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
155화 우와, 대단하다
제일 먼저, 강신원이 업소용 압력 밥솥을 가리켰다.
“이게 오십 인분 짜리입니다. 하루에 보통 다섯 번에서 여덟 번 정도 밥을 하고요. 주말에는 열 번 정도 할 때도 있습니다.”
이번에는 그 옆의 전기 보온밥통을 가리켰다.
“압력솥에서 한 밥을 옮겨서 보관하는 거죠. 보통은 여기서 밥이 나갑니다. 그사이 다시 또 밥 짓기를 번갈아가면서 하는데…….”
아침에만 밥을 두 번 짓는다.
그걸 두 개의 보온밥통에 나눠서 담고, 그중 하나가 비어버리면 다시 밥을 짓는 그런 방식이었다.
“저 전기밥통, 밥 안 돼요? 왜 번거롭게…….”
미희가 묻는데 어머니가 팔을 당겼다.
그걸 본 강신원은 가볍게 웃었다.
“예. 어머니들은 다 아시는 모양이네요. 맞습니다. 전기밥솥도 밥은 됩니다만, 압력솥이 더 맛있습니다. 그래서 이걸로 밥을 짓고 옮기는 겁니다.”
사실 원리는 간단하다.
쌀과 물을 넣고, 밥솥을 작동시키면 안에 열이 찬다. 당연히 물이 끓으면서 수증기가 발생하고 그게 적당한 틈으로 조금씩 빠져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압력 밥솥은 뚜껑을 밀폐시켜서 증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했다.
그럼 어떻게 되느냐?
압력이 높아지면 물은 더 높은 온도에서 수증기로 바뀐다.
동시에 쌀이 가지고 있던 수분이 압력 때문에 더 천천히 빠지는 것이다.
이게 영양소 손실을 막고 쌀을 더 윤기 있고 찰지게 만든다. 한마디로 갓 도정한 밥을 압력솥에 지었을 때, 훨씬 맛있게 된다는 거다.
“물론 가마솥 밥이 더 맛있는 것도 비슷한 원리이기는 합니다만, 분식집에선 쓰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이게 현실적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죠.”
강신원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강형우는 그 외에도 몇 가지 이유를 더 알고 있었다.
밥맛이 맛있고 맛없고를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은, 놀랍게도 경험이다. 본능에 새겨진 그 감각이 밥에 대한 인상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특히 남자들 대부분은 군대를 갔다 온다.
거기서 나오는 건 찐 밥이었다. 커다란 철판에 쌀을 깔고 물을 부은 뒤, 커다란 찜통에서 쪄버리는 것이다.
장점은 짧은 시간에 대량으로, 그리고 맛을 균일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
단점은, 무슨 수를 써도 맛이 개떡 같다는 거였다. 게다가 물 조절과 시간 조절에 실패하면 진짜 떡이 나오기도 했던 것이다.
생각해 봐라.
찰기도 없이 뻑뻑한 밥.
그건 영양소가 다 증발하고 빠진, 그냥 탄수화물 덩어리였다.
당연히 남자들은 본능적으로 싫어할 수밖에 없었다. 이 년 동안 그런 맛없는 밥을 먹었으니, 비슷한 식감을 증오하는 것이다.
추가로 짬밥의 뜻은 이거였다.
남은 반찬과 음식을 뜻하는 잔반에서 변한 말.
이게 사전에 올라 있는 정의였다.
하지만 옛날 군인들은 납작하게 눌려서, 짜부라진 밥이라고 했다. 그게 짬밥의 진짜 어원이라는 설도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강형우는 절대 질거나 떡 같은 밥을 좋아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요새 유행하는 트렌드가 집 밥, 혹은 집 밥 같은 음식이었다.
그 포인트는 말 그대로 맛있는 밥에 있었다.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방앗간에서 쌀을 사와 바로 가마솥에 안쳤고, 나중에는 아버지 퇴근 시간에 맞춰서 압력솥에 밥을 지어 먹었다.
때문에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은 그게 훨씬 영양가 있고 맛있다고 기억했다. 집 밥 같은 밥을 선호하게 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 밥을 구분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숟가락으로 떠보면 된다.
영양소와 수분을 머금고 있을수록 단단해지기에 밥알이 쉽게 뭉개지지 않는 것이다.
“일단 밥을 짓기 전에 밥물부터 만들어야 됩니다.”
