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1
241화 도전을 결심하다
“하자.”
강형우가 그 긴 과정의 이야기를 끝내자마자 거의 동시에 정덕수가 말했다.
그건 다른 형들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나도 그런 고민을 한 적이 있거든.”
창주 형은 그렇게 말한 뒤 잠시 틈을 두었다.
“이런 말하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 동네는 상권으로 치면 거의 바닥이야. 입지도 좋지 않고, 접근성도 많이 떨어지고… 사실 지하철 있으면 뭐 하냐? 마지못해 거쳐가는 정도지.”
실제로 배산이란 동네는 부산 전체로 치면 딱히 좋은 상권이라고 할 수 없었다.
ABCDE 등급으로 나눈다면 간신히 D에 걸칠 정도라고나 할까?
물론 무슨 장사를 하느냐에 따라 다르기는 했다.
또, 지성분식 3호점이 있는 동네는 C급 정도였다. 중요한 건 거기서도 제일 안쪽 구석이라는 것!
하지만 서면은 A급이었다. 아니, 부산 전체를 봤을 때 최고였으니 A급을 넘어선 S급이었다.
가게 하나만 잘 차려도 일 년 만에 빌딩을 살 만큼 벌 수 있는 위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서면 같은 번화가로 들어가고 싶어 한다.
“솔직히 화끈 오뎅이 이름 좀 알려졌다고 하지만, 딱 동네 장사 수준을 넘어선 정도야. 버스 타고 10여 분만 넘어가면 아무도 모른다고.”
“형, 그렇게까지 말할 건 없잖아요.”
“사실은 사실이지. 솔직히 나도 그런 생각 한 번 해본 적 있어. 서면이나 연산 로타리, 동래나 남포동 번화가에 가게 한 번 내보고 싶었거든.”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동네 구석 변두리 식당은, 말 그대로 근처 사람들이나 알아준다. 숨은 맛집 정도로 평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번화가의 음식점은 다르다.
경쟁이 무척 치열하긴 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만 되면 부산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 가게의 한계까지 손님들이 밀어닥치는 것이다.
그 범주는 일반인의 상상을 훌쩍 벗어날 정도였다.
그때 덕수 형이 물었다.
“그런데, 거기 사장이 왜 가게를 내놨대?”
“그게… 자세한 건 모르겠는데, 주식 하다 망했대요. 거의 십몇 억을 날렸다는데, 하여간 권리금이라도 더 건지려고 분식집이 들어왔으면 한다네요.”
“쯔, 가게 팔고 돈 더 꼴아 박을 생각인 것 같네. 주식쟁이나 도박쟁이나, 손절을 빨리 해야 하는데…….”
“그건 우리가 신경 쓸 일이 아니지.”
창주 형은 그렇게 말을 잘랐다. 그런데 천천히 친구들을 돌아봤다.
“그런데 형우야. 진짜 자신 있냐?”
“솔직히 모르겠어요. 서면 상권은 어느 정도는 아는데,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일단 비용이 무시무시하게 들었다.
보증금 삼억에 월세만 이천만 원 이었다. 가게 1, 2층을 같이 쓰는 특수한 경우였고 평수 역시 합치면 거의 100평대였으니까.
여기에 권리금 이억 오천, 또 인테리어가 추가로 들어가면 최소 자금만 육억이었다.
지금까지 지성분식들과 화끈한 형제들로 벌어놓은 금액이면 일단 감당은 되었다. 추가로 더 들어간다 치면 형들하고 조금씩 더 보태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었다.
사람을 얼마나, 또 어떻게 뽑아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으니까.
대충 계산해도 최하 오십 명이었다. 일단 오전 오후 두 파트로 나눠야 했고 주중과 주말로도 나눠야 했던 것이다.
즉, 파트당 열두 명 전후로 운영한다고 해도 뽑는 숫자는 무지하게 많았다.
또, 메인급 주방장만 최소 네 명은 있어야 했다.
월급 삼백 잡으면 그것만 천이백만 원, 여기에 직원들 월급을 대충이나마 계산하면… 인건비만 한 달에 오육천은 가뿐히 깨진다는 소리였다.
물론 사람을 적게 쓸 수도 있다.
하지만 손님들이 서비스에 불만을 느끼면 그게 곧 망하는 지름길이었다.
해서 강형우는 가능하면 한도까지 사람을 늘릴 생각이었다.
“헐, 그럼 한 달에 최소 일억은 벌어야 한다는 거네?”
“예. 일 매출로 치면 최소 삼백오십 정도는 나와야 되요. 그것도 최소로요.”
“미쳤다. 우리 밥버거 기준으로 대체 얼마나 팔아야 하는 거냐?”
