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
190화 이제 안 와도 돼요
처음 분석이 형에게 그런 사람이 있다고 들었다.
강주혁이라고, 이십 대 중반부터 시작해서 불과 육 년 만에 업계의 전설이 된 남자가 있단다. 손대는 사업은 전부 성공시켰고, 프랜차이즈 업계의 신화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야기하기를.
2000년대 중반에 부산 경남권 최초로 쟁반짜장과 해장짬뽕을 히트시켰다. 동네 중국집들이 시장을 나눠먹던 시절, 차이나타운급의 중식당을 프랜차이즈화시켜서 대박을 쳤다는 것이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요즘 PC방은 별의별 음식을 다 판다.
라면에 국수, 그리고 각종 냉동식품도 팔았고, 돈가스와 볶음밥 같은 것도 주문하면 나온다.
하지만 십여 년 전에는 사발면에 물 부어주는 게 고작이었다.
그때 강주혁이 최초로 주방 시스템을 도입했단다. 볶음밥과 쌀국수 같은 음식들을 개발해 PC방에 납품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결국 입소문이 퍼지면서 초히트를 쳤다.
현재 대한민국 PC방, 노래방, 룸 주점 같은 계열에서 나오는 음식 절반 이상이 두루 컴퍼니의 제품이란다.
성공 신화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100년 가는 국숫집을 목표로, 방송까지 제작했다.
그게 강형우를 울렸던 희망국수였다.
당시 택시 기사 아저씨의 이야기는 전국을 울렸다.
tvM 최초로 시청률 5%, 순간 시청률 7%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어버이날 특집으로 재방송을 할 정도로 엄청난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그 영향으로 대한민국 외식 프랜차이즈 최초로 최단시간 200호점을 기록했단다.
또 퓨전 포차 불똥만 해도 어마어마했다.
원래 업무 제휴하던 포차 체인을 인수해서 한국 시장을 휩쓸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일본 시장에 진출, 그 업계의 판도를 뒤집어 버린 것이다.
덕분에 일본 후생노동성에서도 요주의 관심 대상이 됐단다.
불과 삼 년 만에, 한국 소주 판매량을 무려 네 배나 급증시켜 버렸으니까.
이후의 행보도 어마어마했다.
중국에 퓨전 중식당 황룡을 진출시켜 큰 성공을 거뒀고, 동남아 대도시까지 확장하고 있었다.
또, 부산 경남 지역의 중소 규모 유통 마트들과 제휴해서 대기업과 경쟁하고 있었다. 하나더마트라든가 오원 유통 같은 회사들에만 식자재 전용 제품들을 납품한다는 것이다.
솔직히 처음에는 그런 말들이 믿기지가 않았다.
세상에 그런 사람이 다 있다니.
그랬는데, 그 사람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눈앞에 나타났다.
첫인상은, 사채업자 같지 않은 사채업자였다.
파격적인 이자로 할인해 줄 테니 자기들 쪽에 주방 인력으로 등록을 하란다.
나중에 분식집 망하면 자기 회사에 취직시켜 준다나 뭐라나?
하도 어이없었지만, 사정이 급해서 허락하고 말았다.
이후, 뻔질나게 지성분식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음식이 맛있다면서 종류별로 다 시켜 먹더니 어느 순간 형이라고 부르라는 것이다.
그렇게 술 몇 잔 마시고 친해졌다가, 어느 순간 사부가 되었다.
일종의 멘토라고나 할까?
좀 황당한 전개이긴 했지만, 이상하게 싫지 않았다.
아마 그때부터 일거다.
업계를 쥐고 흔드는 대기업 사장이 아닌, 진짜 믿을 수 있는 형으로 대하기 시작했던 게.
-야! 장사 그렇게 하는 거 아니다.
-내 지론은 이거야. 세상에 공짜는 없다! 하지만 받은 게 있으면 베풀어야 한다 이거지.
-손님들이 바보냐? 이건 결국 혀 속임밖에 안 돼.
-너 근로 계약서는 쓰냐? 주휴수당이 뭔지는 알고?
-메뉴판부터 바꿔. 모든 건 사장 위주가 아니라 손님 위주로 해야 하는 법이니까.
-이 새끼야! 손님을 거지로 보냐?
-손님도 사람이다. 사람으로 대해야 널 사람으로 봐주는 거야.
생각해 보면 지난 삼 년간 너무도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단지 음식 맛있게 만드는 것 밖에 몰랐던 나를, 어엿한 장사꾼으로 만들어주었던 것이다.
