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1
171화 거절하자
“형우야, 일단 고맙다.”
그 말에 다들 시선을 돌렸다.
이미 김창주는 마음의 결정을 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회사 차리자고 제안한 건 나였어. 그런데 이런 실수를 하다니… 당시에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거든. 어쨌든 회사 차리고 첫 번째 일거리를 만든 셈이니 미안하다.”
먼저 사과를 하니, 방금 전의 열띤 분위기가 많이 누그러졌다.
그 뒤에 뜬금없는 말이 나왔다.
“근데 말이야.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예?”
“맞잖아. 주혁이네 회사에 비하면 우린 가난해. 이건 사실이거든.”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로는 두루 컴퍼니는 어마어마한 대기업이었다.
황룡, 희망국수, 제대로 한 끼, 여기에 PC방과 노래방 먹거리 사업에 퓨전 포차 체인까지 운영했다.
일본 진출에 성공해 점포만 스무 개 가까이 됐고, 중국에도 다소 독특한 방식으로 서른 개 식당을 열었단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동남아 진출까지 목표로 세웠다는 것이다.
듣기로 국내 점포 수만 이천 개가 훌쩍 넘는다나 뭐라나?
확실히 체급으로 치면 초슈퍼 울트라 헤비급이었다.
이런 사실을 어떻게 알았느냐.
주혁 형은 가끔 자랑질을 좀 했다. 게다가 항상 바빠서 통화가 안 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외국 출장 중이었다더라.
그러면서 이야기하다가 알게 된 것이다.
그에 비하면, 우리 쪽은 상대적으로 초라했다. 동네 장사 수준을 갓 벗어난 정도였으니까.
우선 화끈 오뎅의 경우, 아니, 창주 형은 한 달에 이천 가까이 벌어간다고 들었다.
본점 하나 운영할 때는 하루종일 매달려서 삼백 정도를 벌었다.
그런 상황에서 조가네 떡볶이 때문에 쫓겨났고, 새로 투자해서 장사를 시작했음에도 수익이 반토막 이하로 떨어졌다.
따지면 실제로는 적자 운영이었던 셈.
그러다 강형우와 개고생해 가며 튀김을 업그레이드했고, 메뉴를 전체적으로 손봤다.
기름도 바꾸고 포장 기계도 들여오고 해서 이 지역 맛집으로 자리 잡은 거다.
그때 한 달에 천만 원 가까이 벌었다고 들었다.
이후, 조가네 떡볶이가 망하고 그 자리에 분점을 내면서 수익이 뻥튀기되었다.
형님네 밥버거, 아니, 3호점의 경우 형님 버거로 간판을 바꾸었다.
단순히 밥버거만 파는 게 아니었다. 처음 모태가 되었던 코리아나 버거의 시스템까지 합쳐서 다소 기묘한 형태가 되었던 것이다.
밥버거와 맥도X드 햄버거의 결합이라고나 할까?
특히 3호점의 저렴한 가격의 햄버거와 밥버거를 같이 비슷한 가격대에 팔아서 제법 인기가 많았다.
물론 그 아이디어를 준 건 강형우였다.
어쩌다 적당한 가격에 괜찮은 가게를 얻었는데 하필 면적이 터무니없이 넓었다. 해서 그런 식으로 운영해보라고 했는데 그게 제대로 맞아떨어진 것이다.
다만 판매가가 낮아서 수익성이 떨어져, 지점 하나당 오백만 원 번다고 보면 된단다.
혁기 형네야 워낙 오래된 맛집이었고 단골들이 많았다.
짐작하기로 한 달에 이천만 원 정도는 벌어가는 걸로 보였다. 물론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혁기 형과 형수님 인건비인 셈이라 많이 남는다고 하기는 어려웠다.
마지막으로 현우 형네 우리 통닭.
아마 수익은 여기가 제일 많을 거다.
본점과 그 맞은편 가게까지 같이 운영하는데, 치킨 하면 맥주 아니겠는가?
치킨에서 남는 건 거의 없는데 술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팔렸다. 유통회사 부장이 일주일에 두어 번씩 찾아와 인사하고 갈 정도라는 것이다.
올 초여름에 월 매출만 일억 넘게 찍었다니, 정말 대박이 난 거다.
지금도 오픈 전에는 손님들 수십 명이 줄을 설 정도로 인기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여기에 지성분식을 더해도 두루 컴퍼니의 발톱 때 정도에 불과했다.
감히 싸운다는 상상을 못 할 정도로 말이다.
다들 그걸 알기에 이번 일을 고민하고 있었다. 두루 컴퍼니의 제안은 정말이지 상상을 뛰어넘었으니까.
