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9
239화 그런 생각 했어요
2015년 1월 18일.
새해가 바뀌고 벌써 사 주차였다. 진짜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벌써 1월도 절반이 넘게 지나간 것이다.
“보자. 설 연휴가… 올해는 좀 늦네?”
2월 셋째 주였다. 18일부터 해서 주말까지 치면 22일까지 무려 5일이나 쉬게 되어 있는 것이다.
“가만, 그럼 14일 정도에 1박을 잡으면 되려나?”
생각해 보니 의미가 있기는 있었다.
지성분식 2호점이 오픈 2년째가 되는 날이었다.
3호점 역시 거의 그 시기에 오픈했으니 하나의 기념일로 잡아도 좋을 것 같았다.
“일단 그렇게 잡고 이야기를 한 번 해보자.”
1박을 잡고 하루 쉬면서 직원들 피로도 풀어주고, 그다음 연휴도 내일 5일을 쉬어야 할 것 같았다.
매출은 아마 3분의 1 정도가 줄어들 거다.
하지만, 장사라는 건 꾸준히 오래하는 게 중요했다. 쉴 때 제대로 쉬어줘야 더욱 버틸 수 있는 것이다.
“설 보너스도 넉넉하게 주고, 바로 3월 보너스까지 주면… 아주 통장이 텅텅 비겠네.”
그럼에도, 웃음이 나왔다.
사실 작년에 세금 때문에 크게 한 번 터진 적이 있었다. 연 매출이 거의 오십억 근처에 이르렀던 것이다.
지성분식 2호점, 3호점, 여기에 화끈한 형제들, 그리고 인성식품의 수익까지 합치자 어마어마해진 거다.
다행인 건, 법인 전환을 끝내고 많은 이들을 정직원으로 고용했다는 거다. 인건비 비중이 높아져서 순수익이 확 줄었지만, 덕분에 세금 폭탄을 피할 수 있었다.
어쨌든 그 과정에서 많은 걸 깨달았다. 무조건 많이 남기는 게 좋은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어쨌든 직원들 휴식도 챙겨줘야지. 그래야 더 열심히 일할 테니까.”
그런 식으로라도 일부러 활력이 되는 일을 벌이고 싶었다.
요즘에 와서 알 수 없는 무력감이 부쩍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어차피 강형우가 없어도 인성식품이나 지성분식, 화끈한 형제들은 잘 돌아가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제 현장을 직접 뛰는 일은 자제하고 싶었다.
그건 연이은 피로 누적 때문이었다.
솔직히 작년 한 해만 해도 많은 일이 있었다.
가장 먼저인 건 3호점을 오픈한 거였다.
그다음은 기억하기도 힘든, 4월이었다.
억지로, 애써 가슴을 억눌렀지만 그때는 정말 감정 조절이 잘 되지 않았다.
며칠 남몰래 울기도 했고 미친 사람처럼 고함도 내질렀으니까.
마치 심장 한구석에 커다란 대못이 박힌 기분이랄까?
이후, 다시 바쁘게 살면서 애써 외면하고 잊어버리려 했지만, 당시의 상실감은 어마어마했다.
여기에 이영제가 배신을 때렸다.
이것만 해도 머리가 아팠는데 묘하게 신경 긁는 일들이 이어졌다.
바로 황도양이었다.
썩은 계란에, 가격 할인에, 동네 양아치에 조폭들까지.
다행히 적절한 선에서 정리하긴 했지만, 뒷맛이 영 개운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 이유로 화끈한 형제들을 차렸다.
결과는 대박!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말 몸이 녹아날 정도로 힘들었다. 게다가 이모들 식당이 사라지면서 심적으로도 무척 힘들었던 것이다.
공지혜의 든든한 내조가 아니었으면 벌써 무너졌을지도.
물론 힘들기만 한 건 아니었다.
우선 좋은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
금일우와 이기섭은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때문에 배신을 염려하지 않았고 오히려 믿음까지 갔다.
그건 오병헌이나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화끈한 형제들에 일하는 직원들도 그랬다. 고민해서 사람을 가려 뽑은 것도 있지만, 인간적으로 많이 가까워진 것이다.
특히 강대용 삼촌의 경우, 부담스러울 정도로 이것저것 잘 챙겼다. 그러면서 질책도 아끼지 않았고 많은 조언까지 해주었던 거다.
어쨌든 이들 덕분에, 힘겨움을 이겨내고 사골탕면과 새우탕면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
현재 두 라면은, 지성분식 2호점과 화끈한 형제들에서도 팔고 있었다. 진짜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았고 매출 기여도 역시 돈가스 수준까지 올라갔던 것이다.
한마디로 또 하나의 시그니처 메뉴가 생긴 셈.
마지막으로, 아들 강하늘이 태어났다.
