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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식당 리얼갑부-233화 (233/251)

# 233

233화 너 요즘 심하다

“자, 일단 이거부터 맛을 봐!”

강형우가 냄비 뚜껑을 열자 뿌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곧이어 모습을 드러낸 건 파가 잔뜩 뿌려진 뽀얀 국물이었다.

“이거 뭐예요?”

인정둥이도 처음 본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금설비가 냄새를 맡더니, 묘한 신음을 내었다.

“흐으음, 으음. 흡흡.”

“뭐하냐?”

“그게, 냄새가요. 제가 좋아하는 곰탕집 딱 그 생각이 나더라고요.”

순간 놀랐다.

코가 예민한 공지혜도 딱 그런 평가를 냈다. 맑은 국물로 나오는 국밥집 냄새라고 했던 것이다.

“오오, 예리한데? 이거 사골탕면이다.”

강형우는 그렇게 말한 뒤, 작은 그릇에 조금씩 담았다.

사실 오늘 평가를 예상하고 점심을 일부러 적게 내라고 했다. 그러면서 특식이 있을 거라고 했던 것이다.

사실 배고플 때 먹으면 다 맛있다. 때문에 적당히 배가 찬 지금이 맛을 평가하기는 최고였다.

“자자, 빨리 먹어보라고.”

강형우의 재촉에 다들 수저를 들었다.

“파가 너무 많은데요?”

“이게 웬 고기예요? 수육인가?”

“만두도 하나 들어 있네요?”

다들 긴가민가하면서도 일단 국물부터 맛을 봤다. 그러다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잠시 망설였다.

제일 먼저 과감하게 도전한 건 홍성구였다. 그 직후 인정둥이가 젓가락을 들었고, 금일우가 뒤따랐다.

후루룹, 후루루룹.

거칠게 면발을 빨아들이는 소리가 지성분식을 가득 채웠다.

그다음 두툼하게 썬 고기 한 점을 입에 넣더니 오물거리기 시작했다.

“어? 맛있다?”

“수육이 아닌데?”

“이게 뭐지?”

다들 머리가 복잡한 모양이었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은 강형우는 다시 손을 흔들어 재촉했다.

“일단 다 먹어보고 평가하자!”

이 말이 쓸데없는 게 됐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들 라면 그릇에 머리를 처박은 것이다.

후룹, 후루루루룹.

면발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릇 바닥이 보였다. 국물까지 남김없이 다 먹어버린 것이다.

파가 많다고 징징거렸던 금설비조차도 그랬을 정도였다.

“어때?”

“일단, 맛있어요. 처음에는 조금 짠 거 같았는데, 끝까지 다 들어가더라고요.”

“처음에 일본 라멘 국물인가 싶었는데 그만큼은 아니고요. 뭐랄까 마지막까지 감칠맛 같은 게 있더라고요.”

“만두는 보통인데, 고기 식감은 진짜 좋고요. 특히 파가 정말 맛있어요!”

“맞아요! 곰탕 국물하고 파하고 그렇게 잘 맞을 수가 없더라고요.”

찬사가 이어지는 가운데, 강정우가 태클을 걸었다.

“딱 하나 아쉬운 게 있는데요?”

“뭔데?”

“밥. 밥이 없어요. 진짜 말아먹으면 끝장인데.”

강정우가 입을 쩝쩝 다시자 다들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강형우는 피식 웃었다.

역시나 예상한 대로였다.

“라면 4,500원에 공깃밥 반 공기 추가해서 5,000원. 괜찮겠어?”

“그 정도면 괜찮을 것 같아요.”

“저도 그 가격이면 사 먹을 것 같아요.”

인정둥이가 고개를 끄덕이는데, 홍성구가 아쉬운 소리를 했다.

“가격은 가격인데, 이게 참 포지션이 애매하네요. 라면이라 하기에는 전혀 안 맵고, 사골곰탕이라 하기에도 좀 어중간한데요. 뭐랄까? 호불호가 많이 갈릴 듯한 음식이랄까?”

“그래서?”

“초반에 할인 이벤트 같은 거 해서, 손님들 반응 보고 가격 정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오케이. 의견 수렴 완료!”

사실 강형우도 그 부분을 걱정하고 있었다.

사골탕면의 맛은 확실했다.

하지만, 쉽게 접하기 어려운 라면인 건 맞았고 생소하기도 했으며, 마케팅 측면에서 뭔가 내세우기가 어중간했다.

“일단 이건 이대로 가고, 자! 다음 라면이다.”

강형우는 씨익 웃으며 다른 냄비를 열었다.

순간, 후확 하고 김이 뿜어져 올라 왔는데…….

“우와! 냄새 죽인다!”

“이거, 그거잖아요? 얼큰한 해물탕면.”

몇 번 먹어봤다고, 인정둥이가 제일 먼저 알아봤다. 누가 말리기도 전에 젓가락을 먼저 들어버린 것이다.

