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8
238화 이 정도는 해줘야지
“하아, 정신이 하나도 없네.”
제일 먼저 어머니 박혜숙과 장인, 장모님이 병원을 찾아왔다. 이미 영지랑 지혜가 어릴 때부터 알고 있던 사이라 큰 문제는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상견례 비슷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어른들이 왔다 간 다음, 지성분식 식구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여기에 화끈한 형제들 알바들도 돌아가면서 왔고, 순이 이모도 딸 손을 잡고 들렸다.
이후 애란 이모와 희숙 이모가 왔고, 신원이 형과 강학희 아버님도 동료들과 함께 찾아왔다. 겸사겸사 애도 보고 광안리 가서 회 한 접시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다음 날은 인성식품 직원들이 함께였다. 차인철의 중고 승합차를 타고 한꺼번에 몰려온 거다.
여기에 사총사 형들과 형수님들까지 들르니 정말 병원이 터져 나갈 뻔했다.
또, 평석이 형과 형네 회사 사람들이 방문했고 홍태구와 오연희, 정육점 정재일과 이지애, 여기에 부동산 삼촌과 배산회 사람들까지 한꺼번에 몰려왔었다.
이후, 박첨기 어르신이 슬그머니 들렀고, 이제는 대학생이 된 우리 가게 공식 1호 팬인 박미희와 어머니도 함께 찾아오셨다.
그렇게 한차례 정리되나 싶더니, 강영지가 귀국했다.
어학연수가 끝났단다. 경성대 근처에 영어 강사로 취직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호주에서 알게 된 지인의 추천이 있었다나?
어쨌든 강영지와 어머니, 인정둥이가 매일 들리는데 산후조리원에 미안할 정도였다. 정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아예 3인 방을 전세 낸 것처럼 써야 했던 것이다.
다행히 병원장은 좋아했다.
신생 병원이라 오히려 이런 홍보가 더 도움이 된다나?
그렇게 일주일이 됐을 때, 두 사람이 찾아왔다.
주혁 형과 정분석 형이었다.
“이야, 우리 형우가 아버지가 됐다니… 놀랐다. 놀랐어.”
분석이 형이 웃으면서 말하는데 조금 민망하고 뻘쭘했다.
짐승 같은 조카들을 보면서 나도 언제 결혼해서 애 키우나 생각했었는데, 이제 이렇게 된 것이다.
“새끼~ 결혼식도 안 하고 애부터 낳냐? 뭐가 그리 급하다고 그래?”
“하하, 그게… 그렇게 됐네요.”
강형우가 머리를 긁적거리는데, 주혁 형이 피식 웃었다.
“근데 애 이름이 뭐냐?”
“아, 그게…….”
한 며칠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어머니가 어디 용하다는 데 가서 이름을 받아 왔는데, 그게 선일(善溢)과 한해(瀚海)였다. 항상 착하게 살라는 거와 바다처럼 마음 넓게 살라는 거였다.
뜻은 좋은데, 요즘 세상하고는 맞지 않을 것 같았다.
여기에 장모님까지 가세해서 묘한 신경전까지 벌어졌다.
장모님이 유명한 스님한테 받아온 이름은 도산(道山).
느낌이 절에 들어갈 것 같은 이름이었다. 게다가 성까지 붙이니 강도산이었다.
어감이 너무 무시무시했던 것이다.
그러다 어제 겨우 극적인 합의를 봤는데…….
“하늘이요.”
“그럼 강하늘?”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아, 얼마 전 끝난, 미생에 나온 그 신인배우 맞지? 완전 초 엘리트.”
“예.”
그러니까 그 드라마 때문이 맞았다.
어머니도, 장모님도 그 배우 팬이 됐단다. 사람이 너무 바르게 보였고, 드라마상에서도 어머니들이 딱 좋아하는 아들 역이었던 것이다.
공부도 잘해, 학교도 잘 나왔고, 얼굴도 잘생겼어, 사람도 착하지, 스펙도 거의 퍼펙트였다.
진짜 현실에 있을까 말까 한 완벽남이었다.
가장 중요한 건, 역시 공지혜의 의지었다. 애 엄마가 그렇게 짓겠다고 나서자 두 어머님들도 양보한 것이다.
조금 씁쓸했지만… 어쨌든 모두가 만족한 이름이었다.
“그래도 이름은 괜찮네.”
분석이 형이 고개를 끄덕이자 주혁 형도 인정을 했다.
“요즘은 한글 이름도 많이 하거든. 우리 딸도 봄이잖아. 강봄. 둘째는 여름이고.”
