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목식당 리얼갑부-202화 (202/251)

# 202

202화 이 집인가요

후루룹, 후룹.

우걱, 우걱, 우거걱.

“맛있어?”

“예, 마이어여.”

“설비야. 밥 씹으면서 말하는 거 아니다.”

“치이~ 어빠는여.”

“난 삼키고 말했지. 그런데 밥 더 먹을 사람?”

금일우가 묻자 거의 동시에 다들 손을 들었다.

강형우는 다른 애들이 일어나기 전에 먼저 주방으로 가서, 아예 밥솥을 통째로 들고 왔다.

“마음껏 먹어라.”

그렇게 식사가 다시 이어졌다.

정말 다들 배가 고팠나 보다. 걸신 들린 것처럼 집중했고, 마왕과 싸우는 용사처럼 장렬하게 음식들을 학살시켰던 것이다.

분명 김치찌개 10인분을 준비했는데 바닥이 보이고 있었다.

밥도 30인분을 새로 했는데 반도 안 남은 상태였다.

사실 메뉴에 대해 고민 좀 했었는데, 솔직히 밥 든든하게 먹이는 데는 이만한 게 없다 싶었다.

해서 김민석에게 부탁해서 김치찌개 끓여놓은 거 있으면 보내 달라고 했다.

여기에 제육볶음도 푸짐하게 만들었고, 애란 이모표 밑반찬까지 넉넉하게 꺼냈다. 그런데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설거지가 필요 없을 정도로 박박 긁어먹었다.

그걸 보니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

“후아, 배부르다.”

금설비가 의자에 등을 기댄 채, 태연히 배를 톡톡 두드리는데 일우랑 이선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기섭도 한두 번 보는 게 아니라는 듯 피식했다.

이제 대충 정리하는데, 공지혜가 설거지를 하겠다고 큰 그릇들을 들고 나갔고, 홍성구가 거들겠다고 따라갔다.

잠시 머뭇거리던 강형우는, 이기섭과 정문창, 김진설을 불렀다.

“잠깐 이야기 좀 해.”

“예. 사장님.”

강형우는 카운터 서랍에서 근로계약서를 꺼냈다.

“이거 근로 계약서인데, 기섭아, 네가 쓴 거랑 맞는지 확인해 봐.”

“예. 같은 거네요.”

“자, 그러면 너희 둘도 살펴봐.”

그 말에 김진설과 정문창이 근로 계약서를 읽기 시작했다.

분명 스물다섯이라 그랬다.

이런저런 알바 경력도 있다고 들었는데, 는데 근로 계약서를 보고 놀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오히려 그런 모습이 더 신기했던 것이다.

김진설이 조용히 물었다.

“저, 사장님. 최저 시급 곱하기 하루 12시간, 그런데 쉬는 시간도 계산해서 줘요?”

“당연하지. 일하기 위해 쉬는 건데, 사람이 밥도 먹고 해야 힘쓸 거 아니야. 사실 아까 일당 육만 원 잡은 건, 말 그대로 대충 잡은 거야.”

시급 5,200원이니 하루 12시간이면 6만 원이 조금 넘는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몇 천, 몇백 원까지는 이야기할 상황은 아니었다.

강형우는 잠시 생각할 여지를 주기 위해 물었다.

“일단 커피 마실 거지?”

“예?”

“타올 테니까 천천히 보고 있어.”

강형우가 슬며시 일어나 카운터로 향하자 둘은 서로를 보며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하지만 귀가 밝아져서인지 다 들리더라.

“야. 설아, 전에 호프집에서 일할 때 너, 얼마 받았냐?”

“대충 사천 원? 다섯 시간 하고 이만 원 받았으니까. 그 정도 되겠네.”

“나도 삼 개월 넘어서 시급 사천 오백 원 받았거든.”

그때 이기섭이 속삭였다.

“새끼들아, 그러니까 월급 많이 준다고 했잖아. 내가 괜히 너희들 부른 게 아니라고.”

“근데, 정말 제대로 주긴 주냐?”

김진설과 정문창이 의심하는데, 이기섭이 피식 웃었다. 그러면서 홍성구를 슬쩍 가리켰다.

“야. 주방 형님이 그러더라. 자기 연봉이 사천 근처란다.”

“헐.”

“정말?”

“그래. 월급만 이백오십에 석 달마다 보너스 받는댄다. 그때는 사백 넘게도 나온대.”

“진짜로?”

“새끼, 내가 니들한테 뻥 치겠냐?”

그러면서 자기들끼리 속닥이는데, 강형우는 이야기를 더 듣기 위해 일부러 천천히 커피를 탔다.

