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
170화 희한하게 꼬이네
이게 웃자고 하는 소리이긴 한데.
군대는 그래도 세 끼 밥은 챙겨 준다.
잠도 재워주지, 건 하라고 아침마다 구보도 시킨다. 거기에 몇만 원 안 되는 월급도 꼬박꼬박 나와서 담배도 줄이게 해줬다.
피우고 싶어도 돈이 부족하니까.
또, 청소, 설거지, 빨래도 안 할 수가 없어서 사회 나와 자취하는 데 쉽게 적응할 수 있게 해줬다.
그 외에도 장단점은 하나둘이 아니었다.
직장생활의 똥군기를 미리 겪어볼 수 있었고, 간접적이나마 사회의 부조리 체험이 가능했다. 게다가 온갖 악습에 적폐가 남아 있어서 불법의 선행학습까지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걸 깨닫게 된다.
자기 목숨이 제일 귀중하다는 것!
군대에서는 사람보다, 환갑 넘은 수통이 더 가치가 있었다. 군인은 일종의 소모품 취급을 받는 것이다.
때문에, 온갖 위험한 곳에 맨몸으로 내던져지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괜히 ‘몸 성히 다녀오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닌 것이다.
그런 군대가 과연 편할 리가 있겠는가?
범죄를 짓고 가는 소년원보다 더 가혹하고 위험한 곳인데?
하지만,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장사보다는 편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래도 군대는 간부들이 있고, 고참들이 있고, 동기와 후임병들이 있었으니까.
장사는, 막말로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전부 혼자 해내야 했다. 직원들이 있기는 하지만 모든 책임은 사장에게 있는 것이다.
작년 여름, 전기세 터진 것만 해도 그랬다.
진짜 몰랐을 뿐인데, 아니 괜찮다고 방심했을 뿐인데 백만 원 가까이가 깨졌다.
싱크대 수도꼭지 교체하는 사소한 것까지도 지켜보고 확인하지 않으면, 눈탱이를 맞는다. 강학희 아버님처럼 확실하게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무조건 감시해야 손해를 안 보는 것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식자재 들여오고, 그걸로 음식 하고, 손님한테 나간 뒤 돈 받기까지.
그 모든 걸 알아야 했다.
그리고 점점 알아갈수록, 그게 일부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하루에도 수차례 진상손님들과 시비를 겪어야 했고, 내가 힘들게 이룩한 걸 손쉽게 빼가려는 이들과도 싸워야 했다.
근처에 비슷한 업종의 가게가 오픈하면 며칠을 골머리 싸매야 했으며, 다른 이들의 시기와 질투도 걱정해야 한다. 원한을 피하기 위해서 자존심까지 팔아야 겨우 현 상황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힘들기로 따지면, 장사가 몇 배는 힘들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물론 강형우는 그에 합당한 수익이 나오니까 버틸 수 있었다.
거기에 꿈과 희망도 있었다.
만약 이렇게 개고생하는 데 한 달에 이삼백 벌어간다면 과연 계속할 수 있을까?
아마 바로 때려치웠을 거다.
차라리 남 밑에 들어가서 월급 받아 생활하는 게 몇 배는 편하고, 행복하고, 여유로울 테니까.
그만큼 장사는 힘들었다.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이 아니라, 꼭 세상 전체와 싸우고 있다는 느낌까지 들 정도였다.
“말이 없는 걸 보니, 생각이 많네.”
주혁 형이 정곡을 찔렀다.
그런데 이상하게 피식 하고 웃음이 먼저 나왔다.
“됐고. 힘들게 장사해서 돈 버는 게, 무엇 때문이냐? 다 잘 먹고 잘살자고 하는 거잖아.”
“그렇긴 하죠.”
“그럼 목표를 정했으면, 목적지까지 내달려야지. 무슨 도 닦는 도인도 아니고 뭘 돌아보면서 걸어가는 거냐?”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맞는 말이라고 하기에는 쉽게 인정하기 어려웠다.
“그냥 방식이 다른 거죠. 저도 뭐,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도 아니고, 나름 그림이 있다고요.”
“그 그림이 설계도냐? 추상화냐?”
“그냥 밑그림 정도요?”
그 대답에 이번엔 주혁 형이 크게 웃었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피식피식하다가 갑자기 빵 하고 터뜨린 것이다.
“왜요?”
“아니다. 아니야. 넌 역시 변한 게 없어.”
