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
156화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김을 먹은 건, 삼국시대부터라고 하더라고요. 삼국유사에 그렇게 나온다고 합니다. 그리고 김 양식에 대한 내용은 1424년에 집필된, ‘경상도지리지’에 있다고 합니다.”
뜬금없는 설명에 다들 당황해했다.
하지만 강형우는 말을 이었다.
“하동 지역 전래에 의하면 어떤 할머니가 섬진강 하구에서 조개를 캐다가 물에 떠내려 온 나무토막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거기 김이 붙어 있어서 먹어보니 맛이 좋았다고 하네요. 이후 나무를 물에 세워서 김을 붙였는데, 그게 김 양식의 시초라고 합니다.”
말하다 말고 강형우가 갑자기 씨익 웃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는 재미없죠?”
“울 학교 역사 샘 같아요. 너무 딱딱하잖아요.”
박미희가 손을 들고 말하자 강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사실… 방금 말한 내용은 인터넷에 다 나와 있는 겁니다. 그러니 정말 궁금하신 분만 찾아보시면 됩니다. 사실, 제가 할 건 그런 게 아니고요.”
강형우는 머리를 긁적거린 다음 주방에서 뭔가를 가져왔다.
TV에서나 봤을 듯한 양철 도시락이었다.
“이거 다들 아시죠?”
“우리 어릴 때 쓰던 도시락이네요.”
“저거, 국민학교 때 쓰던 건데…….”
아주머니들이 각자의 추억에 대해 한마디씩 했다.
강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거 들고 다닐 때만 해도, 김밥은 무척 고급 음식이었습니다. 특히 저 어릴 때, 김밥은 소풍날이나 잔칫날밖에 먹을 수 없었죠. 손도 많이 가고, 번거롭고……”
“우리 때도 그랬어요.”
“예. 맞습니다. 그래서, 어떤 어르신은 뷔페 가면 옛날 생각 나신다면서 제일 먼저 김밥부터 드시더라고요.”
“어머? 생각해 보니 그러네?”
“맞아. 이상하게 뷔페 가면, 먹을 것도 많은데 김밥이 당기더라고. 그래서 그런가?”
어느 정도 반응이 오자 강형우는 목소리를 조금 키웠다.
“예. 맞습니다. 김밥은 귀한 고급 음식이었습니다. 진짜 얼마나 먹기 힘들었냐면요.”
일 년에 두 번 있는 소풍날, 그리고 학교 운동회, 어쩌다가 가족들끼리 야유회를 가면 한 번씩 만들었고, 그게 김밥을 접할 수 있는 전부였다.
무엇보다, 그때는 손이 많이 가고 번거로웠다.
이른 새벽부터 압력 밥솥을 돌리면 아버지가 잠에서 깬다고 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전날 한 밥을 살짝 쪄서 그걸로 김밥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당근을 볶고, 나물을 무치고, 우엉을 조리고.
계란도 비싸서 양이 많아 보이게끔 저렴한 두부를 으깨 넣어서 두툼하게 부쳤다.
단무지 역시 커다란 걸 칼로 자르고, 당시 귀하다는 맛살에 햄도 볶은 뒤, 그걸 한데 말아서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참기름을 바르고 깻가루를 뿌리면 끝.
이게 강형우가 가지고 있는 90년대 중반의 기억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천천히 하니까, 몇몇 아주머니들이 눈을 감으셨다.
마치 그때를 추억하려는 것 같아 보였다.
“하하하. 저는, 엄마 옆에서 햄 주워 먹다가 뒤집개로 머리 맞고 그랬습니다. 나중에는 햄이 모자라서 단무지만 들어간 것도 있었어요.”
“호호, 우리도 다 그랬어요. 그때는 그게 왜 그렇게 맛있었는지…….”
“맞아, 맞아. 맛살 훔쳐 먹다가 얼마나 맞았다고, 나 그때 머리에 땜빵 생겼잖아.”
“우리 집은 오빠가 많아서 소풍 때가 되면 일주일에 한 번씩 김밥 말았거든. 꼭 내가 다니던 학교가 제일 늦게 가서, 울 엄마가 귀찮다고 주먹밥 해줬어. 딸이라고 얼마나 괄시를 받았는지.”
저마다 추억을 꺼내놓으니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하지만, 분위기는 무척 좋았다.
잠시 기다리던 강형우는 어느 정도 조용해지자 입을 열었다.
“예. 김밥은 그렇게 먹기 힘든 음식이었습니다. 고급 음식이었고, 정성이 많이 들어갔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싸구려가 됐습니다.”
김밥을 시도 때도 없이 사 먹을 수 있게 된 건 국숫집들 때문이었다.
90년대 이전만 해도 국수는 바쁜 와중에 급하게 후루룩 말아먹고 가는 음식이었다. 시간도 많이 안 걸리고, 국물까지 마시면 배가 금방 찼으니까.
하지만 한국인은 밥심이라고 했던가?
