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
200화 대박
지글지글.
삼겹살 익어가는 소리는 정말 감미로웠다.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군침이 흐르게 하는 마력까지 있었던 것이다.
강형우는 삼겹살을 자르면서 미소를 지었다.
“다 익었다. 먹자!”
“와!”
공지혜는 망설임 없이 젓가락을 들었다.
그런 뒤, 그릴 자국이 이쁘게 들어간 삼겹살 두 점을 깻잎 위에 올리더니 마늘과 쌈장, 그리고 고추를 넣었다.
“오빠, 아~ 해요.”
“어? 어, 어어.”
강형우는 약간 당황해하면서 입을 벌렸다.
그 순간 가게 안의 어르신들이 전부 쳐다보더라.
하지만 민망함은 잠시였다.
우걱, 우걱, 우걱.
종일 힘들게 일하고 나서 먹는 삼겹살은 누가 꿀을 발라놓은 것 같았다. 워낙 이 집이 맛집이기도 했지만 진짜 입에서 녹는 느낌이 났던 것이다.
“으음, 맛있다. 너도 먹어.”
“오빠가 싸 줘야죠.”
거의 동시에 주변에서 기침 소리가 울렸다.
안 그래도 요즘 애교가 늘은 것 같아서 조금 부담스럽기는 했다. 둘이 있을 때는 괜찮은데 손님 많은 식당에서 이러는 건 민망했던 것이다.
하지만 저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니 차마 거부할 수 없었다.
강형우는 삼겹살 두 점에 마늘 하나, 그리고 쌈장을 듬뿍 올렸다.
공지혜가 매운 걸 좋아하지만 고추는 딱 두 개만 넣었다.
괜히 팍팍 넣었다가, 퍽퍽 하고 맞는 수가 있었으니까.
“자, 아~ 해요.”
“아앙~~”
얘가 일부러 그러는지 소리를 크게 냈다.
강형우는 다급히 쌈을 밀어넣고 소주잔을 들었다. 이건 입막음이었다.
“짠!”
삼겹살에 소주 한 잔 마시니 그렇게 짜르르할 수 없더라.
그렇게 두 사람은 삼겹살을 학살(?)하면서 대화를 시작했다.
“이기섭이라고 알지?”
“3호점 알바로 온 오빠요?”
“어. 오늘 음식을 해줬는데… 그거 먹고 나서 자기도 배우고 싶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살살 구슬려서 꼬셨거든.”
그 과정을 이야기하자 공지혜가 풋 하고 웃었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안 그래도 조금 걱정하긴 했는데.”
“일단 시켜봐야 알지. 한다고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그건 그렇죠.”
인성식품이 제대로 운영되면서 전체적으로 조리 과정이 더 단순해졌다.
하지만 음식 한두 개 하는 게 아니라서 그 많은 과정을 다 배우려면 최소 보름은 걸렸다. 거기에 익숙해지는 데도 최소 석 달은 필요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문제가 없다면, 강형우는 직접 이런저런 걸 가르쳐 볼 생각이었다.
올해 연말을 목표로 계획한 게 있었으니까.
“잘해줬으면 좋겠는데…….”
“아니죠. 도망만 안 가면 좋은 거겠죠.”
“그래? 그래도 하루 이틀 일하고 그만둘 것 같지는 않던데?”
“그건 모르는 거죠. 내일 손님이 얼마나 오는지가 문제일 텐데요?”
강형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번에는 별다른 홍보를 하지 않았고, 이밴트도 빼버렸다.
그 이유가 임시 오픈이어서였다. 아직 준비 안 된 것도 많고, 사람도 다 구해지지 않았기에 소소하게 반응만 볼 생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공지혜는 다르게 본 모양이었다.
“사실, 좀 오래 걸리긴 했죠. 1월부터 장사하려고 했는데 벌써 2월 중순이잖아요.”
“그건 어쩔 수 없지. 일이 많았으니까.”
“그래서 확 몰릴 것 같은데요?”
공지혜는 그렇게 말한 뒤, 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는데 그냥 씨익 웃는 걸 보니 별일 아닌가 보다.
마침 해물된장에 돌솥밥이 나왔다.
이게 이 집만의 시그니처 메뉴였고, 고기만 먹고 가면 바보가 된다는 그 음식이었다.
두 사람은 삼겹살에 해물된장에 돌솥밥까지 뚝딱 해치워 버렸다.
“후아~ 배부르다.”
“저도요. 헤헤.”
포만감이 곧 행복지수라고 하던가?
배가 부르니 오늘의 피로가 말끔히 가신 기분이었다.
