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5
185화 정말 고마워
“식당을요?”
“어, 정확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편의점 사장이 슬쩍 알려주고 가더라고.”
대략적인 위치는 광안역 건너편 오피스텔 단지 쪽이었다.
그쪽은 지성분식과 상권이 겹친다.
가게 단골이 많기에 비슷하게 차리기만 해도 망하지는 않을 터.
유일한 단점은 월세가 비싸다는 거였다.
어쨌든, 이건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안 그래도 인터넷을 뒤져보면 그런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친인척을 동원해 라이벌 가게의 비리를 알아내 신고하는 경우도 있었고, 중요한 재료를 망쳐서 장사 못 하게 하는 일도 많단다.
간장 게장에 캡사이신을 넣는다든가, 족발집의 수십년 된 씨간장에 기름을 붓는다든가 하는 식으로도 말이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었다.
맛집에 취직해서 음식 노하우만 알아낸 뒤, 근처에 비슷한 가게를 차린다고 했다. 더 나은 인테리어와 서비스로 단골손님들을 빼앗아가는 것이다.
이 경우는, 돈 많은 사람이 이긴다. 오래 버텨서 살아남는 쪽이 독식하게 되니까.
문제는 그 과정에서 겪을 배신감과 상실감이 장난이 아니라는 거였다. 실제로 홧병 걸려서 쓰러진 사장들도 제법 된다는 것이다.
왜냐?
법적으로는 처벌할 근거가 없었다. 뻔히 알면서도 눈 뜨고 코 베이는 심정으로 매출이 떨어지는 걸 계속 지켜봐야만 했던 것이다.
물론 사적인 복수가 벌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아는 지인들을 끌고가 협박을 한다든가, 홧김에 칼 들고 찾아가서 난리를 친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런 경우는, 무조건 먼저 행동하면 지게 되어 있었다.
서로 알만큼 아는 경우라 법적인 제재를 피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흉흉한 소문까지 퍼지면… 그 가게는 반드시 망한다.
그러다 갑자기 의문이 생겼다.
“그런데, 영제가 실력이 되나요?”
음식점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맛이었다.
아무리 제대로 배웠다고 해도 지성분식의 모든 메뉴를 커버하기는 어려울 텐데?
그렇게 생각하는데, 은주 형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떤 기준이냐에 따라 다르기는 한데, 우리 가게 맛을 흉내 낼 정도는 될걸요? 제가 없어도 문제없게끔 거의 모든 걸 다 가르쳤다고 보면 되니까요.”
“아뇨. 그게 아니라… 전에 그랬잖아요. 밑준비는 절대 알려주지 말라고요.”
강형우가 가장 궁금해하는 게 이거였다.
실제로 장사 밑준비는, 아무나 손을 못 대게 했다.
정확히 할 줄 아는 사람은 공지혜와 순이 이모, 그리고 신원이 형과 은주 형수뿐.
마지막으로 김민석만이 정확한 레시피를 알고 있었다.
현재 인성식품에서 그 작업을 대신하고 있었으니까.
그때 신원이 형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미안하다. 내가 실수했어.”
주방 일은 더 가르칠 게 없었다. 게다가 은주 형수와 계획했던 것도 있어서 일부를 알려주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레시피 북의 존재를 알게 된 것 같단다.
“그럼, 전부?”
“아니, 그렇지는 않을 거야. 맛간장은 기본만, 폭립도 과정이나 기초 손질 정도만 알 거야. 냉라면도 육수 일부만 알걸?”
“하긴, 다 알면 굳이 레시피 북을 뒤질 이유가 없겠죠.”
일단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어쨌든 정리하면 이렇다.
은주 형수는 임신을 대비해 미리 후계자(?)를 키우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이영제를 찍었고 열심히 가르쳤다.
하지만 너무 믿었기에 실수를 하고 말았다. 지성분식의 노하우인 밑준비 과정까지 드러내고 말았던 것이다.
여기에 이영제가 식당을 차리려 한다는 것까지 알게 되자 추궁을 했단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자신의 일에 신경쓰지 말라’는 거였다. 그 과정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고 그게 쌓여서 이렇게 된 것이다.
“일단, 형수는 이번 주는 무조건 쉬세요.”
“아니요. 저 괜찮…….”
은주 형수가 손을 내젓는데, 강형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요. 진짜 저 단단히 화났거든요. 제가 사장이예요. 사장! 일이 이렇게 되기 전에 미리 말을 했어야죠.”