강형우는 둘을 말린 뒤, 그릇에 라면을 덜었다.

다행히 시간이 걸릴 걸 예상하고 일부러 면을 덜 익혀서 가져왔기에 아직 면발은 탱탱했다.

“와! 이거 대박!”

“그러게 새우탕 맛이 나는데… 뭐라고 해야 하나?”

“해물탕 아니야?”

“아냐. 새우탕에 더 가까워.”

서로 옥신각신하면서 먹는데, 강형우는 웃음이 나왔다.

이 역시도 사골탕면과 마찬가지로 사발면 새우탕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다.

때문에 거부감이 없었고 반응은 아까보다 더욱 폭발적이었다.

“사장님, 더 없어요?”

“진짜 맛있어요. 이건 정말 대박 날 것 같은데.”

“김밥이랑 먹으면 꿀조합일 듯!”

다들 좋다고 했고, 이번에는 홍성구조차 이견을 말하지 않았다.

일단 이 정도면 합격이라 봐도 좋았다.

지성분식에서 거의 식사를 해결하기에 다들 입맛이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특히 회식할 때는 진짜 맛집만 콕 찝어서 가자고 했을 정도였다.

그런 애들이 맛있다고 했으면, 진짜 맛있는 거였다.

“그런데 형님. 진짜 이거 어떻게 된 거예요? 한 번도 말씀 없으셨잖아요?”

홍성구가 텅 빈 냄비를 보면서 진지하게 물었다.

거기에는 약간의 서운함 같은 게 보였다.

사실 이런저런 메뉴를 만들어 볼 때, 이전에는 홍성구에게 여러 차례 의견을 물었었다. 또, 직접 시켜보기도 하면서 서로 간을 맞추기도 했던 것이다.

“아, 그게… 좀 그렇게 됐다. 미리 말 안 해서 미안!”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사실 저는 다른 메뉴는 필요 없을 거라 봤거든요. 지금도 충분히 손님 많이 오는데요.”

“그, 그런가?”

“솔직히 말씀 드리면…….”

홍성구가 쓸데없이 진지 모드가 되니, 덜컥 겁이 났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려고 이러는 건지.

“형님, 존경합니다.”

“엉?”

“사실, 그렇잖아요. 다른 가게들은 인기 메뉴 한두 개로 장사하는데, 지성분식은 다 맛있어요. 그러니까 손님들도 왕창 몰려오고 그러는 거 거든요.”

과한 아부 느낌에 당황스러웠는데, 눈빛이 너무 초롱초롱했다. 명작 영화에 감동한 사람처럼 눈물까지 글썽거렸던 것이다.

“보통 우리 가게 정도로 대박 나면 유지만 잘해도 되잖아요. 저도 그 정도로 생각했는데, 형님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도 모르게 이런 라면을 개발하고 계셨다니…….”

홍성구가 손까지 덥석 잡자, 부담이 더욱 커졌다.

“형님,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평생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아니, 성구야. 굳이 그렇게까지는…….”

“아닙니다. 진짜예요. 솔직히 저도 음식 한다고는 하지만 한 번도 이런 생각 해본 적 없습니다. 그냥 시키는 것만 잘하자는 주의였는데…….”

흥분해서 말하니 침도 더럽게 많이 튀었다. 그러다 홍성구의 눈빛이 미묘하게 달라지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맛있었니?”

“예. 이 라면만 가지고 라면집만 차려도 대박 날 것 같더라고요. 먹는데, 머릿속이 번쩍했습니다.”

“설마… 그게 본심이냐?”

“예, 본심입니다.”

너무 당당하게 이야기하니 약간 성질(?)이 났다.

“그래서, 이 라면 가지고 독립하겠다고?”

“예? 아니, 그 말이 아니고요. 그만큼 맛있다는 말이죠.”

“역시 그 말이지?”

“당연하죠. 설마… 저를 의심하셨던 겁니까?”

“그, 그럴 리가 있나?”

솔직히 아차 싶었다. 아무래도 아직 이영제 트라우마가 남은 모양이었다.

“형님, 충성 1순위 홍성구가 고작 라면 때문에 배신할 것 같습니까? 그리고, 그랬다가 태구 형한테 맞아 죽어요. 어쩌면 집안에서 족보 파일지도 모릅니다. 비겁한 놈이라고.”

“알지. 넌 언제나 내 충신 1호다.”

사실 이 녀석과 술 마시고 약속한 게 하나 있었다.

그게 뭐냐면, 홍성구가 먼저 신원이 형처럼 점장 정도만 해도 좋겠단다. 그래서 내가 10년만 같이 일하면 가게 하나 차려주겠다고 했었다.

때문에 다른 사람은 못 믿어도, 홍성구만은 확실했다.

확실한 황금(?)줄을 놓을 사람은 없었으니까.

“형님, 저 서운할 뻔했습니다.”

