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9
209화 거기 사장이
“지혜야, 천천히 알려줘.”
“예. 오빠.”
공지혜는 최연경을 데리고 김밥대 앞에 섰다. 어느 정도나 되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경력 10년이라고 했으니 몇 번 해보면 금방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설비도 두 시간 정도 따라 하더니 거의 다 외웠던 것이다.
물론 칼질이 서툴러 김밥이 몇 개씩 붙는 경우가 있었지만.
“일단 기본 김밥은요. 우엉이 이 정도 들어가고요. 단무지, 어묵, 계란 지단, 햄, 시금치하고 당근. 이렇게 넣으면 돼요.”
공지혜가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보여주자, 최연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직후, 최연경이 따라하더니 몇 번 고개를 갸웃거렸다.
“의외로 들어가는 게 많네?”
“예. 제일 중요한 건, 우엉하고 시금치예요. 우엉은 좀 더 들어가도 되는데, 시금치는 많이 들어가면 조금 써요.”
최연경은 알았다는 듯 다시 한 번 손으로 재료들을 잡아갔다. 그러면서 이것저것 집었다 놨다를 반복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지켜본 강형우는 자신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최연경은 손끝으로 조금씩 집어보면서 무게를 느끼는 데 집중하는 게 보였다.
순간 덕수 형이 밥버거 연습할 때가 떠올랐다.
손가락 감각으로만 거의 5g 전후로 맞추려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던가?
전자저울에 올려놓으면서 하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거의 비슷한 느낌까지 났던 것이다.
그렇게 완성된 김밥을 썰자, 다들 맛을 봤다.
확실히 공지혜가 만든 것과 맛의 차이가 없었다. 애초에 누가 말든지 90% 정도는 비슷하게 준비해 놨지만, 이건 거의 같은 사람이 말았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던 것이다.
일단 우엉과 시금치의 양이 절묘했다.
가장 중요한 건 두께였다. 왕김밥답게 엄지손가락 두께인 2㎝에서 2.2㎝ 간격으로 썰었는데, 거의 크기가 일정했던 것이다.
역시 경력자는 경력자였다.
“혹시 집에서도 김밥 많이 만드셨어요?”
“아뇨, 그건 아닌데, 장사 잘되는 집에서 오래 일했었거든요.”
충분히 납득이 되는 이야기였다.
하루 김밥 백 줄만 만든다 치자.
일 년 365일에 10년 하면, 무려 삼십육만 오천 줄이었다.
열심히 일한 강형우와 공지혜도, 경력 면에서는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게 봤을 때, 지금의 실력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강형우는 피식 웃으면서 이기섭을 불렀다.
“오늘 아침은 라면에 김밥, 괜찮겠어?”
“당연하죠.”
대답 직후 멀뚱멀뚱하게 있자, 홍성구가 이기섭의 옆구리를 가볍게 찔렀다.
“너보고 라면 끓여보라는 거잖아.”
“정말요?”
“한 번 제대로 만들어봐.”
홍성구가 슬쩍 일러주자 이기섭이 웃으면서 주방으로 들어갔다. 이제 자신을 믿고 맡겨주는 메뉴가 생겼다는 것이 기뻤던 모양이다.
그사이 공지혜와 최연경은 다른 김밥들을 말았다.
“참치는 거의 이 정도 들어가요. 여기에 깻잎하고 양파 마요네즈 소스가 두 숟가락 듬뿍, 예. 거의 이 정도고요.”
“소스가 너무 많은 거 아니야? 보통은 그냥 한 번 쭉 짜는데?”
“그건 시판 마요네즈 그대로 쓰는 집이고요. 저희는 양파 다져서 넣는 거라 이 정도 들어가도 안 느끼해요.”
“아, 그렇구나.”
“돈가스는요, 튀김을 겹치게 놓으면 안 돼요. 많다고 좋은 게 아니라 더 느끼해지거든요.”
그런 식으로 종류별로 하나둘씩 김밥을 만들어보는데 어느새 열 줄이 넘게 나왔다.
강형우는 사람 숫자를 셌다.
일단 공지혜, 홍성구, 인정둥이, 금씨 삼남매에 이기섭, 김진설과 정문창이 있었다. 여기에 자신과 최연경까지 더하니 모두 열두 명이었다.
“많긴 많네.”
일반 분식집치고는 참 많은 사람들이 일한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겨우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손님들이 밀려들었으니, 아직 여유 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사이, 이기섭이 소리쳤다.
“라면 다 됐습니다.”
홍성구와 인정둥이가 움직이고, 금세 한 상이 차려졌다.
