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목식당 리얼갑부-230화 (230/251)

# 230

230화 보고 싶었어요

“사장님, 진짜 맛있어요!”

“잘 먹고 갑니다~”

“다음에 또 올게요.”

아직 중학생도 될까 말까 한 애들 여덟 명이 고개를 숙였다.

“어~ 애들아 잘 가라. 차 조심하고.”

말이 끝나자마자 애들이 우루루 퇴식구로 몰려가 쟁반을 반납했다.

강형우는 애들 뒷모습을 보면서 피식 웃고 말았다.

원래 지성분식 3호점 오픈할 때 저 중에 한 명이 단골이었다. 귀엽다고 김밥을 더 챙겨준 적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친구들을 우르르 데리고 왔던 것이다.

알고 보니 걔가 걔더라.

우리 동네 회장님.

바로 박 경위 아들 초등학교 학생회장이었다.

덕분에 강형우가 화끈한 형님들 사장이란 소문이 사실이라는 게 들통나고 말았다. 많은 손님들 앞에서 꼬박꼬박 사장님이라고 하니 감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왜 아직 전화가 없지?”

강형우는 잠시 폰을 살폈다.

벌써 임신 육 개월이었다. 오늘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 전화 주기로 했는데, 아직도 지혜한테서 연락이 없었던 것이다.

내년 1월이 출산 예정인 걸 감안하면 아직 여유가 있었지만 조마조마한 것도 사실이었다.

태명은 ‘곰이’였다.

공지혜가 말하길, 나 닮은 아들일 것 같다고 그렇게 부르잖다.

확실히 다행이었다.

고릴라보다는 곰이 더 귀여우니까.

“사장님, 잘 먹고 가요.”

“예, 안녕히 가세요.”

단골손님들한테 인사를 하고, 나간 자리를 확인했다.

거의 대부분 쟁반째로 음식을 먹기에 테이블이 더러워질 일은 많이 없었다.

하지만 서로 웃고 떠들다가 튀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깨끗하게 보인다고 해도 수시로 청소는 해야 했다.

강형우는 알바 두 명을 불러서 입구 쪽부터 확인하라고 했다. 그리고 본인이 제일 안쪽으로 가서 한번 치우고 나올 생각이었다.

그렇게 테이블과 의자를 닦으면서 움직이고 있는데, 순간 찌릿하는 게 있었다.

본능이랄까?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돌아간 거다.

강형우는 몇 번이나 눈을 깜빡여야 했다.

입구로 들어오는 환한 빛을 등지는 바람에 역광으로 얼굴 형체가 선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감 넘치는 걸음, 그리고 입가에 머무른 장난스러운 웃음이 누군가를 단번에 알아보게 한 것이다.

“주혁이 형?”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상대가 씨익 웃었다. 그리고 평소의 그처럼 툭 내뱉었다.

“잘 있었냐?”

강형우는 걸레를 놓고 그냥 와락 끌어안았다. 진짜 눈물이 날 정도로 그리워했던 것이다.

“진짜… 보고 싶었어요~”

“야~ 놔라. 놓으라고 이 곰 새끼야!”

“보고 싶었다고요.”

“놓으라니까. 아파! 아프다고! 이씨!”

결국 참다못한 강주혁이 주먹을 휘둘렀다. 양쪽 옆구리에 한 방씩, 그 좁은 간격이 무색하게 후려갈겼다.

“윽.”

진짜 송곳으로 후벼 파는 듯한 고통에, 그제야 강형우도 손을 풀고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아픈 게 장난이 아니었다. 잠시 숨을 못 쉴 정도로 전신이 짜르르했던 것이다.

그때였다.

갑자기 누군가가 카운터를 훌쩍 뛰어넘더니 다급히 달려왔다.

“너 뭐야? 임마! 왜 우리 형우를 건드려.”

“어?”

강형우가 말리기도 전에, 강대용이 끼어들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위협적인 발차기를 날린 것이다.

놀랍게도, 강주혁은 간발의 차이로 그 공격을 피했다.

하지만 강대용의 발차기는 그 한 번이 아니었다. 피했다 싶은 순간 몸을 반대로 틀어가며 연이어 세 번의 발차기를 더 이어간 것이다.

강주혁은, 그걸 침착하게 다 피해 버렸다.

진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

하지만 일은 더 벌어지지 않았다.

강대용은 뭔가를 느낀 듯 앞을 막아설 뿐이었고, 강주혁도 이 상황을 이해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때 겨우 강형우가 입을 열 수 있었다.

“저기 삼촌.”

“어, 형우야. 괜찮냐? 경찰 부를까? 아니면 너라도 먼저 피할래?”

“예?”

“조심해라. 보통 고수가 아니다. 어쩌면 킬러일지도 몰라.”

