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목식당 리얼갑부-169화 (169/251)

# 169

169화 군대가 편하냐, 장사가 편하냐

“가만 생각해 보니까 보증금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더라고요. 이유만 합당하면, 월세도 충분히 조정해 드릴 수 있어요.”

아무래도 오천만 원이란 보증금 때문에 갈등하는 거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확실히 계산해 보면 그럴 만했다.

주혁 형이 그러길, 음식 장사로 버는 건 아는 사람만 안단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금액적으로 많이 남는다는 걸 의외로 잘 모른다는 것이다.

한 그릇 삼천오백 원짜리 라면의 경우 원가는 겨우 오백 원 정도였다.

백 원짜리 사리면에 스프가 거의 백 원어치, 물은 몇십 원 정도에 가스 역시 백 원 이하였다.

여기에 파마늘 기름 양념이 들어가고 바로 다진 마늘과 양파, 당근 같은 게 들어간다. 계란도 백 원 정도니, 원가는 오백 원 정도 잡으면 얼추 맞았다.

여기서 인건비를 제외하면, 라면 한 그릇에 무려 삼천 원이나 번다.

그 외의 음식들도 마찬가지였다.

일반적인 식당의 원가율은 30~40% 전후.

김밥 같은 미끼 음식을 제외하면 대부분 그 정도였다.

금액으로만 계산하면 많이 남고, 인건비까지 포함하면 나름 합리적인 수준이란 거다.

중요한 건, 이건 기본 매출 기준이라는 점이었다.

음식 장사는 일정 임계점을 넘어가면 수익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월세나 인건비 같은 고정 비용은 그대로인 상태.

여기에 식재료 대량구매에서 오는 할인이 더해지면 오히려 원가는 내려간다. 박리다매 방식으로 손님들이 늘어나면 수익이 폭증하는 것이다.

지성분식 두 곳에서 매달 순수익 삼, 사천만 원 이상 나오는 게 그래서였다.

일정 수 이상의 손님들이 오기만 하면 어떤 직종보다 많이 벌 수 있는 게 이 바닥이었으니까.

하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런 걸 잘 모른다. 분식집 해봐야 얼마나 벌겠느냐 하는데, 의외로 수익적인 측면에서는 제법 괜찮은 것이다.

물론, 그 이면에는 강형우의 노동력을 어머어마하게 갈아 넣은 게 있었다. 보통 사람 서너 명 이상이 해야 할 일을 혼자서 무려 삼 년 이상 감당했었으니까.

어쨌든 많이 벌고 있었다.

맘먹고 작정하면 일억 이억은 그냥이었다. 몇 달 돈 아끼면 그 정도는 충분히 가능했던 것이다.

강형우가 잠시 이런 생각을 하는데, 사모님은 오해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럴 만했다.

“주변 상가 시세를 보니까, 저희가 월세가 좀 많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들어온다는 문의가 많아서 적절하다고 판단했는데 감가상각을 따지니까…….”

십 년이 훨씬 넘은 아파트 단지 상가였다.

첫 입주의 프리미엄이 붙은 상태에서 월세가 정해졌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물가 인상분의 몇 배나 올랐다. 그런 부분을 미처 고려하지 못했다고 먼저 이야기를 꺼냈던 것이다.

“전 미처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사업하는 남편이 그냥 백만 원만 받자고 하더라고요.”

“예?”

“그게… 월세가 중요한 게 아니라면서, 오히려 저희 쪽에서 부탁하는 경우라…….”

사모님이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니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들은 건 세입자가 건물주 눈치를 본다는 거였다.

그런데 이건 반대의 경우였다. 강형우로써는 처음 겪어보는 상황인 것이다.

대체 왜?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데, 사모님이 부끄럽다는 듯 웃었다.

“제가 음식을 잘 못해요. 요리나 이런 거 잘 모르거든요. 그런데 남편이 그러더라고요.”

사업상 실력이 있는 요리사를 부르는 경우가 일 년에 몇 차례가 있단다. 하루 부르는데, 수백만 원이 넘게 깨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정말 와이프가 말한 게 맞다면 오히려 웃돈을 주고서라도 입점을 부탁해야 할 정도였다. 마음 변하기 전에 조건을 확 내려 버리라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보증금은 형평성에만 맞추라고 했다. 월세도 원하면 더 내려줘도 된단다.

“저희 쪽에서 생각한 건, 보증금 삼천에 월세 백만 원 정도거든요.”

사모님이 눈치를 보는데, 순간 얼굴도 모르는 그 남편 님에게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반대로 불경(?)스러운 생각도 잠시 스쳤다.

