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
197화 집이야 많지
“오빠가 그랬잖아요.”
“내가? 뭘?”
당황해서 내뱉고 나니, 아차 싶었다.
공지혜의 표정은 의외였다. 지금껏 거의 본 적이 없는 그런 얼굴이었던 것이다.
차라리 말 다 할 때까지 듣고 기다릴걸.
“휴우~ 내가 진짜. 오빠 믿고 살아야 하나 싶네요.”
“엉?”
“아~ 몰라요. 몰라. 무슨 남자가 저렇게 둔하고, 눈치도 없고, 아오, 답답해라.”
며칠 전, 어머니가 빨리 집 구해서 나가라고 한 뒤부터, 조금씩 고민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유가 궁금했지만 굳이 물어보진 않았다. 서로 사랑하고 있으니까, 때가 되면 알아서 말해줄 거라 판단했던 것이다.
하지만 항상 웃던 지혜도 이번만은 심각한 모양이었다.
대체 뭐가 그런 건지…….
“오빠가 그랬잖아요. 몸만 오면 된다고.”
“어? 어, 그랬지.”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그게 아니더란 거죠.”
“뭐가?”
“그러니까 오빠는 집도 알아보고 이런저런 계산하는 거 있는데… 전 아무것도 없잖아요.”
그러면서 한숨을 푹 내쉬는데, 아차 싶었다.
공지혜는 알뜰살뜰하다. 가게에서도 그랬고 살림 면에서도 우리 어머니가 인정할 정도였다.
무엇보다, 햇수로 지난 4년간 일하면서 무려 삼천만 원을 저축했다. 매달 거의 백만 원을 꼬박꼬박 모았다는 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장모님이 몰래 말씀하시길, 집에도 꼬박꼬박 돈을 부친다고 했다.
솔직히 월급 주는 입장에서 얼마나 버는지 뻔히 아는 상황.
그렇게 따지면 공지혜는 정말 악착같이 모았다.
심지어 인성식품을 차리느냐 마느냐를 고민했을 때, 나한테 그랬었다.
모아놓은 통장을 보여주면서, 망해도 괜찮으니까 도전해 보라고 했었다.
그때 느낀 게 이거였다.
세상에 이런 여자는 다시는 못 만날 것 같다고.
어쩌면 무수한 전생 중에 독립운동을 했기에 얻은 복이라 생각했다. 결혼을 결심한 게 그래서였던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러더라.
결혼은 현실이라고.
어쩌면 공지혜도 그걸 알기에 객관적으로 나와 자신을 비교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잠시 고민하던 강형우는 그냥 속 시원히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니까 보통은 그러더라고. 남자가 집을 사면 여자가 혼수를 해온다고. 그게 많이들 하는 말이기는 한데…….”
강형우는 심호흡을 한 뒤, 가까운 사람들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털어놨다.
신원이 형이 그랬다.
집도 있고 살림도 다 있으니 그냥 살면 된다고 했었다.
그때 장인어른께서 버럭 하셨단다. 그럼 결혼식 비용을 전부 부담하겠다고, 안 그러면 이 결혼 못 시킨다고 단호히 말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강학희 아버님께서도 반대를 했다.
귀한 딸을 보내주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정 그러면 반반씩 내자고 했었다.
하지만 장인어른께서 이러셨다.
옛말에, 딸 시집 보낼 때 해준 거 없이 보내면 구박받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 이번만은 제발 양보해 주십시오.
결국 그렇게 결혼이 성사되었단다.
창주 형은, 지우 형수가 살림을 다 사기로 했다. 어차피 자기가 쓸 거라면서 필요한 건 알아서 사겠다고 당당히 통보(?)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결혼식 비용도 반반이라고 했다.
덕수 형은, 아주 간단했다.
같이 살아주기만 해주세요, 했단다.
그 결과, 형수는 돈 한 푼 안 쓰고 결혼했다. 대신 그동안 모아놓은 돈을 덕수 형한테 전부 맡겼고, 가정 경제권을 가져갔다고 했다.
혁기 형은 반대였다.
결혼과 동시에 지금까지 모아놓은 돈을 전부 털렸다고 했다. 대신 아버님이 집도 얻어주고 살림도 전부 장만해 줬다는 것이다.
사실, 그쪽 집안이 좀 특수한 경우이긴 했다.
아버님 왈, 나중에 가게 물려줄 거니 이건 내 노후자금으로 쓸 거다, 하고 못을 박아버렸단다.
홍태구도 평범하진 않았다.
사는 곳은 작은 빌라 반전세였다.
보증금 삼천에 월세 이십오.