강형우는 개운한 기분으로 아침을 맞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때문에 내일이 전혀 걱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
“아오, 미쳤다. 미쳤어.”
강형우는 몇 번이나 눈을 비비고 기게 밖을 쳐다봤다.
아직 오픈까지 한참이나 남아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많아지더니 줄이 점점 길어지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대체 왜?”
이 기분을 뭐라고 해야 하나?
좋기는 좋은데 두렵고 불안한 느낌?
그건 강형우만의 감정이 아니었다. 금씨 남매도, 이기섭도 당황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기 사장님.”
“어? 왜.”
“저 그만둘래요. 그동안 정말 고마웠습니다.”
금설비가 손을 드는데, 공지혜가 장난스럽게 멱살을 잡았다.
“올 때는 마음대로 왔지만 갈 때는 아니란다.”
“히잉, 저렇게 많을 줄은 몰랐단 말이예요.”
금설비가 투정(?)을 부리는데, 충분히 그럴 만했다.
지성분식 3호점은 약간의 개보수를 거쳐서 꽉 채우면 거의 90명 가까이를 받을 수 있었다.
널찍한 4인 테이블만 스무개 였으니까.
하지만 입구에 기다리고 있는 사람만 거의 서른이 넘었고 지금도 사람들이 계속 모여들고 있었다.
강형우는 시계를 확인했다.
아직 열 시 반이었다. 오픈까지 무려 30분이나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때 홍성구가 주방에서 소리쳤다.
“형님, 식사 다 됐습니다.”
“그래? 일단 우리 밥부터 먹자.”
강형우와 공지혜가 신호를 보내자 다들 음식을 가지고 테이블에 앉았다.
현재 인원은, 주방에 홍성구와 이기섭,
홀에는 공지혜와 금씨 남매였다. 이중에 금설비는 공지혜를 따라 김밥까지 담당하게 됐다.
여기에 두 명이 추가되었다.
이기섭 친구 정문창과 김진설이었는데, 다행히 금일우와도 안면이 있었다.
강형우는 정문창을 주방 잡일 담당으로 배치했고, 김진설은 금일우와 같이 서빙을 맡기기로 했다.
그렇게 인원 구성은 끝났지만, 아무래도 안심이 되질 않았다.
말 그대로 가오픈이었다. 손발을 맞추기 위해 확인 삼아 장사하는데, 손님들이 너무도 많았던 것이다.
이대로라면 상황 파악도 하기 전에 지칠 가능성이 컸다.
“이거 어떻게 하나?”
“뭐, 전에 하던 대로 해야죠. 한 테이블씩 받아서 주문받고… 이렇게 된 거 은혜도 부를까요? 아무래도 주방이 벅찰 것 같은데?”
“아! 그렇지.”
강형우는 밥 먹다 말고 일어나서 폰을 들었다.
이럴 때는 은주 형수한테 전화를 거는 게 맞겠지?
“여보세요? 예. 혹시 2호점 여유 좀 돼요?”
-아니, 전혀. 절대. 안 됩니다.
목소리에 웃음기가 잔뜩 묻어나오는 걸 보니 조금 당황스러웠다.
-사실, 아까 지혜가 전화해서 은혜 보내줄수 있느냐고 했거든요. 벌써 보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사! 장! 님!
“헐.”
강형우가 고개를 돌리는데 공지혜가 웃고 있는 게 보였다.
미리 손을 써놨던 것이다.
“오빠, 일단 밥부터 먹고 준비하죠?”
“옙. 마님.”
강형우는 김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느끼지 못할 만큼 정신없이 해치웠다.
그 직후, 공지혜가 주방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오빠, 요즘 맘카페 안 살펴보죠?”
“어? 아~ 그게…….”
솔직히 손님들하고 가까워진 이후,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게다가 신원이 형이 수시로 확인하고 있다고 해서 그냥 이야기만 듣고 말았던 것이다.
“이미 우리 가게 오픈한다고 소문이 다 났더라고요.”
“앵? 누가?”
“제가요. 헤헤헷.”
설마? 어제 폰을 만지작거리던 게 그래서였나?
그러면서 폰을 보여주는데 진짜 내용은 별게 없었다. 그냥 오늘 임시 오픈한다고, 냉정한 평가를 부탁한다는 몇 줄이 전부였던 것이다.
“이게 왜… 헐.”
강형우는 곧 사태의 원흉(?)을 파악했다.
세 번째 댓글이 동대표 사모님이었다. 건강하고 좋은 음식을 만드는 가게라고, 진심으로 기대가 된다고 적혀 있었던 것이다.