대체 사모님이 얼마나 음식을 못하기에…….

“험험, 죄송합니다. 먼저 이렇게 이야기해 주시니 제 입장에서는 정말 고맙습니다. 사실, 제가 2호점은 인계한 이유는요.”

강형우는 커피로 목을 축였다.

이미 상대 쪽에서 먼저 속마음을 밝혔다.

몇 번이나 편의도 봐주겠다고 했고, 그런 걸 터놓고 이야기했다.

해서, 감추기만 하는 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픈하는 가게에 좀 더 집중하기 위해서입니다. 가게가 자리 잡을 때까지는 거기에만 매달려야 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정리한 겁니다.”

“아! 그래요?”

“예. 사실, 미리 몇 주 전부터 근처 상권 조사를 다녔거든요. 일반적인 상권과는 차이가 많더라고요.”

강형우는 최대한 쉬운 말로 생각한 바를 이야기했다.

막힌 상권.

그 때문에 갈 만한 식당이 거의 없었다. 맛이 없고 서비스가 개판이라도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학생들의 경우 더욱 그랬다.

짧은 시간을 쪼개서 식사를 해야 했으니, 그게 음식점들의 폭리를 가속시켰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악순환이 한참이나 진행된 것이다.

한마디로, 고인물이 오래되면 썩는 이치였다.

이걸 순화시켜서 이야기하는데, 사모님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동감한다는 그런 표정이었다.

“호호, 호호호. 참 좋네요.”

“예? 뭐가…….”

“저도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는데요. 딱히 이거다, 라고 콕 집어 말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사장님께서 좋게 말씀해 주시니까, 확 이해가 되네요.”

처음에는 그냥 동네 식당들이 맛이 없으니, 우리 아파트 상가에 와서 장사해 주면 안 되겠느냐였다.

이후에도 검증 겸 지성분식을 몇 번 다녀갔다 왔는데 그때마다 욕심이 커지더란다.

몇 번이나 재촉하듯이 연락한 게 그래서였다.

“고마워요. 그래도 든든하네요. 이미 다 알아보셨다고 하니 걱정 안 해도 되겠어요.”

사모님이 몇 번이나 고맙다고 하자, 강형우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 뿌듯하다고나 할까?

지금껏 해왔던 일이 헛일이 아니라는, 그런 보람 같은 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도장을 찍기로 한 건 아니었다.

“임대 계약서 작성은 조금만 미뤄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예?”

사모님이 놀란 표정을 짓자, 강형우는 빙그레 웃었다.

그런 뒤, 짧게 말했다.

“제가 회사를 차리려고 하거든요. 그 명의로 제대로 된 가게를 내려고 합니다.”

***

“바쁘다, 바빠. 진짜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일에 치여 살 팔잔가 보다.”

전에 천경 어르신이 한 말이 떠올랐다.

편하게 주는 밥상을 걷어찰 팔자라고.

고생을 찾아서 한다나 뭐라나?

그만큼 할 일이 정말 많았다.

강학희 아버님이 사무실 공사를 시작했고, 좀 여유가 생기는가 싶었다. 동시에 3호점 자리도 공사에 들어갔기에 딱히 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강형우는 따로 사업자 등록을 하고, 박첨기 어르신을 찾아갔다.

본점 계약서를 다시 쓰자고.

해서 월세 조정 없이 회사 명의로 계약을 바꿨다.

얼마 있다 나갈 거기 때문에 박첨기는 순순히 새로 써줬고, 기한도 무제한으로 잡아줬다.

마찬가지로 2호점도 회사 명의로 바꾸었다.

여기서 당황스러운 일이 벌어졌는데, 강학희가 결혼 선물(?)로 지금 건물을 신원이 형에게 물려줬다는 것이다.

은주 형수님의 임신 사실을 듣자마자 바로 강행해 버렸다나?

물론 양도세는 깔끔하게 처리 다 했단다. 강형우가 낸, 지성분식 2호점 보증금으로 말이다.

어쨌든, 회사 직원과 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하게 된 거다.

이제 일이 끝이 났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무식한 새끼. 진짜 넌! 보면 볼수록 희한하다니까?”

주혁 형은 몇 번이나 혀를 차면서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강형우는 빈 잔에 소주를 채우면서 투덜거렸다.

“왜요? 제가 또 무슨 실수를 했다고.”

“실수가 아니라, 넘 느려. 아주 답답할 정도라고. 그러니까…….”

스타라는 게임으로 치면 강형우의 스타일은 이랬다.

