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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식당 리얼갑부-184화 (184/251)

# 184

184화 그냥요

“왜?”

강형우는 정면으로 이영제를 쳐다봤다. 그러자 뭔가 찔리는 게 있는지 슬쩍 고개를 돌리더라.

“왜 갑자기 그만두겠다는 거야?”

“왜는요? 그냥 일하기 싫어져서 그런 거죠.”

이영제는 그렇게 대꾸한 뒤, 담배를 물었다.

이상하게 냄새가 비렸다. 동시에 역한 기운이 느껴지자 속까지 매스껍기 시작했다.

“진짜 일하기 싫어서 그만두겠다고?”

“그게… 예.”

“다른 이유는 없고?”

“그냥요.”

자신감 없는 대답에 켕기는 게 있는지 시선까지 피했다.

그걸 보니 이미 마음이 떠난 게 분명했다.

솔직히 잘 이해가 되질 않았다.

“너, 나랑 약속한 거 기억하냐?”

“뭐요?”

“3호점 정식으로 오픈하면 같이 일하기로 했잖아.”

“그건… 알죠. 그런데 기약도 없고 사장님도 가게에 없으니까… 그리고 주방장 누나가 뭐라 하는 것도 있고…….”

우물쭈물하면서 여러 이유를 대는데, 전부 핑계처럼 들렸다.

강형우는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

혹시 다른 문제가 있는 거 아닐까 싶었다.

기억하기로 이영제는 거의 일 년 가까이 일했다. 서빙 알바에서 주방 보조로 바뀌었고, 은주 형수에게 배워서 실력이 늘자 단계적으로 월급을 올려줬던 것이다.

기억하기로 170만 원 수준이였다. 여기에 석 달에 한 번씩 보너스, 달마다 거의 250 이상을 받아갔다.

이 정도면 제법 대우가 좋은 편이었다.

얼마 전, 회사 때문에 냉정하게 다시 계산해 본 적이 었었다.

2014년 올해 법정 최저시급은 5,210원, 일당급여는 41,680원에 월 최저 급여가 108만 원이다.

부산의 경우, 이마저도 제대로 적용 안하는 경우가 많단다.

평균적으로 식당 아주머니의 월급이 130만 원부터라고 했다. 서빙과 주방 보조의 경우 일당 오만 원으로 계산해 25일로 잡는다는 것이다.

음식 좀 할 줄 아는 경력자가 150부터라고 했으니, 확실히 후하게는 주고 있었다.

일이 좀 힘들어서 그렇지.

그 때문에 조만간 회사 직원으로 등록시켜서 다른 걸 더 채워주려고 했다. 사대보험 같은 보장이나 휴가비, 혹은 퇴직금 같은 것들 말이다.

강형우의 예상대로라면 매달 팔백만 원 이상이 더 나간다.

그걸 감수하고서라도 해보려는 건, 내 사람들을 만들고 싶어서였다.

좋은 사람끼리 오래, 그리고 함께 가자는 생각에서였다.

그랬는데 갑자기 나간다니 이게 제일 먼저 떠올랐다.

“혹시, 월급이 적어서 그래?”

“그건 아닙니다.”

표정을 보니 확실히 그 이유는 아닌 것 같았다.

“그럼 뭐가 불만인 건데?”

“그냥, 불만 같은 건 없고요.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하루 열 시간씩 일하고, 일주일에 하루 겨우 쉬는데… 너무 힘들어 죽겠습니다.”

이영제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코웃음이 나왔다.

잘 먹어서 살이 피둥피둥 찌고 있는데, 힘들다고?

정작 손이 많이 가는 건 히토미한테 거의 다 미뤘는데?

게다가 설거지는 손도 안 댄 녀석이?

강형우는 직접 주방에 서서 그걸 다 확인했다. 그 외에도 짜증이 날 만한 일들이 많았지만, 일단은 그냥 넘기자 했던 것이다.

아직 은주 형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이영제의 태도를 보니 더는 이야기가 필요 없을 것 같았다.

장사 4년, 그리고 내 밥상에서도 3년 내내 음식을 만들며 일했다.

그 외에도 장사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봤고 최근 몇 년 사이 사건사고가 많아 무척이나 다양한 경험을 했었다.

거기서 나온 직감이 이렇게 말했다.

이미 마음 떠난 사람을 붙잡는 건 미련한 짓이라고, 되돌리 수 없을 거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강형우는 한숨을 내쉰 뒤 물었다.

“너, 지난 두 달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사이에…….”

“사생활은 안 물었으면 좋겠습니다.”

“좋아. 그렇게 말한다면 물을 필요도 없겠지. 그래서 얼마나 더 일할 수 있는데?”

