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
157화 당연하죠
“세상에 공짜는 없어요.”
강형우가 봉투를 확인하면서 말을 하자 강신원은 눈을 깜빡거렸다.
다시금 강조하기 위해 강형우가 말했다.
“형,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요.”
“어.”
“사실 이렇게 받는 것도, 제대로 된 건지는 아직 확신이 없거든요.”
강형우는 피식 웃은 뒤, 담배를 꺼냈다. 그리고 그사이에 있었던 숨은 이야기도 꺼내놓았다.
처음에 아주머니들이 김밥 만드는 걸 가르쳐 달라고 했을 때, 거절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다각도로 고민해 보니 오히려 기회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보니 확신까지 가질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이렇게 이야기했죠. 주6일 일하고 하루 쉬는 터라 시간이 없다고요. 그랬는데, 아주머니들이 일요일 날도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그랬었나?”
“형이 주방에만 있어서 못 들었던 거지, 홀에선 다들 알고 있었거든요. 이제 슬슬 좀 나오고 그래요.”
강형우가 은근히 압박하자 강신원은 살짝 몸을 움츠렸다.
아직 완전히 두려움을 떨치지 못한 모양이었다.
“어쨌든, 일단 고민해 보겠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아주머니들이 먼저 제안을 하더라고요. 재료비나 음식값은 자기들이 내겠다고.”
“아!”
“그런데, 액수가 제법 나오더라고요. 사람이 여덟 명인데 김밥 열 줄씩만 해도 거의 이십만 원 돈이고, 그 외 기타 등등 계산하니까 이게 안 맞더라고요.”
처음에는 인건비를 치지 않았다. 아니, 원래의 강형우라면 딱 재료비만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주혁 형하고 술 마시면서 세뇌(?)를 당하다 보니 의외로 꼼꼼하게 따질 게 많다는 걸 배우게 되었다.
가령, 김밥 한 줄 마는 걸 가르친다고 하자.
거기에 들어가는 재료부터 미리 갖춰야 한다. 하다못해 동네 슈퍼 가서 산다고 해도 단무지 가격에, 그걸 사오는 인건비까지 계산하는 게 맞다는 것이다.
“그걸로 고민하고 있는데, 아주머니들이 먼저 그랬어요. 강사비로 50만 원 주겠다. 재료는 따로 준비하겠다고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그게 더 번거롭더라고요.”
“그야, 그렇기는 하지. 어차피 가게에 다 있는 거고 따로 필요한 것만 사면 되니까.”
“반은 맞는데, 나머지는 아니에요.”
강신원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피식 웃은 강형우는 담배를 쓰레기통에 버린 뒤 주방을 확인했다.
안쪽에서 공지혜와 이은주가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시간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자, 강형우는 다시 말을 이었다.
“아주머니들이 준비해 오면, 거기에 맞춰서 해야 하잖아요. 그럼 제가 원하는 대로 진행하기 어려워지거든요. 그래서 제가 다 준비할 테니까 그냥 인당 10만 원으로 하자고 했어요.”
사실 약간의 실랑이가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아주머니들은 당연한 듯이 받아들였다.
머지않아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미희 어머님이 말씀하시길, 주부 대상으로 요리 강습 같은 데 다니면 한 달에 이삼십만 원은 그냥 깨진단다. 일주일에 한 번씩 배우는데도 그 이상 들 때가 많다는 것이다.
문제는, 효과였다.
사람 수가 거의 스무 명 정도 되니까 세세하게 이야기하기 어려웠다.
또, 진도를 뺀다는 명목하에 일부분을 넘기는 경우도 많았고, 진짜 노하우라 할 수 있는 건 가르쳐 주지도 않는단다.
무엇보다, 10만 원이 부담스럽지 않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어떻게 된 건지 강형우에 대해 이상한 소문이 동네에 파다하게 퍼졌던 것이다.
무협식으로 표현하면 이런 거였다.
한때 요식업계의 천재 셰프가 업계의 무정함에 염증을 느꼈다. 그래서 조용한 시골에 은거하면서 소소하게 작은 가게를 운영한다는 식으로 알려졌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했더니, 원인은 박미희와 그 친구들이었다.
처음으로 여고생 단체 손님을 받았을 때 확실하게 이야기하지 않고 얼버무렸다.
그냥 작은 데서 일하다가 독립했다고.
근데 그게 맞았다. 분석이 형네 회사에서 음식 열심히 만들다가 지성분식을 차린 거니까.