정말 작년의 대미를 장식했다고나 해야 할까?
그렇게 한 해를 돌아보고 나니 성취감이 느껴졌다.
동시에 알 수 없는 허무함까지 찾아오고 말았다. 그때부터 이상하게 생각이 많아졌던 것이다.
난, 왜 이렇게 사는 거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 걸까?
물론 목표는 있었다.
어머니 집 사드리고, 영지 시집보내고, 인정둥이 자립시켜서 가게 하나씩 해주고, 마지막에는 내 이름으로 된 건물을 하나 올리고 싶었다.
또, 일 년에 가게 하나씩 차근차근 늘릴 계획이었다.
물론 전부가 살아남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열 군데 정도만 유지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착실하게 살면서 돈을 모으다 보면 언젠가는 목표를 이룰지도 모르겠지.
하지만 인생에 그게 전부일까?
***
“죽겠다, 죽겠어.”
정덕수가 죽는 소리를 하는데, 김창주도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형들 왜 그래요? 무슨 한숨을 파도타기 하냐고요.”
강형우가 투덜댔음에도 분위기는 영 밝아지지 않았다.
그때 혁기 형이 말을 꺼냈다.
“너는 장사 잘돼서 모르지만, 요즘 분위기 진짜 안 좋아. 연말부터 아주 쭉 빠지고 있다고.”
“그래. 나도 그럭저럭 유지는 하고 있지만, 작년 이맘 때 기준으로 잡으면 매출이 30%나 빠졌다.”
김현우도 죽는 소리를 하는데, 깜짝 놀랐다.
“아니, 장사가 그렇게 안 돼요?”
“너,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거 모르냐? 뉴스도 안 보고 살아?”
“그야 일하면서 조금 보기는 보는데…….”
솔직히 정치니 뭐니 하는 것부터가 진절머리가 났다.
주혁 형 때문에 최소한의 끈은 잡고 있었지만, 국회의원들의 행태를 접할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콱 하고 막히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솔직히, 저 여당 새끼들은 사람도 아니었다.
아니, 금수도 저것보다는 나을 터.
그런 놈들이 정치를 하니 개판이 될 수밖에 없었고, 당연히 나라도 엉망으로 돌아가는 게 맞겠지.
안 그래도 커뮤니티나, 맘 카페에서는 정치 이야기 때문에 어마어마하게 시끄러웠다. 서로 니 편 내 편 가르고 싸우기도 했고 이웃끼리 주먹다짐도 있었단다.
특히 최고 이슈는 ‘대통령의 7시간’이었다.
의혹을 밝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덮으려고, 온 나라가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요즘 우리 선배들이 뭐라고 하느냐면… 딱 IMF 때 느낌이래. 지금이 그때보다 더 안 좋다고 하더라고.”
“배산회 모임도 뜸해진 게 그래서야. 다들 먹고사는 데 정신이 없으니, 쉬지도 못하는 거지.”
조성기의 개지랄에도 버텼던, 몇몇 가게들이 이번에 문을 닫았다고 했다. 우리 통닭과 같은 라인에서 장사하던 시장 빵집과 떡집도 가게를 내놨다고 했고, 그 외에도 매물이 많이 나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동네가 초상집 분위기란다.
덕수 형이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이번에… 가게 하나 접기로 했다.”
“예?”
“야심차게 4호점을 차렸는데, 그 옆에 밥버거 집 두 개가 더 생겼어.”
가게 크기는 절반 수준, 게다가 매출도 형님네 밥버거의 3분의 1도 안 된다.
하지만 그런 가게가 둘이나 더 생겼다. 동네의 작은 상권을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인데도, 기어이 들어섰다는 것이다.
“완전 미친 거지. 초등학교 하나, 중학교 두 개 보고 들어간 자린데… 거기다 반쯤은 죽은 상권이거든. 그런데 어이없게도 꾸역꾸역 들어오더라.”
덕수 형은 두 가게 사장님들을 직접 만났단다. 진심으로 걱정이 돼서 이야기나 해보자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충격적이더라. 돈을 벌려고, 뜻이 있어서 장사하는 게 아니더라고.”
형님네 밥버거 4호점의 매출은 오천만 원 수준이었다.
한 달에 남는 게 팔백도 안 되는데, 두 사장들은 그거의 반의반만 가져가도 좋단다.
“퇴직금 받고 할 게 없었대. 그런데 우리 가게 장사가 좀 되니까 비슷한 걸 알아봤다네?”
두 사장은 밥버거 프랜차이즈에 문의를 했다.
예상 월 매출은 천만 원.
본사가 40%를 가져가고 남은 걸로 월세, 인건비, 그리고 각종 공과금과 세금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두 사장은 직원을 안 쓰고 혼자 일해서 한 달에 이백을 가져가는 게 목표란다.
