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
199화 들어가서 이야기해 줄게
아싸!
이게 진짜 속마음이었다.
하지만 강형우는 내색하지 않았다. 아직 확신이 없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본심을 드러냈다가 오히려 낚일지도 모른다는 걱정까지 들었다.
“음식을 배우고 싶다고?”
“예. 진짜 이 라면 하나만 제대로 배워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기섭의 말에 강형우는 눈을 몇 번 깜빡거렸다.
그러면서 이기섭을 자세히 살폈다.
키는 그렇게 크다고 느끼질 못했는데, 다시 보니 180은 되어 보였다. 운동을 했었는지 체격도 좋아서, 주방 일 할 정도의 체력은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의지가 없으면 힘든 게 이쪽 일이었다.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부쩍 힘이 드니까.
“혹시 전에 이런 쪽을 일해본 적 있어?”
“아뇨. 군대 가기 전에 술집에서 서빙한 게 다인데, 거기선 배울 게 없더라고요. 퓨전포차인데, 거의 다 봉지로 나오는 걸 그냥 손질해서 나가더라고요.”
그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이해는 되었다.
그 주점의 메인 메뉴는 골뱅이 무침이었다.
제일 먼저 소면을 삶으면서 캔 골뱅이를 딴다. 그걸 찬물에 행군 뒤 적당히 자르고, 미리 준비된 볼에 담에서 야채와 양념장을 넣고 비비면 된다.
여기에 소면을 잘 씻어 전분기를 빼고 담은 뒤, 파채를 듬뿍 올리면 끝!
비슷한 메뉴로 치킨 무침이 있다는데, 이것도 비슷했다.
렌지용으로 나온 제품을 데운 뒤, 2분만 튀긴다고 했다. 그걸 미리 양념한 야채무침에 올리면 된다는 것이다.
일종의 변종 파닭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대부분의 안주가 그런 식이란다.
대신 그 가게는 양을 많이 주는 걸로 손님을 끌었다고 했다.
“흐음, 그 정도 알고 있는 걸 보면 그래도 주방 경험이 아주 없지는 않네?”
“대단한 건 아닙니다.”
이기섭이 멋쩍은 듯 웃자, 강형우는 호기심이 생겼다.
일종의 시험을 해보자 싶었던 거다.
“라면 더 끓이면 먹을 수 있겠어?”
“예? 당연하죠.”
“그래. 그러면 어느 정도 되는지 한 번 보자. 따라와.”
강형우는 이기섭의 어깨를 두드린 뒤 주방으로 가자고 손짓을 했다.
“자, 우리도 보통 분식집하고 비슷해. 그리고 그냥 라면 끓이는 거, 전 국민이 다 알잖아. 봉지에 적힌 대로 하는 게 제일 맛있다는 거.”
“그래요?”
“라면 끓이는 거 별거 없어. 내가 가르쳐 줄 테니까 직접 한번 해봐.”
“제가요?”
“당연하지.”
강형우는 그렇게 말한 뒤, 제일 먼저 냄비를 올렸다.
그런 뒤, 케찹통 비슷한 걸 들어서 이기섭에게 보여줬다.
“이게 향미유야. 이걸 냄비에 한 바퀴 돌려. 라면 두 개니까 두 바퀴 조금 못 되게.”
“예?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여기 다진 양념장 있지. 이걸 크게 한 숟가락 넣으면 돼.”
“예.”
하라는 대로 하고는 있는데, 많이 당황스러운 모양이었다. 기존의 라면 만드는 것과 시작이 너무 달랐던 것이다.
사실 지성분식의 라면 조리법은 벌써 여러 단계의 변화를 거쳤다.
기존 라면대로 끓이면서 야채 육수를 쓴다든가, 따로 파기름을 내어 거기에 양념장을 섞고 끓인다든가 하는 식으로 여러 번 개선을 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맛, 그다음은 빠른 조리, 또 다음에는 간편하게 만들 수 있게, 마지막으로 맛의 차별화에 중점을 두어서였다.
그렇게 서너번의 업그레이드 끝에 나온게 지금 버전이었다.
“자, 양념장과 기름이 섞이도록 볶으니까, 봐! 기름 색이 변했지?”
강형우의 말대로 향미유와 양념장이 섞이면서 자글자글 끓고 있었다.
“이때, 라면 스프를 한 스푼 넣는 거야. 그리고 이쪽에 준비된 육수를 넣는 거지.”
이미 라면 양에 맞게 만들어둔 국자가 있었다. 거기 표시된 만큼 육수를 담아서 부으면 되는 것이다.
“그다음 야채, 여기 썰어 놓은 거 반 줌 정도 담으면 돼. 그리고 사리면을 넣는 거지.”