그때 애들이 떠들기를 방송에 나오지 않았느냐, 혹시 미슐랭 별 달린 레스토랑에서 일하지 않았느냐, 같은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난감해하며 아니라고 했지만, 10대의 상상력은 상식을 월등히 초월해 버렸다.
어느 순간, 절대 미각에 요리왕 비룡까지 나와 버렸던 거다.
물론 그 이유는 짐작이 갔다.
태어나서 처음 맛보는 정성 들인 폭립에 영혼이 나가 버린 상태였으니까.
무엇보다 그 애들이 홀라당 넘어간 결정적인 사건(?)이 하나 있었다.
어느 순간 갑자기 폭립 판매가 훅 추락하고 말았다. 연일 줄 서던 손님들이 줄어들더니 준비한 게 남게 되는 일까지 생긴 것이다.
정말이지 그때는 그 이유를 파악하지 못했다.
나중에야 알게 됐는데, 큰길 쪽 스테이크집에서 폭립을 메인으로 내세웠다. 나름 유명한 체인이라 손님들이 그쪽으로 확 몰려 버렸던 것이다.
문제는 손님들의 냉정한 입맛이었다.
유명 스테이크집 폭립이 동네 분식집보다 맛이 없다!
이런 평가가 인터넷에 올라와 버린 것이다.
황당한 건, 그걸 접한 주방 총괄 셰프가 우리 가게를 찾아왔다. 그리고 주방 식구들과 함께 평범한 손님으로 위장하고 폭립을 맛보고 갔단다.
그다음 날, 메뉴판에서 폭립을 빼버렸단다. 분식집만도 못하다는 걸 스스로 인정해 버린 것이다.
강형우는 진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냥 자신도 모르게 의문의 1승을 해버린 것!
이후, 동네 사람들 사이에 그런 소문이 퍼지면서 강형우는 의외로 뛰어난 실력자로 포장이 되어버렸다.
“푸하~”
어이가 없었는지 신원이 형도 빵 터지고 말았다. 연신 킥킥거리더니 쿨럭거리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애들이 우스개로 그런 소문을 냈는데, 그게 어머니들을 통해서 퍼진 거란 말이지?”
“그러니까요. 진짜 듣는데 얼마나 황당하던지…….”
강형우는 진심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슬쩍 안쪽을 확인한 뒤, 다시 담배를 물었다.
최근에 담배를 많이 줄이고 있었다.
거의 일주일에 한 갑에서 한 갑 반 정도?
그건 공지혜 때문이었다. 별말은 안 했지만, 괜히 눈치가 보여서 몰래 조금씩만 피우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같이 큰일을 치렀을 때는 진짜 심하게 당겼다.
표현하진 않았지만, 진짜 많이 긴장했었으니까.
“형, 생각해 봐요. 일당으로 무려 80만 원이라고요. 게다가 제가 뭐라고 했느냐면요.”
미희 어머님한테 당당하게 이렇게 말했다.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안 받겠다고.
때문에 더 긴장했고, 강신원 모르게 밤늦게 가게 남아서 많은 준비를 했다.
또 집에 가서 자료까지 조사했으며, 쉽게 만들 수 있게 레시피까지 타이핑해서 뽑아냈다.
물론 최종적으로 손을 봐준 건 홍태구였다.
“그거 말고도 이유는 많아요.”
“또, 있어?”
“사실 그동안 고민 많이 했거든요. 가격 올리는 것도 그렇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문제가 많더라고요. 생각해 보니 김밥이 그렇게 무시당할 음식이 아닌데 말이죠.”
강형우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성분식의 김밥은,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음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강형우에게는 하나의 요리였다. 가격은 고작 이천 원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 들인 노력과 정성은 돈가스 이상이었던 것이다.
솔직히 손님들이 몰라줘도 상관은 없었다.
아쉬운 건 본인만의 몫이었으니까.
문제는 이번에 가격을 올리면서 유독 김밥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는 거다.
한 줄에 2,000원을 받으면 겨우 3, 400원 남는다. 2,500원짜리 김밥이 500원 정도 남고, 돈가스 김밥은 오히려 적게 남았다.
무엇보다, 라면+김밥 세트가 가장 큰 문제였다.
500원 할인해서 5,000원을 받는데 그게 비싸다는 말이 종종 나왔다.
왜 김밥은 비싸면 안 될까?
