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3
243화 일단 알아보겠습니다
“형, 저는 영제 받아줄 생각이 없어요.”
“그래?”
신원이 형이 의외라는 표정을 짓자 강형우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다시 받아줄 거라 생각했어요?”
“솔직히… 넌 착하잖아. 나한테 해준 것만 해도 그렇고, 실제로도 여린 부분이 있어서…….”
“그거랑 이거랑은 다르죠. 제가 제 사람한테 잘해주는 거 하고, 남한테 잘해주는 건 달라요. 그리고 영제는 이제, 저한테는 남보다 못한 사람이에요.”
분명히 충고를 해줬다.
하지만 이영제는 한 귀로 흘리고 말았다.
결국 영재분식을 찾아간 홍태구가 고소하겠다고 길길이 날뛰었다. 자신이 찍은 사진이고 저작 등록이 되어 있다고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 자리에서 이영제는 메뉴판과 벽에 걸린 포스터들을 갈가리 찢어버려야 했다.
그래야 용서해 준다고 했으니까.
나중에 홍태구한테 그 이야기를 듣는데, 어느 정도 통쾌하면서도 민망하고 미안했었다.
“중요한 건, 이영제가 우리를 좋아해서 다시 들어오겠다는 게 아니라는 거죠. 용서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그럼?”
“결국 돈이죠. 돈 때문에 우리를 배신했고, 자기 잘난 맛에 살다가 망한 거죠. 그러게 돈 좀 생겼을 때 착실하게 모을 것이지. 이제 돈 떨어지고 나니 다시 받아달라는 건, 진짜 염치없는 행동이죠.”
신원이 형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행동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솔직히 사과를 하려고 했으면 저를 찾아왔어야죠. 녀석 때문에 손해 본 게 얼마나 되는데. 돈 몇천만 원이 문제가 아니라 지성분식 이미지를 망쳤잖아요.”
이영제는 고의로 입을 다물었다.
때문에 많은 손님들은 영재분식과 지성분식을 같은 가게로 오해하고 말았고, 그런 상황에서 몇 번 사고를 쳤다.
비위생적인 음식, 떨어지는 퀄리티, 숙련되지 않은 알바들 때문에 서비스 항의도 많았다고 했다.
그걸 지성분식에 와서 따졌던 것이다.
그때마다 신원이 형이 전화를 했고, 강형우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분명 다른 가게라고 했음에도 막무가내인 손님들도 적지 않았으니까.
“좋아요. 거기까지는 그렇다고 쳐도, 괘씸한 게 더 있어요.”
“어?”
“영제가 형한테 먼저 찾아간 거 말이에요. 사실 저도 형이 간곡히 부탁하면 거절하기 어렵잖아요.”
“그럼, 나한테 무릎 꿇고 받아달라고 한 게…….”
“예. 형 성격 알고, 나하고 관계를 알아서 그런 거죠. 그냥 형 이용하려 한 거예요.”
순간 신원이 형은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그때의 기억을 되짚으려 한 모양이었다.
“확실히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가게 뒤편 주차장에 있는데 갑자기 찾아왔더라고.”
“그래서요?”
“그냥 무릎 꿇고 애걸복걸하는데… 갑자기 울더라.”
“예?”
“그래서 진심인 줄 알았어. 진짜 미안하고 잘못해서 우는 건 줄 알았다고!”
신원이 형의 목소리가 조금씩 거쳤다.
하긴 이용당했는데 기분 좋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사실 좀 고민 많이 했거든. 일단 이야기는 해본다고 하고 보냈는데… 이후로 몇 번이나 전화를 하더라고.”
“헐, 진짜요?”
“어. 자꾸 어떻게 됐느냐고 물어보는데, 그냥 생각 중이다 하고 끊어버렸어. 솔직히 너도 많이 바빴고,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잖아.”
강형우도 속이 끓는 느낌을 받았다.
진짜 어찌 인간이 그렇게까지 야비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물론 이영제 속마음을 들여다본 게 아니니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정황만 봐도 짐작이 가능했던 것이다.
“앞으로 연락 오면, 저한테 전화하라고 하세요.”
“어떻게 하려고?”
강형우는 잔에 남은 술을 비웠다.
그런 뒤, 단호하게 말했다.
“당연히 안 된다고 할 겁니다. 애초에 전화할 가능성도 없겠지만.”
***
야유회 끝나고 곧바로 이어진 설 연휴.
강형우는 조금 난감했다.
“4월 첫째 주가 길일이라고 하던데…….”
“예, 장인어른.”
“하늘이는 우리가 봐줄 수 있으니까, 슬슬 날을 잡았으면 하네.”
“예, 당연히 그래야죠.”
공손하게 대답은 했지만 조금 난감했다.
이미 혼인 신고는 마쳤다. 거기에 하늘이 출생 신고도 같이 했고, 남은 건 결혼식이었다.
