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1
231화 정체성이라
“그건 그렇고, 저 가게 어떻게 된 거냐?”
역시나 이게 제일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강형우는 잠시 심호흡을 한 뒤, 그간의 일을 천천히 꺼내었다.
지성분식 3호점을 오픈하고 몇 달은 별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상가회에서 가격 할인이라는 지저분한 수단(?)을 썼고 나중에는 더러운 일까지 하려 했다.
결국 강형우는 고민 끝에 화끈한 형제들을 차린 것이다.
“병신같이…….”
“예?”
“진짜 장사라는 건,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맛도 맛이지만 기본이 제일 중요하다고.”
갑자기 일장연설이 들어왔다.
일단 맛!
이건 누가 먹어도 맛있다고 느낄 수 있어야 했다. 적어도 돈을 받고 팔기에 그 이상의 가치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건 조리법 하나에 국한된 게 아니었다.
조명이나 분위기라든가, 이벤트 같은 것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게 할 수 있었으니까.
그다음으로 청결과 서비스, 마지막에는 손님과의 유대를 꼽았다. 이 음식점에서 나를 대접하려 한다는 마음이 느껴지면 저절로 발길이 가게 된다는 것이다.
“뭐, 복잡한 거 다 떠나서. 음식에 당당함이 있어야 하거든. 딱 하나! 자기 부모님한테 그 음식을 직접 만들어서 대접할 수 있는가 없는가다.”
“그건… 확실히 그러네요.”
강형우도 쉽게 수긍을 했다.
이러니저러니 말하지만, 근본은 거기에 있었다.
실제로 어머니 박혜숙이 운영하는 국밥집을 가면, 따로 주문하는 게 없었다. 그냥 아주머니들한테 든든하게 말아달라고만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아들한테도 그냥 턱 내어놓을 수 있는 그런 국밥.
그게 어머니가 운영하는 방식이었다. 강형우가 2호점을 확장할 때, 노심초사하면서 일러준 나름의 비결(?)이었던 것이다.
음식은 정직해야 한다나?
그때 강형우도 많은 것을 깨달았다.
역시 장사 오래하는 사람은 그냥 하는 게 아니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었으니까.
“자기 집 애한테도 못 주는 음식을 판다는 건, 함량 미달이지. 그런 놈들이 너한테 시비를 걸었으니 털리는 거야!”
주혁 형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전에도 말했다시피 넌 지독하게 철저한 스타일이야. 수백 수천 번 음식을 만들고, 맛을 더하고 깊이를 추가하지. 그 공격을 당한 손님들은 쉽게 헤어나올 수가 없다고.”
“에이~ 설마요?”
“내 혀, 무시하냐?”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갑자기 금칠을 하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주혁 형은 당연하다는 듯 물었다.
“너! 이번 돈가스 몇 번째 버전이냐?”
“그게… 한 열 번째 정도 되려나? 대충 그 정도?”
고기 기준으로만 따지면, 냉동에서 생고기로, 일반 돼지에서 지리산 돼지, 나중에는 제주도 흑돼지로 바뀌었다.
또, 처음에는 비계만 제거했다가 지금은 힘줄까지 꼼꼼하게 체크한다.
튀김옷도 처음에는 시판 빵가루를 썼다. 그러다 고급품으로 갔다가 몇 번의 변화를 거쳐 현재 모 제과점을 통해 주문해서 공급을 받는다. 그걸 인성식품에서 가공해 입혀서 가져오는 것이다.
여기에 튀김 기름도 몇 번이나 바꾸었다.
현우 형과 우리 통닭을 다시 일으키면서 축적된 지식 때문이었다.
현재는 튀김용 기름에 카놀라유와 참기름 일부를 섞어서 쓰고 있었다. 단가는 높았지만 더 바삭하고 고소한 맛을 위해서였다.
소스 역시도 몇 번의 변화가 있었다.
단맛을 위해 과일의 비중을 높였고, 깊은 맛을 내는 약재도 좀 더 상등품으로 바꾸었다.
그렇게 따지면 처음 시점의 돈가스와 상당한 거리가 있는 셈!
하지만 단계별로 많은 테스트를 했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쪽으로 바꾸었다.
이걸 다르게 표현하면 많은 진화를 강제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설명하자 주혁 형이 피식 웃었다.
“그거 봐! 보통 장사 잘되는 가게는 그렇게까지 하지 않는다고. 그런데 너는 습관처럼 음식에 투자하는 거야. 그것도 계속.”
생각해 보니 그런 것도 같았다.