“천오백 원 짜리로 치면 이천사백 개요.”
순간 덕수 형의 입이 쩍 벌어졌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안 망하려면, 그게 최하입니다.”
***
무려 한 시간 넘게 이야기한 결과, 다들 찬성했다.
지성분식 2호점, 3호점에서 벌리는 수익이 있었고, 아직 화끈한 형제들도 그럭저럭 잘나가고 있었다. 초반에 주춤하더라도 뒤를 받쳐주는 가게들이 있으니 도전해 보자는 것이다.
망해봐야 가게 하나 날리면 그만이라나?
그런데 사람 불안하게, 왜 망한다는 이야기가 먼저 나오는지 모르겠다.
사실, 서면 상권은 경쟁이 어마어마하게 치열했다.
하루에도 서너 개의 식당들이 문을 닫는 곳.
참신한 아이디어와 아이템으로 무장한 음식점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 생기고 있었고, 조금 과하게 표현하자면 전 세계 음식 대부분이 다 있었다.
한마디로 부산 외식 업계의 최전선이라 보면 된다.
여기에 연륜 있는 식당들도 넘쳐났다.
이미 오래전부터 지금 자리에 터를 다져온 노포들.
또 유명 프랜차이즈들과 경쟁해야 하고, 서울에서 성공한 브랜드들도 지방 1순위를 부산 서면으로 꼽았다. 그만큼 많은 식당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동네라 보면 되는 것이다.
“그래도, 난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일단 자신이 있었다.
무슨 험한 일이 생겨도, 어떤 진상을 만나도 문제없을 만큼 정신력이 단련되어 있었다. 게다가 꾸준한 운동 덕에 체력도 운동선수들만큼 좋았고 공지혜가 내조까지 열심히 해주고 있었다.
여기에 인정둥이와 심복 홍성구, 절대적인 믿음을 주는 2호점, 3호점, 그리고 화끈한 형제들이 있었다.
또, 사총사 형들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현우 형은 부위별로 튀겨서 판매할 수 있는 방법을, 혁기 형은 인기 메뉴인 짬뽕과 탕수육, 깐풍육 같은 걸 연구해 보겠다고 했다.
당연히 창주 형과 덕수 형은 주방을 맡겠단다.
그렇게 따지니, 그동안 내가 함께 해(?)왔던 가게들이 전부 합쳐지는 셈이었다. 반드시 성공시키겠다는 의식이 그런 움직임을 만들어낸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있었다.
지난 오 년간 바닥부터 시작해 여기에 이르렀다. 그사이 쌓아놓은 경험들은 정말 값진 것이었고 돈으로는 결코 살 수 없는 것들이었다.
잠을 줄여가며 수많은 음식들을 직접 만들었고 개발했기에, 아직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메뉴도 있었던 것이다.
사골탕면과 새우탕면이 그거였다.
여기에 여름 특선 냉라면도 있었고, 꾸준히 팔려 나가는 김밥도 있었다.
또, 밥버거 메뉴를 응용해서 덮밥 종류도 업그레이드했다.
무엇보다 시그니처인 하와이안 돈가스도 있었다. 항상 판매 1위였고, 덕분에 몇 번의 업그레이드까지 거친 인기 메뉴였던 것이다.
물론 서면에도 하와이안 돈가스를 파는 곳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직접 먹어본 결과, 퀄리티에서 압승이었다.
그 외 비슷한 메뉴를 파는 비슷한 성격의 가게들도 사전조사를 했다. 직접 다니면서 먹어봤고 인터넷 반응도 체크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주혁 형이 그랬다.
우리 가게의 음식은 준레스토랑급이라고 했다. 가성비로 따지면 미슐랭 별 따는 것도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게 봤을 때, 절대 실패할 것 같지 않더라.
결국 강형우는 새로운 도전을 결심했다.
***
“실례합니다.”
강형우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고개부터 숙였다.
미리 정현상 과장이 일러주었다. 이야기는 거의 다 끝난 상황이니 권리금 관련해서 확인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건 자기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란다.
해서 직접 찾아왔는데, 진심으로 한숨부터 나올 뻔했다.
여긴 음식점이다. 그런데 마흔도 안 되어 보이는 사장이란 사람한테 역한 찌든 담배 냄새가 났다.
머리도 감지 않은 것 같았고, 무엇보다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방금 전까지도 테블릿 같은 것으로 주식 차트를 확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져 있었다.
당장에라도 신경질부터 낼 것처럼 인상을 구겼던 거다.
대체 이런 가게에, 어떤 손님들이 오겠는가?
딱 그런 생각을 하는데 상대가 비굴한 표정을 지었다.
