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6
176화 이대로는 안 돼
“후우~”
강형우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두어 달 사이에 먼 길을 왔다.
가볍게 해결될 거라 생각한 게 의외로 복잡했고, 어려울 거라 고민했던 건 의외로 쉽게 풀렸다.
전자는 창주 형의 계약 문제였고, 후자는 사무실과 3호점의 일이었다.
이제 머리 아프게 했던 일들은 대충 정리가 되었으니, 애초의 계획대로 진행하기만 하면 된다.
“그나저나 생각보다 깔끔하게 나왔어.”
강형우는 복잡한 일을 처리하는 틈틈이 사무실에 들렀고 강학희에게 자문을 구했다. 게다가 최근의 소득이 있었으니 임경윤을 통해 얻어낸 정보와 지식들이었다.
두루 컴퍼니 양산 공장에는 그런 시설들이 있단다. 일종의 라커룸 같은 공간에 샤워 시설까지 붙어 있다는 것이다.
장소가 청결하면 좋지만, 사람도 청결해야 한다.
때문에 샤워 공간에 각종 세정제들을 갖춰놓았고 사우나급의 온수 시설도 갖추어놨다는 거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어떤 냉난방기가 좋고, 공기청정기는 필수라고 했다. 공장용 정수기도 어떤 업체가 좋다고 소개도 해줬으며, 그 외의 소소한 팁 같은 것도 들을 수 있었다.
그때 약간의 위화감 같은 걸 느꼈다. 혹시 주혁 형의 사주(?)를 받고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그런 거 말이다.
의심은 들었지만, 일단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쨌든 강형우는 공간을 확장시켜 비슷한 시설을 만들었다.
솔직히 큰 식품 공장의 멸균 시설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마치고 나올 때 적어도 몸에 음식 냄새가 배이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 외에도 자잘한 추가가 더해졌고, 각종 시설이 충분할 정도로 들어섰다.
다행히 강학희는 두말없이 일을 진행시켰고, 공사비도 크게 넘지 않았다.
“윽.”
갑자기 심장의 두근거림이 빨라졌다.
최근에는 한 번씩 이상했다.
아픔이라고 하기보다는 뭔가가 가득 차오르는 그런 기분이랄까?
그때마다 감정이 흔들렸고, 심장이 요동쳤다.
하지만 명상을 하듯 천천히 호흡에 집중하니 금세 평소대로 돌아왔다.
“이거 병원 한번 가봐야 하나?”
기본적으로 운동을 오래했기에, 위험할 정도가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불안한 것도 사실이었다.
“혹시 과로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의심할 건 그거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최근에 공지혜가 무지하게 잔소리를 하더라. 좀 쉬어가면서 일하라고.
“끄응, 그게 말처럼 쉽게 되면 다행인데…….”
벌려놓은 일이 한두 개가 아니었고, 그 모든 게 자신의 손을 직접 거쳐야 했다. 하루 이틀을 손 놓아버리면, 일이 일주일, 열흘씩 밀려 버리는 것이다.
“그래도… 며칠 정도는 쉬어야겠지?”
곧 크리스마스였다.
원래 준비하면서 연말까지는 쉴 생각이었는데, 이상하게 일이 꼬여 버린 것이다.
아직도 할 일은 태산이었으니까.
***
“잘되고 있냐?”
-예, 형님.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아니, 잘되고 있냐고?”
곧, 폰 너머에서 다 죽어가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름 씩씩하게 대답하려는 것 같은데, 체력이 한계에 온 것 같았다.
요즘 제일 바쁜 건 김민석이었다. 회사가 정식으로 오픈하면 해야 할 일들을 배워야 했었으니까.
그 때문에 화끈 오뎅에서 육수 만드는 법을 배웠고, 우리 통닭에서 염지 과정을 수업 받고 있었다.
또, 태성반점에서 속성 실습 코스까지 받았다.
우리 가게 음식 맛도 모르는 놈한테 일을 맡길 수가 없다는 이유였다.
당연히 호통을 친 사람은 혁기 형 아버님이었다.
물론 이게 다가 아니었다.
형님 버거는, 지금까지 가게에서 하던 밑 작업들을 인성식품에 맡기기로 했다. 제육과 닭갈비, 또 참치, 김치, 떡갈비 같은 재료들을 완전 조리해서 납품하기로 했던 것이다.
일단 여기까지가 1차였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랬다.
화끈 오뎅과 태성반점의 육수.