“흐음, 여기까진 간단하네요.”
“당연히 장사해야 하는 거니까 단순해야지. 아! 타이머는 3분 30초.”
봉지에 표시된 건 4분이었다.
하지만 업소용 가스가 화력이 훨씬 강하고, 뒤에 조리가 있기에 딱 그 정도만 끓이면 된다. 그릇에 담고 손님 자리에 나가는 동안 익는 것까지 계산하면 충분했던 것이다.
“원래 나는 그냥 부으면 되지만, 여기 미리 계란물 준비한 게 있거든. 이걸 종이컵 한 개 가득 따라놔.”
“예.”
이기섭이 순순히 시키는 대로 하자 강형우는 마지막 조리도구를 꺼냈다.
그건 절구였다.
“제일 마지막에, 마늘을 빻아서 나가는 거야. 보통 라면 한 개 기준으로, 작은 건 세 개, 큰 건 두 개.”
강형우가 즉석에서 마늘을 곱게 빻는데, 마침 타이머가 울렸다.
“자, 이때 계란물을 풀고 불을 끄는 거야. 그사이 그릇을 준비하고 다진 마늘을 나눠서 넣고 하면…….”
이기섭이 냄비를 보는데, 열기가 남아 있어서인지 여전히 국물이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그 격한 흐름에 맞춰서 계란물이 흐트러지며 익어가고 있었다.
강형우는 그릇에 면을 덜고 국물과 건더기를 나누어 부었다.
그걸 들고 나가자, 금씨 남매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특히 아까 라면을 조금밖에 먹지 못한 설비가 더욱 좋아라 하더라.
“다들 먹어봐. 얼마나 차이가 있는가.”
역시나 대답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아까 강형우가 끓여온 것과 거의 비슷하다고 했고, 마찬가지로 맛있단다.
그 반응에 이기섭은 몇 번이나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제가 끓였는데 맛 차이가 거의 없는 거죠?”
“음식점은 그래야 하니까. 하는 사람이 달라졌다고 맛이 크게 변하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거 아닌가?”
“하지만…….”
이기섭은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분명 배우고 싶다고 해서 가르쳐 준 것인데, 그리고 맛도 제대로 났는데도 뭔가 개운치 않은 표정이었다.
강형우는 그 이유를 알기에 피식 웃었다.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어. 물어봐.”
“왜 마늘을 절구에 빻아요?”
“그게 더 맛있으니까.”
대답이 허무할 정도로 간단했는지,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 반응 역시 예상대로였다.
“혹시 라멘 먹어봤어?”
“예. 경대 쪽에 라멘집이 많아서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먹는 것 같아요.”
“그래, 거기서 먹을 때 어떻게 해? 바로 마늘 다져서 넣잖아.”
“아!”
이기섭뿐만이 아니라 금씨 남매들도 바로 납득했는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래. 그거야. 바로 다져 넣는 게 향도 살고 훨씬 맛있다는 거 다들 알잖아.”
“그렇죠.”
“이게 참 웃기다. 사람들이 육천 원, 칠천 원짜리 라멘에는 바로 다져 넣는 게 좋다고 하면서, 왜 분식집 라면에 그렇게 하는 걸 이상하게 보는 거지?”
“그건…….”
다들 대답을 못 하자, 강형우는 피식 웃었다.
“그냥 단순해. 다들 귀찮아서 안 하는 거야. 라면 따위에 그 정도 노동력을 투자한다는 걸 손해라고 보는 거지. 하지만 음식 장사하는 사람은 그래선 안 되거든. 이런 소소한 노력이 더해진 만큼 손님 숫자가 달라져.”
여기에 그치지 않고 몇 가지 이야기가 추가되었다.
미리 다진 마늘은 향이 날아간다. 맛에서 미묘한 차이가 생기기에 나가기 직전에 빻는 걸 고수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겨울에는 20분, 여름에는 15분이었다.
한 그릇이 나가든 열 그릇이 나가든, 그 시간만 되면 무조건 절구를 씻어서 마른 수건으로 깨끗이 닦아놔야 한다.
“어때? 우리 가게는 주방 보조라도 이 정도는 해야 해. 진짜 잘할 수 있겠어?”
“그게…….”
여전히 머리가 복잡한 모양이었다.
라면 끓이는 게 쉽다고 생각했을 거다. 그래서 몇 번만 해보면 비법을 알아낼 수 있다고 판단했겠지.
하지만, 초창기의 지성분식이라면 가능했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강형우에게는 인성식품이라는 보급기지(?)가 있었다. 매장에서는 조리에만 집중할 수 있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들을 거기에서 해결했던 것이다.
