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7
217화 큰 사장님 아니십니까
“아오! 씨발.”
어제 마칠 때만 해도 이쁘다 이쁘다 했는데, 그 비싼 LED 간판이 썩은 계란 투성이었다. 마치 시금치를 갈아서 뿌린 것처럼 짙은 녹색의 액체들로 범벅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흉측했다.
거기에 약취까지 진동하니 혈압이 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와,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하네.”
지금은 5월.
보통 계란의 유통기한이 한 달이다.
냉장 보관에 온도 조절을 잘하고 미세한 진동마저 주지 않으면, 거의 두 달에서 최장 석 달까지도 멀쩡히 먹을 수 있었다.
그걸 기준으로 봤을 때 이 정도로 썩히려면 실외에서 최장 한 달 이상을 놔뒀다는 게 된다.
아니면, 애매한 상온에서 데우고 식히고를 반복하며 숙성시켰다는 거다.
어쨌든 이 계란의 위력은 어마어마했다.
악취가 장난이 아니었다. 똥차 스무 대가 와도 구수하다 싶을 정도로 농축된 비린내가 끔찍하게 퍼져 나갔던 것이다.
진짜 식욕이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먹던 것도 토할 수준이었다.
비위 좋은 공지혜조차도 겨우 토가 나오려는 걸 참고 있었으니까.
“일단 경찰 오기 전에 사진부터 찍어놓자.”
“형, 제가 찍을게요.”
강정우가 핏발 선 눈으로 폰 카메라를 들었다. 게다가 거기에 그치지 않고, 썩은 계란으로 도배된 입구 문을 닦아서 열기까지 했었다.
어쨌든 증거 확보를 하고 청소를 위한 만반의 준비까지 갖췄지만, 경찰들은 바로 오지 않았다.
결국 락스와 퐁퐁을 풀고, 다들 장갑에 앞치마까지 완전무장을 한 상태로 대기해야 했었다.
경찰이 온 건, 거의 15분 이후였다.
지구대에서 걸으면 복지관을 너머 신협까지 5분밖에 안 걸린다.
거기서 지성분식까지도 겨우 5분이면 충분했다. 그런데 그렇게 왔음에도 뭔가 서둘려는 기색이 보이질 않았다.
“아! 씨발.”
역시 경찰도 사람이긴 사람인 모양이었다. 게다가 젊은 경찰은 차 뒤로 돌아가 토하려고도 했던 것이다.
잠시 후,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경찰 한 분이 확인을 했다.
“저기, 강형우 씨?”
“예.”
“신고한 분 맞으시죠?”
“예. 제가 전화했습니다.”
경찰은 확인하자마자 좀 떨어지자고 손짓을 했다.
역시나 냄새가 너무 지독했던 모양이었다.
“아오, 죄송합니다. 일단 기본적인 상황부터 질문 좀 하겠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그게요.”
강형우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이야기하려 했다.
어제 열 시 반 넘어서 마치고 택시 타고 집에 들어갔다.
너무 피곤해서 샤워하고 12시 넘어서 잠들었는데, 이른 새벽부터 폰이 울렸다. 상가 경비원 중에 잘 알던 아저씨가 몇 번이나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결국 네 시간도 못 자고 나왔는데 이렇게 된 거다.
“알겠습니다.”
경찰이 그걸로 끝내려고 하자, 강형우는 황당했다.
“아니, 저기요. 이거…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게, 조사는 할 겁니다. 근처 CCTV나 확인해서 찾으면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럼, 처벌은 어떻게?”
“그게요. 보통 이런 경우는 경범죄로 들어가서 벌금 10만 원 이하로 나오죠.”
아직 해가 뜨지 않아서인지 경찰의 표정은 선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강형우는 미묘한 비웃음 같은 걸 느낄 수 있었다.
“그게 전부입니까?”
“법이 원래 좀 그렇습니다. 사람 다친 것도 아니고, 그냥 쓰레기 투기 수준인데…….”
“그럼 저희는요? 이거 손해배상이라도 받아야죠.”
“그건 저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따로 변호사를 구하시든가 하셔야 합니다.”
순간 욕이 나올 뻔했다.
아니, 남의 가게 입구를 이렇게 만들었는데, 경범죄란다.
벌금도 고작 10만 원 이하.
“하, 하하하. 하하.”
진짜 실성한 사람처럼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잠시 숨을 고르려고 했는데 악취 때문에 그것조차 쉽지 않았다.
강형우가 울컥하는데, 그때 강정우가 소리쳤다.
“형, 호스 연결 다 됐어요.”
잠시 고민하던 강형우는 손을 저어 스톱시키고는 경찰한테 다시 확인했다.
