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
198화 까다롭기는
제일 중요한 건 바로 소음이었다.
공지혜는 시끄러운 소리에 민감했다. 어릴 때 아파트 살 때 겪었다는데, 그것만큼 괴로운 게 없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충분히 그럴 만했다.
현재, 강형우와 공지혜의 일정은 정말 무시무시했다.
새벽에 인성식품으로 출근, 제일 먼저 오늘 작업할 물량을 체크한다. 전날 톡으로 주문받은 걸 정리해 일정을 짜는 것이다.
그런 뒤에야 이모들 식당에 가서 아침을 먹는다.
메뉴를 손보고 있는 중이라 확인도 할 겸, 최근에는 거의 그렇게 하고 있었다.
그다음은 2호점이었다.
아직도 장사가 잘되고 있었고, 손님도 많이 몰리는 시간대라서 점심시간 전에 가서 도와야 했다.
그렇게 일하다 브레이크 타임이 되면 강형우는 3호점으로, 공지혜는 인성식품으로 간다.
회사 마치는 시간은 저녁 6시.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다시 2호점을 들렸다가 정산을 하고 이모들 식당에서 저녁을 마무리를 했다.
평균 기상시간은 새벽 5시였고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밤 10시였다. 완전히 파김치처럼 축 늘어져서 집에 들어가는 것이다.
때문에 수면 시간이 가장 중요하단다.
하루 중 유일한 휴식이기도 했기에, 행여 소음 때문에 깨기라도 한다면 곤란했으니까.
게다가 그 여파로 하루 종일 컨디션이 엉망이 되면 일하기가 더욱 고달파진다는 것이다.
그 이유 때문에 층간소음과 야간에 조용한 게 제일 중요했다.
“그러니까 가능하면 독채로?”
“예.”
“흐음, 이 동네가 주택 쪽이 오래되기는 했는데… 가만!”
부동산 삼촌은 뭔가를 떠올렸는지 다른 파일첩을 잔뜩 꺼내왔다.
“사실 신혼이면 살림 장만하는 것도 돈 많이 들어가거든. 그래서 오피스텔이나 어느 정도 옵션이 갖춰진 곳을 추천한단 말이지.”
“저도 그런 생각을 하기는 했죠.”
현재 여유 자금은 일억이 조금 넘었다. 전세를 팔천으로 제한한 게 그런 부분을 감안한 것이다.
일단 에어컨은 필수였다.
여기에 TV, 세탁기,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만 계산해도 돈 천만 원은 그냥 깨진다.
또, 지혜 노트북하고 내 컴퓨터도 사야 했고 옷장이나 기타 수납장까지 계산하면 얼마나 더 나갈지 몰랐다.
하지만 독채를 얻는다면, 그런 부분들을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나중에 이사비가 더들기는 하겠지만 몽땅 싸들고 나가면 되니까.
“여기가 딱 그 집인데… 지대가 좀 높아도 되냐?”
“얼마나요? 설마 저 사는데 정도로 높진 않겠죠?”
마을 버스 종점에서도 걸어서 올라가야 하는 게 지금의 자취방이었다. 공지혜를 생각하면 조금이라도 낮은 곳이 좋았던 것이다.
“그 정도는 아닌데, 좀 높기는 하다.”
그러면서 말하길, 부동산 사람들끼리는 이렇게 이야기한단다. 부산의 경우, 10m 정도 높은 지대로 갈 때마다 월세가 만 원씩 내려간단다.
산꼭대기의 경우, 보증금 오백에 월세 일이십이면 어지간한 데는 다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가 수영초등학교 뒤편의 빌라촌인데, 일단 남향이고, 동네 조용하거든. 너네 가게랑도 가까운 편이고.”
지성분식 2호점 인근이긴 했는데, 강형우가 다녀본 동네는 아니었다. 거의 도시 고속도로와 접해 있는 인근이었던 것이다.
“여기가 진짜 살기는 좋아. 우선 전세가 육천에 월세 이십인데, 이건 조정하면 될 거구. 중요한 건 2층 독채라는 거지. 방도 세 칸에 앞에…….”
사진을 보니 올 리모델링된 2층 주택이었다.
집도 깔끔했고, 에어컨도 거실과 안방 두 곳에 달려 있었으며 양문형 냉장고에 세탁기까지도 옵션이었다.
“그런데, 여기 왜 이렇게 싸요?”
“그게… 딱 하나 문제가 있는데… 소방서 뒷집이야.”
“헐.”
대한민국에서 가장 존경해야 할 직업 중에 하나가 소방관들이었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시고, 위험한 현장에서 가장 늦게 나온다는 분들이었다.
하지만 그분들은 존중하는 것과 소방서 뒤에 사는 건 별개였다.
그건 수시로 울리는 출동 싸이렌 때문이었다. 방음이 잘된 아파트나 신축 빌라 같으면 괜찮겠지만, 이 주택은 전혀 그렇게 보이질 않았던 것이다.