때문에 주방에 들어와서 본다고 해도 맛을 흉내 내는 건 쉽지 않았다.
강형우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일까지 시간 줄 테니까, 생각 잘해!”
***
“흐어어어~ 오빠.”
공지혜가 흐느적거리면서 다가오더니 이내 품이 쑥 안겨 들어왔다.
강형우는 그런 공지혜의 등을 토닥토닥했다.
“오늘 많이 힘들었어?”
“죽는 줄 알았어요. 흐어엉.”
진짜 우는 게 아니라 일종의 애교(?)였다. 그만큼 힘들었다고 어리광 부리는 것이다.
그게, 뜬금없이 이모들 식당이 터져 버렸다.
단골 인부 중에 한 아저씨가 황당한 말을 꺼냈단다. 당황스럽게도 돌아가신 어머니 손맛이 난다는 것이다.
추운 겨울, 풍로에서 몇 시간을 끓여준 그 김치찌개 맛이라나?
따지면 조리 과정이 비슷하니 그럴 수도 있다 싶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그 단골께서 자기 팀을 이끌고 며칠 내내 방문했다고 했다. 그게 소문이 나는 바람에 인부들이 더욱 몰렸다는 것이다.
공지혜는 그걸 돕는다고 이 늦은 시간에 귀가하고 말았다.
“고생 많았어.”
“흐어엉, 진짜 힘들었어요.”
“그래, 그래. 아직 밥도 못 먹었지? 우리 간만에 삼겹살이나 먹을까?”
순간 공지혜의 얼굴에 혈색이 돌아왔다.
역시나 장인어른의 가르침이 맞았다. 맛난 거만 먹이면 모든 화가 다 풀린다고 했으니까.
생각해 보면 과거에도 그랬다.
다이어트의 가장 큰 적이 스트레스라고 했다. 그걸 풀기 위해 폭식하는 바람에 몇 년을 제자리걸음했던 것이다.
“어디로 갈 건데요?”
“산청 가자. 지리산 흑돼지 먹고, 해물 된장에 밥까지. OK?”
“콜!”
공지혜가 팔짱을 끼자 강형우는 씨익 웃었다.
그때였다.
♪~ ♪♪
박차고 태어나서, 겁날 게 뭐가 있냐? 깨지고 박살 나도, 제대로 한판 붙어봐.
강형우가 전화를 받는데, 예상보다 시기가 빨랐다.
-사장님, 저 한 번 열심히 해보고 싶습니다.
역시나 이기섭이었다.
하지만 쉽게 허락하면 가볍게 여길 수 있다 싶었다.
“일단 열심히 하겠다니까, 나야 고맙지.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어.”
-뭔데요?
“네가 주방보조로 들어오면 홀 서빙이 한 명 부족한데, 조금만 미리 말해줬으면 좋았을 것을…….
-아! 죄송합니다. 제가 그 생각을 못 했습니다.
“뭐, 어차피 사람 계속 구하고 있으니까 어떻게든 될 거야. 너무 걱정하진 말고.”
솔직히 속으로는 조마조마한 것도 사실이었다.
현재 예정을 어떻게 잡았느냐?
내일하고 모레 가오픈을 한다. 반응봐서 하루 정도 더하고 최종 체크를 할 예정이었던 것이다.
그 며칠간만 강형우와 홍성구가 주방을 맡을 생각이었다.
물론 보조가 한 명 더 있으면 그만큼 편하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렇게 임시 오픈해서 테스트하고 나면, 저 휴전선 근처 야산에서 혹한기 훈련을 하고 있을 인정둥이가 돌아온다.
정식 오픈은 거기에 맞출 계획이었다.
-저, 사장님.
“어?”
-제 친구들 데려가도 됩니까?
“알바?”
-예. 두 녀석이 있는데…….
이야기 들어보니 반백수 두 명이 있다고 했다.
올해 졸업하는데, 아직 취업을 못 하고 있단다. 학원 다니면서 경찰 공무원 준비하면서 알바도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일단 면접부터 보자. 자세한 이야기는 그때 하면 되니까.”
-옙. 그렇게 말해놓겠습니다.
“그래. 내일 보자.”
가뿐한 마음으로 폰을 끄는데, 공지혜가 물었다.
“오빠, 무슨 일 있었어요? 표정이 무척~ 음흉한데요?”
“헐, 들켰나?”
“궁금해요. 빨리 말해봐요.”
공지혜가 재촉하는데, 타이밍이 아쉬웠다. 바로 눈앞에 가기로 한 고깃집이 보였던 것이다.
강형우는 피식 웃으며 공지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들어가자. 들어가서 이야기해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