유리 형수가 그런 적 있었다. 우리 남편은 이름을 더럽게 못 짓는단다.
중식당 이름은 황룡, 서민에게 희망을 주자 해서 희망 국수였다. 매운 똥집을 판다고 불똥 포차였고, 제대로 든든한 한 끼를 먹이자고 제대로 한 끼였다.
그 외의 작명도 엉망이라, 아예 회사에서 포기를 했다는 것이다.
“어쨌든 축하한다. 이제 고생길이 열리겠구나.”
“그럼. 이제 진짜 어른이지. 말 그대로 가장이다, 가장.”
“그렇지, 가장 집구석에서 밀려난다는 가장이지.”
이 형들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말들을 욕처럼 던졌다.
“이제 집구석에서 병풍처럼 살아야 될 거야.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에이, 그 정도는 아니지. 그냥 가구지, 가구. 그래도 없으면 허전하거든.”
“가끔 소파 정도만 돼도 만족해야 할걸?”
“하긴 앉아라도 주니 그게 어디냐.”
“어쨌든 와이프한테는 애가 1순위다. 나중에는 밥도 구석에서 몰래 먹어야 돼.”
“맞아. 나가서 먹을 수 있게만 해줘도 땡큐라고.”
두 형들의 장난스러운 표정을 보니, 아주 작정하고 놀리려는 것 같았다.
하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원래 분석이 형이 의뢰(?)를 했었다.
예정대로라면 올해 초, 지성분식 3호점과 함께 기장의 고깃집을 맡을 계획이었다. 무려 5억이나 투자한 식당이었는데 망했다는 것이다.
해서 틈틈이 이것저것 알아봤는데, 사실 난감했다.
일단 그쪽으로는 장사해 본 적도 없었고 위치가 위치라서 상권 조사하기도 어려웠던 거다.
결국 주혁 형한테 도움을 청했는데, 황당하게도 그냥 내버려 두란다.
그렇게 어영부영 끌기를 반년.
주혁 형은 쓰러져 있었고, 분석이 형은 그 말을 철썩같이 믿고 기다렸다.
놀랍게도, 얼마 전 발표가 났다.
부산시에서 그 일대에 동부산 관광단지를 조성하겠다고 했다. 이전부터 알려진 것보다 더욱 확장되어 그 식당 근처까지 포함된 것이다.
해서 분석이 형은 적당한 가격에 바로 팔아버렸다. 욕심 부리지 않고 딱 투자금을 회수한 금액에 말이다.
“근데 애 얼굴 좀 보자. 여기까지 왔는데 제수씨한테도 인사는 하고 가야지.”
“아! 그렇죠.”
강형우는 바로 톡을 보냈다.
안으로 들어가도 괜찮냐고 물었고, 곧 답변이 왔다.
“형들, 조용해야 돼요.”
“야, 우리도 애 낳아봤거든. 누굴 바보로 아나?”
“예절은 기본이지. 우린 기본이 된 사람들이고.”
주혁 형이 그렇게 받으니 할 말이 없었다.
곧 세 사람은 조리원의 한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조용히 하늘이 얼굴 보고 공지혜랑 인사를 한 다음 얌전하게 빠져나왔다.
그 직후.
“푸하하하. 진짜 네 아들 맞네, 맞어.”
“그러게, 완전 판박이다 판박이. 다른 애들 사이에 섞어놔도 바로 찾겠다.”
두 형들이 웃는 이유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진짜 내 아들이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우리 하늘이는 눈에 띄어도 너무 띄었다.
일단 체격부터가 남달랐다.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5㎏가 넘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두상과 눈매, 무엇보다 웃는 얼굴이 강형우와 복사판이었다.
“와, 이래서 씨도둑질은 못 한다는 거네. 진짜 무서울 정도로 닮았다.”
“아들이길 천만다행이지. 딸이면… 원망 많이 들을걸?”
“형들 너무한 거 아니에요? 당연히 아들이 아빠 닮는 건데…….”
강형우가 버럭 하는데도, 두 형들의 장난은 끊이질 않았다. 오히려 놀릴 거리가 생겼다면서 더욱 짓궂게 말했던 것이다.
“원래 아들이 아빠 닮는 건 맞는데, 하늘이는 진짜 빵틀에서 찍어낸 것 같잖아. 지금도 무시무시하게 닮았는데 더 크면 진짜 똑같아질 것 같거든. 어우~ 상상하기도 싫다.”
“그래. 나도 애들 많이 봤는데, 이렇게 싱크로율이 높은 건 처음이야. 원래 조금은 엄마 닮게 되어 있는데… 하늘이는 그냥 너다, 너.”