김밥도 아마 대여섯 번 정도 바뀐 것 같았다. 고칠 게 없다는 라면도 그 정도 될 것이고, 덮밥 종류는 최소 두세 배 이상이었다.
그게 돈이 남아서 그런 게 아니라, 부족함이 느껴져서였다.
아직 미완성이라고 해야 하나?
“집착이긴 한데, 소비자 입장에서는 좋은 거지. 그리고 가격대를 생각하면, 나 같은 미식가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맛이고.”
“너무 칭찬하는 거 아니에요?”
“왜? 하면 안 되나?”
너무도 당당하게 내뱉으니 도리어 말문이 막히더라.
“하여간 음식 맛으로 손님의 혀를 때리고, 친절함과 서비스로 위로하는 거지. 그렇게 두들겨 맞고 치료해 주면 절대 다른 데를 못 가요. 일종의 중독이랄까?”
“진짜 그게 맞아요?”
솔직히 물어보면서도 긴가민가했다.
하지만 사업, 특히 이쪽 계통의 전설은 당연하다는 듯 판결을 내렸다.
“어!”
“너무 빠른데요?”
“맞는 건 맞는 거니까. 솔직히 네 가게는 분식집이라는 카테고리를 넘었어. 따지면, 준레스토랑급의 맛이거든. 가격대로 치면 미슐랭 싸다구 날리는 수준이라고.”
당연히 고급 레스토랑의 스테이크에 비하면 손색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접근성과 가격, 그리고 음식에 대한 노력 등등으로 따지면 서민친화적 음식점 중에서는 거의 최고라고 했다.
때문에 가게 수용의 한계까지 손님이 늘어날 수밖에 없단다.
물론 그 이상의 이야기는 너무 전문적이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중요한 건 이거였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생기기 전까지는 결코 지금의 위치가 흔들릴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결론은, 네가 말한 가게들이 병신 짓을 했다는 거지. 급이 되어야 붙어보든 말든 하는 거지. 거기에 이런 괴랄한 가게를 차려서 압살해 버렸으니, 가게 바꾸는 것 말고는 답이 없을 거야.”
“그런데, 최근 손님들이 많이 늘어났더라고요. 지성분식 매출에 영향이 있기도 하고요.”
“호기심이지. 그건 한계가 있다는 뜻이고, 손님들도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도로 돌아올 거야.”
다른 사람이 아닌 주혁 형이 이렇게 말해주니 안심이 되었다.
실제로 앞의 가게들은 많이 달라졌다.
일단 맛이 평균 이상은 된단다. 게다가 일부 리모델링을 했는지 훨씬 깨끗해졌고, 이전과 다르게 서비스도 좋아졌다는 것이다.
덕분에 손님도 많이 늘어난 모양이었다.
그걸 걱정하긴 했는데, 역시 우려할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에구, 이런 이야기 하러 온 게 아닌데… 그건 그렇고 대체 저 괴상한 가게는 뭐냐?”
“아! 화끈한 형제들요?”
“어. 인테리어도 그렇고, 좀 중구난방이다! 너답지 않은 느낌이랄까?”
사실 준비 기간을 생각하면 빡빡하게 한 건 맞았다.
하지만 이미 검증된 아이템들이었고, 이 동네에 비슷한 것도 없었다. 충분한 자신감을 가지고 투자를 한 것이다.
강형우는 그렇게 설명한 뒤, 어깨에 힘을 줬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는데, 반응이 너무 폭발적이더라고요. 지금 SNS나 블로그 보면…….”
“아니, 그 말이 아니고. 너 정도 되는 애가 고민하고 차렸으면 당연히 장사는 잘되어야지. 오히려 너무 작게 차린 감이 있으니까.”
“크기가… 작아요?”
“시골구석에 있는 롯X리아 보는 줄 알았다. 애초에 그런 시스템으로 하려면 좀 더 큰 가게를 얻었어야지. 딱 보니까 회전률 차이도 엄청나겠던데.”
“예.”
지성분식은 한 시간에 대략 삼 회전이 조금 못 됐다.
그만큼 음식이 빠르게 나가고, 신속하게 자리를 치웠으며 손님들도 꾸준히 몰리고 있었다.
하지만, 화끈한 형님들은 달랐다.
많으면 이 회전이었다. 다들 카페처럼 느긋하게 먹고 수다까지 떨다가 나가는 것이다.
따지면 지성분식이 실속형에 가깝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상징성에서는 화끈한 형님들이 더 나았다.
거의 하루 종일, 가게 절반 이상이 손님들로 채워지는 가게.