잠시 주혁 형의 시선이 내 뒤편으로 향했다.
벽을 보는 건가 싶었는데, 기이하게도 초점은 그 너머의 뭔가를 보는 것 같았다.
최근에서야 겨우 눈치챈 건데, 주혁 형은 한 번씩 저런 시선으로 날 볼 때가 있었다. 그러다 혼자 피식 웃고,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드는데 가끔 섬뜩했던 것이다.
내 뒤에 귀신이라도 있나 싶었다.
갑자기 주혁 형의 표정이 달라졌다.
“자, 서론은 너무 길었으니까. 본론으로 들어가자. 너, 어떻게 할래?”
“아! 그게…….”
이 순간이 오지 않았으면 했는데, 이제 피할 수 없게 됐다.
나름 정면승부(?)를 해야 했으니까.
예전의 강형우는,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덤볐다가 큰코다쳤다. 개고생해 가며 만들어낸 지성분식의 두루치기 정식이 물거품처럼 사라졌던 것이다.
이후, 주혁 형과 싸운다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에서야 겨우 링에 오를 준비가 끝났다. 물론 승부는 명확했지만 주먹 한 번 휘두를 정도는 된 것이다.
“형, 속 시원하게 그냥 저 주면 안 돼요?”
“무식한 새끼, 그게 내 마음대로 되냐?”
“형이 하면 다 된다고 알고 있는데…….”
“쓰읍, 오냐오냐 키웠더니 애가 세상 물정을 모르네?”
주혁 형이 눈을 부릅뜨는데 진짜 농담이 아니고, 살기가 느껴졌다. 피부가 따끔따끔한 걸 넘어서 쓰라릴 정도였던 것이다.
강형우는 끊기려는 호흡을 억지로 이어나갔다.
그제야 숨이 좀 쉬어지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순간 주혁 형의 눈빛이 이상하게 바뀌었지만, 개의치 않기로 했다.
“형, 좀 도와줘요. 아니, 사부님. 제자 살리는 셈 치고 주십시오. 그게 그렇게 안 됩니까?”
“사부가 말했지?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그럼 공짜가 아니면 해준다는 거죠?”
말발에서 밀릴 사람이 아닌데, 주혁 형은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러다 잠시 한숨을 내쉬더니 갑자기 나가자고 손짓을 하더라.
담배 피우러 가자는 신호였다.
결국 강형우도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
가게 입구에서 강주혁이 담배를 물었다. 강형우가 불을 붙이자 한숨처럼 연기가 뿌옇게 뿌려졌다.
“아오, 창주 이 새끼, 왜 일을 피곤하게 만들어 가지고.”
“그때는 이렇게 될 줄은 몰랐잖아요.”
강형우의 입에서도 담배 연기가 뿜어졌다.
이건 그만큼 한심(?)한 거였다.
발단은 이거였다.
“형들, 회사로 권한을 몰아줘요.”
강형우가 제시한 건, 합당한 조건이었다.
우리 동네 사총사 형들은 각각 삼천만 원씩 투자하기로 했다. 여기에 강형우가 지금까지 번 돈 일억을 넣어서 일단 운영하기로 한 것이다.
지분은 강형우가 40%, 나머지 형들이 각각 15%였다.
그렇게 사업자 등록을 하고 운영하기로 하면서 제일 먼저 챙긴 게 그거였다. 상표권과 체인점 권한 같은 걸, 회사 명의로 통합하기로 한 것이다.
맞다.
혁기 형네 중국집을 제외하고, 전부 하나로 합치기로 했다. 개인이 버는 건 따로 수익을 나누더라도, 형님네 밥버거와 화끈 오뎅, 우리 통닭 브랜드를 받기로 한 것이다.
일종의 관리 회사 성격을 포함 시켜서 시작하기로 했으니까.
문제는 여기서 생겼다.
화끈 오뎅의 상표등록, 그리고 프랜차이즈 관련 계약 서류가 강주혁 손에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두루 컴퍼니 사장실의 금고 안에 있었던 것이다.
“너는 참~ 일이 이상하게 꼬인단 말이야?”
주혁 형은 그러게 말한 뒤 다시 담배 한 개비를 물었다.
얼마나 당혹스러웠는지, 몇 번 빨지도 않았는데 금새 다 타들어 갔던 것이다.