이영제는 잠시 고민하더니, 바로 앞치마를 벗어버렸다.

“그냥 오늘로 끝내고 싶습니다.”

***

장사가 이래서 참 좆같다.

이영제가 홧김에 나가 버리자 가게 분위기가 요상해졌다.

결국 강형우가 주방 메인을 보고 다시 시작하려는데, 신원이 형한테 연락이 왔었다.

은주 형수가 의식을 차렸단다.

하지만, 손님이 있는 이상 가게를 비울 수는 없는 노릇. 결국 누군가는 남아서 음식을 만들어야 했다.

해서 강형우는 혹시나 싶어 순이 이모한테 전화를 했다.

그랬더니 홍성구 대신 정은혜를 보내준단다. 오후에 힘써야 할 일도 있고, 요즘은 주방 메인이나 마찬가지라면서 잘한다는 것이다.

그사이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충성, 일병 이강석.”

“일병, 백창호 휴가를 명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진짜 신은 있는가 보다, 하필 이 타이밍에 두 녀석이 휴가를 나오다니.

그러고 보니 인정둥이도 내일 휴가였다.

혹시 얘들끼리 짠 건가?

“그런데 어떻게 둘이 같이 나온 거냐?”

강형우가 묻자 백창호가 먼저 대답했다.

“겨우겨우 날짜 맞춰서 나온 거죠. 원래는 첫 휴가 때도 내려오려고 했는데 도저히 시간이 안 나더라고요.”

4박 5일은 너무 짧아서 가족들과 보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 휴가는 열흘이나 됐고, 이강석도 날짜가 비슷해 조금 미뤄서 맞췄단다. 이참에 부산에서 며칠 놀다 가기로 했다는 것이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정은혜가 보고 싶었겠지.

강형우는 피식 웃으면서 두 녀석을 와락 끌어안았다.

“짜식들, 잘 나왔다.”

“이제 집에 들어갔다가 옷 갈아입고… 형? 왜 앞치마를 줘요?”

이강석이 황당해하는데, 강형우는 아예 주방으로 끌고 들어가 버렸다.

“사정이 생겨서 그런데, 일당 십만 원 쳐주마!”

“예?”

“놀면 뭐 하니? 한 푼이라도 벌어야지.”

“아니, 저희 이제 막 내려왔는데…….”

하지만 강형우는 파격적인 딜을 던졌다.

“저녁에 한우! 오케이?”

대답은 뭐, 들을 필요도 없었다.

“형수~ 괜찮아요?”

강형우가 병실로 들어서자마자 이은주가 인상을 찌푸렸다.

“가게는요?”

“아, 강석이랑 창호가 와서 맡기고 왔어요.”

강형우의 짧은 설명에 이은주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건 신원이 형도 마찬가지였다.

따지면 2호점 오픈 초창기 주방장이 이강석이었다.

이후 약간의 조리법 변화가 있기는 했지만, 근본은 큰 차이가 나질 않았다.

여기에 공지혜와 히토미가 서포트한다면 큰 문제는 없을 터.

때문에 강형우는 브레이크 타임 끝나기 직전에 택시를 잡아탈 수 있었다.

“그런데, 형수 몸은 괜찮아요? 의사가 뭐래요?”

“아무 이상 없음.”

이은주가 너무 씩씩하게 말하니, 덜컥 겁이 났다. 아까 신원이 형이 했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분명 유산이라고 했었는데…….

강형우는 차마 그 부분을 물어볼까 고민하는데, 강신원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다행히 괜찮대. 애도 이상이 없고.”

“아니, 아까는?”

“그러니까 그게……”

정신이 없어서 말을 끝까지 제대로 듣지 않았던 거였다. 의사가 말하길, 하혈이 있으니 유산 가능성도 염두에 두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걸 착각하고 유산인 줄 알았단다.

“와, 진짜!”

안도감이 밀려오자 갑자기 허탈해졌다.

점심 내내 주방에서 일하면서 그걸 얼마나 많이 걱정했었는데… 정말 배신감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그때 이은주가 웃으면서 말했다.

“나 튼튼한 거 알잖아요.”

“그야 잘 알죠.”

기억하기로 괄괄한 성격만큼이나 체력도 뛰어났다. 어릴 때부터 주방에서 일했기에 그 부분만큼은 확실했던 것이다.

특히 공지혜가 슬쩍 이야기해 준 게 있었는데, 이은주는 주방에 서기 위해서 생리통조차 참고 견딘다고 했다. 통증이 심할 때도 악으로 깡으로 버틴다는 것이다.

그런 걸로 쉬기 시작하면 습관이 된다나?

강형우가 크게 놀란 건 그래서였다.