“내가 잘못 들은 거야. 미안하다.”

강형우가 먼저 사과를 하자, 홍성구가 능청스럽게 받아쳤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잘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이거 대체 언제 만드신 거죠? 어떻게 이런 라면을 만들 생각을 하신 겁니까?”

“아, 그게…….”

홍성구가 분위기를 돌리려는 걸 눈치챘기에, 강형우도 바로 말을 바꿨다.

“그러니까 어떻게 된 거냐면…….”

***

“야! 형우야.”

“왜요? 삼촌?”

“내가 말했잖아. 네가 사장인데, 걸레 들고 돌아다니면 어떻게 하냐? 애들이 불편해하잖아.”

강대용이 버럭하면서 말하는데, 조금 찔끔했다.

사실 그 이전에도 그런 말을 몇 번 들었다.

카운터 알바들도 일에 익숙해졌고, 자신들끼리 순번을 돌아가면서 청소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강형우가 보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원래 지성분식은 손님 나가면 바로 자리를 치운다. 반대로 화끈한 형님들은 시간을 딱 정해놓고 돌아가면서 끝까지 청소를 하는 방식이었다.

그게 어쩔 수가 없는 게, 손님 나가자마자 바로 치우기에는 일이 너무 많았다. 아예 알바 둘을 홀에 상주시켜야 할 정도로 손님들이 무지막지하게 많았던 것이다.

게다가 쟁반 덕분인지 테이블은 거의 깨끗한 편이었다.

음식을 흘려도 거기에 흘렸고, 곳곳에 쓰레기통이 있어서 손님들 스스로 많이 치우는 편이었다.

확실히 청소할 게 많이 없는 상황.

그런데 사장이 걸레 들고 돌아다니고 있으니 알바들이 눈치 보기 바쁘단다.

“나도 이야기 들어서 아는데, 너 심란한 것도 알고는 있는데, 이건 아니야.”

강대용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사실,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몇 번의 조정을 거친 끝에, 강대용은 현재 냉장고 담당이었다. 들어오는 식재료를 확인하고, 오픈 주방에서 만드는 음식에 필요한 것들을 착착 챙겨주고 있었다.

오뎅이나 떡을 미리 삶는다든가, 튀김 반죽을 만드는 것, 여기에 그치지 않고 밥버거 속재료까지 수시로 채웠다.

또, 예전에 뒷정리하던 걸 알바들한테 넘기면서 체크했고, 식기 세척기에서 그릇이 나오면 직접 닦아가면서 꼼꼼히 확인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화끈한 형님들의 진짜 큰 형님으로서 불평불만 접수도 하고 있었다. 창주 형과 덕수 형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사장한테 잔소리할 수 있는 위치로 격상한 것이다.

해서 알바들의 이야기를 곧잘 전해주고 있었다.

“삼촌, 미안해요.”

“알아들었으면 확인만 하고 들어가서 좀 쉬어. 아니면 차라리 며칠 가게 나오질 말던가.”

“예?”

“너 요즘 무지하게 예민한 거 아냐? 야, 나도 네 눈치 보는데, 알바들은 오죽하겠냐고?”

“삼촌… 제가 그 정도예요?”

“그 정도가 아니라 심해! 심하다고!”

강대용은 몇 번이나 한숨을 내쉬며 상황을 이야기했다.

이전이면 넘어갔을 자잘한 실수를 지적하는가 하면, 음식 담는 게 성의 없다고도 했고, 심지어 튀김 모양이 안 예쁘다고 따지기까지 했단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장시 시작 전, 그리고 마칠 때 잔소리를 10분 넘게 했다는 것이다.

아는 거 주의 주고, 했던 이야기 또 하고. 또 하고.

한마디로 알바들이 제일 싫어하는 진상 짓을 몇 번이나 반복한 거다.

“형우야.”

“예, 삼촌.”

“너 많이 힘든 거 알아. 요즘은 잘 웃지도 않고, 내가 대련 한 번 하자고 했을 때도 평소라면 그냥 넘겼는데, 요즘은 짜증까지 내더라.”

“아! 그건…….”

강대용이 한번 붙어보자고 했다. 자기 아는 체육관이 있으니 몸도 풀 겸 한 번 겨뤄보자는 것이다.

보호구 다 차고 하면 괜찮다나 뭐라나?

당연히 강형우는 거절했다.

애초에 제대로 된 무술을 배운 적도 없었고, 체력 단련, 혹은 화풀이 수준으로 샌드백을 두드린 게 전부였으니까.

그제야 주혁 형이 왜 제자라고 했는지 눈치챌 수 있었다. 스스로 무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런 성향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그냥 떠넘긴 거다.

어쨌든 강형우는 거절을 했고, 강대용은 가끔 그런 제안(?)을 했다.

막상 한번 해보면 속에 쌓인 울화가 확 풀어질 거라나?

그때 강대용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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