“그러게요. 진짜 세상일은 한 치 앞도 모른다더니,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이게 참 웃긴 게, 얼마 전까지 창주 형도, 주혁 형도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몰랐다는 거다.
그러니까 어떻게 된 거냐면…….
창주 형이 화끈 오뎅 2호점을 기린 빌딩에 넣어버렸다.
그때 주혁 형이, 사람 한 명을 데려왔다. 지점 매니저 역할로 고지우 누나를 소개시켜 준 것이다.
지금은 형수님이 된 지우 누나.
하지만 당시는 두루 컴퍼니 직원이었다. 일을 정말 열심히 하다 보니 창주 형을 설득하는 데 성공해 프랜차이즈 계약을 받아냈던 것이다.
이 멍청한 형이, 그냥 헬렐레 넘어가서 사인했단다.
그리고 다들 잊어버리고 말았다.
주혁 형은, 창주 형이 결심할 때까지 무작정 기다렸던 것이고, 창주 형은 장사와 연애에 집중하느라 잊어버렸다.
당사자인 지우 누나도 결혼 준비가 바빠서 까먹었단다. 게다가 퇴사까지 해버린 상황.
이후 일 년이 넘게 지났다.
각자 자신의 일에 충실했기에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 무슨 어이없는 사건인지 모르겠다.
호의와 호의가 엮였는데, 진행이 법적(?) 분쟁으로 가게 생긴 거다.
“법적으로는 문제 될 건 없어.”
주혁 형의 말도 맞았다.
세상에 분식집이 얼마나 많은데, 오뎅 국물 때문에 고소를 한다는 게 말이 되겠는가?
하지만 두 사람이 머리 아픈 이유는 도의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현재 당사자인 창주 형은 한 발 뺀 상태였다. 오히려 축하한다면서, 이런 거 해결하라고 회사 차린 거 아니냐면서 슬쩍 잠수한 것이다.
대신 배상금이 필요하면 내주겠다고만 했다.
“끄응, 뭔가 속 시원한 해결책이 없을까요? 그냥 형이 회사 대표인데…….”
“야! 사장이라고 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 아니거든? 우리 이사님들이 얼마나 깐깐한데… 너도 우리 김상일 이사님 봤잖아!”
“아. 그때…….”
“오뎅 국물이 죽여준대… 진짜 맛있다면서, 이거 꼭 놓치지 말라고 했단 말이야.”
제대로 붙잡아서 계약서까지 받았다는 걸 알게 되면, 당장 사업 진행하자고 할 가능성이 무럭무럭이란다.
20억 정도 박아놓고 바로 시작할 거라나?
그만큼 화끈 오뎅의 사업성은 합격이라고 했다. 다른 떡볶이 체인에 비해 전혀 꿀릴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군침 나는 음식을 입에 넣었는데, 누가 순순히 뱉어놓겠는가?
잠시 고민하던 강형우는 몇 번이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아까의 말이 떠올랐다.
“형, 아니, 사부님.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그러셨죠?”
“그랬지.”
주혁 형이 고개를 끄덕이니 뭔가 가능성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럼, 그거 팔면 안 돼요?”
“안 돼. 내가 사장이지만, 금전적인 부분은 어쩔 수 없어. 나도 허락받고 타 쓴다고. 그런데 갑자기 돈이 들어와 봐라. 감사한다고 난리 칠걸?”
강주혁이 손사래를 치는데, 강형우는 다른 제안을 떠올렸다.
“그럼… 이건 어때요?”
***
“이게 맞는 건가?”
진짜 일이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처음 제안한 건 임대였다. 업무 제휴 형식으로 화끈 오뎅의 권한을 빌려주면 안 되냐고 했던 것이다.
당연히 주혁 형은 반대했다.
그렇게 의견을 주고받고, 치고받고 하다가 일이 이상하게 꼬여 버렸다.
황당하게도 두루 컴퍼니에서, 자회사 제안을 한 거다.
경영권 간섭 없는 투자를 하겠단다.
조건은 자금 집행 부분에 감사를 두겠다는 것!
강형우는 혼자 답을 찾지 못해서, 결국 사총사 형들을 소집하고 말았다.
그런 뒤,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다들 놀라더라.
“그러니까… 투자금이 이십억이라고?”
“그 회사에서 직원들까지 보내주겠대?”
“설마?”
다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유일하게 창주 형만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 한참 뒤에야 의견을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