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5
225화 진짜 이럴 수가 있나
솔직히 돈도 돈이지만, 눈치 안 보고 살고 싶었다.
해보고 싶은 만큼 저질러도 보고 많은 도전도 해볼 생각이었다.
때문에 누군가에게 휘둘리는 삶을 선택하는 건, 먼 나중의 일이었다.
실제로 처음 장사를 결심하고 지금까지 거의 7년이 걸렸다. 그리고 지성분식을 처음 오픈하면서 단단히 결심한 게 있었다.
게을러지지 말자.
할 수 있는 데까지 노력해 보자.
그래서 주6일을 거의 빼놓지 않고 장사를 했다.
가끔 직원들 피로도가 쌓일 때는 휴일을 전후해서 며칠 쉬기도 했지만, 설과 추석 연휴를 제외하면 거의 쉼 없이 살았다.
또, 하루 14시간 일하고 최소 한 시간 이상은 공부를 했었다.
평균 수면은 5시간 전후.
이런 노력 끝에 지금에 이른 것이다.
이걸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그 사업한다는 분이 부른 가격이 20억이었다. 그리고 한 달에 월급만 오백만 원을 주겠단다.
성과급이나 옵션은 제외하고.
하지만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걸 포기해야 했다. 큰돈과 편안함을 얻는 대가로 내 노력과 인연들을 팔아넘겨야 했던 것이다.
생각해보니 오히려 손해란 느낌이 들었다.
이제 나이 서른이다. 앞으로 이십 년, 삼십 년 장사하면 그 몇 배나 더 벌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걸 감안하면 주위에 휘둘리지 않고 살 수 있다고 봤다.
어쨌든 강형우는 사업가의 제안을 거절했다.
또, 동업하자거나 프랜차이즈 만들자는 사람들과 선을 그었다.
문제는 이 관장님이었다.
일주일에 서너 번씩 찾아와서 매달리는데, 오히려 직원들이 안쓰러워할 정도였다.
“강 사장. 나 진짜 열심히 할 수 있다니까?”
“그건 알겠는데요. 잠시만요.”
강형우는 잠시 손가락을 꼽았다.
현재 지성분식 3호점은 인원이 더 필요하지 않았다.
2호점은, 은주 형수가 빠졌음에도 매출이 일부 줄어들어 아직 여유가 있었다.
남은 건 이모들 식당인데 보내기가 조금 애매했다.
얼마 전 확장을 끝내고, 그 자리를 반찬 가게 사장님이 도맡아서 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에는 거기까지 꽉 찰 정도로 장사가 잘되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모들 사이의 케미였다.
박호성과 임정은이 말하길, 아주 쿵짝이 잘 맞아서 다들 친자매처럼 지낸단다.
거기에 체육관 관장님을 집어넣는다?
그건 아니 될 말이었다.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우리 가게, 사람 더 쓸 여유 없어요. 하물며 일 배우겠다는 사람 가르칠 정도로 한가하지도 않고요.”
“어차피 옆에 큰 데로 이전한다면서? 그럼 사람 더 필요할 거 아니야?”
“이전 안 하는데요?”
“뭐?”
강대용은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 직원들을 보며 그게 진짜냐고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알려주지 않았으니 알 리가 없었다.
“여기 장사한 지 아직 반년도 안 됐거든요. 그런데 가긴 어딜 가요?”
“아니, 강 사장이 옆에 계약했다는 거 소문 다 났는데? 지금 온 동네 소문 다 펴져서 난리야, 난리!”
“누가 그래요?”
“그게 이 앞에 사장들이… 하여간 그러더라고.”
강대용도 체육관을 오래했고, 여기 아파트 생길 때부터 입주했다고 들었다. 그러니 근처 인맥들도 적지는 않겠지.
“어떻게 소문났는데요?”
“그게… 에이, 다 말해줄게. 그러니까 강 사장이 이 동네 식당들 다 죽이려고 더 크게 한다고 하더라고.”
“제가 크게 하는 거랑 다른 식당들하고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래요?”
“그야 여긴 나눠 먹기 하는 동네니까.”
눈치를 보니, 이미 그쪽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들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강형우는 크게 웃고 말았다.
“저 이 동네 상권 관심 없습니다. 이제 의미도 없고요.”
“앵? 뭐라고?”
강대용은 몇 번이나 눈을 깜빡 거렸다.
강형우는 잠시 고민했다. 이걸 말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고 말이다.
그 전에 확인할 게 있었다.
“관장님. 진짜 제 밑에서 일 배워서 독립하고 싶으세요?”
“당연하지. 우리 막내 군대 갔다 올 때까지 벌려면 십오 년은 더 일해야 해.”