하지만 그 역시도 장모님이 얻어준 거였다. 둘 다 워낙 모은 돈이 없어서 결혼식만 조촐하게 올렸고, 결국 반 처가살이 비슷하게 살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주변 사람들 이야기니까, 꼭 평균이라고는 할 수 없어. 하지만…….”
강형우는 잠시 머뭇거렸다. 갑자기 정말 특이한 케이스가 떠올랐던 것이다.
바로 주혁 형과 유리 형수였다.
주혁 형이 말하길 유리 형수는 딱 집 한 채 해왔다고 했다.
그외에는 전부 자기 돈으로 했다는데, 나중에 듣고 보니 그 집 한 채가 그냥 한 채가 아니었다.
무려 40억짜리 건물이란다.
지금 황룡 프랜차이즈 본사가 있는 바로 거기가 원래 유리 형수네 집이었다나?
일단 평범한 이야기가 아니니 제쳐두자.
“보통은 그냥, 더 많이 버는 사람이 더 내는 거더라고. 형편에 맞게, 그냥 맞춰서 살더라.”
“그야…….”
“그리고 우린 좀 다르잖아.”
“뭐가 달라요?”
“흐음, 그러니까… 우린 운명 공동체? 라고 해야 할까?”
갑자기 평소에 책 좀 읽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적당한 단어가 도통 생각나질 않았던 것이다.
역시나 공지혜의 반응은 한숨이었다.
“헐. 오빠, 진짜 분위기 못 맞춘다.”
“그, 그런가? 하여간 중요한 게 그게 아니라… 전에 그랬잖아. 나 망해도 네가 먹여 살릴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었지?”
“그야. 그랬죠.”
“그러니까 그 돈 쓰지 말고 아껴놔. 그래야 나중에라도 나 먹여 살릴 거 아니야.”
“헐.”
“뭐야? 그럼 장난이었던 거야?”
“아니, 당연히 진심이었죠.”
“그래, 나도 진심이라고. 그냥 혼수고 뭐가 다 필요 없고, 너만 있으면 된다고.”
공지혜가 어이 없다는 얼굴로 쳐다봤다.
하지만 진심은 진심이었다.
막말로 내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지혜 형편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게다가 월급도 내가 주는 입장이었고 그 외에도 뭐가 많았다.
아니, 아니다.
이런 구질구질한 변명은 다 때려치우자.
공지혜가 미안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음이 가장 중요한 거였다.
무엇보다, 이게 사랑이라면 사랑이란 거다.
돈 한 푼 없이 내가 전부 다 해도 전혀 아깝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으니까.
“좋아요. 오빠 하자는 대로 다 할 테니까. 대신 조건이 있어요.”
“뭔데?”
“평수는 작아도 되니까 방 두 칸은 꼭 있어야 해요.”
“그래야 돼?”
“다 이유가 있거든요. 마지막으로 월세 살아도 되니까, 대출은 절대 안 돼요.”
공지혜는 특히 이 부분을 강조했다.
그 이유는 아마 장인어른 때문일 거다. 사업 망해서 집 팔고 정리하기 전까지, 그것 때문에 어마어마하게 시달렸다고 들은 적이 있었으니까.
사실 대출도 알아보기는 했었다.
강형우 우대정책이 살아 있는 철진 기획, 담당자 이해일 부장이 말하길 우량 고객일 경우 시중 은행 금리로 가능하단다. 전세가의 80%까지도 된다고 했던 것이다.
물론 그렇게까진 할 생각이 없었지만, 집만 좋으면 대출받아서 사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싶었다.
하지만, 공지혜가 원천 차단을 해버렸다.
“나머지는 오빠 하고 싶은대로 해도 돼요.”
이렇게까지 말하니, 대출은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
“집이야 많지. 하지만 맞는 집이 없어서 그렇지.”
부동산 삼촌은 딱 부러지게 말했다.
그러면서 대충 주변 시세를 알려주는데, 인터넷으로 본 것과 훨씬 차이가 컸다.
인근 재개발 호재 때문에 불과 몇 달 사이에 5% 가까이가 뛰었다나?
“헐. 비싸네요.”
“그런데 전세는 싸다.”
그러면서 매물을 보여주는데, 전세가 매매 물량의 세 배가 훨씬 넘는다고 했다.
“사실 내 입장에서야 집을 사라고 하는 게 맞는데, 형우 네 생각하면 말리고 싶거든. 이게 또 몇 달 뒤에는 잠잠해질 것 같더라고.”