“일단 형우 덕분에 좋은 제안이 들어왔어. 세상에 이제 막 시작하는 회사에 무려 이십억을 투자하겠다니…….”
1차로 20억을 투자. 거기에 상황 봐서 최대 100억까지도 추가가 가능하단다.
또, 프랜차이즈 관련 전문인력까지 추가해 준다고 했고, 본사 회계팀과 법무팀 지원도 받을 수 있었다.
제일 중요한 건 이거였다.
감사 조건만 받아들인다면 경영에도 간섭하지 않겠다!
정말이지 더 이상의 조건이 없을 정도로 파격적인 제안이긴 했다.
물론 주혁 형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을 터.
생각해보니 그런 제안도 나름 합리적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전에 주혁 형이 조가네 떡볶이에 대해 이야기했다.
전국 체인점만 200개 잡자.
점주 최소 보장 월 300만 원 조건이라면 본사가 한 달에 20억을 가져간다고 했다. 체인점 하나당 천만 원이 들어온다고 가정하면 말이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제대로 된 체인 회사만 차려놓으면, 사람들이 알아서 돈 가지고 찾아온단다.
인테리어를 비싼 가격에 팔고, 약간의 노하우를 교육비 받고 팔고, 재료비도 다 받으면서 오히려 비싼 가격에 물건 대주고…….
대한민국에서 프랜차이즈만큼 손해 안 보고 쉽게 돈 버는 게 없다고 했다. 그럴듯한 거 하나만 차려놓으면 누워서 숨만 쉬어도 재벌이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화끈 오뎅의 경우, 조가네 떡볶이보다 더 가치가 높다고 했었다.
하지만, 정말 그 이유가 전부일까?
대체 주혁이 형은 우리한테서 무슨 미래를 본 거지?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거다.
“그런데 말이야. 이건 내 생각이긴 한데… 난 프랜차이즈가 겁나.”
창주 형은 그렇게 말한 뒤, 한숨을 내쉬었다.
상념을 깨는 말에 덕수 형이 움찔했다.
반대로 혁기 형과 현우 형은 이해를 못 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우리 가게, 30년 전통이라고 하지만… 그리 대단한 건 없어. 그냥 다른 가게들보다 조금 괜찮은 정도? 내가 보기에는 딱 그렇다고. 그런데 프랜차이즈라니 웃기지.”
“형. 그건… 그쪽에서 평가한 거죠.”
“맞아. 그래서 더 무섭다고.”
“뭐가… 요?”
김창주는 고개를 가로젓더니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지금까지 떡볶이 장사만 30년을 했어. 그런데 앞으로도 30년이나 할 수 있을까? 그 프랜차이즈란 걸 하면?”
순간 분위기가 이상하게 가라앉았다.
곧 김창주의 고백이 이어졌다.
***
“인생 모 아니면 도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과감하게 가자고.”
“그냥 우리끼리 해먹는 거지.”
결론이 났으니, 마음은 후련했다. 두루 컴퍼니의 제안을 거절하기로 다 같이 합의를 봤던 것이다.
“와! 진짜 너 때문에 며칠 고민했던 거 생각하면… 이 새끼 일단 패자.”
덕수 형이 갑자기 창주 형의 멱살을 잡더니 책상 위로 엎어버렸다.
동시에 약속이나 한 것처럼 다들 달려들었다. 등짝을 노리고 마구 두들기기 시작한 것이다.
“아욱, 야. 인마. 야. 살살해. 아으윽.”
강형우도 이때다 싶어 손바닥으로 등짝 마사지를 마구마구 해버렸다.
이건 진짜 며칠을 힘들게 만든 대가였다. 형이고 나발이고 간에 화풀이가 먼저였던 것이다.
사실, 강형우는 사총사를 소집하기 전 이미 대충이나마 알려주었다. 두루 컴퍼니에서 20억이나 투자하겠다는 조건을 말이다.
그 때문에 다들 들뜬 꿈을 꾼 모양이었다.
개인 지분이 15%였으니, 무려 3억이란 돈을 사업에 쓸 수 있다고 봤던 거다.
하지만, 방금 안 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이유는 창주 형의 기묘한 설득(?) 때문이었다.
“내가 울 엄마한테 떡볶이 집을 물려받으면서, 제일 먼저 들었던 말이 뭔 줄 아냐?”
당연히 알 리가 없었다. 그런데 혁기 형만이 짐작하는 듯 씁쓸하게 웃었다.
“이거 하나만 잘해도 평생 먹고 산다. 그거였지.”
큰돈을 벌기보다, 안정적으로 벌 수 있다고 했다. 몸이 고되어도 남 눈치 안 보면서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힘든 걸 알면서도 가게를 물려받겠다고 했었다.