그때 신원이 형이 끼어들었다.
“미안하다. 형우야. 내가 잘못한 거야. 점장이니까, 이 정도는 해결해야 된다고 생각했거든.”
예전에 비해 성격이 많이 바뀐 것 맞았지만 소심함을 완전히 다 버린 건 아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래도 나름 노력을 하긴 한 모양이었다.
먼저 이영제를 불러서 이야기를 나눠봤단다.
하지만, 대화는 진척되지 않았고 그게 지금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여기에 나름 대책이라고 세운 게 히토미를 가르치는 거였다. 어느 정도 수준에 올랐을 때, 이영제를 내보낼 계획이었다는 거다.
“그래도 그렇죠. 저하고 의논을 했어야죠.”
“그냥 다 잘될 줄 알았지.”
신원이 형이 이렇게까지 말하니 더는 따지기가 어려웠다.
강형우는 한숨을 내쉰 뒤, 결정을 내렸다.
“이건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푹 쉬기나 해요. 괜히 조카한테 문제라도 생겼다가, 저 아버님한테 혼납니다.”
“아~”
신원이 형과 은주 형수는 더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강형우는 확실히 선을 그었다.
“앞으로 영제는 신경 끄세요. 제 발로 나갔으니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자기 인생, 자기가 알아서 살겠죠.”
***
“히토미는 잠깐 나 좀 볼래?”
강형우가 웃으며 말하자 히토미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바쁜 저녁 시간이지만, 이강석과 백창호가 붙었다. 여기에 정은혜까지 가세하니 오히려 여유가 생겼다.
물론 강형우는 휴가 나온 동생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아야 했지만.
“전에 영지가 그러던데, 비자는 괜찮아?”
“예, 사장 오빠. 안 그래도 저번 달에 일본 갔다오면서 확인했어요.”
“다행이네.”
강형우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영지가 유학을 가기 전, 잠시 셋이서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 히토미는 진지하게 휴학을 고민했다.
일본인으로서 한국에서 유학을 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알게 모르게 차별 같은 것도 당했고, 소외감을 많이 느꼈다는 것이다.
해서 일단 귀국한 다음 마음을 정리하겠다고 했다.
그때는 진짜 안 돌아올 줄 알았는데, 다행히 일주일도 되지 않아 한국에 왔다. 생각한 게 있다면서 계속 일해도 괜찮으냐고 물었던 것이다.
당연히 오케이였다. 거절할 이유도 없었고, 강영지의 보복이 두렵기도 했었으니까.
“그런데 학교는?”
“그게요. 나중에 자퇴할까 싶어서요. 교환학생 신분인데 아직 한국에 더 있고 싶어요. 그게 나중에는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어. 그렇구나.”
강형우는 약간 놀랐다. 너무 건성으로 대답했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아! 미안.”
“사장 오빠~ 저도 알거든요. 영제 오빠 때문에 그러는 거죠?”
“어.”
솔직히 대답하자, 히토미가 헤헤 웃었다.
“히토미… 괜찮아요. 은주 언니도 잘해주고, 민지 언니도 지혜도 저 가족처럼 생각해요. 선경이도 좋고, 지성 식구들 다 좋아요.”
강형우는 어렴풋이 듣기만 한 일들이었다.
가끔 히토미는 선경이와 함께 최민지네 집에 놀러간다고 했다.
또, 은주 형수랑 신원이 형이랑 밥도 같이 먹고, 공지혜랑 쇼핑도 다녔단다.
“지금도, 진짜 가족 같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
“근데, 은주 언니가 미안하다고 했어요. 그것도 여러 번. 하나도 안 미안해도 되는데, 계속 그러더라고요.”
아마도 일종의 책임감 때문일거다.
실제로 같이 주방에 서는 사람들끼리는 다 안다.
누가 더 많은 일을 하고, 누가 더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누가 더 잘 챙김을 받는다는 것을.
그 과정에서 히토미는 소외감을 느꼈을 게 분명했다.
어쩌면 일본에 갔다 온 게 그래서일지도.
게다가 은주 형수 입장에서 이영제를 더 챙겨야 할 이유가 있었으니 더욱 그랬겠지.
그랬다가 갑자기 태도로 바꿨으니 눈치 못 채는 게 이상할 거다.
그런 강형우의 생각을 읽었던 것일까?