“이 형들이 진짜!”
강형우는 정말 계급장 떼고 한 번 붙어보고 싶을 정도로 울컥했다.
하지만 이 형들은 이미 눈치 백단에, 강형우 위의 고수였다. 순식간에 반전을 주도한 거다.
“됐고, 집 주소나 문자 찍어 보내. 우리 막내 장난감하고 필요한 거 잔뜩 보내줄 테니까.”
순간 귀가 솔깃해졌는데, 주혁 형은 한술 더 떴다.
“내가 아는 업체가 있는데, 거기 기저귀 정말 좋거든. 내가 한 차 실어서 보내줄게.”
“한 차나요?”
“넌 아직 모르니까 그렇지. 기저귀 진짜 많이 써. 우리 봄이 같은 경우 두어 박스가 일주일도 안 가더라. 한 차라고 해봐야 몇 달 안 가.”
그러면서 구구절절 이야기해 주는데, 애 키우 는데 들어가는 돈이 장난이 아니라고 했다.
분유값에 기저귀값만, 한 달 알바비란다. 그거 아낀다고 천 기저귀 쓰면, 아주 하루 종일 손빨래를 해야 할 정도라는 것이다.
그 외, 애 아빠들에게 필요한 노하우만 장장 20분에 걸쳐 이야기해 줬다.
“분유도 내가 좋은 걸로 보내줄게. 모유 수유하면 좋긴 한데 산모가 무지 힘들거든. 어떨 때는 분유가 훨씬 편할 때도 있어.”
“이유식 먹을 때, 전화만 해라. 우리 회사에 그거 연구하는 팀 하나 있거든.”
앞으로 인터넷으로 판매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했다. 나중에는 아이 이유식부터 어르신들 영양 보양식까지 해볼 계획이라는 것이다.
역시 주혁 형은 스케일이 컸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걸 모토로 장기 플랜을 짜고 있다나?
“진짜 애한테 돈 들이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어.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고…….”
“제수씨 성격 보면 낭비할 스타일은 아닌데, 그래도 동네 아줌마들이 바람 넣으면 훅 가거든.”
“맞아. 명품 유모차 한 대가 차 한 대 값까지 나간대. 그래서 넌 운이 좋다는 거지.”
갑자기 주혁 형이 씨익 웃으니, 잠깐 불안해졌다.
“왜? 왜요?”
“우리 애들 거 있거든. 창고에 고이 모셔놨으니까 그것도 같이 보내줄게.”
두 형들이 번갈아가며 이것저것 해준다고 하는데, 정말 방금 전까지 놀리던 사람들이 맞나 싶었다.
마지막으로, 거의 동시에 두 사람이 말했다.
“당연히 삼촌들이 이 정도는 해줘야지.”
***
“와~ 애 키우는 거 정말 쉽지 않네.”
새해를 어떻게 맞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냥 하늘이 안고 자다가 깨고, 자다가 깨고만 반복했던 것이다.
다행히 어머니와 영지, 그리고 장모님이 번갈아가면서 봐줘서 여유는 있었지만 밤에 잠자는 건 거의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정말 행복했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하루하루가 남달랐던 것이다.
진짜 하늘이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너무 잘 먹어서 공지혜가 힘들어할 정도였고, 싸는 것도 상상 초월이었다. 왜 기저귀값이 무섭다는지 충분히 이해될 정도였던 것이다.
아주 그냥, 내 얼굴에 오줌 갈기는 건 평범한 수준.
기저귀 갈자마자 또 싸 젖히는데 진심으로 환장할 뻔했다.
확실히 애 키우면 어른 된다는 게 맞는 말 같았다. 매일매일 도 닦는 심정으로 애 똥구멍을 닦아야 했으니까.
“그건 그렇고. 슬슬 휴가라도 잡아야 할 텐데.”
하늘이가 예정보다 일찍 나오는 바람에 연말 계획이 다 어그러졌다. 게다가 직원들에게 약속한 망년회도 결국 밀리고 말았다.
사실, 지성분식 3호점은 놀라울 정도로 장사가 잘되고 있었다. 월 매출 1억을 가뿐히 넘겼고, 방학 특수를 맞아서 하루 종일 손님들이 붐비고 있었으니까.
여기에 화끈한 형제들까지 합치면 매출만 거의 3억 중반대였다.
물론 인건비와 마진을 감안하면 순수익은 높지 않은 편이었다. 게다가 직원들이 너무 많아서 관리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어쨌든 강형우가 자리를 많이 비웠음에도, 그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한마디로 알아서 잘 굴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보상을 해주긴 해야 하는데…….”
강형우는 달력을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