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
167화 고생했네, 총각
“너 진짜 진지하게 그걸 생각하고 있는 거야?”
“예. 이상해요?”
강형우가 되묻자 이평석은 잠시 갈등했다.
“너 사람 월급 올려주는 거, 쉽게 생각하면 안 된다. 내가 식당만 몇십 군데를 도는데… 인건비가 참 문제더라고.”
이평석은 자신이 아는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거래처 대부분은 장사가 잘되는 가게들이었다. 매출 얼마에 외상 얼마까지라고 정해놓은 선이 있는데, 지금까지 그 기준을 잘 지켰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쉽게 설명하면, 너네 가게는 일주일 결제잖아. 매주 월요일, 혹은 화요일 날 수금하니까.”
“거의 그렇죠.”
강형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중간중간 물건 들어오는 횟수와 상관없이 매주 월요일 계산을 해줬다. 2호점에서 본점 것까지 더해서 말이다.
가끔 화요일 결제하는 경우는 대부분 평석이 형 때문이었다. 바빠서 들리지 못하거나, 회사 내에서 영수증 처리가 늦어지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만약 너네 가게가 수금이 안 된다 치자? 그럼 난 한 주 정도는 더 기다려. 그런데 결제가 안 되면 난 납품을 지연시켜 버리거든.”
“그렇게… 빡빡하게 해요?”
“당연하지. 우리는 농산물을 도매로 가져와. 시세가 며칠 사이에도 수십 번이 바뀌는데 수금이 안 돼서 현금 부족하면 우리도 말라죽는다고.”
강형우는 좀 더 귀를 기울였다. 자신이 몰랐던 이야기들이기에 호기심이 동했던 것이다.
이평석은 말하길, 납품을 지연시키면 급한 건 거래처 사장이었다. 당장 손님을 받아야 되는데 장사할 물건이 없으면 문을 닫아야 하니까.
때문에 얼마라도 입금이 들어온단다.
“하지만 그렇게 철저하게 해도 미수금이 잔뜩 쌓이는 게 이 바닥이더라. 그래서 난 털 건 바로 털어버려. 그거 아깝다고 납품하면 나중엔 다 빚이 되더라고.”
거래를 끊어버리면 수금하기가 힘들어진다.
그걸 알면서도 정리하는 건 경험 때문이었다.
인정에 휘둘려서 물건을 넣었더니 미수금액만 잔뜩 늘어나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나?
결국 그런 식으로 하나둘 정리하다 보니 우량 고객들만 남았단다.
“그런데 그렇게 장사 잘된다는 가게들도 요즘은 인건비 때문에 휘청휘청한다는 거야.”
장사는 하루 이틀 하는 게 아니다.
짧게는 이삼 년에, 길게는 십 년씩 보고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단다.
인건비가 문제가 되는 게 그래서였다.
식당에서 사장 바로 밑이 주방장이다. 때문에 일정 시기마다 적당히 올려줘야 되는데, 기간이 늘어날수록 월급도 상당해진다는 것이다.
주방장 월급 오백에, 비슷한 급의 직원만 서너 명, 거기에 다른 직원들 포함하면 매달 인건비만 수천만 원씩 깨진단다.
“물론 경기가 좋을 때는 충분히 감당이 되지. 그런데 장사 안 될 때는 이게 부담이 만만치 않거든. 손님 없을 때는 직원도 일부 정리해야 하고, 반대로 많을 때는 또 사람 뽑고…….”
한참을 듣다 보니 겨우 이해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음식 장사라는 게 유연성이 있어야 한단다. 한철 장사할 때는 직원을 더 뽑고, 수익이 줄면 직원을 해고하는 게 맞다는 것이다.
“그런데 네가 말한 것처럼 회사 차려서 직원으로 올리면, 그게 쉽지가 않아. 해고에도 정당한 사유가 있어야 하고, 최소 삼 개월, 혹은 사정에 따라 한 달 전에 통보해야 하거든. 게다가…….”
퇴직금에 실업수당, 거기에 보험료도 상당했고 그 외에도 이것저것 따지면 지출이 어마어마하단다.
나름 냉정한 조언이었다.
하지만 강형우의 입장에서는 신선한 시각이기도 했다. 저런 식으로도 볼 수 있다는 게 의외였던 것이다.
어쩌면 저게 평범한 사람들의 시각일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강형우는 자신의 생각을 밀고 나가고 싶었다. 이미 충분히 고민했기에, 그리고 스스로도 그래야 한다고 이해를 했기에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형, 고마워요.”
