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
193화 뽑아주세요
사실 강형우가 이렇게까지 하는 건 이유가 있었다.
애초에 두 이모를 받기로 했을 때, 아니, 그 이전에 순이 이모한테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미 내 마음을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이전에 가졌던 미련이 빼꼼 머리를 내민 것이다.
원래 한식 식당은 강형우의 여러 꿈 중 하나이기도 했었으니까.
해서 두루치기 정식에 도전했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 ‘제대로 한 끼’와 붙는 바람에 포기해야 했던 것이다.
물론 상대가 나쁜 것도 사실이었다.
외식업계의 전설이라는 강주혁이, 본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도한 괴물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승산이 있다 싶었다.
프랜차이즈의 단점은 주혁 형 본인 입으로 이야기했듯이 유동적이지 못했다. 정해진 것을 싸고, 빠르고, 많이 파는 것에만 최적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환경에 대응해 변화를 꾀하기는 무척 어려웠다.
오히려 지성분식은 반대에 가까웠다.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서, 평범한 식당이라면 시도하지 않을 일을 무수히 해내었던 것이다.
라면과 김밥을 팔던 집에서 오뎅 국물을 이용한 국밥을 만들었고,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짝퉁 파스타를 시도했다.
달콤한 파인애플과 후르츠 칵테일을 올린 하와이안 돈가스 역시 전문점에서조차 시도하지 않던 메뉴였다.
이후 강형우는, 동네 분식집이 가지고 있던 김밥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저렴한 가격으로도, 고급 김밥 전문점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맛을 뽑아낸 것이다.
그 외, 쌩뚱맞게 폭립도 팔았고 냉라면도 성공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었다.
그걸 크게 뭉뚱그려 보면 정말 생소한 형태였다. 분식이란 커다란 틀 안에, 서로 맞지 않은 걸 억지로 몰아넣은 듯한 느낌이었던 것이다.
일종의 변종 식당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음식 하나하나의 퀄리티는 무척이나 높았다.
어설프게 흉내 낸 구색 갖추기 메뉴가 아니라, 각각의 독립된 요리로 봐도 좋을 정도였다.
그랬기에, 천하의 강주혁도 인정했다. 기묘한 형태의 운용이었지만 매출과 수익으로 그 가치를 증명했던 것이다.
어쨌든, 지성분식은 강형우의 의지에 따라 생물처럼 다양한 변화가 가능했다. 요컨대 바뀐 주변 환경에 맞게 또 한 번의 탈피를 시작한 것이다.
이제 지성분식 본점, 아니, 이모들 식당은 한식에 가까운 형태로 바뀔 예정이었다.
이 된장찌개와 김치찌개는 변화의 시작일 뿐.
“그런데 형우야.”
“예, 이모.”
“이렇게 장사 해도 되겠어?”
희숙 이모의 말이 정확히 뭘 뜻하는 건지 바로 파악이 되지 않았다.
“예? 뭐가요?”
“아니, 이렇게 되면… 우리가 할 게 없잖아. 된장찌개도 그렇고…….”
그때 애란 이모도 슬쩍 끼어들었다.
“그러게. 음식 하는 게 어려워서 우리 부른 줄 알았는데, 사장이 다 해버렸으니 우린 할 게 없네.”
일종의 서운함 같은 게 느껴졌다.
어쩌면 그게 당연한 건지도 몰랐다. 두 이모의 솜씨를 보고 스카우트한 건 맞았는데, 내가 가장 중요한 부분을 가로챘다고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강형우는 다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니에요. 이건 이모님들 맛이잖아요. 전 사장으로써 좀 더 일하기 편하게 한 것 뿐이에요.”
“그래도…….”
“아이고, 별 걱정을 다 하세요. 왜요? 제가 나가라고 할까 봐요?”
그 순간 희숙 이모와 애란 이모가 서로를 쳐다봤다.
역시나 그걸 걱정한 게 틀림없었다.
“이모님들, 저 이미 이야기 다 했잖아요. 여긴 어차피 철거 전까지 한시로 운영하는 가게예요. 공사 일정에 따라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거고. 길어야 올해까지라고요.”
“그러긴 했지.”
그런데 눈빛을 보니 아직도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반대로 순이 이모는 한쪽에서 이 광경을 보면서 가만히 웃고만 있었다.
생각해 보니 그럴 만도 했다.
순이 이모야 벌써 삼 년, 햇수로는 사 년째였다.
서로 알 만큼 아는 사이고 전적으로 믿어주다 보니 이런 문제는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두 이모는 겨우 이 주째였다.