강대용이 너무 진지하게 말했다.

강형우와 강주혁은 동시에 빵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

“죄송합니다.”

강대용이 먼저 고개를 숙이고, 강주혁도 숙였다.

“아닙니다.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서로 풀면서 이야기하는데,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싶었다.

막 퇴식구로 쟁반을 가지러 나온 강대용의 눈에, 강형우가 배를 맞고 몸을 수그리는 게 보였다.

사실 강대용은 처음 강형우의 체격을 보고 운동을 권유했다. 관원을 늘리고자 하는 속셈도 있었지만, 음식값을 좀 깎아보려는 소소한 의도였다.

설마 하늘 같은 스승님한테 밥값을 꼬박꼬박 다 받겠느냐는 생각도 했던 것이다.

어쨌든 강대용이 보기에 강형우의 신체는 훌륭했다.

커다란 키에 우람한 체격, 여기에 일을 열심히 하다 보니 군살까지 빠져서 근육까지 선명했다. 여기에 센스도 있는 것 같아서 조금만 가르치면 대회 같은 데 내보내도 손색이 없겠다 싶었던 것이다.

그러다 장난처럼 테스트를 했는데, 맷집과 파워가 장난이 아니었다.

들어보니 올해 초까지 집에서 샌드백을 두드렸단다. 그걸 몇 개나 터뜨리고 나서야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닫고는, 명상과 호흡 수련만 한단다.

그런데, 그렇게 단련된 강형우가 주먹 한 방에 나가떨어졌다.

강대용은 그걸 보고 화들짝 놀랐다. 분명 힘을 실을 만한 간격이 아닌데, 그만한 위력을 낸 것이다.

해서 거리를 벌리고자 발차기를 날렸다.

하지만 강주혁이 피했고, 본능적인 위협을 느껴 공격을 더 이어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무슨 수련을 하셨습니까? 아무리 봐도 보통 수준이 아닌 것 같은데요.”

강대용이 진지하게 묻자, 강주혁은 조금 난감해했다.

잠시 고민하던 강형우가 끼어들려는데 강주혁이 씨익 웃었다.

“무술을 배… 아니, 이십 년 정도 했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혹시 어디서…….”

“그게, 하하하. 그건 비밀입니다. 사문이 있는 터라 밝히기 곤란하거든요.”

“아! 알겠습니다. 어쨌든 죄송하게 됐습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든든하네요. 제 제자 옆에 관장님 같은 분이 계시니까요.”

의도한 건지, 실수인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강대용이 오해하기에는 충분했다.

“제자요?”

“아, 그게…….”

강주혁은 은근슬쩍 넘기면서 강형우를 쳐다봤다.

아니라고 하기에도 이상했고, 맞다고 하기도 애매했다. 확실히 장사하는 쪽으로 보면 사부(?)가 맞았고, 가끔씩 서로 그렇게 부르기도 했으니까.

물론 주혁 형이 그렇게 한 이유는 나중에야 알 수 있었지만.

“일단은 예, 맞아요. 삼촌.”

“아! 그래서 그랬구나.”

뭔가 납득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강대용은 바지춤에 손을 닦고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어쨌든 제가 실례했습니다. 그럼 두 분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예. 감사합니다.”

강주혁도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는데, 그 짧은 순간 미묘한 느낌이 있었다.

그렇게 강대용이 사라졌다.

“하, 하하하, 재밌네. 재밌는 분이야.”

“그게, 대용 삼촌. 나쁜 사람 아니에요.”

“그야 딱 눈빛 보면 알지. 굉장히 올곧은 성격 같더라. 그런데 대체 어떤 사이냐?”

“아, 그게요.”

처음에는 체육관 밑에 새로 분식집 생겼다고 놀러왔다고 했다. 축하와 덕담이 이어지고, 잔뜩 먹고 가더니 다음 날 또 왔단다.

맛있다면서 이 동네 최고라고 했다. 그 인연으로 가깝게 지내다가, 이번에 체육관 정리했다면서 장사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강형우가 그 이후의 일을 이야기하자, 강주혁은 피식 웃었다.

“너도 참 희한하게 꼬인다. 하여간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으니까 잘해봐.”

“그런데, 형수는요?”

아까의 소란(?)이 마무리될 즈음, 나중에 연락하라고 하고 사라졌다. 물론 화끈한 형님들에서 포장한 커다란 비닐을 들고서 말이다.

“유리? 글쎄? 지금쯤 어디서 맛있는 거 먹고 있지 않을까?”

“그래요?”

“우리 유리는 나 걱정 안 해. 지금 세상에서 날 제일 잘 아는 사람이니까.”

너무 자신만만하게 웃는데, 왠지 소름이 돋았다.