“뭐가?”
“그냥요.”
강형우는 피식 웃었다.
이평석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낸 건 자신을 생각해서였다.
한마디로 무모한 시도라는 뜻이었다.
“저도 고민 많이 했어요. 생각도 했고, 알아볼 만큼 알아봤거든요. 그런데 제 수익을 생각하니 어렵지는 않겠더라고요.”
뜬구름 잡듯이 이상만 가지고 진행하는 게 아니었다.
지금, 강형우는 쉽게 표현하면 놀고 있었다. 출근도 안 하고, 기타 사장이 체크해야 할 일을 공지혜한테 맡겨놓은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매달 삼, 사천만 원이 통장에 꼽힌다.
그 이유가 뭘까?
물론 지금까지 열심히 해온 것도 있었다.
밤잠을 줄여가며 메뉴를 개발했고, 손님들과 씨름하면서 매출을 올렸다.
남들은 안 해도 된다는 걸 그렇게까지 하나 싶을 정도로 매달렸고,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음식에 집착했었다.
그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게 평생 갈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아니올시다 였다.
솔직히 지성분식 본점만 해도 그렇다. 자신이 없어서 매출이 떨어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수시로 들었던 것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자신이 없음에도 저만큼을 유지하고 있다는 거였다.
그건 그만큼 순이 이모가 고생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믿고 맡겼던 사람들이 돈을 벌어주고 있는 것이다.
회사를 차리려는 것도 그래서였다.
고작 식당 일이 아닌, 내 회사의 일이었다. 그러니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안정적인 생활을 해야 믿고 맡길 수 있는 거 아니겠는가?
강형우는 짧게나마 이런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형, 말하는 것도 알겠어요. 그런데 저 평생 식당만 할 거 아니거든요.”
“그럼?”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게 있어요. 그런데 그 기본이 되는 게 지성분식이예요. 장사가 흔들리지 않아야 뭐라도 해볼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그거는 맞긴 맞지. 나도 사업을 하지만… 평생 잘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게 문제야. 솔직히 직원이라고 하지만, 내 식구라는 생각도 하거든. 그래서 망하면 안 돼. 최대한 오래 버틸 수 있을 만큼 버텨야 한다고.”
가장 중요한 건 살아남는 거란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여유가 없으면 직원을 해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강형우는 결론을 파악했다.
“결국 돈이잖아요?”
“뭐?”
“많이 벌면 다 해결되는 거 아니에요?”
강형우가 피식 웃자, 이평석도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고 말았다.
“야. 말은 그게… 맞지.”
“예. 그게 당연한 거죠. 그래서 더 벌려고 투자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강형우는 너무도 당당하게 말했다.
반대로 이평석은 기가 막힌 모양이었다.
하지만, 틀린 말이 아니니 뭐라 반박하기가 어려웠다.
“에고, 모르겠다. 너도 겪어봐야 아는 거니 힘들게 입씨름할 필요는 없겠지. 결론은 회사를 차리고 싶다는 거잖아. 그래서 사무실 구한다는 거고.”
“그렇죠. 그래서 돌아다니는 건데… 형이 이렇게 길게 이야기 꺼낸 거 보면, 적당한 자리 있다는 거 아니에요?”
강형우가 씨익 웃자, 이평석이 혀를 내둘렀다.
“헐, 이 새끼. 눈치 더럽게 빠르네.”
“진짜요?”
“그럼 그냥 찔러본 거냐?”
이평석이 어이없다는 투로 말하는데, 강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황당해진 이평석이 한마디를 더했다.
“에라이, 새끼야!”
***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일단 생각난 김에 평석이 형네 회사에 들렸다가, 대어를 낚았다. 전화 몇 통화 하더니 정말 괜찮은 곳을 알아봐 준 것이다.
물론 조건은 있었다.
“마! 사무실 구한다는 놈이 운동복 입고 돌아다니면 좋겠냐?”
“예?”
“그래도 정장은 입고 다녀야지. 식당 일할 때면 모를까, 사무실 구하는 것도 엄연히 사람 만나는 일인데.”
“형은요? 그거… 츄리닝 아니에요?”
“야. 내가 정장 쫙 빼입고 다니면 거래처 다 끊겨. 그것도 상황에 맞게 입는 거지. 하여간 다음에 전화하면 깔끔하게 입고 나와라.”
그렇게 한 소리를 들어서 영업용 정장 한 벌을 맞췄다.
