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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식당 리얼갑부-232화 (232/251)

# 232

232화 기분이 참 묘하네

우직, 우드드득.

커다란 굴삭기가 건물을 박살 내고 있었다.

지성분식 본점, 그리고 이모들 식당이었던 자리였다.

이미 며칠 전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바로 어제, 강형우는 안에 있는 집기와 테이블, 의자, 그리고 주방 살림까지 전부 인성식품으로 옮겨놓았다.

이후 건물주 박첨기 어르신과도 이야기도 다 끝냈다. 보증금도 돌려받았고, 이사비 일부라며 이백만 원이나 받은 것이다.

사양했지만,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고 하기에 끝내 거절하지 못했다.

어쨌든 여기 와 있을 이유는 단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게 그렇게 계산적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더라.

그건 강형우뿐만이 아니었다.

순이 이모도, 애란, 희숙 이모도 그랬고, 박호성과 임정은도 마찬가지였다. 공지혜도 부른 배를 잡고 나왔고, 여기에 인정둥이도 있었던 것이다.

또, 홍성구와 정은혜까지 나와 이 자리에 있었다.

그렇게 초창기 직원들이 전부 모여서, 철거 펜스 너머로 이모들 식당이 정리되는 걸 보고 있었다.

원래라면 진작 공사가 들어갔어야 되는데, 그 일정이라는 게 계획대로만 되는 게 아니었다.

어쩌다 조금씩 미뤄지더니 공사 관련자 중에 단골(?)들이 힘을 썼다. 인근을 다 철거하고 가장 마지막에 하기로 미뤄 버린 것이다.

나름 현장 사람들이 아끼는 맛집이라서 그랬단다.

그 결과 10월에 접어들고서, 이 뒤쪽과 옆을 다 정리한 다음에야 이모들 식당이 철거에 들어갔다.

우드드드득.

굴삭기가 한 번 움직이니, 벽의 일부가 무너졌다. 그러자 주방 안쪽의 모습이 드러났다.

확장 리모델링을 하면서 강형우가 직접 마무리를 한 곳.

홍태구와 오연희가 잔소리를 하면서 도와줬고, 김민석을 부려먹어 가며 수리를 했었다.

쿵, 우지직.

또다시 일부가 드러나더니, 앞뒤를 연결하는 천장 대들보가 보였다.

거긴 처음으로 지성분식 식구들이 모여서 찍은, 단체 사진을 걸어놓던 곳이었다.

우지직. 쿠쾅. 쿵.

이제 가게 절반이 완전히 사라져서 내부가 훤하게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씩 무너지고 정리되면서 건설 폐기물로 바뀌어갔다.

강형우와 식구들은, 장장 한 시간이 넘도록 그걸 가만히 지켜보았다.

정말 기분이 이상했다.

여기 지성분식은 강형우의 사 년이 깃든 장소였다.

내 밥상을 나와서 처음으로 가게를 얻었던 곳.

그러다 조성기의 배신과 깽판으로 망할 뻔했고, 겨우 피폐해져 가는 마음을 붙잡아 힘겹게 다시 살렸던 것이다.

그때 생각한 것이 어묵 국밥이었다.

진짜 몰랐는데, 어느 정도 장사 경험이 쌓인 지금에 와서 보면 도박에 가까운 일이었다. 애초에 창주 형을 찾아가 오뎅 국물 비법을 알려달라고 했으니, 무모해도 그렇게 무모할 수가 없는 것이다.

미끼 오뎅을 시작으로 싸구려 어묵 국밥을 팔았고, 다행히 겨울철 특수를 볼 수 있었다.

거기에 진짜도 아닌, 야매 파스타를 팔아서 어린 손님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그 수익으로 지금 지성분식의 시그니처인 돈가스를 본격적으로 할 수 있었던 거다.

그렇게 장사가 궤도에 오르자, 강형우는 다른 일을 벌였다.

우선 김밥을 업그레이드했고, 덮밥도 손을 봤으며 거기에 그치지 않고 정식까지 손을 뻗었다. 제대로 한 끼 때문에 물을 먹고 정리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당시로써 할 수 있는 건 거의 다했던 것이다.

이후 2호점으로 확장.

다시 1년의 시간이 지나 3호점까지 차렸으며, 거기서 반년 이후, 화끈한 형님들까지 만들어냈다.

그 모든 시작이 바로 여기, 이 장소였다.

“오빠, 괜찮아요?”

공지혜가 불쑥 묻는데, 대답이 나오질 않았다. 정말 말로 표현하기가 애매했던 것이다.