우리 통닭의 염지 닭.
형님 버거의 재료 조달.
이걸 인성식품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때문에 김민석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머리를 혹사시키고 있었다. 가게들을 돌아다니면서 음식 맛을 배워야 했고, 그걸 수치화시켜야 했으며, 동시에 요식업의 상식에 대해 공부해야 했던 것이다.
따지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창주 형의 십 년 노하우와 혁기 형의 경력이 녹아 있는 조리법.
여기에 강형우와 현우 형이 같이 개발한 염지 방법과 덕수 형만 아는 비법까지 배워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김민석은 열심히 그 과정을 해치우고 있었다.
형들의 믿음을 배신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강형우는 피식 웃은 뒤, 당근을 내밀었다.
“너, 직책은 뭐가 좋겠냐? 부장이나 과장 중에 하나 골라봐라.”
-예?
“너, 나중에 직원 받아야 할 거 아냐? 그런데 김민석 씨 이렇게 들으면 좋겠니?”
-당연히 아닙니다.
“그래, 다정이랑 의논해서 하나 정해. 물론 월급은 처음부터 그렇게 못 주지만. 타이틀은 근사하잖아?”
-감사합니… 아욱.
“야? 무슨 일 있냐?”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갑자기 전봇대가 앞에…….
쯔, 안 봐도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졌다. 고개를 숙이다가 박은 게 분명했던 것이다.
그러게 통화할 때는 구십 도 인사하지 말라니까.
“내일까지 알려줘. 간판 달 때 명함도 같이할 거니까.”
-예, 형님. 꼭 연락드리겠습니다. 살펴 가십시오.
통화를 끝내자마자 웃음부터 나왔다.
애초에 김민석의 직책은 대리였다.
사원으로 하기에는 그래서 적당히 달아주자고 했는데, 덕수 형이 적극 반대했던 것이다.
“야, 사장이 다섯인데 대리는 좀 아니지. 무슨 콩가루 회사도 아니고. 좀 그렇다.”
“그래서요?”
“보통 사장 밑에 전무, 상무, 이사 이런 식으로 되어 있잖아? 어차피 우리끼린데 적당한 거 하나 주면 안 되겠냐? 김 이사 이 정도?”
“에이, 나중에 사람 더 받을 건데 사장 다섯에 이사 하나, 나머지가 전부 직원이면 그게 더 이상하죠. 오히려 도망가는 사람도 늘 테고.”
“그런… 가?”
“보통 현장에서는 대리 달아주는 게 맞대요.”
그렇게 결론을 지으려고 했는데, 덕수 형이 딴지를 걸었다.
“근데, 직원 더 들어오면 어차피 직급 올려줄 거잖아?”
“그야 그렇죠. 나름 창업 공신이고, 우리 회사 핵심 기밀을 쥐고 있는 직원인데요.”
“그럼 부장이나 과장으로 가자.”
“왜요?”
“어차피 몇 달 뒤 진급할 거… 명함 두 번 파면 돈 아깝잖아.”
“헐.”
강형우가 황당해하는데, 오히려 형들이 전부 찬성하더라.
아놔, 명함 하나 파는데 얼마나 한다고.
어쨌든 회의 끝에, 결국 김민석에게 맡기기로 했다. 그래서 부장이나 과장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 것이다.
다음 날 김민석이 전화를 했다.
-형님, 와이프가 무조건 높은 게 좋답니다. 염치없지만 부장으로 해주십시오.
그렇게 사장 다섯에 부장 하나인 회사가 만들어지고 말았다.
그즈음 되니 고민이 되더라.
이거, 회사가 제대로 굴러가는 게 맞나?
***
간만의 휴식이었다.
형들도 지쳤는지 당분간 통화하지 말자고 하더라.
강형우는 이참에 가게들을 다시 점검했다.
제일 먼저 지성분식 본점에 들려 순이 이모와 잠시 시간을 내었다. 의논할 게 있다는 것이다.
“형우야,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아.”
“이모, 저도 확인했어요.”
지성분식 위쪽으로 조금씩 철거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많은 주민들이 대거 빠져나갔고, 매출이 거의 30% 정도가 내려가 버렸다.
제일 잘됐을 때와 비교하면 절반 수준.
사실 벌써부터 알고 있었고 준비하려 했었다.
하지만, 다른 일들이 겹쳐 미처 신경 쓰지 못했다. 공지혜가 가끔 이야기하고는 했는데 이렇게까지 심각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물론 본점이야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들렀지만 일일이 수익을 확인한 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이모는 어떻게 하고 싶어요?”