부동산 삼촌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뒤,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은 경기도에 몰렸던 투기 세력 일부가 해운대로 갔다가 거기서 뽑을 거 다 뽑고 흩어지는 중이라고 했다. 그 여파로 이 일대 집값도 훌쩍 뛰었다는 것이다.
“대체 왜요?”
“이 동네가 의외로 살기가 좋거든. 여기 위쪽이 배산이잖아. 역 이름도 배산역이고, 배산임수 몰라?”
농담처럼 이야기하는데 맞기는 맞았다.
뒤에는 높지 않은 산에, 앞에는 수영강과 광안리 바다였다.
“또 센텀시티까지 10분 거리야. 거기에 신세상 백화점하고 롯때하고 생기면서 거기 집값이 어마어마하게 올랐거든. 그래서 여기서 출퇴근 하는 사람이 많다고.”
특히 자전거 타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망미동에서 수영동을 거쳐 거기까지 가는 데 30분도 채 안 걸리는 데다가, 거의 평지에 가까웠다. 부산에서 보기 드물게 자전거 타기 좋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외에도 가격 상승 요인이 많았다.
때문에 최근 몇 년 사이에 꾸준히 집값이 올랐는데, 슬슬 빠질 시기라고 했다. 반년 정도 지나면 안정세에 들어갈 것 같은데 그때 전세 가격도 일부 내려갈 것 같다는 것이다.
“사실 이 동네가 그래. 크게는 안 오르는데, 또 확 내려가는 건 없거든. 적당히 돈 묻어두기가 좋아. 그리고 수익도 나쁘지 않고.”
해운대와 센텀에서 빠진 자본들이 이쪽에 뿌려졌다는 게 그런 의미였다.
“아! 그래서…….”
“하여간 전세는 많으니까, 대충 조건 이야기 보라고.”
강형우는 믹스 커피를 홀짝거리면서 잠시 설명을 들었다.
“신혼이면 돈 좀 더 들더라고 깨끗한 집으로 가는 게 맞지.”
“그래요?”
“신혼이라고 안 싸울 것 같아?”
“예?”
“아니야. 부부는 원래 다 싸우게 되어 있어. 특히 남녀가 같이 살기 시작하면, 트러블이 생기게 되어 있거든. 생각해 봐. 수십 년 따로 살던 사람들이 한집에서 사는데 문제가 없을 수가 없지.”
“그야. 그렇죠.”
“그래. 그게 당연하다니까. 그런데 집까지 더러워 봐. 딱 좋은 핑계거리가 생긴다~”
한마디로, 싸움 예방 차원에서라도 신축 혹은 그에 준하는 곳이 맞다고 했다.
“내가 추천하는 데가 오피스텔 쪽인데… 여기 수영 로타리 중심으로 해서.”
“삼촌, 잠시만요.”
“왜?”
“그게. 지혜가 오피스텔이나 투룸 같은 데는 안 된다고 했거든요.”
예전에 부모님 시골 내려간다고 했을 때, 근처에 집을 알아보러 다닌 적이 있다고 했다.
그때 오피스텔을 몇 군데 봤었는데 체질상 맞지 않단다.
평수에 비해 너무 좁고 답답하다나?
마치 닭장에 있는 느낌이 너무 강하게 들었다고 했다.
“희한하네? 요즘 젊은 여자들은 오피스텔을 더 좋아하던데. 관리비가 좀 많이 들지만, 깨끗하고 편하고… 무엇보다 안전하기도 하지. 택배도 잘 받아주고.”
“그냥 빌라나, 주택 독채 같은 쪽으로 알아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
부동산 삼촌은 다시 책자를 후루룩 넘기더니 몇 개를 더 보여줬다.
“여긴, 형우 네가 지금 사는 동네 쪽인데…….”
민석이네 집 근처였다.
방 두 칸짜리 빌라 전세가 사천오백부터 팔천 사이었고 구조도 괜찮고 평수도 커 보였다.
하지만 그 동네 사는 사람만 아는 게 있었으니…….
“이 집 햇빛 잘 들어요? 남향이 아닌 것 같은데 곰팡이는요?”
“그거야 살아봐야 아는 거지. 그런데 이 집하고 이 집은 괜찮은 것 같은데…….”
부동산 삼촌은 조금만 아니다 싶은 집들은 다 빼버렸다.
사실 강형우가 내건 조건들이 조금 애매하기는 했다.
전세 팔천 이하에 방 두 칸 이상이었다.
그것도 1.5룸이니 뭐니 하는 식으로 속이는 건 절대 안 된다고 못 박았던 것이다.
여기에 가능하면 주택 독채가 좋겠다고 했다.
그 외에도 몇 가지가 더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