남들은 멀티를 하고 확장을 하는데, 강형우는 오히려 입구 방어부터 들어갔다. 한정된 자원을 빡빡하게 굴려 최소의 병력을 뽑아서 버티는 식이라는 것이다.

그런 뒤, 주야장천 업그레이드만 하는 경우라나?

“그게 너답기는 하지. 공격보다 방어. 그리고 고급 조합과 안정적인 컨트롤로 상대를 야금야금 갉아먹는 거야. 그런 식으로 밀어서 세력 확장을 하는 거지.”

비유가 아주 찰졌다.

어쩌다 그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생각해 보니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었던 것이다.

“내가 인마, 제대로 한 끼, 일 시킨 것도 좀 빨리 확장하고 치고 나가라고 가르치려고 한 건데… 이건 뭐 거북이가 따로 없어.”

주혁 형이 답답하다는 투로 말하는데, 강형우도 할 말이 있었다.

“아니 그럼, 가게가 안정도 안 됐는데 확장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러다 흔들리기라도 하면 연쇄적으로 다 망하는 건데…….”

“아주, 본진 입구에 포토 캐논하고 시즈 탱크로 도배해 놨는데 그게 흔들리겠냐? 오히려 공격 들어왔다가 다 개박살 나지?”

“그래… 요?”

강형우가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주혁 형이 황당한 이야기를 했다.

실제로 공격 들어왔다가 망한 가게가 벌써 몇 개나 된단다.

에이~ 설마~ 했는데, 진짜였다.

전에 지성분식 2호점 때문에 매출이 줄어, 주혁 형네 회사에 지원한 사장들이 있었다.

두 가게는 예상대로 문을 닫았단다.

거기에 폭립 때문에, 의문의 1패를 한 레스토랑도 추가였다. 망하지는 않았지만 업종 변경을 했다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성분식 때문에, 근처 건물주들이 속이 터진다더라. 음식점 내놨는데 아무도 안 들어온대.”

“그건 좀 과한데…….”

“둔탱이 곰 새끼. 너만 모르는 거야.”

시기적인 문제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지성분식 때문에 대로변에 있는 김밥집 한 곳이 문을 닫았다는 것이다.

매출이 확 줄어서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려워졌다나?

그 소문 때문에 실력에 자신 없는 이들이 근처에 가게 내는 걸 꺼려 한다고 했다.

“따지면 네가 현명한 거일 수도 있다. 어설프게 창업하려는 사람들 막아준 거니, 자살 예방에 기여한 거는 맞겠네.”

주혁 형은 그렇게 말한 뒤, 소주잔을 비웠다.

이후에 나온 말은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어설프게 너 따라 했다가 망한 가게가 한둘이 아니야. 거기 파스타 집도 망했어.”

“예? 파스타… 집이라면……”

“덕수 사촌 동생이라고 했나? 너네 가게 카피해서 장사한 거기.”

“헐, 분명히 장사 잘하고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주혁 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카피도 잘했고, 나름 업그레이드도 했지. 게다가 위치도 좋으니 선택은 나쁘지 않았어. 문제는 그게 한계라는 거지.”

지성분식은 어묵 국밥에 파스타, 돈가스까지 있었다.

여기에 김밥도 업그레이드했고, 라면이나 덮밥 같은 메뉴도 보충했으며 이번에 냉라면이 초히트를 쳤다.

하지만 파스타 집은 파스타 집이었다.

“그래서 망한 거야. 소비자들이 얼마나 냉정하고, 유행 빠르게 좇아가는데… 파스타 하나만 이 년 동안 쥐고 있었으니 되겠냐?”

“그래서… 그 동생 지금 뭐 한데요?”

“뭐하긴, 덕수 밑에서 설거지하고 있지.”

주혁 형은 피식 웃더니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네 방식도 나쁜 건 아니야. 하지만… 너무 느려.”

“그렇게 생각해요?”

그 말에 주혁 형이 버럭 했다.

“야! 그래서 언제 돈 벌어서 집 사고 차 사고, 어! 건물 사고 할 거냐? 그만큼 개고생했으면 이제 좀 편하게 살아야 할 거 아냐.”

“전 나름 잘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딱 하나만 물어보자. 군대가 편하냐? 장사가 편하냐?”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진짜 개좆같았던 게 군복무였다. 하루에도 수십 번 탈영을 꿈꿀 정도로 인생 최악의 시기를 보냈던 것이다.

그런데, 주혁 형 말을 들어보니… 오히려 그때가 편하지 않았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성분식을 운영하면서 지옥을 수십 번 넘게 들락거렸으니까.

잠시 고민하던 강형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나, 더 힘든 건 장사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