“나도 고민 많이 해봤는데, 손님들이 그러더라고. 찌개나 밥 종류를 늘렸으면 한데. 음식 솜씨가 좋으니까 그렇게 해도 될 거라더라고.”
그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냈는데, 동네 분위기가 많이 뒤숭숭하단다.
일단 지성분식 옆 상가들 중 일부는 벌써 가게를 비웠다. 건설과 관계가 없는 옷가게와 반찬집은 보상을 받아 떠났고, 그 자리에 부동산 사무실이 들어선 것이다.
또, 위쪽 골목에 배달전문 식당이 하나 생겼으며 근처에 함바 식당도 오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상권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였다.
게다가 철거지역 주민들은 떠났지만 주변에는 오히려 방이 부족할 정도였다. 꾸준히 원룸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음에도 젊은 인부들이 몰려들면서 월세까지 올랐다는 것이다.
“그럼 한식 쪽으로 바꾸자는 거죠?”
“아무래도 그게 나을 것 같더라고. 사실 학생 손님들도 많이 줄고 있거든.”
현재 기린 빌딩에 자리 잡은 학원을 제외하고, 근처 두 곳이 문을 닫았다고 했다. 철거지역 주민들이 이사 가면서 학생들 역시 근처 학원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결론은 간단했다.
맛집으로 소문나서 그럭저럭 장사는 잘되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 부족한 감이 있었다. 메뉴 대부분이 매일매일 먹기에는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하긴, 맛있는 돈가스도 이틀 이상은 먹기 힘들지. 그건 파스타도 마찬가지고.
게다가 한창 힘쓰는 인부들이 라면과 김밥으로 며칠을 때울 리가 없었다.
“중요한 건 반찬이더라고. 우리도 덮밥 종류는 있지만 반찬으로 나가는 건 김치, 단무지, 부추무침이 다잖아.”
“아! 그렇긴 하죠. 그럼 반찬을 늘리는…….”
강형우는 말하다 말고 고개를 저었다.
그건 정답이 아니었다.
이건 근본적인 문제였다. 단순히 임시방편으로 해결할 수준이 넘어버린 것이다.
2호점 운영하면서도 느끼지 않았던가?
장사는 그 상권의 소비자들에게 맞게 유동성을 가져야 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고쳐봐야 잠깐 버틸 수 있을 뿐, 꾸준히 손님들이 부르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찌개, 찌개라…….”
아무래도 좀 더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았다.
“확실히 순이 이모 말이 맞기는 해.”
지성분식을 버리자고 했다.
간판을 바꾸고 음식을 바꾸자는 게 아니라, 느낌을 바꾸잖다.
왜 그러냐고 물었는데 단골 아저씨들이 그랬다.
처음에는 외관 때문에 들어오기 꺼려졌단다. 그러다 근처 식당을 다 돌아봐서 고민했는데, 손님 많은 거 보고 들어왔다는 것이다.
다들 돈가스 먹고 있는 걸 보고 시켰는데, 확실히 맛은 괜찮다고 했다. 라면도 얼큰했고, 김밥도 어지간한 분식집보다 맛있단다.
하지만, 하루 이틀 먹을 집을 찾는 게 아니란다.
공사장 인부들이 매일 먹는 게 먼지였다. 그래서 국물 있는 음식을 훨씬 선호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가게가 너무 예뻐서 인부들이 쉽게 들어오기가 망설여진다고 했다.
여기까지는 강형우도 생각했던 바였다.
문제는 심리적인 거였다.
지성분식 본점!
그건 일종의 고향 같은 거였다. 어차피 없어질 가게지만 장사가 조금 안 된다고 엎어버리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매출은 점점 줄 것이고, 나중에는 적자로 돌아설지도 몰랐다.
“하아, 어떻게 하나?”
강형우는 폰을 들고 전화를 하려다 고개를 저었다.
매번 주변 사람들한테 의지할 수많은 없는 노릇이었다.
특히 주혁 형한테 전화 걸기는 더욱 꺼려졌다. 아직도 그놈의 말이, 마음에 부담이 됐던 것이다.
“결국 결정을 내리는 건 나란 말인데…….”
그때 의외의 곳에서 해답이 터졌다.
홍태구가 전화해서 쌍욕을 하더라. 디자인 시안을 언제까지 줄 거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