국수로는 부족해서 밥을 찾았는데 적당한 반찬이 없었다.
해서 야채와 나물을 넣고 간장으로 간을 한 뒤, 김에 말아서 내왔는데 이게 국수랑 잘 맞았던 것이다.
무엇보다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사람들의 식사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아침, 점심, 저녁 세 끼로는 부족해서 중간에 참을 먹기 시작한 거다.
국숫집과 분식집이 많아진 건 그 때문이었다.
이후 국수는 라면에게 그 자리를 내주게 된다.
무수히 많은 분식집에서 라면과 함께 김밥을 팔게 되는 게 그래서였다.
그러다 결정적인 사건이 터지게 된다.
바로 IMF였다.
1997년.
무수히 많은 기업들이 무너지고 전 국민이 금 모으기 운동을 했다.
이때 얼마나 어려웠냐면, 자살자만 수백 명에 실종자만 수천 명이었다.
서울역 노숙자들이 수십 배 증가했고 세상을 등지기 위해 불교에 귀의하는 이들도 몇 배나 늘었다고 했다. 게다가 생업을 포기하고 구걸하는 이들이 전국적으로 생겨날 정도였다.
정말 먹고살기 힘든 시대.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저렴한 음식을 찾기 시작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분식집이 진화된 게 바로 김밥천국입니다. IMF 여파를 타고 전국적으로 뿌리를 내렸는데 미끼 상품이 바로 김밥이었죠.”
짜장면조차 이천 원이 넘던 시절.
하지만 김밥천국은, 김밥 한 줄에 천 원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었다.
그 결과, 김밥은 누구나 쉽게 사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그런 말을 아세요?”
“저 알아요.”
박미희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다들 옛날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공감 못 하고 있다가, 아는 게 나와서 소리친 것이다.
“한 번 설명해 볼래?”
강형우가 제안에 박미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좋은 품질의 화폐와 나쁜 품질의 화폐가 동시에 존재하면 좋은 화폐가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좋은 화폐의 가치가 높기에 사람들이 내놓지 않는다는 거죠. 이걸 일반에 적용하면, 그 같은 과정이 반복되면 나쁜 품질의 제품만 시장에 남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역시 수시 합격한 학생답게 공부 열심히 했구나. 잘했어.”
그 칭찬에 박미희가 쑥스러워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어머니도 잘했다는 듯 등을 두드렸다.
“실제와는 다르긴 합니다만 김밥도 비슷합니다. 이해하기 힘드시겠지만, 가격이 저렴해지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도리어 품질이 떨어진 것이죠.”
똑같은 김밥천국에서 똑같은 김밥을 만들어서 판다.
그런데 한쪽은 싸구려 재료로 이윤을 많이 남기고, 다른 쪽은 좋은 재료로 적게 남긴다.
결국 끝까지 살아남는 건, 싸구려를 팔아서 많이 남기는 쪽이었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지난 십 년간 김밥의 퀄리티가 많이 떨어졌습니다. 그냥 마지못해 먹는 수준까지요.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옛날에는 소풍 때나 겨우 먹을 수 있던 귀한 음식이었잖아요.”
그 말에 많은 아주머니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까 요즘에 김밥이 맛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네요.”
“맞아요. 그냥 라면만 먹으면 허전해서 시키는 건데, 진짜 김밥 맛집들이 많이 없어요.”
“옆에 해운대는 있어. 비싸서 그렇지. 거긴 김밥 한 줄에 삼천 원, 사천 원씩 받더라고.”
한 아주머니가 그렇게 말하자 강형우가 자르고 들어왔다.
“원래 제대로 된 김밥은 그 정도 받는 게 맞습니다.”
고급 김밥 열풍이 분 건 불과 4, 5년도 되지 않았다.
특히 부산은 서울보다 유행이 뒤처지기에 겨우 2010년이 되어서야 그런 가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때문에 아직도 삼천 원 넘어가면 김밥이 너무 비싸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강형우의 설명에 몇몇 아주머니들이 눈빛이 달라졌다. 지금껏 깨닫지 못한 걸 이제야 알게 된 듯, 고개까지 크게 끄덕이기 시작한 것이다.
“자, 어머니들. 어머님들께서는 왜 김밥을 배우러 오신 거죠?”
“그야 맛있게 만들고 싶어서.”
“당연히 자식들한테 좋은 거 해주고 싶고 하니까 배우러 온 거죠.”
강형우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제가 긴 이야기를 한 건, 김밥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 달라는 의미에서였습니다. 그냥 어디서나 흔하게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어머님들이 정성껏 만든 김밥이 어떤 요리보다 훌륭하다는 걸… 알고 만드시라는 겁니다.”
갑자기 분위기가 묘하게 변했다.
대부분은 이 집 김밥이 맛있으니까 한 번 배워보자, 이러고 왔었다.