라면 열두 개, 김밥이 스무 줄이었다. 일단 먹다가 모자라면 나중에 더 하기로 하고 먼저 식사부터 하기로 한 것이다.
강형우는 일부러 최연경이 만든 김밥들만 맛을 봤다.
이 정도면 합격이었다.
그 바쁜 와중에도 금설비가 만들었던 김밥들 몇 개를 탈락(?)시킨 걸 생각하면, 확실히 실력자가 맞았다. 월수금이라는 조건이 아쉬웠지만 월급을 더 주고서라도 붙잡을 만하다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제가 뭐라 불러드리는 게 좋을까요?”
“예?”
“그러니까 저보다 한참 연상이신데… 누님이라 부를까요? 아니면 최연경 씨?”
순간, 최연경이 김밥을 먹다 말고 손으로 입을 가렸다.
“쿡, 컥컥. 쿨럭.”
연이어 기침을 하자, 공지혜가 바로 물을 가져다 줬다.
최연경은 그걸 마시고 겨우 거친 호흡을 정리했다.
그런 뒤, 손을 저었다.
“어휴, 죄송해요. 잠깐 놀라서… 기침이 다 나오네요.”
“아! 예. 예.”
잠시 졸였던 마음이 안심이 되더라.
“그냥 이모라고 부르시는 게 편해요.”
“그럼 연경 이모라고 부르겠습니다.”
강형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최연경이 웃음을 터뜨렸다.
“제가, 사실 십 년 전에도 다들 김밥 아줌마라고 불렀거든요. 보시다시피 한 덩치 하잖아요. 그런데 사장님이 누님 그러니까, 아우 심장이 놀라서…….”
서른 초반대부터 아줌마라고 불려서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단다. 그리고 누님은 자기가 적응하기 힘들 것 같다면서 그냥 이모라고 해달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최연경 씨 하니 뭔가 몸이 꼬이는 느낌까지 든다는 거다.
어쨌든 그렇게 호칭 정리를 끝내고 오늘부터 일하는 걸로 합의를 봤다.
여기서 약간의 해프닝이 있었는데 공지혜가 앞치마를 가져왔다.
지성분식에서 김밥천국 주황색 앞치마를 입고 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문제는 최연경이 풍채(?)가 있어서 사이즈가 안 맞았다는 거다. 게다가 끈까지 묶자 너무 답답하게 보였던 것이다.
결국 강형우는 자신의 앞치마와 유니폼을 빌려줘야 했다.
***
“우와, 벌써 삼월이구나.”
정식 오픈하고 벌써 4주차였다.
저번 주말 3월 1일이 토요일이라서 이틀 쉬기로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다들 얼굴이 너무 좋아졌다.
직원들끼리 술도 한잔했고, 간만에 사우나도 갔단다.
덕분에 강형우는 토요일 오전을 혼자 방구석에서 뒹굴어야 했다. 유일한 여직원인 금설비 때문에 공지혜도 나가야 했었던 것이다.
어쨌든 상권 조사를 했을 때, 일요일이 되면 이 동네 식당들은 거의 문을 닫았다. 손님들이 없었고 다들 바깥으로 나가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토요일도 저녁 장사는 한가했다.
8시 반에 마감을 했기에, 이참에 하루 쉬자고 결정한 거다.
“그건 그렇고. 확실히 사람 있고 없고가 차이가 크네.”
최연경 이모와 잠시 이야기를 했는데 주3일 때문에 계속 취직이 힘들었다고 했다. 인력 사무실을 통해 일일 가정부 같은 것만 다닐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해서 사정을 물어봤다.
친정어머님이 치매라고 했다. 자신이 이틀에 한 번씩은 가야지만 겨우 돌볼 수 있다는 것이다.
현우 형도 그랬기에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었다.
어쨌든, 최연경 이모가 확실히 출근하기로 하면서 강형우는 조금씩 김밥 예약을 받았다. 테스트 겸해서 포장 도시락을 해보기로 한 것이다.
쪽지로 문의도 많이 왔고, 가장 중요한 건 단골손님들이 원하고 있어서였다.
물론 가게 장사에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만 하기로 했다.
여기에 김진설의 도움(?)도 있었다.
어디서 지저분한 양아치 두 녀석을 데려왔는데, 일단 추천이 있어서 쓰기로 했다.
대신 각자에게 이만 원씩 주면서 조건을 달았다.
깨끗이 씻고, 두발 정리는 하고 올 것!
머리카락 길이는 상관없지만 최대한 단정하게 하고 오라고 했다. 안 그러면 안 쓰겠다고 일렀던 것이다.
웬걸?
