라면 만들다가 점장이 되면서 튀김 파트로 옮겨갔다.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음식을 하기 시작했는데, 역시 초보는 초보였다. 수차례 손을 데이기도 했고, 돈가스 튀기다가 숯으로 만든 적도 있었던 것이다.
또, 떡볶이 양념을 잘못해서 혓바닥에 화상(?)을 입기도 했다. 매운 거와 안 매운 걸 엇갈려 비율을 반대로 섞어버린 것이다.
결국 다른 재료를 더 투하해 20인분 만들 걸 40인분 만들어 버렸다.
어쨌든 그런 과정을 거치다 보니, 지금은 어떤 음식이든 다 만들 수 있게는 되었다. 아직 숙련이 부족하긴 하지만, 점장 노릇을 할 정도 수준에는 이른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일하는 파트 정직원들에게 돌아가면서 휴가를 주었다.
어쨌든 그렇게 넉 달이 지난 상황.
지금 강대용은 화끈한 형제들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인재가 되었다. 게다가 직원들과도 친해서 인기까지 많았던 것이다.
메인 매니저 이주영이 삼촌, 삼촌이라면서 따를 정도였으니까.
“진짜 이건 생각도 못 했거든. 사실 너한테 가게 하나 하자고 할 때는 쉽다 생각했는데, 어우야. 아니더라고.”
들어보니 요즘 순이 이모한테 점장 교육도 따로 받고 있단다.
매출 계산부터, 손익을 따지고, 또 인성식품에서 물건 받는 법, 재고 관리 등등 배울 게 정말 한둘이 아니라고 했다.
특히 중요한 건 클레임이었다.
“요즘에야 좀 익숙해져서 편하지. 이미 내 소문이 다 나는 바람에 양아치들은 얼씬도 안 하거든. 걸리면 그냥 콱!”
강대용이 포즈를 잡는데, 진짜 몇 놈 죽일 기세였다.
강형우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삼촌, 사람 패면 안 돼요. 그거 물어주려면 월급 그냥 날아간다고요.”
“쩝. 그건 그렇다. 나도 돈 생각하니까 때리고 싶던 것도 참아지더라. 근데 넌 이걸 5년이나 했다니… 참 대단하다 싶어.”
“장사가 다 그렇죠. 참고, 또 참고, 더럽지만 참고 그러면서 하는 거예요.”
“맞아. 그런데… 요즘 많이 심란하냐?”
“삼촌도 대충은 알잖아요?”
“험험, 그렇기는… 하지.”
잠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지, 수다스럽던 입이 한동안 다물어졌다.
그 끝에 강대용이 이런 말을 꺼냈다.
“정 뭣하면 내 월급 깎아.”
“예?”
“그러니까… 인건비가 참, 무시 못 하겠더라. 이것도 다 사람이 하는 일이기는 한데… 솔직히 사람 필요해서 쓰는 건 맞거든. 그렇다고 너무 여유 있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신경이 쓰이더라고.”
이건 강형우도 겪고 있는 거였다. 자꾸 직원들한테 나가는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하여간 나도 장사꾼이 되려는 모양이야. 평생 체육관만 하면서 살 것 같았는데, 지금 이러고 있으니.”
강대용은 짧게 한숨을 내쉰 뒤, 말을 이었다.
“이거, 실례가 될 수 있는데… 형우야, 돈 필요하냐?”
“예?”
“그러니까 내가 봤을 때… 좀 지나면 잘 풀릴 것 같거든. 내가 체육관 할 때랑은 많이 다른 것 같더라고.”
“뭐가요?”
“그러니까, 이 삼촌이 곧 오십 다 되어가거든. 살아온 짬밥이 있잖니. 여기서 딱 네가 중심 잡고 몇 달만 버티면 다시 좋은 날이 올 것 같다 이거지.”
“역시 버티라는 거죠?”
“어! 와이프랑도 이야기해 봤는데…….”
숙모님이 반(?)허락을 했단다.
정말 장사 어려우면 절반 정도는 투자해도 괜찮을 것 같다고, 그만큼 강형우와 화끈한 형제들을 좋게 봤다고 했다.
특히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지성분식이 들어서고, 이 일대가 조금씩 변했단다. 정말 맛없던 집들은 없어졌고 음식점 서비스가 좋아졌다는 것이다.
게다가 화끈한 형제들이 들어서고 난 이후, 상권이 변했다고도 했다.