그만큼 이슈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안 그래도 며칠 전에 누가 먹방을 찍고 갔고, 몇몇 사람들이 명함을 주고 갔었다. 방송국인데, 촬영 한 번 하면 안 되겠느냐고 했던 것이다.
강형우는 일단 고민해보겠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주혁 형이 툭 내질렀다.
“야! 딴생각하냐?”
“아뇨. 그게…….”
“쓸데없는 변명 생각하지 말고! 보니까 숙제도 안 했고, 고민도 안 했구나! 그러니 저런 혼종이 나오지.”
“예?”
원래 말투가 그런 건 알고 있었지만, 살짝 열이 올랐다. 어딘가 무시하는 구석 같은 게 느껴졌던 것이다.
“형우야.”
“왜요?”
“네가 쓸데없는 걱정을 많이 하는 성격인 건 알아. 그러지 말라고 알려줬는데도 여전히 고치지 못하고 있잖아.”
“그건…….”
분명히 주혁 형은 나에게 많은 충고를 해주었다. 덕분에 지금까지 크게 엇나가지 않았고, 많은 깨달음을 얻었으며 지금에 이를 수 있었다.
그건 분명한 사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반감이 드는 건 왜일까?
“앞으로 큰 시련이 올 거다. 나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조금씩 조짐이 보이고 있거든. 언젠가 크게 터질지도 몰라.”
“예?”
“점점 살기도 팍팍한데, 그때가 되면 진짜 힘들어질 거야. 하지만, 난 네가 그걸 이겨냈으면 하거든.”
갑자기 주혁 형이 몸을 일으켰다.
아직도 회복이 덜된 건지 인상을 찌푸렸고, 어딘가 불편해 보이기도 했다.
“시간이 아쉽네. 원래라면 술 한잔하고 이야기해야 하는데, 당분간은 금주하라더라. 뭐, 이렇게 돌아다니는 것도 기적이라고 하니 의사 말 고분고분 들어야겠지.”
“아직도 많이 안 좋아요?”
“당연하지. 의사 말로는 시체가 걷는다고 하더라고. 반좀비 수준이라고 할까?”
겉으로 보기에도 숨이 가쁘고, 혈색도 안 좋아 보이기는 했다. 걷는 것도 조금 위태로워 보였고.
그때 주혁 형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그런 다음 엄지로 심장을 가리켰다.
“바른 정신, 담대한 마음. 그리고 필요한 건, 너만의 정체성이야.”
***
“정체성이라.”
분명히 전에도 그런 말을 해준 것 같았다.
아이덴티티라며, 나만이 가진 고유의 성격을 찾으란다.
그게 대체 무슨 말인가 몇 번을 물었지만, 좀 더 자각을 하라고만 일러줬던 것이다.
그사이 시간이 다 되었다. 유리 형수가 차를 가져왔고, 주혁 형이 손을 흔들며 사라졌던 것이다.
기왕 가르쳐 줄 거면 속 시원하게 알려주지.
게다가 숙제라는 말이 걸렸다.
“가만, 혹시 그건가?”
강형우는 서재를 뒤져가며, 메모장과 수첩들을 살폈다.
지난 4년간의 기록들이 꼼꼼히 적혀 있었는데, 하나하나 짚어가니까 실로 많은 기억들이 떠올랐다.
지성분식 초창기의 메뉴들, 그리고 조금씩 메뉴를 바꿔가며 적어놓은 손글씨가 거의 책으로 대여섯 권 분량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 가까이 둘러봤음에도 찾는 건 보이지 않았다.
결국 강형우는 서랍장과 책장까지 다 들어내야 했다.
“대체 어디다 둔 거지?”
강형우는 한참을 뒤지다가, 이번에는 명함첩을 발견했다.
거기서 강주혁의 명함을 찾았고 뒤편에 적힌 글자를 볼 수 있었다.
감전동 백원오뎅.
선자네 천원식당.
“아! 역시……”
당시 인터넷을 뒤져서 찾고 또 찾았지만, 끝내 감을 잡지 못했다. 광고만 주야장천 떠서 포기하고만 것이다.
이후 알아본다 알아본다 하다가,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 버리고 말았다.
마치 가슴속, 아니, 기억 속 어딘가에 봉인한 ‘판도라의 상자’ 같아서였다.
잠시 고민하던 강형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가게 되는 대로 시간을 내자! 지금은 도저히 무리니까.”
농담이 아니라 진짜였다.
며칠 뒤, 이모들 식당이… 없어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