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
187화 언니들 잘 왔어
“예? 주방에 들어가라고요?
강인우가 얼떨떨해 있는데, 강정우가 격하게 반발했다.
“장군, 이건 아니오. 정말 아니올시다. 아침에 먹은 짬밥도 소화가 안 된 마당에 칼질이라니요. 이건 부당한 처사이옵니다.”
“부당이고 자시고. 조만간 민간인이 될 거면 미리 준비해야지.”
“전 친구네 회사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저도 같이요.”
인정둥이가 항변했지만, 이미 뻥인 거 다 알고 있었다.
취직은 개뿔!
“명석이가 먼저 전화 왔더라. 형, 동생들이 취직 사기 칠 거라던데?”
“헐, 우정을 배신하다니. 이 나쁜 자식 같으니라고.”
“아니, 명석이가 언제요?”
강정우가 확인차 묻자 강형우는 피식 웃었다.
“걔, 일주일 전에 군대 갔거든. 그 전에 술 한잔 사주니까 바로 불던데?”
인성식품에 사람이 하도 안 구해져서 인정둥이 친구들한테 전화한 적이 몇 번 있었다.
그중 오명석이 있었는데, 고등학교 후배였다.
내 이름 팔아서 학교 생활이 편했다나 뭐라나?
어쨌든 그 녀석이 말하길 머지않아 입대한단다. 그러면서 인정둥이가 미리 발라놓은 약을 이참에 치워 버린 것이다.
대신 부탁 하나를 받았다.
나중에 제대하면 취직 좀 시켜달라고.
“참고로 어머니한테 다 말해놨거든. 그리고 영지도 신신당부하더라. 너네 어디 보내지 말고 가게에서 굴리라고.”
“와, 가족 사기단.”
강인우가 한숨을 내쉬고, 강정우가 절망에 빠졌다.
거기에 공지혜가 불을 지폈다.
“자! 앞치마.”
“와~ 믿고 있던 누님까지 이러시깁니까?”
“진짜, 누나. 우리 약속한 거 있잖아요. 그래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줬는데…….”
“이미 다 끝났단다, 얘들아. 그러니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들어가. 쉬는 시간 끝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결국 인정둥이는 주방 안으로 밀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공지혜 뒤에서 강형우가 지갑을 흔들고 있었으니까.
역시나 돈이 최고였다.
“사흘이다, 사흘. 그 안에 강석이 하는 거 보고 배워. 바로 실전 투입시킬 거니까.”
“예에?”
“에이~ 설마요.”
인정둥이가 얼떨떨해하는데, 강형우가 빠르게 쏘아붙였다.
“설마는 무슨, 다음 주부터 3호점 오픈 준비다. 그렇게 알고 철저히 배워두도록.”
“헐, 대박~”
“와~ 차라리 군대 말뚝 박을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데, 강형우가 한마디를 더했다.
“싫으면, 길바닥에서 자든가.”
***
“안녕하세요.”
본점 문이 열리고 아주머니 두 분이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현재 시각은 저녁 9시.
딱 가게 문 닫을 때였다. 다들 시간이 어중간해서 차라리 시간에 맞춰서 보기로 했던 것이다.
“언니들~ 잘 왔어.”
순이 이모가 환하게 웃으면서 손을 내밀자, 두 아주머니도 좋다고 달려들었다.
정말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산가족 상봉처럼 보일 정도였다.
“아 참~ 이쪽은 우리 사장님. 인사해.”
순이 이모의 소개에 강형우가 먼저 고개를 숙였다.
“강형우라고 합니다.”
“어머, 사장님. 저는 순이랑 같이 일했던 김희숙이라고 해요.”
“저도 같이 일했던 김애란이라고 합니다.”
그 순간 순이 이모가 깜짝 놀랐다.
“언니들? 이름 바꿨어요?”
“호호호, 얘도 눈치 없기는.”
“그러게, 척하면 척해야지.”
나중에 순이 이모가 몰래 알려주었는데, 본명의 희자, 애자라고 했다.
기쁠 희(喜) 자에 사랑 애(愛)란다. 아주머니들이 태어날 때는 그런 식으로 많이 지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너무 나이 들어 보이는 이름이라서 개명을 했단다.
물론 법적으로는 아니었고.
어쨌든 희숙 이모와 애란 이모는 올해 나이가 마흔아홉하고 일곱이었다. 처음 순이 이모가 주방 일 할 때, 음식 가르쳐 준 자매라는 것이다.
“어머, 듣던 대로네요. 인상도 좋아 보이고. 듬직하네요.”
“맞아. 나도 저런 사위 얻어야 하는데, 우리 딸은 어디서 비리비리한 놈들만 물어오는지. 호호호호.”
두 아주머니는 듣던 대로 친화력 갑이었다.