“어이쿠, 생각보다 훨씬 젊으시네요.”
“아~ 예. 저는 강형우라고 합니다.”
“아하! 소개도 안 했네. 박황수라고 합니다. 여기 사장입니다.”
손을 내미는데, 강형우는 꺼려지는 걸 참고 악수를 나눴다.
“들어보니 정 과장하고 이야기 끝냈다고 하던데요?”
“예. 대략적인 사정은 들었습니다.”
“허허, 젊은 분이 운이 좋으시네요. 사실 여기 자리는 정말 좋아요. 저도 잘될 때는 한 달 매출만 사억, 오억씩 찍었거든요. 오픈발 받을 때도 그랬고, 연말, 연휴 특수 받으면 직원들 보너스 주고도 일억은 그냥 가져가요.”
박황수가 한참이나 자랑을 하는데,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느낌 때문이었다. 권리금 받고 파는 입장인 걸 알지만, 너무 허황된 포장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강형우는 가능하면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도록 성의 있게 듣는 척했다.
그 자랑질이 20여 분이 넘어갔다.
결국 더는 듣기 힘들어서 강형우가 말을 잘랐다.
“그런데, 손님이 거의 없네요.”
“아, 그… 그게.”
박황수는 시계를 슬쩍 보더니 말을 돌렸다.
“원래 이 시간이 좀 그럽니다. 평일이기도 하고 두시면 거의 점심 끝났다고 보시면 될 겁니다.”
월요일이 쉬는 날, 화요일은 점심 이후부터나 장사가 되는 편이라고 했다. 수요일부터 조금씩 늘어나서 주말에 피크를 찍는단다.
이 동네 특성이 그렇다나?
솔직히, 내가 장사 하루 이틀 한 사람도 아닌데 뻥이 너무 심했다.
요즘에야 많이 가라앉기는 했지만, 월요일을 제외하면 항상 점심에는 사람이 가득했다. 여기 오는 중에 몇몇 가게들을 살폈는데, 사람들이 한참 줄을 서는 곳도 서너 군데나 있었던 것이다.
즉, 장사가 안 되는 원인이 따로 있다는 거다.
강형우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블로그나 맛집 카페 글을 살펴보니 바로 나왔던 것이다.
맛은 프랜차이즈보다 조금 나은 정도였다. 인테리어도 돈을 제법 투자했기에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불친절한 서비스.
거기에 사장이 한 번씩 불편하게 만든다고 했다.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고함까지 질렀다는 것이다.
주식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건 알겠다. 그렇다고 가게에서 그러면 쓰겠는가?
결국 강형우는 서둘러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일단 주방부터 봐도 되겠습니까?”
“아, 그럽시다. 역시 음식 장사는 주방이 기본일 테니까요.”
잠깐 박황수의 눈빛이 빛났었다.
하지만 이내 흐릿하게 변하더니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변하고 말았다.
열정마저 식은 게 분명했다.
업소용 냉장고가 다섯 개, 가스 시설과 설비도 충분했다. 약간의 공사만 거치면 바로 활용이 가능할 정도로 기본이 잘되어 있었던 것이다.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스테인 이중 그릇이었다.
가볍고 보온 효과도 좋았으며, 무엇보다 튼튼했다. 실수로 떨어뜨려도 흠집 하나 안 나는 그런 재질이었던 것이다.
“역시 알아보시네. 맞아요. 그거 비싼 겁니다. 분식집 용으로 특별히 주문 제작한 거예요. 거기에만 이천만 원 들었다고 보면 됩니다.”
박황수가 자랑을 하는데, 솔직히 이건 인정할 만했다.
재수 없으면 하루에도 수십 개씩 깨지는 게 그릇과 접시였다. 손님이 실수하는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가 주방에서 손상을 입는 것이다.
숙련되지 않은 직원이 만지면 그렇다.
강형우는 대충은 알 것 같았다. 각종 설비와 조리도구, 그리고 스테인 그릇으로 미루어 보아 박황수도 한때는 장사에 전념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 된 이유인지 주식에 빠지고 말았다.
결과는, 가게 처분이었다.
“그것 말고도 좋은 게 많은데… 우리 식기 세척기 봤어요?”
“예. 호텔 뷔페에서 쓰던 모델이더라고요. 대용량에 튼튼하기도 하고…….”
“싱크대하고 선반도, 남자 키에 맞춰서 다 조정한 겁니다. 주방 동선도 다 계획해서 주문 제작 한 거예요.”
또다시 자랑질이 이어졌다.
하지만 강형우는 맞는 것만 듣고 나머지는 흘려 버렸다.
어차피 조금 있다 있을 협상을 생각하면, 나머지는 중요하지 않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