문제는 3월 중순부터 정신없이 바쁘다는 거였다.
서면의 새 가게.
거기에만 올인해야 하는 것이다.
“강 서방이 바쁜 건 아는데, 딸 가진 부모 마음이 그렇지 않는가? 어차피 신혼집 있겠다, 혼수나 필요한 거 있으면 우리가 해줄 수도 있고 하니, 슬슬 날을 잡는 게 좋을 것 같네만.”
공영범은 그렇게 말한 뒤, 살짝 눈치를 봤다.
사실 옛날 어르신들 기준으로 봤을 때는 조금 난감해할 수도 있었다. 딸이 식도 올리지 않았는데 동거를 하더니, 이제 애까지 가졌다.
한데, 사위가 바쁘다고 결혼식을 미루고 있었으니 답답할 수밖에.
생각해 보면 고민할 거리도 아니었다.
강형우는 바로 고개를 숙였다.
“일단 예식장부터 알아보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게 엊그제 같은데, 이게 뭐란 말인가?
딴딴따다~ 딴딴따다~
익숙한 음악이 들리고, 누가 말했다.
“신랑 입장~”
강형우는 멍한 표정으로 정면을 쳐다봤다.
사회자는 홍태구, 주례는 주혁 형이 소개시켜 준 전직 교장 선생님이었다. 황룡의 한 지점 사장님이시기도 한다는 것이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기린 빌딩에 제대로 한 끼 오픈할 때 와서 덕담을 건네고 가셨으니까.
어쨌든 정면에 어머니와 강영지가 있었고, 인정둥이는 정재일과 함께 입구를 지켰다.
그 맞은편으로 장인 장모님과 먼 친척들이 보였다.
그 외 하객들이 장난이 아니게 많았다.
분석이 형과 형수, 조카와 회사 사람들도 있었고, 나와 맺어주려 했던 누나도 애 둘이나 데리고 구경 왔다.
순이 이모와 딸, 희숙, 애란 이모도 보였고, 지성분식 식구들도 총출동했다.
홍성구는 부러운 눈빛으로 날 보다가 임정은 옆구리를 툭 쳤다.
그러다 등짝을 맞았다.
이제 민간인이 된 이강석이 김복희 여사님과 동행했고, 백창호와 정은혜도 한쪽 구석에 있었다.
아쉽게도 애 때문에 은주 형수는 참석하지 못했는데, 신원이 형 옆에 강학희 아버님과 예비 부부(?)가 있었다.
바로 김현우 형과 강신애였다.
화끈한 형제들 공사할 때, 강학희 아버님이 언질을 던져줬다. 중간중간에 일이 좀 있었는데, 결국 둘이 사귀게 됐다는 것이다.
그 옆에서 사총사 형들이 노골적인 웃음을 날렸다.
한마디로, ‘넌 이제 좋은 세상 끝났다’라는 의미였다.
이 외에도 화끈한 형제들 직원들과 동대표 사모님까지 오셨고, 여기에 정현상 과장도 보였다.
와이프는 애들 때문에 못 와서 미안하단다.
그 외 평석이 형과 회사 사람들 몇 명, 김민석과 인성식품 직원들도 있었고, 차인철도 후임하고 함께했다.
또 택배 회사 황 소장님과 부동산 삼촌, 그리고 배산회 식구들도 여러 명이었다.
정말 짧은 순간, 그 많은 사람들을 둘러보는데 뭔가 가슴 한 구석이 찡했다.
그래도 나쁘게 살아오지는 않았구나.
“야, 뭐 해. 빨리 안 들어가고.”
바로 뒤에서 툭 하고 쏘아붙인 사람은 바로 주혁 형이었다.
확실히 이 형한테는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고마운 게 많았다.
부산에서는 따뜻한 3월부터 예식 시즌이었다.
때문에 일정이 꽉 차 있어 구하질 못했는데, 전화 몇 번 하더니 자리 하나를 알아봐 주었다.
문제는 3월 첫 주라는 것.
어떻게 할래 물어와서 공지혜와 의논했는데, 당연히 OK였다.
문제는 그 이후, 난리(?)가 났다는 거다.
공지혜는 다시 다이어트 돌입하겠다는 둥, 빨리 드레스 맞추러 가자는 둥, 아주 많은 일을 만들었던 것이다.
어쨌든 일정이 촉박해 부랴부랴 준비했고 그날이 오늘이었다.
진짜 이렇게 황당하게 결혼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 같은데.
잠시 그런 생각하는데, 주혁 형이 약 올리듯 말했다.
“야, 도망치려면 지금밖에 없다.”
***
“계약 다 됐습니다.”
정현상 과장의 말이 끝나자, 강형우와 박황수는 서로 손을 맞잡았다.
이제 내일부터, 서면의 가게는 강형우의 것이었다.