수시로 이야기 들었던 엄마 친구들 보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사실 이전부터 순이 이모가 이야기하기는 했다.
지성분식 본점 손님들이 많이 바뀌고 있었다. 학원 덕에 강사들과 학생들은 유지되고 있었지만, 동네 젊은 사람들이 대거 빠져나갔단다.
특히 여학생 손님들이 현저히 줄어들었다고 했다.
아무래도 가게 옆길 너머로 철거 팬스가 처져 있었고, 가로등도 희미해서 다니기가 겁이 나는 모양이었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게 있었으니…….
진짜 단골들이 살던 집들이 거의가 사라졌다. 보상이 일찍 마무리되어서인지 다들 떠나 버렸던 것이다.
그 자리를 채운 건, 공사장 인부들이었다.
때문에 파스타는 하루에 한두 개가 겨우 나갈 정도였고, 돈가스 판매도 부쩍 줄고 말았다.
현재 본점 순수익은 한달에 천만 원 수준.
재료비나 인건비, 월세에 기타 공과금들을 제외하면 거의 그 정도가 남았다. 한창때 삼천만 원 가까이 벌던 가게가 크게 휘청거린 것이다.
순이 이모가 여러번 이야기를 꺼낸 게 그래서였다.
메인 메뉴를 바꿔보잔다. 식당 식으로 찌개도 늘리고, 전에 도전했다 포기한 제육 한상도 다시 시작해 보자는 것이다.
강형우는 그런 이야기를 듣고 꽤 고민했다. 그래서 확인 겸 주변 가게들을 둘러봤다.
화끈 오뎅은 여전히 장사가 잘됐다.
근처에 원룸을 얻은 인부들이 부담없이 들러서 소주 한잔할 수 있는 가게가 됐기 때문이었다.
혁기 형네 태성반점도 매출이 껑충 뛰었다고 했다.
이전에는 식사 손님이 많았는데, 저녁에 술손님들이 제법 많아졌단다. 소주와 고량주 판매가 무려 서너 배나 늘었다는 것이다.
동시에 해장용 짬뽕도 불티나게 팔린다고 했다. 그랬기에 인성식품에 육수를 따로 맡긴 것이다.
작은 주방에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주문이 많아졌다나 뭐라나?
그럼 제대로 한 끼는 어떨까 했는데, 놀랍게도 거기는 끄떡이 없었다. 처음 오픈할 때 수준은 아니지만 여전히 재료가 떨어져서 9시 전에 문을 닫는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런 변화에 다들 적응하는데, 지성분식만 늦어지고 말았다.
해서 순이 이모가 이야기한 대로 변화를 주기로 했다. 솜씨 좋은 이모들을 받아서 식당 식으로 해보기로 말이다.
어차피 본점은 시한부 판정을 받은 상황.
딱히 손해 볼 일은 없다 싶었으니까.
“그런데, 이모들. 제가 음식 솜씨 좀 볼 수 있을까요?”
“호호, 당연하죠.”
“잠시만 기다리세요. 잘생긴 사장님.”
콧소리를 내며 주방으로 들어가는데, 이십 년 경력이 농담이 아니었다. 이것저것 슬쩍슬쩍 둘러보더니 바로 큰 냄비에 물부터 끓이기 시작한 것이다.
탕. 탕탕, 타타타탕.
경쾌한 칼질 소리에 파들이 썰려 나갔다.
양파들도 잘게 쪼개졌고, 다시마는 손가락 굵기로, 말린 새우는 곱게 갈려졌다.
“육수를 내야 하는데, 시간 줄이려고 이러는 거예요.”
희숙 이모는 그렇게 말한 뒤 재료를 끓는 물에 넣어버렸다.
그사이 애란 이모가 물었다.
“순이 뭐 해줄까?”
“김치찌개요.”
“여기 묵은지 없니? 그게 없으면 맛이 안 나는데.”
그 순간, 강형우는 뭔가를 떠올렸다.
아차! 왜 그걸 잊고 있었지?
“없으면 없는 대로 해야지. 분식집에서 묵은지를 왜 찾아?”
희숙 이모의 타박에 애란 이모가 배시시 웃더니 냉장고를 뒤졌다.
“이거 중국산?”
“예. 아무래도 식당이니까 단가를 맞춰야죠.”
순이 이모의 말에 강형우가 손을 내저었다.
“아, 우리 김치요. 중국산이기는 한데, 한국 사람들이 만드는 겁니다.”
다른 재료들은 평석이 형한테 받고 있었지만, 김치만은 예외였다. 주혁이 형네 회사, 두루 컴퍼니를 통해 따로 납품을 받았던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퀄리티가 달랐다.
주혁이 형 스타일이 그랬다.