경쟁력 없이 장사하던 음식점들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소규모 맛집 점포들이 생겨났으며 완전 개판인 가게들이 리모델링으로 변화를 꾀했다. 전반적으로 깨끗해지고 음식 수준이 올라갔다는 것이다.
그 변화의 중심이 지성분식이었다.
이 동네 몇십 년 살면서 이런 좋은 가게가 생길 걸 상상도 못 했다나?
“어쨌든, 돈 필요하면 말해라. 어차피 너한테 투자하기로 한 거니까, 조금 미리 해도… 뭐, 나쁘지 않다고 본다.”
갑자기 강대용의 얼굴이 빨개지니 느낌이 묘했다. 진심으로 쑥쓰러워하고 있는 게 훅 전해졌던 것이다.
강형우도 뻘쭘해서 딴소리를 내뱉었다.
“삼촌, 어디 아파요?”
“엉?”
“아니, 사람이 갑자기 안 하던 행동을 하면…….”
“나 튼튼하거든? 그리고 우리 와이프가 싫어하겠지만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 건데? 그리고 이 자식아. 삼촌이 어렵게 이런 말 하면, 그냥 고맙습니다 그러지. 꼭 초를 쳐야겠냐?”
강대용이 기습적으로 목을 감아왔다.
다행히 강형우는 눈치가 죽지 않았다. 잽싸게 빠져나와 거리를 벌린 것이다.
그때 강대용이 그랬다.
“우리 대련 한 번 할까?”
***
“후아, 후련하다.”
강형우는 진심이었다.
몇 번이나 바닥에 내던져지고 나니,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동안의 울화 같은 게 씻겨져 나가는 기분이랄까?
생각해보니 최근에는 거의 명상을 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인성식품으로 출근하기 바빴고, 정리 좀 됐다 싶으면 서면으로 달려가야 했으니까.
거기서 늦은 점심을 먹었고, 남는 음식으로 저녁을 때웠었다. 그리고 마감까지 한 다음 막차를 타고 집으로 갔던 것이다.
“끄으응. 삼촌 괜찮아요?”
강형우는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강대용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이구, 죽겠다. 진짜 돌덩어리 같으니라고. 무슨 몸이…….”
두 사람이 한 건 씨름이었다.
애초에 격투는 말도 안 됐고, 그냥 호기심 삼아 샅바를 잡아보기로 한 것이다.
둘은 오판 삼승을 무려 세 번이나 했었다.
결과는 당연하게도 강형우 승리.
하지만, 그 이상의 뿌듯함이 있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씨름에서 강대용이 몇 번이나 헛(?)소리를 했던 것이다.
중심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 보니, 난 흔들리고 있었다.
조성기 때문에 지성분식이 망할 뻔했다.
하지만 재기한 이후 큰 실패를 겪어보지 못했다. 소소한 위기는 많았지만 다 이겨냈고, 이제는 부산 최고의 번화가에 내 가게를 내기도 했다.
따지면 지난 5년간의 일은 일종의 성공을 그린 드라마였다.
이 위기만 이겨내면, 대미를 찍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극복하지 못했고 현재 진행형이었다.
무엇보다,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나는 장사를 왜 하는 걸까?
내가 잡아야 할 중심이란 게 무엇이지?
난 뭘하고 싶었던 것일까?
***
“사람이… 많구나.”
강형우는 진심으로 놀랐다.
뒤늦게 수소문하고 알아봤는데, 때가 늦었다. 물어볼 식당 주인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저번에도 그러더니.”
강형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이 두 번째였다.
뒤늦게 백원 오뎅집을 찾았는데 그 가게는 이미 없어졌다고 했다. 나중에 단골이었던 손님들을 알게 되었는데 거기서 뜻밖의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지금은 없는, 하지만 예전에는 유명했던 가게가 있었다.
감전동 백원 오뎅이었다.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느냐면, 거긴 간판이 없었다.
그냥 버스 차고지, 택시 차고지 근처의 작은 슈퍼였다. 그 가판대 한쪽에 연탄을 때고 오뎅과 국물을 판 게 전부였던 것이다.
하루 두 판, 세 판을 팔면 끝이었다. 그리고 다 팔으면 딱 본전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수익이 남는 장사가 아니라는 것.
하지만 소문이 돌고 소문이 퍼지다 보니 언제부턴가 손님들이 넘치기 시작했다. 줄을 서서 먹을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날 가져온 재료들을 다 팔기에는 충분했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할머니는 무려 20년을 장사했단다.
제일 충격적인 건 따로 있었다.
강형우도 알던 가게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