강형우의 고민과 공부는 거기에서 시작됐다.
동시에, 인식을 바꾸고 싶었다. 5,000원이 가진 심리적인 상한선을 깨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해서 김밥도 고급 음식이라는 걸 여러 번 강조했다.
손이 많이 가고, 정성이 깃들어 있지 않으면 제대로 된 맛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던 게 그래서였다.
무엇보다, 이걸 발판으로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
“형, 아까 그거 꼭 확인해요.”
“그… 레시피 북?”
“예. 다음 실습은 형이 다 해야 해요.”
“뭐? 내가… 아니, 나 혼자?”
“당연하죠. 이제 형이 여기 점장이에요. 이 가게에서의 일은 형이 전부 책임져야 한다고요. 그리고 언제까지 제가 옆에서 다 봐줄 수는 없잖아요?”
순간 강신원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오전에 밥 짓고 재료 손질하고 준비하는 것까지는 그럭저럭 자신감이 붙었다.
하지만 강형우만큼 말 잘하고 김밥을 뚝딱뚝딱 만들어낼 자신은 없었다.
엄연히 전혀 다른 범주의 일이었으니까.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라는 거다.
강형우가 진지하게 말했다.
“아까 만든 거, 그거 일종의 테스트라고 보면 돼요. 그리고 손님들 반응 봐서 실제 메뉴로도 넣을 거라고요.”
“뭐? 그럼… 그것까지 전부 계산하고 오늘 일을 벌인 거야?”
순간 강신원은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강형우는 피식 웃었다.
“당연하죠!”
***
“후우, 이제 좀 마음이 놓이네.”
사실 신원이 형한테는 일부러 다 이야기하지 않았다.
때문에 요리 강습이 끝나자마자 무척 궁금해하더라.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그제야 조곤조곤 알려주니, 무척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걸 증명한 게 이번 일주일이었다.
최근에는 결혼식 준비한다고, 밤늦게 자는 바람에 종종 지각을 했다.
또, 브레이크 타임 때 은주랑 나가서 늦게 돌아온 적도 여러번이었다.
그때마다 강형우가 대신 주방을 보면서 돈가스를 튀기기도 했고, 폭립에 양념을 바르기도 했었다.
물론 미리 양해를 구했기에, 그리고 이해 못 할 일도 아니기에 크게 따지지는 않았다. 아니, 애초에 그런 부분까지 감안해서 충분한 인력을 구했으니까.
무엇보다 이은주의 숨은 공(?)이 무시무시하게 컸다.
이영제는 이제 주방 보조 수준이 아니었다. 만약을 대비해 자신의 역할까지 할 수 있도록 실력을 쑥쑥 키워놨던 것이다.
심지어 히토미도 라면을 비롯해 어지간한 덮밥 종류는 능숙하게 만들어낼 수준에 이르렀다.
때문에 강신원과 이은주가 자리를 비웠어도 지성분식에는 전혀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그랬기에 한동안 여유를 부렸는데, 이번 일이 큰 자극이 된 모양이었다.
신원이 형은 이전보다 더 열심히 했다. 보다 적극적으로 홀 서빙을 돕기도 했고, 의외로 이은주에게 많은 것을 물어보고 배우고 있었다.
이제야, 점장으로서의 자각이 깃든 게 분명했다. 변화된 모습을 다들 느낄 정도로 열의가 똑똑히 보였던 것이다.
물론 그 외에도 이야기하지 않은 것이 많았다.
지성분식 입장에서 언제까지 돈이 안 되는 김밥만을 팔 수는 없었다. 많은 인력을 소모하는 일에 과하게 매달릴 필요까지는 없었던 거다.
무엇보다, 창의적인 음식이 가지는 매력이 있었다.
해서 강신원에게 과제를 주었다.
레시피 북의 김밥을 전부 반복해서 만들어보라고. 그리고 직접 손님들 앞에서 해보는 것도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 결과, 어제의 김밥 강습도 성공적으로 끝내 버렸다.
이전의 움츠렸던 행동까지 완전히 벗어버린 그런 모습으로 말이다.
진짜 놀랄 만한 진화를 했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여기까지는 생각한 대로, 계획한 대로 무사히 진행이 되었다.
그랬으니, 고생하면서 땀 흘린 대가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뿌렸던 게 있으니까, 수확을 해야지?”
강형우는 심호흡을 한 뒤, 다시금 확인했다.
이제 맘카페에 글을 올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