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
159화 나도 못 살려
“저 아저씨가…….”
강형우는 반사적으로 욕을 참았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노골적으로 째려보면서 인상을 찌푸리니 기분이 상했다. 게다가 사람을 무시하는 듯한 저 시선은 또 무어란 말인가?
아무래도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때 떡볶이집 아저씨가 고개를 돌리더니 전화기를 꺼냈다.
강형우는 왠지 모를 찝찝함에 주변을 돌아봤다.
걷는 사람 대부분이 나이 좀 있는 아주머니들과 어린 학생들이었고, 젊은 사람들은 얼마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대충 봐도 거의가 동네 주민들 같았다.
편한 복장에 가벼운 슬리퍼로 스스럼없이 돌아다니고 있었으니까.
“확실히 막힌 상권은 맞는 것 같은데…….”
생각보다 다니는 사람들이 많지가 않았다. 지금껏 틈틈이 공부했던 내용과 뭔가 괴리가 있었던 것이다.
강형우는 폰을 꺼내 지도를 확인했다.
역시나 미리 조사한 것과 크게 차이가 나질 않았다.
지하철이 있는 큰길에서 안쪽으로 들어오는 중심 라인은 겨우 둘, 그리고 그 끝이 합쳐진 곳이 강형우가 있는 아파트 단지 상가 앞이었다.
아래 남서쪽은 대남지하차도에서 광안대교로 연결된 큰 도로가 하나의 경계를 만들었다.
또, 위쪽으로 가면 언덕이 있었는데, 거기 수영세무서와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있었다.
그 너머는 바다였고, 반대쪽은 지하철역이었다.
그렇게 완벽하게 사방이 막혀 있었다.
때문에 가장 안쪽인 여기가 사람들이 제일 몰려야 하는 바로 그 위치였다.
여러 아파트 단지에 둘러 싸인 상권의 중심지.
하지만 사람들이 적어 보였다. 게다가 가게 수가 많음에도 활력이 거의 느껴지질 않았다.
“대체 이 차이는 뭐지?”
조용히 중얼거린 강형우는 고개를 돌렸다.
아파트 상가 관리소에서 나왔다는 아가씨는 눈치만 볼 뿐 아무런 말도 하고 있지 않았다.
강형우는 잠시 고민한 뒤 물었다.
“가게 안에, 확인도 할 겸해서 사진 좀 찍어도 됩니까?”
“예. 그러세요.”
허락은 했지만, 선뜻 안으로 들어갈 생각은 없어 보였다.
결국 강형우는 다시 안으로 들어가 가게를 찬찬히 살폈다.
가장 안쪽의 주방도 넉넉했고, 아파트 상가임에도 독립된 화장실이 있었다.
또, 4인 테이블이 스무 개에 오픈 주방에 붙어 있는 1인 좌석이 제법 됐다. 독서실 책상처럼 혼자 조용히 먹을 수 있게 ‘ㄴ’ 자 형태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전에 주혁 형이 그랬었다.
서울에서는 이미 혼밥족이 대세란다. 1인 가구가 늘면서 식당의 형태가 거기에 맞게 바뀌어 간다는 것이다.
부산도 최근에는 그런 유행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인테리어를 구경하는데 뭔가가 팍 하고 느껴졌다.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그건 본능이기도 했고 감각이기도 했다.
여기가 딱! 이다.
그런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리는 것 같았다.
지성분식 스타일과 너무 잘 맞아떨어진다고나 할까?
강형우는 일단 구석구석까지 꼼꼼하게 사진을 찍은 뒤 가게를 나왔다. 그리고 대수롭지 않은 척 아가씨한테 물었다.
“혹시 이전에 영업하시던 사장님을 만나뵐 수 있겠습니까?”
“아, 저, 그게요.”
상가 관리소 아가씨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잠시 우물쭈물하더니 살짝 고개를 돌린 것이다.
“왜요? 무슨 일 있었습니까?”
“그런 건 아닌데요. 개인 사정이 있어서 저희한테 위탁한 거거든요. 권리금이 설비금뿐인 것도 그래서예요.”
이 역시 메리트 중에 하나였다.
주방 안쪽의 커다란 냉장고와 냉동고가 하나씩이었고, 기본적인 시설은 다 되어 있었다. 게다가 테이블과 의자도 낡아 보이지 않았으며 싱크대나 접시, 기타 집기류도 그대로였다.
그럼에도 권리금은 고작 천만 원.
중고로 싸게 내다 팔아도 대부분을 건질 수 있는 금액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궁금한 게 무척이나 많을 수밖에 없었다.
강형우가 쳐다보자 관리사무소 아가씨가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그게요. 어차피 알게 될 거라 말씀드리는데요.”