그랬는데, 이게 대체 뭐란 말인가?
“아따, 거 총각 힘 좋네.”
“그렇게, 마누라가 밥상 한 번 거하게 차리겠어? 허허허.”
“거기, 그거 말고 저것도 좀 날라.”
“어허, 삼 호차가 먼저지. 오 호는 밥이나 먹고 와.”
아저씨들의 넘치는 수다 속에서, 강형우는 열심히 박스를 나르고 있었다.
맞다.
여기는 평석이 형네 회사 맞은편의 택배 회사였다. 여기 소장님이 사무실 소개해 준다고 해서 왔더니, 무작정 박스부터 나르라는 것이다.
이 무슨 황당한 상황인지.
어쨌든 강형우는 아저씨들 등쌀(?)에 못 이겨서 열심히 박스를 실었다.
그렇게 한 시간을 하니까 허리가 작살날 것 같았다. 진짜 숨 쉴 틈 없이 탑차들이 들어오니 계속 움직여야 했던 것이다.
“어이, 형씨! 거기 그만하고, 사무실로 올라와. 그리고 아재들은 마무리하소.”
“예. 소장님.”
아저씨 하나가 수건을 가져다주면서 말했다.
“아이고, 고생했네. 총각!”
“아닙니다.”
“아냐. 자네가 힘써준 덕분에 다들 삼십 분은 일찍 쉬게 생겼어.”
“그럼 그럼. 우리 같은 영감들이 했으면 해지고 끝났겠지.”
다들 고맙다고, 좋은 말을 해주니 이상하게 기분이 상쾌해졌다. 첫 개시를 한 정장이 땀으로 엉망이 됐지만, 그게 전혀 아깝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마지막 말이 조금 겁났다.
아저씨 하나가 너무 적극적으로 권유하더라.
월급 이백에 사대보험 해줄 테니, 자기 회사 오란다. 원하면 딸도 소개시켜 주겠다나?
“거, 앉게.”
“예.”
강형우가 사무실 구석의 의자에 앉자 소장이 물었다.
“커피? 녹차?”
“괘, 괜찮습니다.”
“그럼 이거라도 마시게.”
소장은 씨익 웃더니 냉동실에서 생수 한 병을 꺼냈다.
그런 뒤 냉커피를 들고 맞은 편에 앉았다.
“어쨌든 고맙네. 덕분에 일이 일찍 끝났어.”
“아닙니다.”
“아니긴 뭘 아냐? 자네 힘쓰는 거 보니까 당장 우리 회사 오라고 하고 싶던데.”
소장은 그렇게 말하더니 허허 웃으며 담배를 물었다.
얼핏 봐서는 대충 육칠십 대 할아버지 같았다. 그런데 같이 일하면서 보니, 저 깡마른 몸이 완전 근육질이었다.
마치 이소룡 같은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그래 이 사장이 잘 아는 동생이라고?”
아무래도 평석이 형을 말하는 것 같아서 강형우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예. 사무실 구한다고 이야기했는데, 여기로 오라고 해서 왔습니다.”
“허허, 허허허. 거 젊은 친구가 참… 그냥 엄한데 돈 쓰지 말고 우리 회사 들어오지?”
“예?”
“오늘처럼만 일하면 한 달에 삼백도 줄 수 있어. 안 그래도 젊은 사람 구하기 어려운데.”
“하, 하하하. 하하.”
강형우는 또다시 등줄기에 식은땀이 피어나는 걸 느꼈다.
그냥 박스 몇 개 날랐는데, 취직 권유라니.
그렇게 일을 잘했나?
그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장은 미묘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래 자네를 뭐라 부르면 되겠나?”
“그냥 편하게 강형우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제가 나이도 한참 어린데요.”
“그래, 이 사장 소개니 최소한 사람은 된 것 같고. 아까 일하는 거 보니까 거절하기도 어렵네. 그냥 안 한다고 했으면 돌려보내려고 했는데.”
순간 심장이 덜컥하는 것 같았다. 그럼 그게, 일종의 시험이었단 말인가?
소장은 냉커피를 한 모금 하더니 폰을 꺼냈다.
“지금 사무실 자리가 세 군데 있는데 말이야. 하나는 좀 작아. 한 오십 평 정도?”
“예?”
“아무래도 좀 작지? 다른 하나는 팔십 평짜리인데, 세가 조금 비싼데 괜찮겠나?”
강형우는 당황스러웠다. 스케일이 달라도 너무 달랐던 것이다.
그때 소장이 웃으면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