그냥 건물이 무너지는 만큼, 마음 한구석의 일부가 벗겨지는 기분이랄까?

그때 공지혜가 살며시 내 팔을 끌어안았다.

이건, 위로 같았다.

***

“자! 소고기 들어갑니다.”

“여기, 소주 한 병하고요. 저쪽에 콜라 하나요.”

“갈빗살 삼 인분 추가요.”

애정에 없는 회식이었다.

하지만 날이 날인 만큼 저녁만 같이 먹고 들어가기로 했다.

그랬는데, 아주 정신이 없었다. 한창 열혈인 인정둥이와 박호성, 임정은이 평소보다 과하게 소리를 쳤던 것이다.

아무래도 처진 분위기를 올리려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간만에 한우로 배를 채우고, 식사까지 든든히 마쳤다.

여기서 2차 갈 사람은 가기로 하고, 이모들은 이모들끼리 따로 한잔한다면서 빠지기로 했다.

결국 강형우는 1차 막바지에 순이 이모를 붙잡았다.

아직 이야기가 남아서였다.

“좀 쉬고 싶다고요?”

강형우가 묻자 순이 이모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라면 4호점을 차렸어야 하는데, 화끈한 형님들이 먼저 생겼다. 게다가 최근에 번 돈을 거기에 다 쏟아부어서 아직 다른 가게를 차리기가 애매했던 것이다.

물론 거기서 나오는 수익금과, 이모들 식당 보증금을 합치면 다른 가게를 얻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강형우 역시 한 템포를 쉬어가야 한다는 걸 느꼈다.

무엇보다, 순이 이모가 시간을 좀 달란다.

“너무 일에만 매달린 것 같아서 그래.”

순이 이모가 조곤조곤 이야기하는데, 충분히 이해가 됐다.

거의 이 년하고도 반이었다.

강형우가 2호점을 차린 게 거의 일 년 반도 넘었고, 그 기간을 점장으로써 가게를 운영했다.

그게 알게 모르게 부담이 됐다고 했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거예요?”

“글쎄? 우리 형우가 써준다면 어디든 갈 건데… 두어 달 정도는 애하고 같이 있어 주고 싶어서 그래. 맨날 장사한다고 잘 못 챙겨준 것 같아서 많이 미안하더라고.”

“아! 맞아요. 이모. 사람이 쉴 때는 쉬어야죠.”

이건 강형우도 조금씩 느끼고 있는 거였다.

정말 최근 몇 년간은 거의 쉴 새 없이 달려왔다. 육체적인 휴식도 필요했지만, 정신적인 여유도 많이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던 것이다.

“고마워. 원래라면 이런 생각도 못 하겠지만… 다 형우 네 덕이야.”

“에이, 제가 뭘 했다고요. 그냥 월급 많이 준 거밖에 없는데.”

강형우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웃으며 말했는데, 순이 이모가 맞장구쳤다.

“그게 제일 중요하지.”

“예?”

당황해하는데, 순이 이모가 웃었다.

일 년 반 동안, 매달 삼백 가까운 월급을 받았고 보너스도 적지 않게 받았다. 그걸 알뜰하게 모았더니 지긋지긋한 반지하 월세 방을 탈출하게 됐다는 것이다.

다소 윗동네지만 방 두 칸에 거실도 있는 주택이었다.

햇볕이 잘 들어오는 작은 마당이 있었고 옥상도 자유롭게 쓸 수 있다고 했다.

전세에 독채지만, 집주인이 멀리 살아서 마음 부담도 없단다.

“언제 이사 가시는데요? 시간 맞으면 도와주러 갈게요.”

“안 돼! 짐도 별로 없고, 원래 떠나는 데는 보여주는 게 아니야.”

순이 이모고 손사래를 치자, 강형우는 아차 싶었다.

사람이 필요 없어서가 아니라 살던 반지하 방을 보여주기 싫어서가 틀림없었다.

“대신 집들이 때 불러줄게.”

“예. 꼭 불러주세요. 선물 단단히 사 들고 갈 테니까요.”

“선물은 됐고, 나 일자리나 알아봐 주면 돼요.”

순이 이모가 호호 웃으며 말하자, 강형우는 이때다 싶었다.

“그럼 대충 얼마나 걸릴 것 같아요?”

“글쎄? 계약은 했는데 길어도 두 달 정도? 그 정도면 짐 정리까지 다 끝나 있을 것 같아.”

“아! 잘됐네요. 그때면…….”

강형우의 머리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박호성과 임정은이 화끈한 형님들로 가겠다고 했다.

