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
158화 호사다마라고 할까
<안녕하십니까?
저는 지성분식이라는 작은 가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진작 인사를 드렸어야 하는데, 개인 사정상 기회가 잘 나지 않더군요.
카페에 가입한 건 단골손님들의 권유 때문이었습니다.
동네 골목에서 식당하니까, 지역 주민 커뮤니티에 인사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처음에는 장사하고 자리 잡는다고 바빴다가 까먹고는 몇 달 전 다시 듣고 가입을 했습니다.
제가 글을 올리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최근에 문의가 많아서 그렇습니다.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닌데 말이죠.
딱 두 번, 단골손님들 요청으로 인해 김밥 만드는 걸 알려 드린 적 있습니다.
그냥 소소한 팁 같은 걸 알려준 게 다인데 황송하게도 많은 분들께서 연락을 해주셨더라고요.
일일이 답변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와, 몇 줄 썼다고… 시간이 금방 가네.”
강형우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볍게 쓰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어려웠다. 오타도 수정하고 하다 보니 이십 분이 훌쩍 지난 것이다.
키보드에서 손을 땐 강형우는 에라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침대로 들어갔다.
“그러니까, 문의 전화가 많이 온다. 일단 계획이 없다고는 했는데, 그냥 그렇게 쓰기에는 이상하단 말이야.”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하려 했는데, 오만 잡생각들이 먼저 떠올랐다.
요즘에 전화기가 미쳤는지 시도 때도 없이 울렸다. 미희 어머니네 아파트 주민들이었는데, 요리 강습 언제 하느냐는 질문이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원인은 박미희였다.
블로그에 김밥 강습 게시글의 조회수가 무려 8,000이 넘어버린 것이다.
이 일대 수영구 인구가 16만 명이라 했고, 가까운 동에는 무려 5만 명이 살고 있다고 들었다. 대충 수영동, 광안동만 쳤을 때 말이다.
따지면 이 동네 주민들 다섯 명 중에 한 명이 이 글을 봤다는 게 된다.
물론 조회수의 대부분은 미희 학교 친구들과 SNS 친구들, 그리고 아파트 단지 주민들일 테지만.
게다가 미희 어머님네 모임에서 얼마나 자랑을 했는지 온 동네방네 소문이 다 나버렸다. 동네 분식집이 순식간에 핫한 가게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걸 증명하듯 손님이 늘었고, 가끔 예약받을 때나 쓰던 전화기가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물론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누가 좋다고 하니 따라 해보고 싶은 그런 거 말이다.
하지만 물들어 올 때 노 저으라고,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중요한 건, 호응을 얻어내고 그 관심을 자연스럽게 신메뉴와 연결해야 하는 거였다.
“일단 한 달에 한 번 정도 하는 걸로 하자. 신청자를 받고 반응을 본 뒤, 괜찮다고 하는 것만 팔면 되잖아.”
이렇게 되면 힘들게 홍보할 필요도 없었다.
무엇보다, 김밥 가격에 대한 인식도 단번에 깨뜨릴 수 있었다.
솔직히 김밥천국에서 삼천 원 넘어가는 김밥은 거의 팔리지 않는다. 나름 이름 있는 김밥 전문점에서도 두어 번 사 먹고 마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아직도 비싸다고 생각해서였다.
물론 그런 인식과 정면으로 싸우는 가게들이 하나둘씩 생기고는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유흥가거나 큰 대로변의 고급 가게들이었다. 동네 분식집에서 그랬다가는 욕만 바가지로 얻어먹는 것이다.
무엇보다 가격을 올린지도 얼마 안 되는 상황.
때문에 신중하고 조심해야 했다. 무작정 해보겠다고 나섰다가 안 팔리면, 나만 손해였으니까.
그런데 어떻게 이어야 할지가 막막했다.
“끄응, 태구가 소설 쓴다고 했을 때는 그렇게 쉬워 보였는데, 막상 글 쓴다고 생각하니 쉽지가 않네. 그렇다고 부탁하기도 어렵고.”
하루 종일 음식과 씨름만 하던 놈이 멋들어진 글을 쓰려니까 답답했다.
잠시 고민하던 강형우는 결국 전화를 들었다.
당연하게도 상대는 홍태구였다.
“여보세요. 어, 태구야. 그러니까…….”
대충 상황을 설명하는데, 홍태구가 대뜸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통화한 것처럼 동네 아줌마들하고 이야기한다고 생각하고 써라. 머리에 든 것도 없으면서 포장하려고 하면 괜히 이상해진다.