역시나 예상대로 사연이 있는 가게였다. 찜찜함의 원인이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
“하이고, 난리다, 난리야.”
강형우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모처럼의 휴일에 지성분식 식구들이 전부 모였다. 그건 신원이 형과 이은주의 결혼식 때문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문제는 미묘한 결혼식 분위기였다.
강학희 아버님 지인들은 체격이 좋으셨다. 집 짓는 목수분들이 상당수였고, 대부분 비슷한 일을 하거나 관련 업계에 종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이은주네 쪽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요리사 쪽 집안이라 들었는데, 어째 외모가 영화에서나 나오는 조폭들 같았다. 칼로 먹고사는 사람들답게 눈빛들이 살벌하게 날카로웠던 것이다.
양측 합쳐서 그런 사람들만 거의 이백여 명이었다.
순간, 강형우는 이런 생각을 했다.
세계3차대전이 벌어지면 여기가 그 시발점이 아닐까?
그런 상상을 할 정도로 외형에서 나오는 아우라들이 상당했다.
하지만 공지혜의 관점은 다른 모양이었다.
“와, 진짜 크다.”
공지혜는 눈을 반짝반짝 해하며 예식장을 둘러봤다.
천장의 샹들리에와 외벽의 화려한 장식, 그리고 중앙에 보이는 커다란 케이크가 압권이었다.
“확실히 이쁘긴 이쁘네.”
솔직히 말하면, 지금껏 가봤던 식장 중에서는 제일 큰 것 같았다.
하긴, 하객만 거의 오백여 명이 넘는다고 했으니 이 정도는 되어야겠지.
강형우는 축의금 봉투를 꺼내었다.
액수는 무려 백만 원이었다.
솔직히 고민 많이 했다.
처음에는 강신원과 이은주 합쳐서 오십만 원 정도면 적당하다 싶었다. 그런데 주혁 형이 백만 원을 내기로 했단다.
명색이 사장이고, 업계에서도 높은 위치에 있어서 그 정도는 해야 한다나?
그러면서 말하길 한 달 경조사비만 이천만 원이 넘게 깨진다고 했다. 게다가 연말이나 결혼 시즌 즈음에는 그 두 배 이상 나가기도 한다는 것이다.
역시나, 이 형의 스케일은 언제나 상상 이상이었다.
대체 얼마나 벌어야 그런 게 대수롭지 않게 될런지.
어쨌든 거기에 맞추려고 백만 원을 내기로 마음먹었다. 따지만, 신원이 형의 회사 사장은 바로 자신이었으니까.
그렇게 축의금 봉투를 전달하는데, 신원이 형 친구들이 흠칫 놀라더라.
순간 내가 그렇게 인상이 안 좋았나 싶었다. 면도도 하고 정장도 새로 맞춰 입었고, 새벽부터 일어나 목욕까지 하고 왔는데 말이다.
어쨌든 약간의 오해(?)를 뒤로하고 공지혜와 적당한 자리를 찾았다.
이미 순이 이모를 비롯한 지성분식 식구들이 한쪽에 구역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 한쪽에 앉은 강형우는 차분하게 예식을 지켜봤다.
양가에서 합의를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나름 방송에서 얼굴 좀 본 듯한 개그맨이 사회를 봤다.
결혼식 주례는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가 하셨는데, 경력이 무척 화려했다. 큰 은행에서 은퇴를 하고 현재 두루 컴퍼니에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고 것이다.
그 말을 시작으로 주례사가 시작되었고 곧 축가 차례였다.
작년 이맘때 나온 뮤직비디오 때문에 게이라는 소문이 돌았던 바로 그 가수였다.
확실히 노래 하나는 기가 차게 잘 부르네.
그렇게 다들 감탄하는 사이 축가가 끝났고, 예식이 마무리가 되었다.
여기까지는 예상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냥 평범한 결혼식의 한 장면이었을 뿐이니까.
이어진 건 사진 촬영이었다.
가족사진이 끝나고, 친구들과 지인들 촬영이 이어졌다.
또 지성분식 식구들끼리만 따로 찍기도 했다.
문제는, 부케였다.
“어? 어~”
이은주 뒤에 선 건, 황당하게도 공지혜였다.
어째 평소보다 유독 꾸미고 왔다 싶었다. 샵에 들려서 머리하고 화장까지 한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던 것이다.
확실히 이쁘긴 이쁘네.
공지혜가 나서는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잠시 강형우에게 쏠렸다.
순간 많이 당황스러웠다.
가을인데 왜 이리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지 모르겠네.
결혼식은 그렇게, 마무리 지어졌다.
하지만 강형우의 일은 끝나지 않았다. 강학희가 슬쩍 눈치를 줬던 것이다.
“형, 힘들죠?”
“어? 어… 좀…….”