때 빼고 광내고, 유니폼까지 입히니까 제법 그림이 나왔다. 돈 받은 게 미안해서라도 최대한 꾸미고 나왔다는 것이다.
오경일이 점심, 박정산이 저녁이었다.
학원 시간 때문에 그렇게밖에 안 된단다.
해서 계산을 해보니, 오경일이 네 시간 일하는데 한 달에 육십 선이었다.
박정산은 대략 칠십오만 원 정도.
확실히 사람 한 명을 풀타임으로 쓰는 것보다는 돈이 훨씬 적게 들었다. 많은 음식점 사장들이 파트타임을 쪼개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던 것이다.
때문에 약간의 편의를 봐주기로 했다.
오경일의 경우, 일찍 와서 늦은 아침을 먹든 브레이크 타임에 늦은 점심을 먹든 자유라고 해줬다.
한마디로 밥값은 공짜라는 거다.
그건 박정산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말해줬기 때문인지, 확실히 열심히 하기는 하더라. 덕분에 다른 직원들도 조금 편해졌고 자신의 일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단 이렇게 되니 한결 여유가 생겼다.
주문이 꼬이거나 음식이 잘못 나가는 일도 없었고, 중간중간에 잠시 돌아가면서 휴식도 가능했다.
“문제는 매출이 많이 떨어지면 애매하다는 건데.”
분식집치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있었다. 인건비 부담을 무시 못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슬슬 오픈발이 떨어질 때가 됐다.
-형우야!
신원이 형이었다. 그런데 목소리가 다급한 걸 보니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예. 형. 무슨 일 있어요?”
-그게… 일단 와서 이야기하자. 나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서…….
에휴~ 형이 처음인 경우가 한두 번이라야 말이지.
강형우는 일단 가게를 둘러봤다.
현재 시간 저녁 8시였다.
손님들이 우르르 몰아쳤다가 빠지기를 반복했고, 이번이 여섯 번째로 테이블 회전 중이었다.
“그런데 급한 거예요?”
-어, 많이 급하다. 가능하면 바로 와줬으면 좋겠는데?
“일단 알았어요. 조금 있다가 전화할게요.”
강형우는 카운터 포스기를 확인하고 공지혜를 불렀다.
조용히 이야기를 하니, 자신이 뒷정리를 하겠으니 먼저 가보라고 했다.
그 길로 2호점을 들렀는데, 분위기가 묘했다.
“형우야. 잠깐 나가자.”
일단 두 사람은 주차장으로 향했다. 거기서 담배를 무는데 신원이 형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골치 아프네.”
“왜요.”
“그게… 매출이……”
한동안 2호점을 들리지 않았다. 아직 3호점 오픈 초창기여서 신경 쓸 게 너무 많았던 것이다.
무엇보다 신원이 형과 은주 형수가 있기에 별문제가 없을 거라 판단했었다.
“한 사나흘 정도는, 날씨 탓인가 했거든. 그런데 매출을 보니까 아니더라고.”
“많이 빠진 거예요?”
“어.”
“얼마나요?”
신원이 형은 잠시 주저하더니, 담배를 비벼 꼈다.
“반토막 났어.”
강형우는 잠시 손가락을 꼽았다.
평균 하루에 삼백 이상 올라왔던 걸로 기억하는데, 반토막이라면…….
“일시적인 거 아니에요?”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냥 손님이 좀 없는 거라 생각했다. 이상하게 한가하다 싶었고, 이런 날도 있다고 무심히 넘겼단다.
그런데 뭔가 조짐이 이상했다.
우선 점심 손님이 확 줄었다고 했다. 바쁠 때 줄까지 섰는데 너무 여유롭게 돌아갔다는 것이다.
또, 저녁 6시 전후면 가게가 꽉 차야 하는데, 빈 테이블이 너무 많았단다.
그게 사흘째였다.
“이유가 뭔데요? 알아봤어요?”
강형우는 하나하나 묻기 시작했다.
일단 음식이 맛이 없어졌나 싶었다.
하지만 메인인 돈가스와 김밥 재료는 인성식품에서 가져다주고 있었다. 그러니 변할 리가 없었고, 강형우가 매일 확인했기에 문제가 없을 터였다.
그건 서비스나 기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같이 일한 시간이 일 년이 넘었고, 직원 하나하나를 다 알고 있었다.
때문에 손님들과 큰 마찰이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 게 아니라면 매출이 이렇게까지 확 떨어질 이유가 없을 텐데?
“그게 아니라고. 그게…….”
“그럼요?”
강형우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강신원이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맞은편에, 큰 가게가 생겼거든.”
순간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설마 했는데, 역시나였다.
“거기 사장이 이영제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