그런데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한 달에 백만 원 겨우 벌어간다더라. 장사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면서… 그런데, 더 놀라운 건 그 상권에 밥버거집 하나 더 들어온데.”
“헐, 미쳤다.”
“프랜차이즈 새끼들이 문제지. 그냥 차리면 다만 얼마라도 떨어지니까 상권 조사고 나발이고 밀어 넣는 거야.”
“와, 사람들이 진짜 생각이 없는 거예요? 편의점하고 치킨집만 해도 그 난리를 겪어놓고…….”
얼마 전 뉴스에 기사가 났다.
프랜차이즈 본사의 비양심적 행동이 시발점이었다. 같은 회사 체인점 두 개가 큰 길 하나를 놓고 마주 보게 되었던 것이다.
법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단다.
행정구역이 다르고, 배달 구역도 틀리다나?
무슨 말도 안 되는 개소리인지 모르겠다. 횡단보도 신호 바뀌면 걸어서 3분도 안 되는 거리인데 말이다.
결국 소송전이 벌어졌고, 업주끼리 칼부림하는 일까지 일어나고 말았다.
이후, 기사가 나자마자 본사에서 발표를 했다.
앞으로는 억울한 점주들이 없게끔 본사에서 좀 더 신경을 쓰겠다고.
물론 배상이니 그런 건 하나도 없이 그게 끝이었다.
“그게 크게 알려진 게 석 달도 안 됐는데, 그 좁은 상권에 밥버거집만 네 개라니…….”
“다 먹고 살기 힘들어서지. 뭐라도 하긴 해야 하고, 하려니 능력은 안 되고. 힘들게 고생하기는 싫고… 결국 프랜차이즈 가는 거지.”
덕수 형은 진짜 인상을 확 구기고 있었다.
들어보니 그럴 만했다.
그 일대 상권을 계산했을 때, 형님네 버거는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 근처에 가게 하나 더 생겨도 적자만 아니면 남는 장사였으니까.
“생각해 봤는데, 그 동네서 같이 장사하기가 애매하더라. 솔직히 나 말고 두 사장은 사이가 무척 안 좋아. 여기에 가게 하나가 더 붙으면… 무슨 일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지.”
확실히 위험은 피하는 게 맞았다.
“다행히 투자비는 건졌으니 그냥 정리하기로 했다.”
“진짜 머리 아팠겠네요.”
“오히려 홀가분하지. 그래서 하는 이야기인데… 형우야.”
“예?”
“우리 이제 규모도 좀 됐으니까, 좀 크게 나가면 안 될까? 전에 창주랑도 이야기해 봤는데…….”
사총사 형들끼리는 미리 이야기가 된 모양이었다.
당연히 현우 형과 혁기 형은 확장에는 뜻이 없다고 했다.
우리 통닭은 직원들 월급 걱정은 없는 수준이었고, 태성반점 역시 자기 건물이라 월세는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업종의 특성상 크게 뭔가를 벌이기는 어려웠다.
“화끈한 형제들은 다르다고 봐. 물론 기획이나 이런 건 네가 다 했지만… 지성분식하고 합쳐서 차리면 괜찮을 것 같더라.”
“아! 형들도 그런 생각 했어요?”
“어?”
덕수 형과 창주 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강형우는 잘됐다는 듯 피식 웃었다.
“사실은, 저한테 제안이 하나 왔는데요.”
***
음식 장사를 하는 사람들의 목표 중에 하나는 그거였다.
자기 이름을 건 가게를 내는 것.
그것도 동네 구석의 상권이 아니라, 그 도시의 가장 번화가에 차려서 성공하는 거였다.
실제로 요식업계의 많은 사장들은 그런 생각을 한다.
메이저 상권에서의 성공은 빠르게 이름을 알릴 수 있었고, 그게 곧 광고이자 브랜드가 되니까.
강형우도 지난 일 년간 꾸준히 그런 생각을 했었다.
화끈한 형제들은 그 시작의 발판이었다. 어느 정도 확신은 있었지만, 처음부터 메인 상권에 도전하기에는 검증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미 남천동 상권을 넘어선 상태였다.
근처 광안리에서도 사람들이 찾아와 포장을 해갔고, 반대편 경성대 상권에서도 일부러 찾아와 들릴 정도였다. 게다가 방송국에서 퀵으로 주문하는 양만 해도 어마어마할 정도였다.
이미 이름값은 충분히 알려져 있는 셈.
여기에 인터넷 맛집으로 소문났고, 이제 블로그 검색을 하면 페이지만 해도 수십이 넘어갈 정도였다.
명실공히 맛으로 인정을 받아, 동네급을 벗어난 상황.
그때, 한 사람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