좀 더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단다. 멀티 플레이어가 되어야, 안 잘리고 오래 버틸 수 있다나?

농담 식으로 말했지만, 의외로 눈빛이 진지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었다.

또, 지성분식 3호점은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나 있었다.

일단 금이선이 군대를 갔고, 그 자리를 새로 뽑은 알바들로 채웠다.

그다음 오병헌을 3호점으로 불러들여 이기섭과 함께 주방 보조를 맡겼다. 그러면서 인정둥이에게 가르치라고 했던 것이다.

나중에 애들이 성장하면 주방에 세울 거다.

홍성구가 관리하는 가운데, 정문창이 보조를 맡고 알바를 더 충원하면 될 테니까.

또, 대용 삼촌은 네 명의 알바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반 주방 보조로 진급하면서 자신이 했던 일을 전수(?)하는 중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하나씩 단계를 올리고 조율하면서 조금 여유가 생겼다.

그건 인성식품도 마찬가지였다.

화끈한 형님들 때문에 물량 소모가 어마어마하게 많아졌다.

창주 형의 화끈 오뎅, 덕수 형의 형님네 버거에 들어가는 물량만큼이나 추가가 됐던 것이다.

따지면 형들의 가게 다섯 개만큼, 화끈한 형님들이 팔아주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 결과, 직원 네 명이 더 늘어났다.

한 명은 차인철 후임으로 배달을 전담하게 되었고, 셋은 김민석 아래였다.

지금 한창 적응 과정이었지만 두 달 정도면 일이 손에 익을 터.

그때가 되면 다시 뭔가를 시작해도 좋을 것 같았다.

아니, 애초의 계획대로 1년에 가게 하나씩 늘려간다는 기준이라면 그렇게 늦어지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희숙 이모하고 애란 이모는 어떻게 한대요?”

“글쎄. 몇 번 이야기하기는 했는데, 아직 마음을 못 정한 모양이더라고.”

“그럼 이모가 설득해 줘요. 계속 같이 일하면 좋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사람 마음이 알 수가 없어서 말이야.”

그러면서 순이 이모는 조심스럽게 털어놨다.

맞은 편, 함바식당 쪽에서 몇 번이나 제의가 있었단다. 월급 많이 줄 테니까 오라고 했던 것이다.

그건 이모들 식당의 단골들을 끌어들이겠다는 의도였다.

“그래서요?”

“거기 사장 얼굴 보니까, 싫다더라고.”

“예?”

“잘생긴 우리 젊은 사장님이 있는데, 다 늙은 할배한테 뭐 하러 가냐는데?”

이건 아주머니들 식의 농담이었다.

조금 뻘쭘했지만, 나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거기 음식 형편없이 내가기로 유명해서 그래. 남는 반찬 또 쓰고, 좀 더럽고 해서 안 간대.”

“다행이네요.”

“그건 또 모르지. 언니 둘이서 근처에 식당 차릴 수도 있는 거고.”

아, 그 생각은 전혀 해보지 못했다.

이미 음식 맛으로 이름을 날렸고 단골도 많으니, 약간 외진 데 차려도 손님들이 올 터.

큰 비용 없이 차릴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설마, 이모도 갈 건 아니겠죠?”

“나야 길게 봐야지. 이제 애가 열 살인데, 너 버리고 어떻게 가니? 호호호.”

3년짜리 현장 식당보다야, 가게 여러 개 들고 있는 든든한 사장님이 더 좋단다. 애초에 끝까지 책임지기로 했으니 계속 일만 시켜달라는 것이다.

물론 농담에 가깝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순이 이모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춥다, 추워.”

시간이 정말 순식간에 흘러가는 것 같았다.

찌는 여름이 가고, 냉라면 판매가 조금씩 떨어지더니 어느새 찬바람의 계절이 돌아왔다.

강형우는 10월이 되자 바로 냉라면을 접기로 했다.

확실히 여름철 효자 상품이었다. 게다가 부산의 밀면이 사계절 내내 판매하는 걸 생각하면 계속 팔아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과감하게 정리하기로 했다.

육수 만드는 데 너무 손이 많이 갔고, 소량으로만 하기에는 일이 너무 번거로웠기 때문이다.

대신, 신제품이 있었다.

일전에 인정둥이들한테 만들어주고 나서도 연구 개발(?)을 이어간 바로 그거였다.

“자! 다들 맛 한번 보세요.”

강형우는 커다란 냄비 두 개를 테이블에 올려놨다.

바로, 새우탕면과 사골탕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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