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1
211화 정신 차려
상상을 해봤다.
이영제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 혹은 녀석이 주방에서 나오면 일단 멱살부터 잡을 거다.
그런 뒤, 일단 두들겨 패버리는 것이다.
죽만 먹고 살게 이빨을 모조리 작살내고, 얼굴 못 들고 다니게 멍투성이로 만들고, 음식도 못 하게 손모가지를 꺾어버리고…….
몇 번씩 그런 통쾌한 생각을 하니, 짜증이 많이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게 가능하겠는가?
지금이 쌍팔년도 조폭 시대도 아닌데.
솔직히 그런 상상이 재밌기는 했다. 쓰러진 이영제를 밟고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했던 것이다.
“이 쓰레기 같은 새끼가, 우리 가게에서 일하다가 짝퉁으로 차린 게 이겁니다.”
혹은.
“이 개새끼가 키워준 은혜도 모르고 주인을 물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 앞에서 망신 주는 것도 떠올려 봤다.
그 덕에 혈압이 많이 가라앉았고, 울컥하던 감정도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그렇게 해봐야 남는 건 하나도 없었고, 오히려 전과나 하나 달겠지.
어쩌면 후폭풍으로 지금 가게가 더 위험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조금만 이슈가 되도, 혹은 사소한 오해만 생겨도 인터넷에서는 가루가 되도록 까이는 세상이었으니까.
그 여파는 현실 장사도 어렵게 만든다.
그걸 알기에 최대한 자제하려고 했는데, 간판과 가게 인테리어, 그리고 메뉴판을 보니 화가 안 날 수가 없었다. 말 그대로 지성분식을 고대로 가져온 게 티가 너무 났던 것이다.
이건 내 가게를 잡아먹겠다는 의도였다. 너무 명백해서 속일 수도 없는 그런 상태인 거다.
하지만 피식 하고 웃음부터 나왔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영제를 보니, 욱하는 감정들이 순식간에 사라졌으니까.
눈이 마주치자마자 이영제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마치 박제가 된 것처럼. 게다가 많이 놀랐는지 식은땀까지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니 애처로웠다.
그래도 지가 잘못한 건 아는 모양이네.
강형우가 뭐라 말하려는데, 마침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손님, 주문하신 라면하고, 영재김밥 나왔습니다.”
첫손님이라 제일 먼저 음식이 나온 모양이었다.
그걸 보고 수저를 챙기는데, 곧이어 하와이안 돈가스까지 나와 버렸다.
강형우는 이영제를 안 보려고 아예 고개를 돌려 버렸다.
“일단 맛있게 보이기는 하네.”
라면은, 지성분식의 것과 거의 비슷했다.
다만 사리면에 스프를 조리하고 야채를 넣는 방식이 아닌, 씬라면을 끓인 것 같았다.
아무래도 그게 손이 덜 가기는 하겠지.
제일 먼저 라면 국물 맛을 보려는데, 다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사장님.”
이영제가 바로 옆에서 말하는데, 어이가 없었다.
“제가 왜 사장입니까?”
“아, 아니… 형님.”
“왜요?”
강형우가 존댓말로 묻자 이영제는 말문이 막히는 모양이었다.
“그게… 이러시면 어떻게 합니까?”
“뭘요?”
“여기는 남의 가게인데, 왜…….”
이영제가 우물쭈물하면서 입술을 달작거렸다.
그 말과 행동이 의미하는 건 뻔했다. 지성분식 놔두고 여기서 먹느냐는 그런 뜻이었던 거다.
“누구신데 남의 가게 이야기하시는 겁니까?”
“예? 아니 형…….”
“전 당신 형, 아니거든요. 사람 잘못 보신 모양입니다.”
먼저 인연을 끊어버린 건 이영제였다.
그때는 이런 모습으로 재회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
아니, 아니었다.
생각해 보니 그게 더 말이 안 된다.
이렇게 떡하니 지성분식 길 건너편에 차렸으면 언젠가는 마주칠 걸 상상했을 거다.
못해도 몇 대 두들겨 맞을 각오 정도는 했겠지.
그럼에도, 이런 식으로 행동하니 당황하는 게 눈에 띄게 보였다. 정신이 나갔는지 이제는 횡설수설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게 형, 이게 원래 그래서가 아니라요. 그게 어쩌다 보니까, 그냥…….”
“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시고요. 라면 불거든요?”
“그냥 새로 해드릴게요. 아니, 그냥 가시면 안 될까요?”