가만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강형우는 전화를 끊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은 뒤, 몇 줄을 지우고 다시 타이핑을 시작했다.
<제가 이렇게 글을 올리는 이유는, 전화가 너무 많이 와서 장사에 지장이 생길 정도네요. ㅠㅠ
바빠서 제대로 답변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어쨌든 당분간은 계획이 없구요.
그게 사정이 좀 많아요.
일단 우리 점장님 결혼합니다. 다음 주에 하는데 신혼여행 가요.
그리고 일주일 내내 장사하고 겨우 하루 쉬어요.
솔직히 따로 실습 같은 거 할 여유가 없네요. 진짜 죄송합니다. ㅠㅠ
하지만 문의가 많아서 고민은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많은 손님들이 좋아하실지…….
그리고 몇몇 분들이 그 블로그 사진 보고, 물어보셨는데, 예. 링크는 여기 누르시면 됩니다.
일단 현실적인 문제가 있어서 당분간은 어렵지만, 만약 다시 하게 되면 여기에 제일 먼저 올리겠습니다.
꼭 약속드릴게요.
그리고, 제가 전화번호를 몰라서 그런데.
강안 아파트 103동 208호 어머니 우산 찾아가세요. 그리고 다른 분들도 가게 뭐 놔두고 오신 거 있다 싶으시면 부담없이 들러서 물어보시면 됩니다.
안쪽 창고 방에 날짜별로 분류해서 모아놨거든요.
또, 덕문여고 1학년 4반 정X연 학생 어머님, 애가 작은 가방 하나 놓고 갔어요.
마지막으로 애들 때문에 한 달 결제 물어보신 아버님.
제가 책임지고 이달 안에 해드리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그 외에 물어보신 거, 다 메모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따지면 저도 이 동네 주민이고 해서 어떻게든 해드리려고 합니다.
못하는 건, 제가 아직 부족해서예요. ㅠㅠ
그러니까 믿고 기다려 주세요.>
강형우는 몇 번이나 글을 다시 확인했다.
조금 유치한 느낌이 많았는데, 그래도 아까보다는 훨씬 부드러워졌다.
무엇보다, 어느 정도 진심이 느껴졌다. 적어도 이렇게 올리면 욕은 안 먹을 것 같다는 확신까지 들었던 것이다.
다음 날, 강형우는 다시 카페에 들어갔다.
무슨 댓글들이 달렸나 궁금해서였다.
놀랍게도, 리플만 400이 넘어가더라. 게다가 호응이 예상 이상으로 폭발적이었다.
가장 중요한 건 이거였다.
당장 내일부터 사진의 김밥들을 팔아달란다. 꼭 사 먹겠다는 사람들만 백여 명이 넘었던 것이다.
***
“와, 이게 진짜 영향력이 있구나.”
강형우는 진심으로 놀랐다.
동네 맘카페들이 제법 힘이 있다고 들었다.
어떤 동네는 식당 사장들이 눈치를 봐야 할 정도로 행동력까지 강하단다.
하지만, 직접 겪어본 건 처음이었다.
“진짜, 밥을 그렇게 정성 들여서 짓는 거 몰랐어요. 괜히 다이어트한다고 남긴 거 미안하네요. 다음에는 미리 적게 달라고 할게요.”
근처 사무실 아가씨였다.
“이 집 김밥 맛있다고 소문났는데, 왜 그런지 몰랐어요. 그냥 김밥이겠지 싶어서 안 먹었는데, 저희 다섯 줄만 포장해 주세요.”
이제껏 조용히 식사만 하고 가시던 아주머니가 그렇게 포장까지 해가셨다.
“맛있게 잘 먹고 갑니다. 그리고 점심 때 배달 안 됩니까? 바로 요 앞 사무실인데. 배달만 되면 한 이십인 분씩 주문하고 싶습니다.”
이 앞에 무슨 서비스 회사 사장님이라고 들었다. 직원들이 바빠서 그런다고 부탁했던 것이다.
“이번에 소풍을 가는데, 혹시 단체 주문되나요? 선생님들까지 한 오십 명 되는데요.”
길 건너 어린이집 원장이라고 했다.
안 그래도 애들 먹일 것 때문에 걱정이라면서, 인터넷에 올라온 글 잘 봤단다. 그리고 이런 가게라면 안심하고 주문할 수 있겠다고 했었다.
그 외에도 이것저것 물어본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덕분에 대박까지는 아니지만, 중박 이상은 터졌다. 김밥 관련 매출이 월등히 올라간 것이다.
물론 죽어나는 건 공지혜와 은선경, 그리고 히토미였다.