확실히 주혁 형이 의식을 잃었을 때도 유리 형수만 유일하게 자신만만했었다. 언제고 깨어날 거라고, 오히려 걱정하지 말라고 날 위로해 줬던 것이다.

그러면서 꾸짖기까지 했다.

병문안 올 시간에 일이나 열심히 하란다.

그러고보니 병원 못 간 지도 벌써 넉 달이 넘었다.

“그런데 형. 언제… 일어난 거예요?”

“한 석 달 됐다.”

“육월 달에요? 그런데, 왜 지금까지 연락 한 번 안 한 거예요? 와~ 진짜 너무하다. 사람이 어떻게…….”

“그게 일이 좀 있었어. 근데, 담배 있냐? 유리가 환자라고 못 피우게 해서 말이야.”

결국 강형우도 간만에 담배를 한 대 물었다.

강주혁은 담배를 다 태운 뒤에 입을 열었다.

“사실, 할 이야기는 많은데… 불필요한 부분은 패스하고. 내가 쓰러지는 바람에 일이 많이 미뤄졌잖아?”

“아! 올해 벡스코에서 하기로 한…….”

무려 이백억짜리 프로젝트였다.

일종의 음식 박람회인데, 부산을 기반으로 성장하고 있는 식당들을 소개하는 거였다. 거기서 뽑힌 음식점 중, 두루 컴퍼니와 제휴하는 곳에 투자하기로 했던 것이다.

“일이 미뤄졌으니까 사과하러 다녔지.”

“아!”

“그 외에도 일이 많았다. 휴우~”

주혁 형이 누워 있던 건 거의 반년.

그사이에 두루 컴퍼니도 약간의 내홍을 겪었단다.

평소라면 강주혁의 절대적인 카리스마에 찍소리도 못 했겠지만, 의식불명이 된 지 넉 달이 넘은 상황.

그동안 잠재되어 있던 불만들이 튀어나왔다는 것이다.

원래 두루 컴퍼니는 이익보다는 상생이 우선이었다. 그 결과, 다양한 분야에서 수천 개의 체인점을 운영할 수 있었고 점점 안정적으로 확장했던 것이다.

“그놈의 돈이 뭔지. 우리 회사가 삼별보다 연봉 더 주는데 그 이상의 욕심을 내더라고.”

이때다 싶어 다들 자신의 프로젝트를 하자고 했다.

일단 시장에 들어간 뒤, 성적을 보고 확장을 하잖다. 골목상권이건 뭐건 간에 자본으로 밀어버리면 무조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강주혁이 곧 법이었다.

절대 그걸 용납할 성격도 아니고, 두루 컴퍼니 시작부터 함께했던 이사진들 역시 극구반대했다.

“그래서요?”

“뭐, 자기 욕심 챙기러 떠나더라고.”

일부 관리자급들이 이탈을 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회사에서 준비하던 자료들을 빼돌렸고, 다른 회사들과 손을 잡았다는 것이다.

“헐, 그러면 어떻게 해요?”

“뭘 어떻게 해? 지금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있는데.”

“예?”

“훗. 내가 호락호락하게 보였던 모양이야. 그렇게 잘해줬는데, 인간들이 참 그렇게 하면 안 되는데 말이야.”

주혁 형이 웃으면서 이야기 해주는데, 결론은 이거였다.

줄 고소 크리티컬!

순간 소름이 돋았다.

법무 팀만으로는 안될 것 같아서, 실력 있는 신생 법무법인 하나를 통으로 사버렸단다. 한 이백억 던져준다고 하니까, 개처럼 달려들었다는 것이다.

역시 이 형은 적으로 만들면 안 되는 1순위였다.

“뭐, 이참에 반란도 정리했고… 오히려 잘됐다 싶더라. 그러고 나니까 네가 보고 싶더라고.”

“하, 하하하, 이제요?”

“야, 이제라도 왔으면 됐지!”

“뭐… 그렇기는 하죠.”

강형우가 씁쓸하게 웃는데, 갑자기 강주혁이 인상을 찌푸렸다.

“어? 어디 아파요?”

“당연하지. 나 아직 환자라고. 그런데 무식한 새끼야. 그런 사람을 뼈가 부서져라 안으면 어떻게 하냐?”

“에이, 그 정도는 아닌데?”

“너 임마. 진짜 사람 죽일 뻔했어? 나 말고 다른 사람이면 정말 뼈 부러졌다. 내가 오죽하면 널 때렸겠냐!”

주혁 형이 버럭하니, 진짜 같았다.

분명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때 강주혁이 이렇게 말했다.

“나 병원 간다? 진단서 떼고 변호사 부를 거야. 한다면 하는 사람인 거 알지?”

“살려주십시오. 사부님!”

강형우는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삭삭 비니까, 그제야 강주혁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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