이게 어쩌면 본심이었던 모양이다.
강형우는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영제야, 정신 차려.”
“예?”
“내가 너 그렇게 가르쳤냐? 나 손님으로 온 거야. 손님!”
“아! 그게…….”
“손님 앞에서는 항상 웃으라고 했지? 그게 첫 번째고, 그다음은 무조건 불편하지 않게 하라는 거였잖아. 내가 그랬어? 안 그랬어?”
“그, 그랬습니다.”
영재분식에서 이영제가 대답하고, 강형우가 교육시키고 있었다. 조용하게 정곡을 찔렀고, 차분하게 해야 할 일들을 일러주었던 거다.
실로 황당한 상황.
특히 여직원들은 그 광경을 보면서 몇 번이나 혼란을 느껴야 했다. 도통 지금 광경이 이해가 되질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가게 분위기도 조금 묘해지고 있었다.
약간의 소란에 다른 손님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는데, 마치 사장인 이영제가 벌받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강형우는 그런 느낌을 받자 바로 정리해 버렸다.
“자, 난 이제 식사! 넌 손님들한테 예의를 갖춰야지. 기다리게 하는 건 잘못하는 거니까, 빨리 가서 음식 만들어야 할 것 아니야.”
강형우가 어깨를 토닥거리자, 그제야 이영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터덜터덜 걷더니 슬그머니 주방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저러다 사고 날 텐데?”
강형우는 조금은 걱정을 했다.
주방은 정말 위험한 곳이고, 바쁠 때는 전쟁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곳에서 정신줄을 놓으면 아차 하다 크게 다치기도 하는 것이다.
“됐다. 신경 끄자.”
이영제와 툭탁거리는 건 나중이고, 제일 우선인 건 지성분식이었다.
떨어지는 매출에 비례해서 신원이 형의 자존감이 깎이고 있었다. 이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어쩌면 이전의 대인기피증이 부활할 가능성이 있었다.
때문에 여기 음식을 먹어보고 대책을 세우는 게 중요했다.
정말 지성분식보다 나은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는지를 파악해야 했으니까.
강형우는 다시 라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면이 약간 퍼졌지만 크게 이상한 건 아니었다. 다만 너무 지성분식 스타일이라 연신 한숨이 나왔다.
파, 마늘 기름을 내서 매운 고추와 야채를 볶고, 이걸 라면스프와 배합해서 양념장을 만든다.
약간 짬뽕 맛이 스며들게 하는 방식이었다.
지성분식에서는 이걸 3,500원 받았으니 손님들한테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영재분식은 4,000원이었다.
게다가 호불호도 갈릴 듯했다.
지성분식 3호점 반응에서도 나왔듯이 라면은 약간 자극적인 편이었다. 그런데 여기는 그것보다 더 자극적이라 취향을 탈 가능성이 컸던 것이다.
아무래도 씬라면을 써서 그런 모양이었다.
“육수도 문제네. 뭐, 이 정도면 그래도 잘 흉내 냈다고는 볼 수 있으려나?”
입안에 넣었을 때는 거의 90% 정도가 비슷했다.
씹고 국물까지 마시면 80% 이하로 떨어진다. 맛의 깊이가 부족했고, 밸런스에서 미묘한 이질감이 느껴졌던 것이다.
그다음은 김밥이었다.
이건 동네 김밥집들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었다. 확실히 재료가 많이 들어가니 크고 고급스럽게 보이기는 했는데, 딱 그 정도의 맛이었던 것이다.
병신같이.
무조건 많이 넣는다고 맛있는 게 아닌데, 방향을 잘못 잡았다. 게다가 맛간장 흉내를 낸 건 맞는데 여기에 미묘한 이질감이 있었다.
“레시피북을 카피했지만, 아무래도 조리시간까지는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모양이네.”
각종 야채와 육수가 완전히 섞여들어 갈 때까지 적정 시간을 고아야 했다. 게다가 어떤 재료는 압력솥을 써야 했고, 따로 조리해서 들어가는 것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그냥 다 때려 넣고 끓인 거였다.
“그래도 다행이긴 하다.”
실제로 강형우가 맛간장을 만들 때, 정말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었다.
수십 군데 김밥집을 돌아다니며 맛을 봤고, 인터넷 레시피로 만들어 맛간장만 수십 드럼통은 나올 정도였다.
그런 고생 끝에 얻어낸 거니, 카피하는 것조차 쉽질 않겠지.
“이제 돈가스인데…….”