쌈 야채가 필요하면 농장을 차리고, 고춧가루가 질이 안 좋다 그러면 고추 농사를 직접 짓는다. 질 좋은 새우가 필요하면 어장과 직접 계약을 하거나, 아예 배를 사버린다는 것이다.
조성기를 새우잡이 배에 태우겠다는 게 그래서 나온 말이었다.
어쨌든 수천 개의 체인점을 들고 있기에 김치 소모가 어마어마했다. 그래서 두루 컴퍼니 이름으로 중국에 김치 공장을 지어버렸던 것이다.
그러면서 말하길, 현재 조성기는 그 추운 산꼭대기에서 배추 농사를 짓고 있다고 했다.
말 그대로 산간 오지의 공장에서 유배 아닌 유배 생활을 하고 있다나?
어쨌든 강형우는 직접 먹어본 결과, 두루 컴퍼니의 김치를 선택하고 말았다. 시중에 파는 중국산 김치와 비슷한 가격임에도 맛이 훨씬 뛰어났으니까.
“아삭하고, 의외로 잘 절여졌네?”
애란 이모는 직접 맛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뒤, 냉장고에서 고기를 꺼내더니 상태를 확인했다.
“제육볶음용 고기밖에 없네요. 그럼 메뉴를 바꿔야겠어요.”
곧 뚝배기에 참기름이 둘러지고, 김치와 돼지고기, 각종 야채들이 들어갔다. 그걸 달달 볶더니 설탕과 식초 조금을 넣고 미리 끓여놓은 육수가 추가되었다.
한 십여 분이나 지났을까?
주방에서 맛있는 냄새가 피어올랐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김치찌개라고 할 정도의 향이 후각을 자극했던 것이다.
강형우는 깜짝 놀랐다.
익숙치 않은 주방이었다. 거기에 재료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는데, 그 짧은 시간에 찌개 하나가 뚝딱 나와버린 것이다.
“찌개라고 하기는 국물이 좀 적어요. 고기가 두꺼우면 좀 더 우려서 국물을 많이 내도 되는데, 얇아서… 호호호.”
애란 이모가 그렇게 말하며 국물이 보골보골 끓고 있는 뚝배기를 테이블에 놓았다.
“맛 봐요. 어떤가?”
“예.”
이미 찌개 냄새에서 합격이었다.
하지만 보는 것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었다.
강형우는 숟가락을 들고, 국물 맛부터 보기로 했다. 살살 불어서 식힌 뒤 입으로 가져간 것이다.
후룹. 찹찹찹.
맛이 익숙하면서 익숙하지 않았다. 일반 식당들에서 사용하는 조미료가 없기에 뭔가 심심하다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깊이가 있었다.
강형우는 별다른 평가 없이 밥통을 열었다.
역시, 김치 찌개는 밥하고 먹어야 제맛이었다.
***
“민석아! 이거 육수 만드는 법이다.”
“예에? 또요?”
김민석이 입을 뜨악하고 벌렸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만드는 제품(?)들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일단 지성분식의 돈가스 밑작업을 했고, 폭립용 등갈비 손질도 하고 있었다.
그 외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맛간장도 끓이고 있었으며 기타 지성분식에서 쓰는 원물 조미료까지 직접 만들고 있었다.
여기에 화끈 오뎅의 육수와 태성반점의 짬뽕용 육수, 마지막으로 형님네 버거에서 쓰는 밑재료까지 작업하고 있었으니 종류는 정말 어마어마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통닭의 염지 작업까지도 했다.
그런데 하나가 더 추가됐다.
“어. 이게 뭐냐면…….”
희숙 이모와 애란 이모를 쓰기로 결정을 내렸다. 이미 순이 이모를 통해 대략적인 사정을 다 알고 있었고, 월급도 백팔십을 주기로 합의한 것이다.
그 외 부수적인 건, 순이 이모 재량에 맡기기로 했다.
어차피 여름까지만 장사할 거고, 지성분식 본점 간판도 떼고 임시로 다른 간판을 달기로 했으니까.
해서 두 이모와 이야기한 결과, 찌개 메뉴를 내놓으려면 육수가 필수라고 했다.
강형우는 두 이모와 머리 싸매고 의논한 끝에 육수 비법을 받아왔다. 제대로 우리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기에 인성식품에서 작업해서 가져다주기로 한 것이다.
“대충 알아들었지?”
“예. 그렇게 어렵지는 않네요. 어차피 재료 대부분은 다 있는 거고. 새우나 이런것도 우리 조미료 재료니까 물건만 더 받으면 되겠네요.”
“오올, 우리 민석이. 많이 늘었는데?”
강형우가 진심으로 감탄하며 엄지를 척 들었다.
그러자 김민석이 헛소리를 하더라.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옮고, 형님 밑에서 개고생하면 이 정도는 개껌이죠.”
결국 강형우는 주먹을 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