“다시 말씀드리는데, 정말 힘들어요. 그만큼 각오가 되어 있어요?”
그때 강대용이 처음으로 피식 웃었다.
“새끼가 다섯이면, 짬통에서 수영하래도 한다. 내 무식해서 운동만 죽어라 했지만, 우리 자식 새끼들은 그렇게 안 만들려고 해!”
“그러면 다음 달부터 출근하세요.”
“다, 다음 달?”
“예. 옆에 가게 오픈하면 거기 바닥에서부터 일하시면 될 거에요.”
“근데… 정말 여기 분식집 아니야?”
“예.”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는 건 이유가 있었다.
옆 가게에 들어설 건, 화끈 오뎅과 형님네 버거였으니까.
***
“그래도 많이 해봤다고, 이젠 뚝딱이네.”
강형우는 새로 걸리는 간판을 보고 씨익 웃었다.
이모들 식당, 지성분식 2호점, 인성식품, 그리고 지성분식 3호점을 오픈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화끈 오뎅 2호점에 개입했고, 형님네 버거는 배산역 본점과 1호점, 그리고 3호점까지도 관여를 했었다.
또, 현우 형네 우리 통닭도 따지면 강형우가 새로 차린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경험 때문일까?
화끈 오뎅 & 형님 버거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미 사총사 형들과는 이야기가 다 끝났다. 슬쩍 물었는데, 당연히 하고 싶으면 마음대로 하란다.
사실 여기에 우리 통닭과 태성반점도 붙여볼까 했다.
하지만 두 가게는 배달을 하지 않았고, 현우 형과 혁기 형도 그 점을 인식하고 있어서 빠지기로 했다.
이 동네는 아파트 상권이 메인이었으니까.
가장 중요한 건 상호였다.
사총사 형들과 머리를 맞대고 의논한 결과, 뻔한 이름이 결정되었다.
예상대로 ‘화끈한 형님들’이었다.
일단, 처음 오픈하고 석 달간은, 창주 형과 덕수 형이 번갈아 가며 출근하기로 했다. 인성식품 이름으로 하는 첫 가게라서 그렇게 하기로 한 것이다.
이게 성공하면, 나중에는 지성분식을 더해서 더 크게 차려보잖다.
강형우는 그 말에 피식 웃고 말았다. 전에 유리 형수한테 이야기한 게 바로 그런 형식이었으니까.
이후, 헤어숍 자리를 정식으로 계약하고 홍태구를 소환했다. 디자인비 넉넉히 줄 테니 이쁘게 뽑아내라고 닦달을 했던 것이다.
여기에 간판과 장식, 메뉴판, 포스터, 전단지 같은 것까지 맡기기로 하니 며칠 밤샘을 하더라.
그 직후, 강학희 아버님이 찾아오셨다.
실측을 하고 이것저것 계산을 짠 뒤에, 거기서 머리까지 만지셨다. 손주 볼 건데 좀 꾸며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말이다.
맞다.
이틀 뒤, 은주 형수가 아들을 낳았다.
체력이 좋아서인지 두 시간도 안 되어 쑥 하고 나와 버렸단다.
그다음 날, 강형우는 간만에 강학희 아버님과 신원이 형한테 붙잡혀서 밤새 술 상대를 해야 했다. 그리고 일어나서 해장국까지 끓이고 출근해야 했던 것이다.
그날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나 들었지만, 일단 당사자가 말할 때까지는 입을 닫을 생각이었다.
어쨌든, 화끈한 형님들은 한여름 더위가 꺾일 때 정식으로 오픈할 수 있었다.
“미쳤다, 미쳤어.”
강대용은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며칠 지성분식 출근해서 정문창 밑에서 주방 뒷정리하는 걸 배웠다. 주로 하는 일은 남은 음식물을 치우고 애벌 설거지를 하는 거였다.
그런 입장에서 봤을 때, 입구를 가득 채운 손님들은 공포 그 자체였다.
“대체 몇 명이냐?”
눈으로 숫자를 세려고 해도 쉽지가 않았다. 그냥 사람 머리만 수십, 아니, 수백이 보였으니까.
“확실히 홍보 효과 대박이네요.”
오늘 하루, 절반 가격으로 드립니다.
그걸 맘카페에도 올렸고, 지난 일주일간 플래카드도 걸어놨다. 그 덕에 학생들이 구름처럼 몰렸는데, 버스 정거장 일대에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당연히 전혀 모르고 있던 사람들도 시선을 줄 수밖에.
“자! 오픈 준비합시다.”
강형우는 손뼉을 치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여기 직원들 상당수는, 이기섭 일당(?)들이었다. 정문창과 금일우의 친구들이기도 했고 월급 넉넉히 주기로 소문난 터라 정예 중의 정예들만 가려 뽑을 수 있었던 것이다.