비주얼은 지성분식과 판박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먹는다면 같은 가게로 볼 정도였던 것이다.
강형우는 일단 썰어서 입으로 한 점 넣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까지는 거의 같은 맛이었다.
하지만 네 번째 씹는데 으드득 소리가 들렸다. 힘줄을 제대로 손질하지 않아 그대로 씹혀 버리고 만 것이다.
확실히 이런 부분은 모를 수도 있었다.
애초에 지성분식에서 밑작업 하는 이는, 강형우가 믿고 맡기는 사람들밖에 없었다.
공지혜와 순이 이모, 그리고 신원이 형.
때문에 이영제는 이런 작업을 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고기 적당히 잘라서 소금, 후추 간하고 두드려 펴는 것만 보였을 테니까.
만약 이영제가 돈가스를 전문적으로 배웠다면 놓치지 않을 실수였다. 그냥 지성분식에서 일한 경력만 가지고 가게를 차렸기에 이런 불량이 나온 것이다.
어쩌면 직접 만들지 않고 공장에서 받아 쓰는 물건인지도 몰랐다.
그랬다가는 나중에 난리 날 텐데?
“일단 평균 이상은 되지만, 딱 그 정도네.”
확인하기 위해 전부 먹었지만, 약간의 소란 때문인지 양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결국, 강형우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새싹 김밥까지 시켰다.
이게 아마 유일한 성공인 것 같았다.
***
“너, 뭐냐?”
“아니, 형. 그게요…….”
이영제가 할 말 있는 것처럼 부르더니, 거의 10여 분 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강형우는 왈칵 짜증이 났다.
먹은 거 카드로 계산하고 나와서 옆 골목에서 담배 한 대 피우며 머릿속을 정리 중이었다.
의외로 맛이 못하다는 것.
동시에 지성분식과 거리를 두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 외에도 몇 가지 아이디어가 막 생각나는데, 그 흐름을 이영제가 깨버렸다.
“불렀으면 말을 해야지?”
“예. 그러니까…….”
강형우는 또다시 참고 기다렸다.
그러고 보니 스타일이 많이 바뀐 것 같았다.
범생이처럼 보이던 머리카락은 파마를 해서 올렸다. 지난 일 년간 꾸미지도 않고 다니던 녀석이 화장도 하고 눈썹 손질도 했고, 네일까지 받은 것 같았다.
그러다 뭔가가 눈에 들어왔다.
“손가락 왜 그러냐?”
“아! 살짝 실수를 좀 했습니다.”
하여간 정신줄 놓고 주방 들어갈 때부터 불안불안하더니, 기어코 손가락을 썰었던 모양이었다.
강형우는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휴우~
한숨과 함께 뿌연 연기가 두 사람 사이를 채웠다.
“그거 괜찮은 거냐?”
“예. 살짝 베인 거라서, 좀 지나면 피가 멎을 것 같습니다.”
순간 옛날 생각이 나더라.
지성분식에는 항상 구급상자가 있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다칠지 모르는 일이고 술 취한 손님들에게 필요한 경우도 있었으니까.
물론 주로 애용(?)하는 건 정은혜였다. 지금이야 칼질 하나는 겁나게 잘하지만, 옛날에는 이틀이 멀다하고 김밥 대신 손가락을 썰었던 것이다.
그때마다 강형우가 소독해 주고 밴드까지 붙여줬다.
그건, 이영제도 예외는 아니었다.
잠시 그런 생각하는데, 이영제가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형님.”
“어.”
“저 이제 형님 직원 아닙니다.”
기껏 용기 내서 한다는 말이 저거라니, 참 한심스럽게 보였다. 지난 일 년간 가르치면서 그렇게 자신감을 가지고 살라고 했건만.
“알아. 안다고.”
“그리고, 저희 가게 안 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게 제일 하고 싶었던 말이겠지.
어쩌면 그게 당연한 건지도 몰랐다.
이영제에게 있어 강형우는, 이제 친한 형도 아니요, 음식을 가르쳐 줬던 선생도 아니며, 월급 주던 사장도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피하고 싶은 사람 1순위일 터.
따지면 이 녀석은, 배신자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래서, 그렇게 해줄까?”
“예. 가능하면 이쪽으로도 안 왔으면 좋겠습니다.”
헐, 적반하장도 정도가 있지. 아예 다니질 말라고까지 하니 기가 막혔다.
강형우도 사람이니, 이 정도면 인내심은 충분히 발휘했다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