“삼촌, 우리 다른 건 몰라도 자는 거 잘 자야 돼요.”
“역시 그렇지? 그런데 그거만 빼면, 여기 이 집이 제일 조건이 좋아. 집도 깨끗하고.”
미련이 남는지 이런저런 설명을 하는데, 솔직히 아깝기는 했었다.
이 주택을 아파트로 비교하면, 전세로는 거의 일억 후반대에 가까웠으니까.
결국 부동산 삼촌은 다른 집 몇 개를 더 보여준 뒤, 한숨을 내쉬었다.
“거참, 더럽게 까다롭네.”
“저 원래 그런 거, 이제 아셨어요?”
강형우가 웃으면서 말하자, 부동산 삼촌도 피식 하더라.
“하긴, 신혼집 구하는 거니 귀찮게 하는 게 맞긴 하다. 고생 좀 하더라도 집을 잘 구해야 편안한 법이니까.”
부동산 삼촌은 그렇게 말하며 파일첩을 덮었다.
강형우도 단번에 딱 구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까도 그렇게 말하질 않았던가?
집은 많지만 맞는 집은 잘 없다고.
부동산 삼촌은 따로 메모를 한 다음에야 고개를 끄덕였다.
“내 몇 군데 연락해 보고 알아봐 줄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으라고.”
***
치이이익.
달궈진 기름속에 돈가스가 잠수했다.
곧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지글지글 튀겨지더니 이내 맑은 갈색으로 색이 바뀌어 버렸다.
강형우는 그 돈가스를 꺼내서 기름망에 올린 뒤, 접시를 펼쳤다. 거기에 밥을 올리고 샐러드를 깔고 단무지와 피클을 올린 뒤, 돈가스를 놓았다.
마지막으로 각각의 특성에 맞는 소스가 뿌려졌다.
여기에 하와이안 돈가스만 그릴에 구운 파인애플을 올리면 끝이었다.
“자! 일단 맛부터 봐.”
기본 돈가스에 하와이안 돈가스, 불돈가스가 테이블에 놓였다.
그 순간 네 쌍의 눈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금설비가 나이프를 들고 돈가스를 썰려고 하는데, 다른 알바가 인상을 썼다.
“넌 가만히 있어.”
그 짧은 한마디에 금설비가 멈칫했다.
강형우는 피식 웃으며 물었다.
“왜? 먹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두지.”
“안 됩니다, 사장님. 얘한테 맡기면 난장판이 돼요.”
그렇게 말한 알바는, 금설비의 오빠였다.
동시에 둘째도 고개를 끄덕였다.
“치, 맨날 나만 가지고 그래.”
금설비가 투덜대는데도 두 오빠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접시를 뺏어서 돈가스를 깔끔하게 썰어놓은 뒤에야 앞쪽으로 가져다준 것이다.
그제야 금설비는 웃으면서 포크를 들기 시작했다.
확실히 참 희한한 조합이었다.
알바는 모두 넷.
첫째 금일우, 둘째가 금이선, 셋째가 금설비… 아니, 금삼희였다. 그리고 남은 한 명은 금일우 친구인 이기섭이었다.
대체 어떻게 이렇게 됐느냐?
금설비가 알바하겠다고 돌아간 다음 날, 뜬끔없는 전화를 받았다. 정말 알바 시작하는거 맞냐고 다짜고짜 물어왔고 면접 보고 싶다고 했던 것이다.
혹시나 극성 팬(?)들일까 싶었는데, 오빠들이라고 했다.
막 군대 제대한 금일우가 큰오빠란다. 그리고 친구 녀석과 함께해도 되냐고 물었던 것이다.
그게 이기섭이었다.
나이는 둘 다 올해 스물다섯, 복학 전까지 여유가 있다면서 여름까지는 일할 수 있다고 했다.
당장 사람이 급한터라 당연히 OK 했다.
그다음 날, 황당하게도 둘째도 면접에 나왔다. 올 여름에 입대 예정이라면서 그때까지 일시켜 줄 수 있느냐고 물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사정을 알게 됐는데…….
설비의 원래 이름이 삼희였다. 조금 촌스럽긴 하지만 이유가 있었다.
금일우, 금이선, 금삼희.
딱 보면 일이삼이었다. 거기에 뒷 글자들이 어머니 성함이란다.
좀 황당하긴 했지만, 아버지가 어머니를 그렇게 사랑해서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설비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 병으로 돌아가셔서 잊지 않기 위해 개명을 다 해버렸다는 것이다.
확실히 그런 사연이라면 이해 못 할 것도 없겠지.
어쨌든 어머니가 없어서, 두 오빠들이 그 역할들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금설비가 아직 철이 들지 않아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란다.
이걸 뭐라고 그랬지?
시스터 콤플렉스인가? 그랬던 것 같은데.