그 배움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지성분식, 강형우 사장.
인성식품, 대표 강형우.
게다가 나이는 고작 서른인데, 올해 목표가 십억을 버는 거였다. 매출이 아닌, 순수익을 그 정도로 잡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주혁 형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 수준이겠지만.
어쨌든 자영업자 열에 아홉이 죽는다는 요즘 시대를 생각하면 놀라운 성공이었다.
아마 주혁이 형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지금에 이르기까지 무척이나 오래 걸렸을 테지.
그렇게 생각하니 더없이 미안했다.
연락이 왔을 때, 제대로 받을걸.
술 마시자고 했을 때, 거절하지 말걸.
진짜 그게 뭐라고 그토록 피했었는지, 그런 행동들이 후회가 되었다.
이제는 마시고 싶어도 그럴 수 없게 되었으니까.
***
“이제 그만 와도 돼요.”
유리 형수가 웃으면서 이야기하는데, 날카로운 칼이 가슴을 파고드는 기분이었다.
“우리 오빠가 이런다고 좋아하겠어요?”
“예?”
“오빠가 좋아하는 게 뭐냐면요. 퇴근하고 집에 들어와서 저녁 먹고, 애들하고 놀다가 자는 거예요. 그리고 침대에서 그날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다 잠드는 거죠.”
유리 형수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형우 씨 이야기도 많이 했어요. 너무 느리고 답답하다고. 그런데 그게 형우 씨답대요.”
“아!”
“특히 오빠랑 너무 반대라서 재밌다더라고요. 무슨 남자가 저렇게 손이 느린 건지, 자기라면 벌써 가게 열 개 차리고도 남았을 텐데.”
그 말에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유리 형수도 베시시 웃더니 가볍게 손뼉을 쳤다.
“지금이 한참 바쁠 때라고 들었거든요. 식품 회사도 신경 써야 하고, 3호점도 시작해야 하고, 전에 그랬다면서요? 올해 진짜 큰 가게 낼거라고.”
“헉. 그, 그건…….”
주혁 형이 하도 다그쳐서 술김에 버럭하고 말았다. 그러면서 더 큰 꿈을 이야기했는데, 설마 그것까지 말했을 줄은 미처 몰랐었다.
“저도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해요. 취지도 좋고요. 하지만 순서대로 하나하나 밟아나가야죠.”
“예. 그러고 있습니다.”
“그럼 여기서 이러면 안 되죠. 한창 열심히 일할 사람이 이틀 간격으로 병원에 오는 거… 아마 우리 오빠가 깨어나면 잔소리 제법 할걸요?”
순간 상상이 되었다.
-새끼야. 너 이러라고 나 누워 있었는 줄 아냐?
빨리 돈 벌어야 될 거 아니야.
성공해서 집도 사고, 결혼도 하고, 근사한 외제차에, 큰 빌딩도 사고…….
그렇게 벌어서 나 맛있는 거 사줘야지. 내가 해준 게 얼만데.
그런 놈이 여기서 이러고 있냐?
당장 나가서 돈 안 벌어와?
아마 잔소리를 안주로 삼는다면 소주 열 병은 그냥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그 정도에서나 그치면 다행일 터.
“물론 미안한 것도 있죠. 오빠가 다음 달까지 못 일어나면, 전에 기획했던 거 취소될 테니까요.”
“아. 부산 미식 박람회 말이죠?”
“예. 거의 오빠 힘으로 끌고 간 프로젝트니까, 아마 없던 일로 될 거예요.”
생각해보니 올 여름이라고 들었었다.
주혁 형과 김상일 이사가 최종 테스트를 하고, 합격한 가게들을 모아 박람회를 연다고 했다.
거기서 인기 많은 가게들을 선별해 수십 억을 투자.
체계적이고 안정적인 프랜차이즈를 시작하겠단다.
두루 컴퍼니의 시스템이라면 분명 점주들과 상생하는 또 하나의 좋은 체인점이 생기겠지.
그러면서 주혁 형이 그랬다.
그런 걸 많이 만들어서 사기당하는 사람들을 줄이고 싶단다. 악덕 대기업의 시스템에서 착취를 당하는 많은 자영업자들을 구제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확실히 주혁 형은 목표가 확고했다.
기업을 통한 사회 구제.
그 명성을 발판으로 국회의원이 되겠단다. 그리고 그 영향력으로 큰 사고들을 막겠다는 것이다.