하루 종일 김밥 싼다고 거기에만 매달려야 했으니까.
그것뿐만 아니라 또 하나의 기적이 벌어졌다.
신원이 형이 휴식 공간으로 만든 방이 있었다. 현재는 각종 요리 기구들과 잡다한 걸로 채워져 있었는데, 특히 손님들이 놔두고 간 물건들이 많았다.
정말 장사해 보면 안다.
비가 오다 그치면 꼭 우산이 한두 개씩 생긴다.
여학생들이 많이 오면 머리핀에 반지에, 수상한 가방(?)들도 많이 생기고, 어떤 날은 USB에 마우스까지도 보였다.
제일 빨리 찾아가는 건 휴대폰과 지갑이었다. 그다음으로 많은 건 보조 가방 비슷한 것들이었고, 심지어 성인 잡지까지도 있었다.
가장 황당한 건 청소기 박스였다. 집에 들고 가다가 가게에서 식사한 뒤, 까먹고 그냥 가버렸던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쌓인 물건들이 일주일 사이에 거의 다 정리가 되었다.
“와, 정말이지 효과가 무시무시하네.”
그냥 동네 아줌마들이 수다 떠는 카페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영향력이 엄청났다. 게다가 그 덕분인지 미희 블로그 유입자가 천 명이나 늘어났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SNS도 생각해 봐야겠어.”
사실 기껏 돈 들여서 만든 홈페이지가 유명무실해진 상황이었다. 새로운 메뉴판만 올라와 있었고, 손님들 문의는 몇 달 전이 마지막이었던 것이다.
그마저도 제대로 된 답글조차 달지 못했으니, 조금 민망했다.
“문제는 무작정 많이 한다고 좋은 게 아니라는 건데.”
그 글을 올린 이후, 모두가 호의로만 다가온 게 아니었다.
돈가스는 가르쳐 줄 생각이 없느냐?
나도 김밥집 차리고 싶은데 배우고 싶다.
뭐, 여기까지는 그러려니 했다.
실제로 취직시켜 달라는 사람도 여럿 있었고, 현금으로 오백만 원을 뽑아와서 가르쳐 달라는 아줌마도 있었으니까.
문제는 너무도 적나라하고 노골적인 말들이었다.
이런 가게 차리려면 얼마나 드느냐?
체인점을 내고 싶은데, 안 되겠느냐?
내가 잘 아는 가게가 있는데 업종 변경을 고민 중이다. 같이 한번 해보지 않겠느냐?
마지막으로, 이가 갈리는 제안(?)이 들어왔다.
자신이 돈을 댈 테니 동업을 하잖다.
씨발!
강형우가 결심한 것 중에 하나가, 절대 동업은 안 한다는 거였다. 조성기와 좆같은 일을 겪고 나서 단단히 마음먹었던 게 바로 그거였다.
아마 이번 주에 처음으로 화를 냈던 게 그래서였다.
동업은 개뿔!
어쨌든, 호사다마라고 좋게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던 중 정말 의외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연거푸 들어와 버렸다.
“여기인데, 어때요?”
대충 이십 대 후반의 아가씨였다.
귀여운 고양이 상의 얼굴에, 키도 큰 편이었다.
하지만 힘든 일을 겪었는지 피부는 푸석푸석했고, 머릿결도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마치 당장에라도 지금 장소를 벗어나려는 듯 불편한 표정까지 보였던 것이다.
강형우는 냉정하게 가게 안을 둘러봤다.
시설은 흠잡을 곳이 없었고, 오픈 주방은 의외로 공간이 넉넉했다.
가장 마음에 드는 건 가격이었다.
보증금 오천에 월세 백오십이었다. 무려 40평대 식당이 이 가격에 나와버린 것이다.
“일단 가게는 마음에 듭니다. 문제는 상권인데…….”
강형우는 가게 밖을 나와서 주변을 돌아봤다.
일명 막힌 상권이었다.
지하철역은 가깝지만 거기서 조금만 걸어가면 주변이 온통 아파트 단지였다.
때문에 막혀 있어서 외부에서 사람들이 오기가 쉽지 않았고, 상권도 한정되어 있었다.
장점은 꾸준히 안정된 수입이 올라온다는 것.
단점은 그 한계 이상을 벌기가 어렵다는 거였다.
“그런데 분식집들이 참 많네요?”
“그게…….”
아가씨는 우물쭈물하더니 끝내 대답하지 못했다.
강형우는 몇 번이나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길 건너편 떡볶이집 사장과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인상을 확 찌푸리는 것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