신뢰를 쌓기에는 시간이 많이 부족한 상황.
강형우는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이모, 이 된장찌개요. 제가 배운 거잖아요. 그걸 좀 더 장사하기 편하게 바꾼 거예요.”
희숙 이모가 첫 시범을 보일 때는 이랬었다.
원래라면 베이스 육수를 끓이고, 거기에 호박이나 양파 같은 야채를 넣어서 국물을 깊게 한다.
그런 뒤에야 장을 풀고 간을 맞추는 식이었다.
그러면서 식당에서는 단계가 하나 준다고 했다. 애초에 장을 재료 위에 올려놨다가, 야채가 익고 육수가 끓을 때 풀어버린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만든 게 희숙 이모의 된장찌개 맛이었다.
“집에서 이모처럼 해봤는데, 도저히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육수에 공을 들인 거죠. 제가 아무리 해도 이모 손맛은 못 내요.”
“아니야. 이 정도면 충분히 팔아도 될 만해.”
“에이, 그래도 이모가 만든 것만큼은 아니죠. 진짜라니까요.”
강형우가 이렇게까지 말했음에도, 두 이모는 여유롭지 않았다.
사실 그럴 만한 이유를 알고는 있었다.
일단 육수를 만들어 온 이상, 과정은 간단했다. 이미 국물 맛이 제대로 우러났으니 재료만 익으면 끝인 것이다.
문제는 강형우가 육수를 너무 고심해서 만들어왔다는 것에 있었다. 때문에 고추장 양을 줄이고, 끓이는 방식도 조금 더 심플해진 것이다.
한마디로 된장찌개에 쓰기에는 너무 고급이라고나 할까?
두 이모도 그 맛을 눈치챘기에 걱정하는 거였다.
“물론 저도 음식 장사 오래했으니까, 어느 정도 비슷하게 맛을 낸 거죠. 하지만 이모님들한테 필요한 건 그게 다가 아니에요.”
“그럼?”
“경험이죠. 경험. 직접 손님들 대하고 음식 내가고 하는 건 이모님들이잖아요. 그걸 제가 직접 할 수는 없어요.”
강형우는 손발이 닳도록 두 이모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장사 경력이라는 건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이모님들처럼 오래 음식 장사한 사람들을 또 어디서 구하겠느냐?
또, 음식이란 게, 온도와 습도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건데 매번 간을 보고 맛을 유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건 오직 이모님들만 할 수 있다.
그런 노력 때문인지, 입에 침바르고 했던 칭찬들 때문인지 곧 두 이모의 표정이 많이 풀어졌다.
강형우는 그제야 웃으며 말했다.
“하여간 쓸데없는 걱정 하지 마시고요. 다음 거나 확인해 주세요.”
이번에 꺼낸 건, 돼지 불고기와 소불고기 두 개였다.
희숙 이모도 분위기를 읽었는지 모르는 척 두 음식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애란 이모도 더는 말을 반복하지 않았다.
어쨌든 강형우는 두 이모에게 음식 하는 방식을 알려주었고 서로 맛보면서 테스트까지 끝냈다.
그 과정을 지켜보던 순이 이모는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그저 웃기만 하더라.
***
“일단 이모들 식당은 됐고.”
일단 기존의 메뉴는 순이 이모가 맡기로 했다.
한식 종류는 희숙 이모가, 종류가 늘어난 밑반찬 류는 애란 이모가 하기로 했으며, 여기에 박호성이 서빙을, 임정은이 김밥과 카운터를 맡는 걸로 정리가 끝났다.
메뉴는 많지 않았다.
일단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김치찌개가 제일 우선이었다.
이건 거의 완제품을 공장에서 만들어오는 거였다.
물론 최종 단계에서 손을 보는 건 희숙 이모였다. 두부를 넣고 고춧가루를 더 뿌리고, 물 양을 조절하는 식으로 해서 손님 앞에 나가는 것이다.
된장찌개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에 새우젓으로 간을 하는데, 당분간 손님들 반응보고 맞추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다음이 두 종류의 불고기였다.
일명 뚝배기 불고기였는데, 이 역시도 공장에서 양념에 숙성까지 해서 가져오기로 했다. 그걸 육수 조금 넣고 익혀서 나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 역시도 강형우를 오래 고민하게 만들었는데, 형님네 버거가 구세주가 됐다. 밥버거에 들어가는 제육과 소불고기를 응용해서 양념을 더욱 추가한 거다.
마지막으로, 반찬 가짓수가 늘었다.