그랬는데, 왜 누워만 있는 건지.
순간 울컥하는데 유리 형수가 손을 붙잡았다.
“많이 생각하지 마세요. 쓸데없는 잡생각은 괜히 사람을 불안하게 할 뿐이거든요.”
“아!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좋은 소식 생기기 전까지는 오지 마세요. 오빠 깨어나면 먼저 연락 줄 테니까요.”
유리 형수는 나보다 나이는 어렸지만 훨씬 어른 같았다.
전에는 철부지 같은 모습이 많았었는데, 역시 주혁 형이 선택한 사람이었다.
어쨌든 유리 형수를 보고 나니까 마음이 차분해졌다.
복잡하던 머릿속이 정리된 느낌이랄까.
그때, 유리 형수가 의외의 이야기를 꺼냈다.
“아! 그리고 우리 오빠가 숙제 내줬다는데, 했어요?”
***
“숙제? 숙제라… 그런 게 있었나?”
하도 바빠서 까먹은 게 분명했다. 연이어 사건 사고가 터졌으니, 정신이 없어서 놓친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분명 3호점하고 관련된 이야기 같았는데…….”
하지만 쉽게 떠오르지 않는 걸 보니 그리 중요한 게 아닐 터.
사실 신경 쓰이는 건 따로 있었다.
몇 번 면회를 가면서 유리 형수를 만났었다.
하지만 길게 보기가 어려웠다. 주혁 형을 찾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두루 컴퍼니의 이사들과 직원들, 그리고 무수히 많은 가맹점 사장들 때문이었다.
진짜 오다가다 본 숫자만 해도 수백 명이었다. 게다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환갑이 넘은 할아버지들도 있었고, 어머니뻘의 아주머니들도 수십 명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유리창 밖으로 주혁 형의 모습을 보고 울기도 했고, 화를 내기도 했으며, 안타까워하기도 했었다.
심지어 초등학생 꼬꼬마들도 눈물을 흘리더라.
주혁이 형이 낸 기부금, 거기에 가맹점주들의 봉사단체가 활동하는 고아원 아이들이었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이 정말 놀라웠다.
개인적으로, 그리고 회사를 통해서, 또 가맹점주들의 봉사단체가 합해져서 매달 수십억의 기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 외에 지금 하고 있는 시범 사업 하나가 있었다.
바로 각 동네마다 주민 쉼터를 만드는 거였다. 저렴한 주택을 구입해 생필품을 잔뜩 쌓아놓고 마음껏 가져갈 수 있는, 그런 시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만 잘되도 생활 범죄율이 확 떨어질거라나?
진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확실히 대단하긴 했다.
어쨌든 그런 식으로 혜택을 본 사람들도 많이 찾아왔다.
김철진 씨가 말하길, 하루에 최소 수십 명에, 많게는 백여 명이 넘을 때도 있단다.
그걸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글쎄? 솔직히 모르겠다.
하지만, 꾸준히 노력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주혁 형이 먼저 밟고 간 길이 있으니, 따라가면 될 것도 같았던 거다.
물론 그 전에, 지금 닥친 일부터 해결해야겠지?
“왼쪽, 왼쪽으로요. 예. 좀 더. 아뇨. 오른쪽이 낮아요.”
강형우가 소리치자 홍태구가 인상을 찌푸렸다.
“새끼, 더럽게 까다롭네. 전문가들인데 어련히 알아서 안 할까?”
“야. 내 눈에 삐딱하게 보이는데 그게 되냐?”
“내 눈에는 제대로 보이거든? 그리고 바닥부터 치수 다 재고 수평 잡아서 고정시키는데 어긋날 리가 없지.”
홍태구는 그렇게 말한 뒤, 바로 손뼉을 쳤다.
“거기, 그대로, 손 내리지 말고 고정해 주시면 됩니다. 예. 딱 거기요.”
“흐음, 조금 이상하긴 한데…….”
강형우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홍태구는 맞다고 일을 진행시켰다.
맞다.
지금 하고 있는 건, 지성분식 본점 간판을 떼와서 3호점에 다는 거였다.
본격적인 장사 시작의 신호라고나 할까?
물론 아직 시간적인 여유는 있었다. 바로 다음 주가 설 연휴였으니까.
강형우는 멀리 떨어져서 간판을 쳐다봤다.
확실히 뽀대가 났다. 근처 다른 가게들이 최소 십여 년 넘는 간판을 쓰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월등히 눈에 잘 들어왔던 것이다.
그리고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