김현우는 담배와 함께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그럴 만도 할 거다.
창주 형도 그렇고, 혁기 형도, 마지막으로 덕수 형도 결혼을 했다.
부부동반 모임처럼 있는 자리에서 유일하게 솔로였으니 어찌 마음이 편할까?
“장사는 괜찮아요?”
“아! 안 그래도 그 이야기 좀 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오늘은 좀 그렇겠지?”
“왜요?”
“그게… 예전에 알던 분이 같이 좀 하자는데 말이야.”
이야기 들어보니 결코 좋은 느낌이 아니었다. 원래 하던 프랜차이즈 치킨집이 장사가 안 돼서 간판을 바꾸려고 하는데 도와달라 했다는 것이다.
무려, 천만 원을 주겠단다.
대신 닭 튀기는 거하고 염지 하는 걸 좀 가르쳐 달란다. 그리고 간판도 같은 걸로 달면 안 되겠냐고 부탁했다는 거다.
딱 보니까 날로 먹겠다는 심사 같았다.
“형. 알잖아요. 하지 마요.”
“역시, 그래야겠지?”
“그럼요. 그리고 그런 거 들어오면 앞으로 저한테 전화하라고 하세요.”
“뭐?”
현우 형이 얼떨떨해하고 있는데, 강형우가 손목을 잡았다.
“일단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요. 저, 따라와요.”
결혼식 끝나고 뒤풀이 자리.
집안 어른들이 다 빠진 상태에서 고깃집 예약을 따로 한 상황이었다.
당연히 주인공은 강신원과 이은주였고, 옵션으로 강신애가 따라왔는데 한쪽 구석에서 지인들하고만 홀짝거리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확실히 그 자리는 미인들만 가득했다. 몇몇 남자들이 눈치를 보고 있었지만 섣불리 다가가기 어려운 장벽 같은 게 있었던 것이다.
강형우는, 그런 자리로 김현우를 끌고 갔다.
“신애야, 인사해. 이쪽은 현우 형이라고, 요즘 유명한 우리 통닭 사장님이야.”
“아! 알지.”
강신애가 눈을 동그랗게 뜨는데, 옆의 지인들이 화들짝 놀라 했다.
그게 이유가 있었다.
우리 통닭은 정말 많이 유명해졌다.
가게 하나를 확장했음에도 최소 20분은 기다려야 할 정도로 손님들이 많아졌다. 블로그에도 호평이 이어져 멀리서 찾아오는 이들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맛집 찾아다니는 아가씨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
“나랑 친한 형인데, 너도 이야기는 들었을 거 아냐?”
“어.”
강신애가 조금 당황해하는데, 강형우는 그 옆에 현우 형을 앉혀 버렸다. 그리고 잠시 이야기가 오가는데, 미리 계획한 대로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잠시만, 형도 조금만 이야기하고 있어요. 금방 올 테니까.”
그렇게 강형우가 빠지자, 김현우한테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맛집 사장님이란 이유로 인기가 폭발한 것이다.
무엇보다 결혼식 직후였다.
강신애의 지인들도 대부분 그런 생각을 할 만한 나이였으니 당연히 분위기는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 건 해결(?)한 강형우는 고깃집 안을 둘러봤다.
강신원은 정신이 반쯤 가출한 상태로 이은주의 손에 이끌려 정처 없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술도 못 하면서 넙죽넙죽 받아 마시는데, 아무래도 신혼여행 전에 병원부터 예약해야 할 것 같아 보였다.
지성분식 식구들은 그들 나름대로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고, 그건 배산회 식구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아, 다들 즐겁구나.”
잠시지만 강형우는 자신이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놀 시간에도 어이없게도 사업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때 마침 공지혜랑 시선이 마주쳤다.
뭐가 그리 좋은지 눈웃음을 지어주는데, 괜히 찔렸다. 미안했고, 동시에 고맙기까지 했다.
이런 놈이 뭐가 좋다고 저렇게 환하게 미소를 짓는 건지.
강형우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주고 바깥으로 나갔다.
거기 강주혁이 있었다. 몇 번이나 도망치려다가 이은주한테 찍혀서 잡혀 있었던 거다.
“형우야, 너는 하필 골라도 그런 데를 딱 찍냐?”
“진짜, 문제가 많아요?”
“많은 정도가 아니라, 거기 상당히 심각해.”
주혁 형이 인상 찌푸리는 걸 보니 역시나 상상 이상의 뭔가가 있는 모양이었다.
“일단 부탁해서 알아는 봤는데, 어차피 선택은 네가 하겠지만 난 권하지 않는다.”
“그 정도예요?”
강형우가 눈을 깜빡이는데, 한숨이 들려왔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강주혁이 진심을 털어놓았다.
“거긴 인마! 나도 못 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