어쨌든 한 번에 알바 넷이나 구해졌으니 좋긴 좋았다. 적어도 팬클럽 회장이라는 그 친구보다는 훨씬 건전(?)하게 보였으니까.
게다가 두 오빠가 극진히 싸고도는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슈스케인지 뭔지 나간다는 놈이나, 목사 돼서 설비한테 교회를 바친다는 놈들이 주변에 존재했으니, 어쩌면 저런 행동들이 당연하겠지.
갑자기 금일우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근데, 사장님.”
“왜?”
“이거 진짜 맛있습니다. 제가 최근에 먹어본 돈가스 중에서 최고입니다. 정말 잘 팔릴 것 같아요.”
아직 군대물이 덜 빠졌는지 말투가 딱딱하긴 했지만, 가식은 없어보여서 좋았다.
“와! 이게 육천 원이라고요? 옆에 경대 가면 팔천 원짜리도 이거보다 못한 거 많은데… 진짜 맛있어요.”
이기섭까지 칭찬을 하자 금설비가 엉뚱한 소리를 했다.
“맛은 좋은데… 왜 경대에 가게 안 내요? 거기가면 진짜 대박 날 거 같은데?”
“거기 월세가 얼마인 줄 아니? 이만한 가게 차리려면 세만 이백은 줘야 돼. 거기다 권리금이 최소 오천만 원이다. 1층 대부분 그래.”
장사가 안 돼도 쉽게 넘기지 않는 음식점들이 대부분이었다.
권리금 자체가 워낙 쎄기 때문에 그거라도 건지겠다고 버티는 이들이 상당수였으니까.
무엇보다 번화가 라인의 경우, 1층 바닥 권리금만 삼천대라니 감히 엄두가 안 났던 것이다.
“그리고 거기는 뜨내기 손님들이 많아서 맞지 않을 것 같더라고.”
박리다매의 필수 조건 중에 하나가 단골이었다.
기본 매출 자체가 많이 나와야 저렴한 가격으로 지속적인 판매가 가능했으니까.
하지만, 번화가 상권은 그게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진상 손님 비율도 크게 높아서 벌리는 액수만큼 스트레스도 커진다고 들었던 것이다.
그 외에도 몇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애들한테 설명하기에는 너무 어려웠다.
“돈가스 다 먹었으니까. 이제 뭐 해줄까?”
“뭐가 제일 맛있는데요?”
금설비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물었다.
저 정도 반응이라면, 이미 지성분식 맛의 포로가 된 게 틀림없었다.
“다 맛있지. 가장 기본이 되는 게… 잠시만.”
강형우는 주방에 들어가서 라면 두 개를 뚝딱 끓여 가지고 나왔다.
그런 뒤, 김밥까지 말기 시작했다.
기본에 충실한 지성김밥, 그리고 제일 잘나가는 참치김밥이었다.
“먹어보라고.”
말이 떨어지지가 무섭게, 애들이 수저를 들었다.
클리어 시간은 고작 10여 분, 라면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작살을 내버린 것이다.
강형우는 그 광경을 흐뭇하게 지켜봤다.
일단 내일이 가오픈 날이었다.
정식으로 홍성구가 출근하고, 강형우는 공지혜와 함께 당분간 여기에만 매달릴 예정이었다.
때문에, 알바들과의 친밀도가 무척 중요했다.
솔직히 현재 인원으로는 스텝들이 부족한 건 사실이었다. 고작 하루 이틀만에 백기를 들 가능성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한 달만 일하면, 약속한 것 이상의 월급을 줄 생각이었다. 한 번 돈 맛을 보면 쉽게 그만두지 못할 테니까.
또 다른 이유는 일종의 홍보였다.
얘들은 전부 이 동네 산다.
친구들한테 맛있다고 소문만 내도 효과가 적지 않을 터.
그만큼 이 동네 식당들은 음식이 너무 형편없었다. 말 그대로 정성이라곤 하나도 보이질 않았고, 진짜 자기 자식들한테는 안 해줄 그런 것들을 팔았던 것이다.
때문에 입소문만 잘 나도 괜찮다 싶었다.
마지막으로, 식당 종업원들은 적어도 그 가게의 음식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손님들이 물었을 때 최소한의 대답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강형우가 직접 음식을 만들어준 게 그래서였다.
“우와, 진짜 맛있다.”
“그러게. 이렇게 맛있는 라면은 정말 오랜만인데. 혹한기 때 먹었던 것보다 더 맛있어.”
금일우와 이기섭이 극찬을 하는데, 금이선은 박수까지 쳤다.
다만 금설비만이 아쉬워했다. 다이어트 한다고 라면을 늦게 먹는 바람에 제일 적게 먹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확실히 차원이 다르네요. 맛이 평범하지 않아요.”
“사장님.”
“어? 왜?”
강형우는 묘한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이어질 말이 기대되었던 것이다.
갑자기 이기섭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저… 이거 배울 수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