그랬기에 아주머니 두어 분은 큰 열의가 없어 보였다. 그냥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정도로만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에너지 드링크라도 폭풍 흡입한 듯, 눈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당장이라도 고급스러운 걸 가르쳐 달라는 듯 열의까지 폭발했던 것이다.
이후에는 강형우의 독주였다.
***
“자, 이게 요즘 핫하다는 마약김밥이라는 겁니다.”
김밥 반을 잘라 밥을 올리고, 스윽 말았다. 그리고 미리 만들어놓은 겨자 소스를 내었다.
아주머니들은 하나씩 맛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거 은근히 손이 자꾸 가네.”
“그러게? 보기에는 별거 없어 보이는데?”
호기심을 자극하는 게 거기에 있었다.
강형우는 짧게 설명했다.
“설탕과 간장을 미리 섞어둡니다. 이게 베이스가 되는 단짠의 맛이고요. 거기에 매실청과 겨자 소스, 물을 섞어서 만들면 이 맛이 나는 거죠.”
그다음으로 만든 건, 충무김밥이었다.
미리 만들어놓은 깍두기에, 오징어무침, 그리고 즉석에서 데쳐서 볶은 어묵까지 더해졌다.
아주머니들은 맛있다면서 순식간에 10인분을 뚝딱 해치워 버렸다.
그제야 강형우가 말했다.
“지금까지가 기본에 충실한 김밥들이었습니다. 원래의 목적에 맞게 만들어진 것이죠. 맛있으면서도 가볍게 한 끼 때우는 용도로요.”
강형우는 즉석에서 바나나 두 개를 갈은 뒤, 고춧가루와 매실청, 후추를 팍팍 뿌렸다.
그걸로 돼지 뒷다리를 볶은 뒤, 양파와 고기만 넣고 김밥을 말았다.
“요즘 유행하는 제육 김밥입니다. 이건 소프트 버전이니까 바로 드세요.”
아주머니들이 한 입씩 먹는데, 다들 눈이 동그래졌다.
바로 앞에서 즉석으로 뚝딱 만드는 걸 봤는데, 이렇게 맛있을 줄은 몰랐다는 바로 그 표정이었다.
강형우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여러 가지를 만들었다.
다이어트에 좋다는 샐러드 김밥에, 성인용 건과류 김밥, 그리고 편의점에서 잘나간다는 불닭 김밥까지, 불과 이십 분도 안 돼서 후다다닥 내놓은 것이다.
그 빠른 속도와 간편한 방식에 아주머니들은 열광(?)을 했다. 지금껏 어렵게만 생각했는데, 이렇게도 된다는 게 열띤 호응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사실 김밥은 간단합니다. 몇 가지 요령만 알고 있으면 정말 다양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포인트를 설명하는데, 중요한 건 수분이었다. 김밥을 망치는 가장 큰 요인으로 그걸 강조한 것이다.
“집에서 맛있는 밥 반찬을 한데 넣고 쌈 싸서 먹는다고 생각하시고 재료를 넣으시면 됩니다. 보통 애들이 일미무침을 좋아하잖아요. 그럼 살짝 볶아서 수분을 날리고 넉넉하게 넣으시면 됩니다.”
그렇게 또 한 줄이 완성이 됐고.
“여기 참치도 기름 빼면 됩니다. 그런데 손으로 꽉 짜야 되요. 그런 다음 마요네즈를 뿌리면… 당연히 점성이 많으니까 흘러내리지 않습니다.”
또 한 줄이 완성이 되었으며.
“저희 가게 자랑인 돈가스 김밥입니다. 당연히 돈가스에는 뭐다? 바로 소스죠. 이걸 졸여서 찐득하게 만들어서 농축시키면… 보세요. 흘러내리지 않잖아요.”
그렇게 돈가스 김밥까지 순식간이었다.
종류별로 치면 벌써 열 개는 넘어갈 것 같았다. 그런데도 웃으면서 뚝딱뚝딱 만드는데 정말 애들 소꿉놀이하는 것처럼 쉽게 했던 것이다.
이후 강형우가 손짓하자 공지혜가 프린트를 가져왔다. 거기에는 방금 시범 보인 김밥들의 레시피가 적혀 있었다.
“자, 다들 오늘 하루 수고하셨습니다.”
강형우가 고개를 숙임으로써 오늘의 수업이 끝이 났다.
아주머니들은 정말 좋아라 했으며 진짜 반응도 너무 괜찮았다.
그랬다.
강신원은 딱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뒷정리가 끝난 후에야 들은 게 있었으니…….
“형, 이거 오늘 일당이에요.”
“뭐? 일당?”
“예? 당연히 쉬는 날 일했으니까. 계산해 주는 게 맞죠.”
봉투에 들은 건, 무려 이십만 원이었다.
이게 뭔가 싶어 쳐다보는데 강형우가 씨익 웃었다.
이 미친 새끼가 오늘 과하게 무리한다 싶었는데, 다 이유가 있더라.
교육비로 인당 10만 원씩 받기로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