용모 단정은 필수에, 체력 검증까지 마친 상황.
게다가 오픈 전부터 지성분식에서 일시키면서 시뮬레이션까지 끝냈다.
가장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여기는 셀프 시스템이었다.
롯X리아나 맥도X드처럼 주문하면서 계산을 하고, 음식 나오면 가져가는 식이었다. 그리고 다 먹은 뒤 쟁반째로 퇴식구에 가져다주면 되는 것이다.
이건 철저한 박리다매를 노린 방식이었다.
붙였다 뗄 수 있는 2인 테이블 수만 무려 60개.
여기에 4인용 테이블도 10개나 됐고, 보조 의자까지 있어서 오밀조밀하게 앉으면 대여섯이 함께 앉는 것도 가능했다.
이게 강형우가 고민하던, 새로운 분식집의 형태였다.
동시에 또 하나가 더 있었는데, 여긴 지성분식 음식을 포장해 와서 먹어도 된다.
돈가스에 화끈 오뎅의 국물, 그리고 라면과 김밥을 포장해 와서 튀김과 떡볶이를 먹어도 좋았다. 그렇게 따지면 실로 무궁무진한 조합까지 가능했던 것이다.
심지어 여기서 김밥을 주문하면 지성분식에서 가져온다. 노골적으로 같은 가게임을 드러내기로 작정한 거다.
“자! 관장님은 아직 여유 있으니까, 릴렉스 하시고요. 병헌이는 관장님 도와서 뒷정리 우선으로 하고…….”
강형우는 고개를 돌렸다.
“화끈 오뎅 파트는 준비 됐어요?”
“지금 튀김 때문에 바쁘니까 말 시키지 마!”
창주 형은 튀김 한다고 정신이 없었다. 특히 고추 튀김만 50인분이었고, 어묵도 20인분 이상을 준비한다고 고생하고 있었던 것이다.
“형님네 파트는요?”
“우리도 준비 끝났다.”
덕수 형이 손뼉을 팡팡 치는데, 양옆의 두 녀석은 몸을 움츠렸다. 이미 형님네 버거 3호점에서 일주일 동안 수련을 쌓았음에도 긴장한 것이다.
강형우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카운터에도 네 명이었다.
일단 주문은 두 명이서 받고, 두 명은 음식 나가는 걸 보조하는 형식이었다. 이런 식으로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인원을 넉넉하게 배치한 것이다.
강형우는 시계를 확인했다.
8월 22일, 금요일 오전 11시.
분식 카페 ‘화끈한 형님들’ 이 정식으로 오픈을 했다.
***
“씨발!”
몇몇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연신 욕설이 튀어나왔다.
물론 주인은 한 명이었다.
자칭 상가회 회장 황도양.
그는 지금 복창이 터지려고 하고 있었다.
길 건너 지성분식 하나로도 연일 매출이 감소하고 있었는데, 그 옆에 생판 듣도 보도 못한 가게가 생겼다.
문제는 그 파워가 어마어마하다는 거였다.
오픈 날부터 사흘 동안, 손님들이 미어터졌다. 줄을 서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텐트까지 칠 기세였던 것이다.
정말 거짓말 안 보태고, 즉석 떡볶이집은 그동안 겨우 한 테이블을 받았다.
그건 깁밥집도 마찬가지였는데 라면이 열 그릇, 김밥도 오십 줄이 채 안 나갔다더라.
돈가스는 그나마 배달을 해서 일당 정도를 뽑았고, 오뎅과 닭꼬지 파는 가게는 제대로 직격탄을 맞았다.
사흘 동안 손님이 단 한 명도 없었다. 학생들이 몰릴 저녁 시간에도 손가락만 빨아야 했다는 것이다.
그게 다 화끈한 형님들 때문이었다.
아주 블랙홀처럼, 이 일대 고객들을 죄다 빨아버렸으니까.
월요일인 오늘도 그랬다.
점심에 찾아오는 건 파리밖에 없었다. 저녁 시간이 다 됐음에도 이쪽으로는 애들 하나 얼씬거리지 않았던 것이다.
“진짜 이럴 수가 있나?”
황도양이 기억하기로 지난 10년간, 저렇게 손님들이 많이 몰리는 가게는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이 동네에 이렇게 사람이 많았나 싶을 정도였던 것이다.
그러니 나오는 건 욕밖에 없었다.
“사장님, 우리 어떻게 해요?”
김밥집 사장 행세를 하던 주방 이모가 한숨을 내쉬었다.
닭꼬지집 사장이라는 동생도 인상을 찌푸렸고, 칼국수집 아줌마도 성질을 부렸다.
하지만, 악재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박 경위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