그렇게 장사한 지 벌써 십여 년.
때로는 힘들었고, 무수히 좌절도 겪었다.
특히 물려받은 가게가 철거당하는 날, 남몰래 정말 많이 울었단다.
하지만 새로 시작한다는 희망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랬는데, 기린 빌딩이 생기고 그 자리에 조가네 떡볶이가 들어왔다.
“그때 처음으로 자살 생각이 들더라고.”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했다.
가게 얻는다고 대출까지 냈다. 매달 나가는 이자에 원금도 갚아야 했는데, 매출과 수익은 줄기만 했다는 것이다.
진짜 지옥 같은 하루하루였다고 했다. 조성기를 보면서 살인 충동까지 느꼈다는 것이다.
하지만 속으로만 끙끙 앓을 뿐, 내색하지 못했다.
이 동네 장사하는 사람들 중에서, 자신이 제일 오래했다. 터줏대감이자 일종의 버팀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아마 화끈 오뎅이 문을 닫았다면?
근처 가게들이 줄줄이 폐업했을 가능성도 있었겠지.
어쨌든 이후, 어찌어찌해서 가게를 살렸다. 장사가 잘되면서 다른 고민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이걸 평생 할 수 있을까?
그게 지금까지 프랜차이즈를 거절했던 진짜 이유라고 했다.
“나도 사람인데, 돈 많이 준다는 걸 왜 싫다고 하겠냐?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무섭더라고.”
계약서에 사인하는 순간, 사업화가 시작될 거다.
전국 방방곡곡에 화끈 오뎅이 생기면 지금 운영하는 가게에 사람들이 찾아올까?
오히려 우리 가게만의 수명이 주는 거 아닐까?
프랜차이즈 폐업률이 그렇게 높다는데… 괜히 욕만 먹는 게 아닐까?
업계 평균 수명이 5년이란다. 점포 100개가 10개가 되는데 딱 그 정도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생존율이 낮은 이유는 간단했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프랜차이즈에 뛰어들고 있었으니까.
“그 외에도 별의별 생각이 다 들더라고. 그런데 어느 순간 정신이 번쩍 드는 거야. 우리 와이프가 임신했대.”
피식 웃은 김창주는 말을 이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라. 나는 과연 우리 아들한테, 내 가게를 물려줄 수 있을까?”
그 고민 때문에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단다.
과연 5년 뒤에, 아니, 10년, 20년 뒤에도 화끈 오뎅이 살아남겠느냐는 거다.
물론 계약해서 받은 돈으로 건물 짓고 떵떵거리며 살 수는 있었다. 일 안 하고 이자만 받아서 편하게 사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으니까.
“하지만 3대 가는 부자는 없잖아. 자식한테 고기를 주지 말고 낚시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라는 말도 있고.”
창주 형은 그렇게 말한 뒤, 피식 웃었다.
“나중에 우리 아들이 커서 물려받겠다고 하면 줄 거야. 싫다고 하면, 그때 가서 다시 고민해봐야지. 그래서… 지금은 하고 싶지가 않다는 게 본심이다.”
그렇게까지 말하니, 덕수 형이 제일 먼저 손을 들었다.
찬성한단다.
결국 다른 형들이 다 제안을 거절하자고 했다.
당연히 강형우도 따를 수밖에.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는 남아 있었다.
이 역시도 김창주가 결론을 내렸다.
“까짓거 계약 파기하고 위약금 내지.”
“그게… 얼만데?”
정덕수가 묻자, 김창주는 강형우를 쳐다봤다.
이건 둘만이 아는 내용이었다. 동시에 네가 이야기하면 안 되느냐는 의미이기도 했다.
“위약금이 사천만 원 정도 될 겁니다. 그래서 고민했던 거죠.”
순간 다른 형들이 움찔했다.
한두 푼도 아니고, 무려 사천만 원이라니.
“그게 두 배 배상이래. 계약금으로 이천 받았거든.”
“헐, 아무것도 안 했는데?”
“원래 조건이 그래. 그때 조금 덜 받았으면 이렇게 머리 아플 일도 아닌데 말이야…….”
“야이 미친놈아! 생돈 이천만 원이 날아가게 생겼는데 웃음이 나오냐?”
덕수 형이 버럭 하는데도 창주 형은 웃기만 했다. 그리고 황당한 결론을 내렸다.
“야. 이천만 원 물려줘도 남는 장사야.”
“뭐?”
“우리 와이프 얻었잖아.”
그 대답에 다들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이어진 말이 걸작이었다.
“그날 사인 안 했으면, 사귀지도 못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