“히토미, 서운한 거 없어요. 사장 오빠도 영지 가족이잖아요. 나 이렇게 일도 시켜줬고, 월급도 많이 챙겨준 거 알아요. 다른 친구들은 나 반도 못 받는다고 하던데.”
히토미는 웃으면서 씩씩하게 말했다.
그 모습을 보니 이상하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많이 미안했다.
오래 있지 않고 떠날 거라 생각해 어쩌면 너무 쉽게 생각한 게 아닌가 싶어서였다.
강형우는 가까스로 한마디를 꺼냈다.
“좋게 생각해 줘서, 고마워.”
***
“죽어랏! 악덕 사장!”
“다 같이 힘을 합쳐서 악당을 무찌릅시다. 지갑을 거덜 내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장님 여기 갈빗살 오 인분 더 주세요.”
“여기도 소주 두 병요.”
아주 살판이 났다.
급한 김에 한우 산다고 하니, 정은혜가 전화를 돌렸다. 정말 간만에 지성분식 본점과 2호점 식구들이 몇 명 빼고 거의 다 모였던 것이다.
그래도 숫자가 적지 않았다.
순이 이모와 홍성구, 정은혜, 박호성과 임정은, 여기에 목, 금, 토 3일만 나오는 이효석이 있었다.
2호점 식구는 최민지와 은선경, 히토미였다. 은주 형수와 신원이 형은 무조건 쉬라고 해놨고, 주말 알바들은 일이 있다고 빠졌던 것이다.
여기에 강형우와 공지혜, 그리고 국방부 소속인 이강석과 백창호가 함께였다.
덕분에 한우 갈빗살은 불판에 오르기 무섭게 이들의 입으로 사라졌다. 일 인분 이만 원짜리가 불과 십여 분만에 녹아버린 것이다.
그래도 강형우는 기분 나쁘진 않았다.
간만에 휴가 나온 동생들한테 맛있는 거 먹인다고 생각했으니까.
물론 계산할 때는 진심으로 후회했다.
군대에서 짬밥만 먹은 탓인지 둘이서만 무려 십 인분을 먹어치웠다. 여기에 차돌 된장에 공깃밥, 그리고 후식 냉면까지 뚝딱 해치운 것이다.
어쩌면 휴가 첫날 일시킨 것에 대한 보복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즐거운 1차가 끝나고 2차 보내는 사이, 강형우는 순이 이모를 찾았다.
“아이구, 뭘 또 이런 걸 줘?”
“뇌물입니다. 뇌물.”
강형우는 소고기 국거리 5만 원 어치를 따로 포장했다. 그걸 다른 사람 모르게 순이 이모의 손에 쥐어준 것이다.
근데 말 그대로 뇌물(?)이 맞았다.
“이모, 전에 이야기한 거 그거 있잖아요.”
“진짜? 그래도 돼?”
“예. 이모도 오늘 일 다 들었잖아요.”
“그러게, 영제 걔 그렇게 안 봤는데… 모를 일이네.”
순이 이모가 고개를 내젓는데, 강형우는 피식 웃었다.
“그냥 잊기로 했어요. 따로 피해 본 것도 없고, 오히려 제 입장에선 이익이기도 하고요.”
오늘 1차 회식비가 80만 원 정도 나왔다.
원래 그 돈은, 이영제 몫으로 준비해 놓은 퇴직금이었다.
사실 중간에 월급 올려주면서 근로계약서를 수정했다. 그걸 기준으로 치면 몇 개월 되지 않았고, 이강석의 경우가 있어 도의상 백만 원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다.
지성분식 2호점이 일 년째가 되어가니 따로 준비해 놔야겠다 싶어서 빼놓은 것이다.
그랬는데, 이영제가 제 발로 나갔다. 그리고 마감 전에 문자를 보내왔다.
월급 계산해서 입금해 달란다.
순간 열이 확 났는데 이내 차분해졌다.
이미 그것보다 더한 일을 수십 차례나 겪지 않았던가?
어쩌면, 연말 MT 때 이런 상황을 예상했는지도 몰랐다. 그렇게 건방지게 행동했음에도 이상하게 뭐라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강형우는 월급 입금하고, 이렇게 문자를 보냈다.
[그동안 고마웠다. 마지막이 아쉽기는 하지만, 이걸로 정리했으면 좋겠다.]
그 뒤의 내용이 더 있기는 했지만, 끝내 지워 버렸다. 거의 협박(?)죄로 고소당할 수위였던 것이다.
강형우는 마음을 정리한 듯 가볍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