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4
224화 나 좀 살려주라
“예!”
강형우는 씩씩하게 말했다.
상가 관리 아가씨도 맞장구를 쳤다.
“원장님도 빨리 옮기고 싶어 했잖아요? 들어보니까 조건이 딱 맞더라고요.”
“호호호호, 그럼 잘됐네요.”
원장님이 좋아하는 이유는 분명히 있었다.
인근에서 제일 잘나가는 헤어숍이었는데, 벌써 여기서만 8년을 했단다. 그래서 단골도 많고 수입도 안정적이라 확장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마땅한 자리가 없다는 것.
지금 가게보다 커야 하고 멀지 않아야 하는데, 좀처럼 적당한 상가가 구해지지 않았다는 거다.
그렇게 일여 년을 기다렸는데 마침 2층 체육관이 정리한다고 했다. 합기도 호신술 같은 걸 가르쳤는데 수요가 너무 없었고, 다이어트 체육 쪽으로 전환하려다 실패했다는 것이다.
결국 관장님은 다른 일을 찾기로 했다.
뭐,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한다 치고.
어쨌든 체육관 자리에 헤어숍 원장님이 들어가기로 했다.
문제는 지금 자리를 노리고 있는 가게들이 몇 있다는 거.
가장 중요한 건, 다른 사람이 들어와서 헤어숍을 차리면 안 된다는 거였다.
참고로 원장님이 헤어숍을 판다고 가정했을 때, 권리금만 3억이라고 했다.
확보한 단골만 수백 명, 여기에 시설비와 숙련된 디자이너들까지 감안하면 그것도 부족하단다.
그걸 포기하고 2층으로 간다는 건,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의미였다. 게다가 그걸로 미루어보아 한 달에 최소 사오천 이상은 벌어가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강사장님, 괜찮겠어요? 여기 세가 제법 비싼데? 이건 분식집 무시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단위가 좀 다르잖아요.”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는 게 확 전해졌다.
때문에 강형우도 자신 있게 말했다.
“예. 괜찮습니다.”
가게 세 개, 여기에 인성식품 수익까지 합치면 월 일억이 조금 안 된다. 회사를 차리고 제대로 세금 계산을 한 데다가 직원들 사대보험까지 빼고 나니 생각보다 많은 돈이 빠져나갔던 것이다.
하지만 지난 몇 달간 번 수익이 있었다. 게다가 사총사 형들로부터 기꺼이 투자(?)하겠다고 확답까지 받아놨다.
“우리 계약이 보증금 일억에 월세가 삼백오십이에요. 이게 정말 무시 못 하거든요.”
이 일대 최고의 헤어숍 원장님이 엄살을 부렸다.
강형우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조정 가능하다고 들었습니다.”
“그거야 여기 사모님하고 이야기해야죠. 호호호.”
“예. 맞습니다.”
이미 이야기는 끝내놨다.
보증금 일억 오천에 월세 삼백!
현재 지성분식 3호점이 보증금 삼천에 월세가 백만 원이었다.
그걸 기준으로 보면, 엄청나게 금액이 오른 거였다.
하지만, 이 자리는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여기 아파트 단지 입구로 들어오는 길목은 셋인데, 그 끝에서도 여기가 보였다. 게다가 버스 정거장 앞이었고 전면이 넓어서 체감상 몇 배는 컸던 것이다.
크기도 거의 지성분식 두 배였다.
안쪽에 활용할 수 있는 공간까지 계산하면 큰 고깃집 수준.
실제로 미용실이 들어서기 전까지 이름난 한우 식당이었단다.
사실, 분식집 기준으로 봤을 때 무모한 도전처럼 보였다.
하지만 강형우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 이 막힌 상권에 들어왔을 때, 예상 수익을 어느 정도는 잡고 있었다. 지하철 넘어서부터 여기 주택가와 아파트 단지 규모를 계산했을 때 최대가 오천 정도였다.
그건 착각이었다.
지금 지성분식은 입소문을 탔고, 여기에 맘 카페의 화력이 더해졌다. 10분 넘는 거리에 있는 지하철 근처 사무실 사람들까지 찾아올 정도로 맛집으로 소문난 것이다.
심지어 큰 길 건너편 부산 KBS 방송국에서도 김밥 단체 주문이 들어올 정도였다.
한 번에 퀵으로 백 줄, 이백 줄씩 시키고 있었으니까.
한 마디로 지성분식은 막힌 상권을 뚫어버린 상태였다.
여기에 추가로 더해진다면, 지하철 근처의 손님을 까지 확 끌어올 수 있다는 계산까지 나왔다.
“그런데 인테리어는 어떻게 할 거예요? 이게 진짜 중요한 건데, 저희는 다 뜯어갈 건데.”