“저 형님이, 우리 사장님 밑에서 이 년 동안 충성했다더라고. 그런데 자기보다 더 받는 사람도 많대.”

“가게가… 여기 말고 또 있다고?”

“여기가 3호점이라더라. 다른 두 가게는 점장님한테 맡기고 당분간 여기 집중하겠다는데, 첫날부터 대박 터진 거지.”

이기섭의 말에 정문창과 김진설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장사 안된다고 돈 떼먹지는 않겠네.”

“야, 니가 일하던 호프집하고 같은 줄 아냐?”

사실 이기섭이 이렇게까지 하는 건 이유가 있었다.

강형우는 홍성구한테 미리 언질을 주었다.

주방 보조 들어오는 애가 의리가 좀 있는 것 같다. 네가 잘 구슬려서 키워봐라. 그렇게 사바사바 일러줬던 것이다.

홍태구와 달리 홍성구는 눈치가 빠른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장 충성(?)스러운 직원이었기에 내 말뜻을 대충은 알아들었고, 적극적으로 포섭을 한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자기 연봉까지 깠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올해 초에 월급 기준을 새로 잡기는 했었다.

그때 홍성구가 유독 좋아했다.

자기 주변 사람 중에 이백 이상 받는 친구가 단 한 명도 없다고 했다. 주 6일 철야까지 뛰는 놈이 겨우 백구십이 넘는다는 것이다.

그만큼 부산의 인건비는 말도 못 하게 저렴한 상황이었다.

그나마 물가가 싸서 버티고 있는 것일 뿐!

어쨌든 이래저래 정리하고 계산한 끝에 강형우는 월급을 적절한 수준까지 올렸다.

일단 신원이 형과 순이 이모가 300만 원이었다.

점장이기도 했고, 실제로 이모들 식당과 2호점을 각각 운영하고 있었으니까.

그 밑으로 주방장이 있었으니.

홍성구와 은주 형수가 250만 원, 최민지와 은선경이 200만 원이었다. 주휴수당과 기타 잡다한 걸 다 포함해서 그렇게 주기로 했던 것이다.

정은혜는 자격증을 따자마자 약속한 대로 220만 원을 줬다.

여기에 박호성과 임정은도 200만 원을 맞춰줬다. 애초의 계획과 다르게 장기 근무자가 되어서 공로(?)를 인정해 준 것이다.

여기에 석 달에 한 번씩 보너스에다 월 2회의 자유 참가 회식도 있었다.

전에 박호성이 회식 자리에서 말하길, 이 정도나 되니 그만두고 싶어도 그럴 수 없게 됐단다. 일도 힘들고 쉬는 날도 적지만 다른 데 어디를 가더라도 이만큼 받을 수 있는 데가 없다는 것이다.

역시 주혁 형의 말이 맞았다.

사람을 못 믿겠으면 네가 주는 돈을 믿어라!

진짜, 그게 이거였구나 싶었다.

어쨌든 돈을 많이 주니, 이영제 말고는 사고가 없었다. 갑자기 못 나가겠다든가, 그만두겠다는 하는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주 6일 일하는데도, 그게 벌써 몇 년씩 지났는데도 말이다.

어쨌든 강형우가 다가가니 애들 표정이 달라져 있었다.

“자, 커피.”

“옙. 잘 마시겠습니다.”

이기섭이 그렇게 말하며 커피를 나눠줬다.

보니까 아직 김진설과 정문창은 마음을 정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어차피 당장 급하게 결정 안 해도 돼. 일단 오늘은 내일 나올 수 있는지만 말해주라.”

“그건…….”

김진설이 웅얼대는데, 정문창이 옆구리를 찔렀다.

“일단 내일도 나오겠습니다. 그런데 저 이거… 집에 가져가서 봐도 될까요?”

“그럼. 편할 대로 해.”

강형우는 억지로 웃음을 삼켰다. 그 말은 곧 미련이 남는다는 뜻이었으니까.

“일단 내일까지만 일하면 다음 주 초에는 쉬니까 그전까지만 결정해 주면 좋겠어. 사람 더 구하고 있으니까 그때부터는 오늘처럼 힘들지는 않을 거야.”

“예.”

두 녀석이 대답하는데, 이기섭이 피식 웃었다.

강형우도 씨익 웃으며 말했다.

“역시 밥 먹은 뒤에는, 달달한 믹스가 진리지.”

진짜 설탕을 잘못 퍼부은 것처럼, 커피가 너무도 달았다.

***

이틀간의 장사는, 대성공이었다.

물론 아직 손발 맞출 부분이 많았지만 조금 삐꺽삐꺽대면서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후아, 대체 얼마나 판 건지 계산이 안되네.”