그밑으로 줄줄히 댓글들이 있었는데 이름들이 눈에 확 들어왔다. 3동 동반장, 8동 반장 아줌마, 2동 터줏대감, 7동 왕언니, 거기에 옆 아파트 부녀회장까지 보였던 것이다.
아~ 화력 지원이란 게 이거였나?
강형우가 황당해하는데, 공지혜가 폰을 뺏어 갔다.
“사실, 저도 이렇게까지 손님들 몰릴 줄은 몰랐어요. 그냥 썰렁하지만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 맞아 죽는다는 말이 있었다.
이건 그 이상이었다.
“어쩌지? 이거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데?”
“그냥 평소처럼 하면 되죠. 이거 보다 더 손님 많았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요. 뭘!”
공지혜는 손을 들어 내 뺨을 톡톡 두들겼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생각해 보니 가게 앞에 줄이 늘어선 건 여러 차례였다.
2호점 처음 오픈했을 때, 그리고 폭립이 소문나고, 냉라면이 히트 쳤을 때도 그랬다.
그러니 크게 겁먹을 일도 아니지.
“그래, 천천히 손님 받자. 바빠봐야 죽기야 하겠어?”
“오빠, 죽으면 안되죠. 나 웨딩드레스 입은 거 봐야 하잖아요.”
“쿨럭.”
“그거 때문에 빡시게 다이어트도 하고 있는데…….”
“마님, 알겠습니다요. 안 죽고 꼭 살아남겠습니다.”
강형우는 씨익 웃은 뒤, 직원들을 전부 불렀다.
일단 공지혜와 금설비에게 밖에 나가서 미리 주문을 받으라고 했다. 그런 뒤, 금일우와 금이선, 김진설에게 다시 한번 테이블 확인하라고 일렀다.
“주방은…….”
정말 놀라운 타이밍이었다.
막 말을 꺼내려는 순간, 한 사람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홍성구와 거의 일 년 넘게 손발을 맞췄던 정은혜였다.
***
“사장님, 돈가스 다 떨어졌습니다.”
“김밥 재료가 없어요.”
“덮밥도 다 나갔습니다.”
장사 시작하고, 두 시간도 안 됐는데 주방이 텅텅 비어버렸다.
남은 건 라면이 전부.
결국 강형우는 가게 입구에 사과의 말과 함께 ‘솔드 아웃’을 내걸어야 했었다.
“후아, 미쳤다.”
정말이지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를 정도였다.
처음에 아가씨들 한 무더기가 들어왔다. 순식간에 테이블 네 개를 점령하고 돈가스를 부르짖었던 것이다.
물론 미리 주문받아서 음식 준비에 들어갔기에 무려 열 개를 한꺼번에 내어 갈 수 있었다.
그 직후, 학생들 러쉬였다.
거의 고등학생들이었는데, 눈 깜빡하는 사이 김밥 스무 줄이 나가 버렸다. 여기에 라면만 여덟 그릇이었고 제육덮밥도 다섯 그릇이나 나갔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괜찮다 싶었다.
줄의 마지막이 아파트 아주머니 부대였다.
김밥을 종류별로 다섯 줄씩 시키는데 진짜 혼이 날아갈 뻔했다. 여기에 돈가스도 다 나갔고, 설거지가 필요없을 정도로 삭삭 긁어 드셨다.
강형우의 기억은 여기까지였다.
이후 공지혜가 주문서를 보내면 만드는 일에만 집중했다. 그러다 홍성구가 등을 두드린 뒤에야 돈가스가 떨어졌다는 걸 깨달았던 것이다.
“오빠, 여기 냉커피.”
“어? 어.”
“뒷정리는 우리가 할 테니까요. 나가서 담배라도 한 대 피우고 와요.”
“어? 어!”
공지혜는 담배에 대해 크게 잔소리를 하지 않았지만, 눈치를 주기는 했다. 그런데 오히려 등을 떠미니 이해가 되질 않았다.
하지만 거울 보니 알 것 같았다.
진짜 사람 얼굴이 반쪽이 되어 있더라.
강형우는 한숨을 내쉰 뒤 아파트 상가 주차장 쪽으로 향했다.
거기가 상가 내에서 유일한 흡연구 역이었다.
대충 소매로 땀을 닦고 담배를 피우는데, 머리가 핑 돌았다.
정말 얼마만에 이렇게 정신없이 일해보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였다.
“하! 주방을 너무 오래 떠나 있었구나.”
강형우는 기운이 없어 담배를 그냥 꺼버렸다.
다행히 냉커피가 도왔다. 시원하게 마시고 얼음까지 와그작 깨먹고 나니까 정신이 돌아왔던 것이다.
동시에 현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진짜! 대박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