비록 세입자 신분이긴 하지만 계약한 2년 동안은 주인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사실, 조금 아슬아슬하기는 했었다.
보증금 3억에 월세 이천을 선불로 입금했고, 박황수에게도 권리금을 지불했다.
그랬더니 회사 잔고가 텅텅 비었다.
물론 직원들 월급 줄 건 남아 있었지만, 인테리어나 투자금이 아슬아슬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성분식과 화끈한 형제들이 충분한 수익을 내고 있었으니 괜찮았다.
우선 홍태구에게 디자인을 받고, 강학희 아버님이 인테리어를 맡기로 했다. 여기서 문제가 생겼는데 미리 이야기했음에도 작업이 약간 딜레이가 있었다.
해서 실제 공사는 3월 말부터 들어가기로 한 것이다.
어떻게든 4월 중순까지는 끝낸다고 했으니, 일단 그렇게 밀고 나가기로 했다.
그다음이 사람 구하는 거였는데, 일단 인정둥이와 이강석, 백창호를 끌고 왔다.
이 네 명에게 오전과 오후 주방을 맡길 계획이었으니까.
때문에 현재 네 사람은 화끈한 형제들에서 일하고 있었다. 배운다는 명목으로 대용 삼촌 밑에서 제대로 굴림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외에 직원 구하는 건, 의외로 착착 진행되었다.
박황수가 내건, 이천만 원짜리 조건이 그거였다. 가능하면 지금 직원들 자르지 말고 같이 가달라고 했던 것이다.
해서 강형우는 면접을 봤고 희망자에 한해 우선 고용을 약속했다.
그 인원만 열여섯 명인데, 매니저급 세 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지금 그들도 화끈한 형제들에 투입된 상황.
다행히 인원 과다로 혼란이 생기는 일은 없었다. 신청자에 한해 돌아가면서 휴가를 주기로 했었으니까.
그렇게 신규 오픈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다.
“나보고 화끈한 형제들, 점장을 맡으라고?”
강대용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피식 웃은 강형우는 말을 이었다.
“예. 고민 많이 했는데, 삼촌만 한 적임자가 없는 것 같더라고요.”
실제로 강대용은 화끈한 형제들과 지성분식 3호점을 오가면서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그건 일종의 조율이었다. 게다가 성격도 좋아서 직원들이 잘 따르기도 했고, 무엇보다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형우야, 진급이 너무 빠른데?”
“그래서 싫다는 거예요?”
“아니, 그건 아닌데… 좀 실감이 안 난다. 나 아직 주방에서 만들 수 있는 음식이 몇 개 없어. 기껏해야 사골탕면이나 새우탕면 만드는 정도지, 돈가스도 튀겨본 적이 없다고.”
강대용은 진심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삼촌, 음식이야 차근차근 배우면 되는 거고요. 진짜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에요.”
“그럼 뭔데?”
“삼촌 아직도 무급이잖아요.”
말 그대로 돈 안 받고 일하고 있었다. 끝끝내 계좌번호를 가르쳐 주지 않았고, 봉투에 월급 담아서 주려니까 몇 번이나 도망쳐 버린 것이다.
그 과정을 서넉 달 하다 보니 이젠 포기하고 말았다.
하지만 강형우는 그 돈을 따로 모아놨다. 언제고 줄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것!
“왜, 경식이 때문에? 그거 신경 쓸 거 없다니까?”
“그래도요. 아니, 솔직히 그것도 있기는 해요. 전 제 사람 무시당하는 거 싫어하거든요.”
박경식이라는 알바가 있었는데, 강대용이 돈 안 받고 일 배우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어린 놈의 새끼가 싸가지가 바가지였다. 벌써부터 월급 받는 걸로 사람 계급을 나누더니 몇 번이나 강대용을 무시해 버린 것이다.
나이 많고 갈 데 없어서 거둬준 거 아니냐면서 다른 알바들한테 비아냥거리기까지 했단다.
결국 강형우는 처음으로 알바를 잘라 버렸다. 그 자리에서 직접 조리모와 앞치마를 벗으라고 해버린 거다.
어쨌든 그 이후, 강대용을 대놓고 무시하는 알바들은 없었지만 아직 그런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대용 삼촌이 점장이 된다면, 참 재미있어질 것 같았다.
“솔직히 삼촌 말고 적당한 사람도 없죠.”
“원래 짬은 성구가 제일 높지 않나? 호성이도 있고, 정은이도 있는데…….”
“걔들은 지금 하고 있는 것만 해도 벅차요. 그리고 나이도 어려서 중심 잡기가 쉽지 않죠.”
다음 달부터 순이 이모가 지성분식 3호점 점장으로 출근하기로 했다.
여기에 강대용이 화끈한 형제들 점장까지 맡아준다면, 오로지 서면점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이게 강형우가 그리고 있는 그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