하지만 결과는 같았다.
“와. 이거 진짜 말도 안 되는데.”
지금 시간은 오전 6시 반, 거의 세 시간도 못 자고 온 인정둥이를 생각하면 마무리가 우선이었다.
강형우는 결국 신호를 내렸다.
촤아아아아!
안쪽 고압호스에 연결된 호스가 미친 듯이 물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락스를 뿌리고 해서 냄새를 지웠는데, 일이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보도블럭 사이 사이로 물이 흐르면서 더 심하게 번지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걸 다 치우는 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하지만 아직 찜찜함은 남아 있었다. 너무도 오랜 악취에 코가 마비되었던 것이다.
“민원 넣고, 이 지랄까지 했다 이거지?”
진짜 눈앞에 있으면 아구창을 다 뽑아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어쨌든 강형우는 경찰들을 보내고, 그렇게 마무리를 지었다.
그런 뒤, 가까운 편의점을 가서 담배 한 보루를 사서 연락을 준 경비원 아저씨한테 드렸다.
그렇게 정리하고 나니 벌써 8시.
영업을 위해선 일단 속으로 삭히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결코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진짜 걸리기만 해봐라!”
***
사흘 동안, 아무 연락이 없었다.
참다 참다 강형우가 연락을 하니 돌아오는 말은 하나였다.
누가 그랬는지를 모르겠단다.
그게 더 열 받고 성질이 났다.
진짜 대한민국 공권력이 이렇게 무능하나 싶었다. 민중의 지팡이가 곰팡이만도 못하다는 소리가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왜냐?
강형우는 누가 그랬는지 벌써 파악했다. 범인은 못 잡아도 윤곽은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사실, 혹시나 싶어 준비를 했다.
위생 검열 나온 공무원 아주머니가 일러주었다.
일단 포장해 간 음식에서 냄새가 난다. 그러면서 오래된 재료를 쓰는 게 아니냐 했다.
또, 주방에 바퀴벌레가 있는 것 같단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직원들이 음식을 비위생적으로 만든다고도 했다.
그게 민원 들어온 내용이었다.
원래라면 알려주지 않는 게 원칙.
하지만 본인이 판단한 결과 거짓 신고에 가까웠다. 근래에 가본 어떤 가게보다 깨끗하고 위생적으로 잘되어 있다는 것이다.
슬쩍 일러준 게 그래서란다.
그때 강형우는 느꼈다.
이 동네 사람들도 바보가 아니었다. 달리 방법이 없어서 그냥 지냈을 뿐, 근처 상가들의 패악질을 몸소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동시에 진짜 동네 사람들이, 지성분식을 도와주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건 단골손님인 경비 아저씨도 마찬가지겠지.
어쨌든 그렇게 얻은 정보를 놓고 고민하다가 두루캅에 연락을 했다. 만약을 대비해 다른 식당들이 어떻게 하는지를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 결과, 기존의 카메라를 빼고 최신형 200만 화소짜리로 교체를 했다.
이게 가장 큰 지출이었다.
문제는 사건이 벌어진 시각이 야심한 새벽이라는 것!
무엇보다 이쪽 편 가로등이 희미해서 형체는 보였지만 얼굴이 명확하게 나오질 않았다. 게다가 야간 주차 차량 뒤에서 썩은 계란을 던진 터라 전체적인 모습도 확인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밝은 LED 조명 덕에 얼굴 쪽이 비치고 말았다.
힙합 모자에 검은 후드 티, 그리고 노란 마스크였다.
강형우는 홍태구한테 파일을 넘겨서 최대한 고화질로 출력을 했다. 그리고 그걸 가지고 지구대로 찾아갔다.
“예?”
“뭔가 사정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게 접수가 되지 않아서 말이죠.”
경찰의 말이 너무 황당했다.
“제가 신고를 했는데요? 그리고 형사분께서 나와서 사진 찍고 이야기도 다 했는데…….”
“아마 담당자가 실수한 모양입니다. 죄송합니다.”
어째어째 설명을 하는데, 누굴 바보로 아는 모양이었다.
딱 봐도 대충 덮어버리려는 느낌이랄까?
“원래 이런 경범죄는 비일비재한 일이라서, 경찰 인력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게 기록이 없으니 확인이 잘 안 되네요.”
결론은, 다시 한번 신고하시죠, 였다.
진짜 돌아버릴 것 같았는데 갑자기 뒤쪽에서 누군가 불렀다.
“거기, 분식집 큰 사장님 아니십니까?”
“예?”
“맞네. 딱 보이 알겠네.”