애초에 김치와 단무지뿐인 지성분식이었다. 여기에 얼마 전 강형우가 만든 부추무침과 평석이 형한테 추천 받은 깍두기가 추가되었다.
하지만 이걸로는 여전히 부족했다.
그때 애란 이모가 집에서 만들어 먹는다는 멸치 튀김을 해주더라.
황당하게도 이건 요즘에는 절대 먹지 않는 그런 거란다.
국물 우리고 남은 멸치를 튀겨서 고추장, 물엿에 무쳐 먹는 거였으니까.
“우리 어릴 때야 먹을 게 없어서, 이런 것도 만들어서 반찬으로 나왔던 거지.”
애란 이모가 그렇게 말하면서 해주는데, 의외의 맛이 괜찮았다.
육수 다 빠진 멸치가 뭐가 맛있겠냐 싶겠는데, 이걸 바짝 말린 뒤 튀기니까 식감이 파삭했다. 여기에 매콤 달달한 양념이 더해지니 자꾸 손이 가는 반찬이 된 것이다.
솔직히 멸치에서는 아무런 맛도 나질 않았지만.
어쨌든 육수 내고 남은 멸치는 공장에 산더미처럼 있었으니, 재료 걱정은 덜었다.
2호점은 신원이 형과 은주 형수가 복귀를 했다.
물론 인사(?) 관련에 대해서는 무조건 의논하기로 했고, 앞으로는 절대 무리하지 말라는 조건이 붙었다.
여기에 정은혜와 히토미가 보조 겸 미래의 주방장 후보로 더해졌으니, 걱정할 일은 없었다.
“이제 3호점 알바들만 구하면 되는데…….”
인정둥이가 제대하기까지는 앞으로 한 달이었다.
때문에 강형우와 홍성구가 주방을 맡고, 공지혜가 홀을 관리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걸로는 많이 부족했다.
3호점은 2호점보다 스케일이 컸다. 게다가 영업 방식을 생각하면 못해도 여섯 명 정도는 더 받아야 하니 조급해지기까지 했던 것이다.
“하필 설이 문제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네.”
겨울 방학인데도, 알바 하겠다는 전화 한 통 오질 않았다.
게다가 뒤늦게 깨달은 게 있었으니…….
“교통편이 최악이라더니, 진짜네.”
일단 영업 마감은 밤 11시였다.
마치고 정리하고, 차 타러 나가면 빨라도 11시 20분.
지하철이야 두어 대 정도 있겠지만 버스는 딱 한 대뿐이었다.
결론은 이 동네에서 알바를 구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여기 사는 사람들은 바로 옆 동네, 경성대 쪽에서 일했다. 대부분 술집이었지만, 수요도 많고 시급도 센 편이었으니까.
“끄응, 괜히 안 구해지는 게 아니었어.”
그랬는데, 신이 돕는 것일까?
정말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그러니까, 올해 고3?”
“헤헤, 졸업반이에요.”
“그럼 대학은?”
“대학은 생각 없고요. 연예인 할 건데요?”
순간 난감해졌다.
확실히 이쁘긴 이뻤다.
긴 생머리에 미니스커트, 그 아래 미끈하게 빠진 다리가 보였다. 20살 나이답게 풋풋하기도 했고, 몸매 역시 또래에 비하면 출중하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연예인이라니…….
“연예인 할 거라면서 알바는 왜 지원한 거야?”
“돈 모아서 서울 가려고요.”
“그건… 그렇지.”
이야기를 들어보니,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였다.
부산 구석에 있어서 그렇지 자기 얼굴이 어지간한 여자 배우들 뺨 치게 생겼단다.
솔직히 그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슨 아이돌 닮기는 한 것 같았다.
결론은, 부모님이 반대해서 지원을 못 받는다고 했다. 열심히 일해서 돈 벌어가지고, 서울로 가출하겠다는 것이다.
정말이지 꿈이 너무 가상해서 헛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알바 한다고 찾아온 첫 번째 지원자였다. 그러니 황당하다고 내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2월 둘째 주부터 일할 수 있다 이거지?”
“예. 시켜만 주시면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
일단 설 지나서 연락 주기로 하고 돌려보냈다.
이름이 금설비란다. 자신이 지은 예명이라고 그렇게 불러달라는 것이다.
이 무슨 황당한 경우인지.
그런데 애가 인기가 많기는 많은 모양이었다.
소문이 퍼졌는지 바로 다음 날, 무려 남자 새끼들 열댓 명이 연락이 왔던 것이다.
제발 알바로 뽑아만 달란다.
공짜로 일해도 좋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