원장님이 말하길, 내부 인테리어하고 장식에 들어간 돈만 일억이 넘는다고 했다. 그걸 2층으로 고스란히 옮길 거라 거의 철거 수준에 가깝다는 것이다.
“저는 오히려 좋습니다. 어차피 새로 싹 해야 하는 이유도 있고요.”
“그럼 딱히 합의 볼 것도 없겠네요.”
“예. 그냥 원장님이 이사하시는 날짜만 알려주시면 됩니다.”
“호호호. 저도 빨리 가고 싶죠. 위에 계약한 게 벌써 한 달 전인데요.”
원장님이 그렇게 말한 뒤, 나머지는 속전속결이었다.
열흘 뒤, 헤어숍은 2층으로 올라간다. 체육관의 경우 시설도 별로 없었고, 모레부터 공사에 들어가면 금방이라는 것이다.
강형우는 그때부터 공사에 들어가기로 합의를 봤다.
“그건 그렇고, 강 사장님. 조건이 하나 있는데요.”
“예?”
“저희가 거기 직원들 오면 머리 반값으로 해드릴 테니까. 2층 올라가도, 지금처럼 배달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디자이너만 여덟 명인가 될 거다. 보조나 견습까지 치면 거의 스무 명 규모라고 들었던 것이다.
밖에 나가서 식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 거의 절반을 지성분식에서 시켜 먹고 있단다.
강형우는 웃으면서 말했다.
“언제든 시켜만 주십시오, 고객님!”
***
-매정한 놈.
“죄송합니다, 아버님.”
-평소에는 연락도 없다가 꼭 이럴 때만 전화해?
“그게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강형우는 보이지도 않는데,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다.
-그래서, 언제부터 하면 되나?
“예?”
-날짜를 알려줘야 일정을 잡지.
“일단 열흘 뒤이긴 한데, 미리 와서 견적 내시면 됩니다.”
-흐음, 그러면… 보자. 달력이… 내가 부산 내려가는 게 12일이니까 그때로 잡지.
확인해 보니 바로 모레였다.
“예. 시간 비워놓고 기다리겠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단단히 준비해 놓고 기다리게. 그 날은 그냥 안 보낼 테니까.
“예?”
-허허. 그렇게 있다네.
그걸로 강학희 아버님과 통화가 끝났다.
그런데 대체 뭐가 있다는 거지?
순간 아차 싶었다.
은주 형수 출산 예정일이 7월 중순이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나 된 것이다.
분명히 저번 주부터 병원 다니고 있다 했는데, 그걸 깜빡했다.
“그래도 아버님이 인테리어 맡아주신다니 다행이네.”
강형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일은 조금 서두른 감이 없지는 않았다. 분명 고민하고 계획을 세웠음에도, 예정보다 일찍 진행되는 분위기였다.
그 섬세한 헤어숍 원장님한테, 그토록 과감함이 있을 거라는 상상을 못 했으니까.
“차근차근, 하나씩, 서두르지 않고.”
강형우는 자신에게 당부하듯이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이제 남은 건, 사람 구하는 거였다.
“사장님, 꼭 좀 부탁 드리겠습니다.”
이기섭이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다. 게다가 김진설과 정문창까지 부탁을 하니 거절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 새끼들이 어디서 그런 소문을 들었는지.
“일단 면접은 봐야지. 나도 가능하면 너희들이 추천하는 친구들을 뽑고 싶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애들이 소리쳤다.
“제가 진짜 일 잘하는 애들 데려오겠습니다.”
“제 친구가 그 친구입니다.”
“정말 성실하고 열심히 하는 놈이 둘이나 있습니다.”
앞다투어 말하는데, 진짜 겁이 날 정도였다.
사실 속으로는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안 그래도 사람 구하는 걸 걱정했는데, 알아서 데려오겠다니 얼마나 좋은가?
소문이 어떻게 났는지는 모르겠는데, 지성분식 3호점이 옆으로 옮겨가는 것처럼 퍼졌다.
두 배로 키워서 확장한단다.
실상은 그게 아니었지만, 어쨌든 사람이 더 필요한 건 맞았다.
그런데 얘들이 왜 이러느냐?
스스럼 없이 말하길 일은 분명히 힘들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 몇 달간 통장에 꼽히는 액수를 보니 그 이상의 뿌듯함이 있단다. 지금까지 알바했던 가게들과 비교했을 때, 충분히 주변에 추천할 만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특히 지난 6월에 딱 정직원이 됐다.
2월 중순부터 일했기에, 보너스 달이 되자마자 넉넉하게 때려 넣어줬던 거다.
그다음 날 저녁에 금일우, 이선이와 설비가 한우를 뜯었단다.
이기섭과 김진설, 정문창은 친구들 불러서 크게 한턱을 쐈고, 거기서 한참이나 날 칭송했다는 것이다.
하긴, 거의 삼백에 가까운 돈이 들어갔으니 그럴 수밖에.