그런 독종 기질을 가진 은주 형수가 쓰러졌다니 보통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나. 아무 이상 없음. 지금 당장 나가도 될 정도라고요.”

“알긴 아는데, 오늘은 무조건 쉬세요. 아니, 애들도 휴가 나왔고 하니까 며칠은 일도 하지 마요. 주방에 들어가면 그냥 해고할 겁니다.”

강형우는 단단히 으름장을 놓은 뒤, 그제야 진이 빠지는지 옆의 의자에 털썩 주저 앉았다.

“그런데…….”

“영제는…….”

강형우와 이은주는 동시에 말을 꺼냈다가 멈칫 했다.

그 직후 이은주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사장님 먼저 말씀하시죠?”

“아닙니다. 형수 먼저 이야기하세요.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아서요.”

잠시 망설이던 이은주는 강신원을 한 번 본 뒤에 입을 열었다.

“의사 선생님 말로는 그냥 스트레스성이래요. 원래라면 미리미리 진단을 받았어야 했는데……”

임신은 이미 알고 있었고, 몇 번 병원도 들려 검사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완전히 안정될 때까지는 비밀로 하기로 했다.

나중에 사고(?)라도 생기면 주변 사람들이 실망할까 봐서였다.

특히 강학희가 기대를 많이 하고 있어서 더욱 그랬단다.

“의사 선생님 말로는, 임신한 여자 몸은 평소와 많이 다르다고 하더라고요. 그것도 모르고 그냥 참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쌓여서 터진 거죠.”

“결정적인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아니, 그 전에… 그만큼 스트레스 받을 정도면 저한테 미리 이야기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강형우가 한숨을 내쉬자 신원이 형이 끼어들었다.

“그게… 형우야, 미안하다. 일이 그렇게 될 줄은 몰랐어.”

“뭐가요?”

“영제가 스파이였더라고.”

“예?”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싶었다. 뜬금없이 스파이라니.

그런데 이어진 이야기는 섬뜩했다.

이영제의 몸값이 올라간 건, 강형우의 제안 때문이었다.

3호점을 오픈할 때 홍성구과 이영제를 메인으로 쓰려고 했었으니까.

뭐, 여기까지야 다들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문제는 그 이후 은주 형수가 이영제를 싸고 돌기 시작했다는 거였다.

이미 당시에는 임신 계획을 세워놨고 차근차근 진행(?)하는 상황이었다. 신원이 형이 보약 먹는다고 할 때 눈치챘어야 했는데…….

어쨌든 은주 형수는 자신의 빈자리를 이영제로 채울 생각이었다. 그래서 성심성의껏 가르쳤고, 주방에서 알아야 할 노하우도 대부분을 전수했단다.

진짜 전통 있는 중식당에서 제자를 키우는 심정으로 아낌없이 배풀었다는 것이다.

이영제가 삐딱선을 타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스스로 대단한 사람이 된 것처럼 굴기 시작했다나?

“그정도 반항(?)은 웃으면서 넘길 수 있었거든요. 어차피 사람은 자기 자리를 찾아가면서 조금씩은 변하기 마련이니까요.”

순간 은주 형수의 눈빛이 무시무시해졌다.

이 정도까지는 봐주겠다.

하지만 정도를 넘어가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그랬는데, 갑자기 수상한 행동을 하더라고요.”

“그게… 뭔데요?”

강형우가 묻는데 신원이 형이 대답했다.

“우리 연습장을 홈쳐보기 시작하더라고.”

“예? 설마 그 연습장라는 게…….”

“맞아. 너하고 나하고 만든 레시피 북.”

“헐, 얘가 미쳤나?”

순간 머리에 열이 확 올랐다.

그 레시피 북은 그리 단순한 게 아니었다.

거의 반년 넘도록 신원이 형이랑 늦게 까지 남아서 개고생해 가면서 만든 것이었다.

돈가스 밑간 하는 정확힌 비율이라든가, 온도에 따른 맛간장의 변화 같은, 정말 남들이 알아서는 안 되는 특별한 내용들이었던 것이다.

따지면 지성분식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었다. 노하우 대부분을 정리해서 기록한 것이니까.

물론 조금 이전 버전이기는 했지만.

“영제가 그걸 왜?”

“그러니까, 나도 우연히 듣게 된 건데 편의점 사장님이 그런 이야기를 해주더라고.”

이영제가 길 건너편에 가게 자리를 보러 돌아다녔단다. 그쪽에도 편의점이 하나 더 있어서 왔다 갔다 하다가, 부동산 사무실에서 나오는 걸 봤다는 것이다.

해서 부동산에 물어봤더니, 식당 하나를 차리려고 한단다.

순간 강형우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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