대충 계산했을 때, 돈가스가 한 시간에 50개가 나갔다. 그럼 10인분씩 나가는 데 12분이 걸렸다는 게 된다.

물론 충분히 가능하기는 했다.

강형우는 이 상권이 한 번에 확 몰렸다가 빠진다는 걸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때문에 그걸 감안해 큰 튀김 솥을 두 개나 준비했다.

2호점보다 하나가 더 많았고, 이모들 식당보다 훨씬 큰 거였다. 그 튀김 솥 두 개를 번갈아가며 기름 온도가 떨어지지 않게 종일 돈가스를 튀겼던 것이다.

또, 김밥도 어머어마하게 팔렸다. 공지혜랑 금설비가 거의 거기에만 매달려야 할 정도로 주문이 폭주했던 것이다.

특히 아주머니들이 대량 포장을 해 가는 경우가 많아서 한번에 열 줄식 마는 경우도 여러 번이었단다.

“후아~ 김밥 재료만 거의 오백인 분 넘게 나갔네.”

다른 것도 계산이 제대로 되지 않을 정도였다.

홍성구는 거의 하루종일 덮밥에 매달렸고, 정은혜는 라면만 주야장천 끓였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기섭까지 가르쳐야 했으니 일이 이만저만 아니었다는 것이다.

“아우, 계산하지 말자. 월말에 그냥 한 번에 정리해 버려야지.”

인성식품을 운영하면서 또 하나가 편해졌다.

뭐가 몇 인분씩 얼마나 나가는가를 일일이 계산할 필요가 없었다. 돈가스 숫자와 김밥 재료 납품 기록을 경리님께서 알아서 잘 정리하고 있었으니까.

“휴우, 그래도 잘 끝나서 다행이다.”

진짜 극적이긴 했다.

마지막 손님이 나가고 나서 정말로 다들 쓰러졌다. 쉴 틈도 없이 손님들이 몰아치는데, 장사를 하는 건지 음식 만드는 기계가 된 건지 구분하기도 어려웠던 것이다.

진짜 초죽음 상태까지 움직였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그런 상황에서 강형우가 카드를 들고 외쳤다.

한우 먹으러 가자!

그 마력에 다들 스르륵 부활하기 시작했다. 당장 쓰러져 눕겠다면서도 1차 한우, 2차 노래방 회식에 3차 오뎅바까지 전부 따라왔던 것이다.

역시 젊음이 좋긴 좋았다.

어쨌든 그 자리에서, 정문창과 김진설이 충성(?)을 맹세하더라. 정말 계약서대로만 해주신다면 지성분식에 몸을 묻겠다는 것이다.

나중에 이기섭이 슬쩍 이야기해 줬다.

둘이 알바하면서 돈 못 받은 것만 오백만 원이 넘는다고 했다.

진짜 재수 지지리도 없어서 꼭 망할 가게들만 찾아갔다나 뭐라나?

그 말이 살짝 불길하긴 했지만, 강형우는 이내 털어버렸다.

이제는 실수만 하지 않으면 망할 리가 없었으니까.

어쨌든 그렇게 급한 인력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다음 주에 인정둥이가 오고, 차차 알바들을 구하면 충분할 테니까.

“그나저나 내일인가?”

정말 일이 잘 풀리려니 술술 흘러가더라.

중간중간 부동산 삼촌하고 통화를 했는데, 마침 딱 맞는 집이 바로 나왔다는 것이다.

해서 내일 오전에 바로 보러가기로 했다.

***

“지혜야, 어때?”

강형우가 묻는데, 공지혜는 말없이 웃으며 집을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확실히 꼼꼼하기는 꼼꼼했다.

공지혜는 수돗물 확인하더니 변기 물도 내려봤다.

그런 다음 장롱 뒤에도 확인했고 벽지 상태까지도 살폈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면서 보니까 부동산 삼촌도 버럭 하더라.

“작년에 리모델링한 집이라니까. 사정이 좀 그렇게 돼서 그렇지. 거의 신축이나 마찬가지야.”

그러면서 이야기하는데, 집주인이 기러기 아빠라더라. 와이프가 중학생 자식들과 미국에 있는데 원래 작년에 한국 올 예정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식들이 조금 더 미국에 머무르고 싶다고 했다.

결국 마흔 중반의 남자 혼자 살기에는, 집이 너무 컸다. 그래서 당분간 투룸에서 살기로 결정했단다.

이 집을 전세로 내놓은 건 그래서란다.

“새집이라 보면 된다니까. 수리 다 해놓고 석 달도 안 살았대.”

확실히 벽지도 깔끔했고 정말 손 댈데가 없어 보였다.

가장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