어쨌든 강형우는 분명히 이야기를 했다.
가게 수익 나는 만큼, 그걸 비율로 나눠서 석 달 간격으로 보너스가 지급된다고.
이건 근로 계약서에도 명시된 상황이고, 그 돈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떡볶이집 사장의 훼방에도 매달 사천만 원 가까운 순수익이 나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사람 구하는 일이 해결되고 나니, 다른 문제가 생겼다.
바로 실직자(?) 관장님이었다.
***
“강사장! 내가 투자를 하겠다니까? 그러니까 가게 하나만 내주면 안 될까?”
“아니 그게요. 참 제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고요.”
“열심히 할게. 가르쳐 주라.”
이름 강대용, 나이는 마흔 여섯이었다.
체육관 관장님답게 나이보다 노안이었고, 체격은 진짜 나와 비슷했다.
그러면서 보여주기를, 체력에는 자신이 있다면서 서전트 점프를 뛰더라. 무려 80㎝나 뛰었던 것이다.
그런 뒤, 소매를 걷고 알통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요즘 가게 조폭들 많이 온다면서? 내가 다 때려잡아 줄게. 걱정하지 말고.”
사실 조폭으로 보이는 손님들이 부쩍 늘어난 건 사실이었다.
동글동글한 덩치에 핑크색, 보라색의 화려한 꽃무늬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문신들이 장난이 아니었다. 게다가 뭐가 불편한지 음식 나오기 전까지는 인상만 쓰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먹고 나서는 웃고 나갔다.
한 술 더 떠서 단골이 되겠다느니, 사무실까지 배달 좀 해주면 안 되냐고 부탁까지 하고 가더라.
이후 최성만이 나 돕겠다고 이상한 소문을 퍼뜨린 모양이었다. 과거의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함부로 덤비면 작살난다고 했던 거다.
게다가 그게 부풀려져서, 격투기 선수라느니 전직 조폭이라는 말까지도 나왔다.
물론 헛소문이었지만, 내 체격과 덩치가 있다 보니 다들 무시하지 못했다.
특히 동네 양아치들이 금설비한테 자주 껄떡댔는데 한번 노려보니 바로 찌그러지더라.
어쨌든 가게에 손님이 넘쳐나니 조폭도 양아치도 함부로 하지 못했다. 위협적인 인상들도 부처님처럼 웃고 나가게 됐던 것이다.
“그니까, 바닥부터 배우겠다고. 내가 청소 설거지 다 잘해. 요리는 가르쳐 준 대로 무조건 할게.”
“그게요… 관장님?”
“강사장, 우리 사이가 보통 사이가 아니잖아.”
솔직히 단골 손님과 식당 사장 사이였다.
가끔 체육관 애들을 끌고 와서 브레이크 타임을 훼방 놓기도 했고, 달 결제 해주면 안 되냐고 했다가 한 달하고 그만두었다.
식대가 거의 백만 원 가까이 나온 것이다.
혼자 와서 먹는 것도 아니고, 툭하면 체육관 애들하고 같이 식사를 했으니 그럴 수밖에.
“제발 한 번만 도와주라. 나 딸 셋에 아들 둘이다. 내가 가장인데 어떻게든 입에 풀칠은 해야지. 나 못 벌면 우리 와이프 집 나가요.”
체육관이 잘 안 풀린 것도 있지만, 재산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자기 말로는 무식해서, 돈 쓸 줄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허튼 데 안 쓰고 이십 년 넘게 꼬박꼬박 모아놓은 돈이 십억이나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왜 나한테 매달리는지 모르겠다.
“좋아. 이렇게 하자.”
“예?”
“시키는 거 다 할게. 내가 짬통만 치우래도 다 한다고. 그러니까 일단 시켜줘 봐. 써보고 나중에 진짜 마음에 안 들면 내치더라도 받아만 달라고!”
솔직히 이렇게까지 하는데 마음이 안 흔들릴 수가 없었다.
실제로 몇몇 분이 지성분식 보고 가서는 투자를 하겠다고 했다.
가게 차릴 테니까, 같이 좀 하잖다.
일단 동업은 무조건 거절이었다.
밑바닥부터 배우겠다고 온 사람도 있었는데, 주방 정리시킨다고 하니까 20분도 안 돼서 나가더라.
그게 다가 아니었다.
프랜차이즈 업자만 벌써 열 명이 넘게 다녀갔다. 온갖 감언이설로 꼬시는데, 몇 번이나 유혹에 넘어갈 뻔했던 것이다.
가장 크게 배팅한 사람이 20억까지 불렀다.
이모들 식당 제외하고, 2호점과 3호점. 그리고 권리를 팔라고 했다. 대신 회사 이사까지 시켜줄 테니까 관리만 하면서 편하게 하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강형우는 거절했다.
왜냐?
꿈이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