전혀 모르는 아저씨가 웃으면서 다가오는데, 지구대 경찰이 바짝 굳어버렸다.
“김 순경, 무슨 일이고?”
“아, 박 경위님… 그게…….”
“퍼뜩 말해 바라. 와? 죄짓나?”
말투만 들어보면 경찰이 아니라 범죄자였다. 그런데 웃으면서 순경한테 말하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었다.
“그게 사건 접수가…….”
“누가 나갔는데?”
“야간 당직이, 확인해 보니 임병식 경장입니다.”
그 순간 박 경위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 새끼, 또 지랄이네. 됐고. 니는 니 볼일 봐라. 내가 알아서 하께. 그리고 사장님은 저 쪼까 보입시다. 담배, 태우십니까?”
“아, 예.”
결국 강형우는 박 경위가 뽑아준 믹스커피를 들고 지구대 뒤편으로 향했다.
“큰 사장님. 이제 얼굴 뵙네요.”
“저, 아세요?”
“허허, 큰 사장님은 저를 모르는데, 전 잘 알죠. 우리 아들이 회장 아입니까.”
대체 무슨 대화가 이렇게 널뛰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아들이 회장이라니…….
“어? 설마?”
“예. 맞습니다. 우리 아들내미, 초등학교 학생 회장입니다.”
순간 강형우는 마시던 믹스커피를 뿜을 뻔했다. 살짝 긴가민가 했는데, 이제야 확신이 섰던 것이다.
자신을 큰 사장님이라고 불렀던 사람은 딱 한 명이었다.
전에 3호점 오픈했다고 맘카페에 글을 올렸을 때, 한 초등학생이 고맙다고 긴 글을 남겼다.
자가 엄마가 우리 가게 김밥 먹고 나서 미안해하더란다.
지금까지 음식 같지도 않은 거 해줬다고 말이다.
이후 그 엄마는 요리 학원을 끊었다고 했고, 아빠가 가장 좋아하더라고 했다.
그 사연을 떠올리자, 박 경위도 눈치를 챘는지 씨익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보시믄 아시겠지만, 내 하는 일이 좀 거칩니다. 최근에 진급하면서 이쪽으로 와서 이제 좀 편하기는 한데, 얼마 전까지는 남부서에 있었습니다.”
“아, 예.”
“형사들이 좀 그렇습니다. 음식은 맛으로 먹는 게 아니고, 살라고 쑤시 넣는 거라서 맛을 잘 몰라요. 그래가 울 마누라도 음식 잘 못합니다.
형사 마누라가 그렇단다.
남편 다쳐서 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혹시나 애한테 무슨 일 생기는 거 아닐까 하면서 조마조마하게 산단다. 때문에 밖으로 나도는 일은 엄두도 못 낸다는 것이다.
“인자, 일로 와서 여유가 생겼더니 갑자기 요리 학원 다닌다고 해서… 허허허, 요즘 호강하면서 삽니다.”
“정말 다행이시네요.”
“내한테 큰 사장님은 은인이죠. 그래서 오다 가다 얼굴 몇 번 봤습니다. 형사가 눈썰미로 먹고사는 것도 있고, 딱 보니 사장님 같아서요.”
“아! 그래서……”
“그래, 아까 무슨 일인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박 경위가 말투까지 바꿔가며 조심스럽게 묻자, 강형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병선 삼촌한테 전화할까 고민했었다.
하지만 그때 그 일이 찜찜하게 끝난 것도 있었고, 고작 이런 일로 연락한다는 게 미안했다. 해서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 하고 직접 지구대를 찾았던 것이다.
입구에서 실랑이하며 복창이 터지는 줄 알았는데, 정말 다행이었다.
세상에 이런 인연도 있다니.
일단 강형우는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실은… 이렇게 된 겁니다.”
“하, 미친놈 새끼들이네. 비싸서 못 먹는 사람도 천지인데. 하~ 솔직히 썩은 계란 독하죠. 저 막 형사 됐을 때, 나쁜 놈 잡다 터진 적 있거든요.”
쌍팔년도 시절에는 다들 그랬단다. 어디서 맞고 들어오면 계란으로 멍든 데를 문질렀다는 것이다.
그런데 노상 다치고 오니, 형사 책상에 계란이 떨어질 날이 없었다고 했다.
“그때 멍든 거 문지르다가, 반장이 뒤통수 까는 바람에 퍽 하고 터졌거든요. 와~ 썩은 내가 장난이 아닌 게… 그렇게 오래됐을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박 경위가 크게 웃으니 강형우도 참을 수 없었다.
그렇게 마주 보며 기분 좋게 웃고 나니, 불편했던 속이 후련해졌다.
그때 박 경위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