강신원의 말에 강형우는 서둘러 움직였다.
큰 통에 물을 받아 불에 올린다. 거기에 손바닥보다 큰 다시마 한 조각과 양파 세 개를 넣었다.
“여긴 밥물도 따로 만들어요?”
“예. 저희는 다시마와 양파를 우려서 밥을 짓습니다. 물론 아주 연하게.”
물이 끓자 강형우는 다시마부터 건졌다.
동시에 강신원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다시마는 오래 우리면 진액이 나와서, 밥에 쓴맛을 남기거든요. 양파는 반대로 단맛을 남기는데 빨리 건지는 건 이유가 있습니다.”
그때 강형우가 불을 끄고 큰 젓가락으로 찔러가며 양파의 상태를 확인했다.
아직은 흐물흐물해지지 않은 상황.
하지만 과감하게 건져내서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려 버렸다.
“아깝다.”
미희가 반사적으로 말하자 강형우는 씨익 웃었다.
이 역시 계획한 바에 있는 반응이었으니까.
“살짝 우리고 버리는 건, 밥물의 색상 때문입니다. 시간을 놓쳐 버리면 갈색을 띠는데 그걸로 밥을 지으면 꼭 상한 것 같은 색이 나오거든요.”
실제로 누리끼리한 밥은 식욕을 떨어뜨린다. 전기밥통에 오래 보관한 것 같은 기분에 선뜻 손이 가질 않는 것이다.
그때 미희가 다시 물었다.
“근데 밥물을 왜 만들어요? 이렇게 하는 거랑 그냥 물 넣고 짓는 거랑 차이가 있어요?”
강신원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뒤, 강형우에게 토스를 했다.
박미희가 수시로 끼어들어서 질문하는 바람에 아무래도 외웠던 걸 까먹은 모양이었다.
***
“우와, 대단하다.”
박미희는 연신 감탄을 터뜨렸다.
19년 인생을 살면서, 밥 짓는 게 이렇게 공이 많이 들어가는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냥 쌀 씻고 밥통에 넣고 버튼 누르면 끝이었다. 그렇게만 생각했고, 그렇게만 살았기에 강형우의 이야기는 진짜 신세계였던 것이다.
밥물을 만드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밥맛은, 쌀알이 흡수하는 수분을 얼마나 머금고 있느냐에서 결정이 된다.
하지만 이미 쌀을 불린 상태라 밥물은 의미가 없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착각이었다.
“밥솥에 열을 가하면 물이 끓으면서 증기가 됩니다. 불을 끄고 뜸을 들일 때, 그게 아래로 내려가서 밥알 사이사이에 스며들죠.”
그게 밥알 사이의 찰기를 만든단다. 한 술 떴을 때 보리밥처럼 밥알이 따로 놀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쌀을 깔고, 깨끗이 씻어서 말린 배춧잎을 올렸다.
그 위에 다시 쌀을 올리고 배춧잎을 까는 걸 반복하더니, 마지막에는 이상한 즙 같은 걸 뿌렸다
“왜 이렇게 해요?”
“사람 입에서 나오는 침 성분 때문이지.”
질문과 대답 사이에 안드로메다만큼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강형우는 웃으면서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 줬다.
배추는 식이섬유가 풍부해 소화를 촉진시킨다.
마지막에 무즙을 뿌리는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에서였다.
특히 두 채소는 소화에 좋고, 변비에 좋고 혈압에도 좋았다. 게다가 음식을 먹을 때, 입에서 나오는 침 성분, 아밀라아제라는 효소를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소화가 잘돼서 속에서 받치지 않고, 위를 편안하게 해준단다.
“또, 무와 배추의 수분이 밸런스를 맞춰주는 역할도 하고, 미세한 단맛도 남기거든요.”
그 외에도 박미희는 많은 질문을 던졌다.
강형우는 막히지 않고 대답했다.
그 결과 쌀을 바로 도정하고, 불리고, 밥물을 따로 만들고, 배춧잎과 무즙을 넣는 것까지 모든 행동에 이유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밥 짓는 거 하나에도 엄청난 정성이 들어간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우와. 밥 짓는 게 이렇게 어렵다니 진짜 말도 안 돼요. 어디 학원에서 배운 거예요? 얼마면 이런 거 배울 수 있어요?”
그 질문에 아주머니들이 빵 터졌다. 살림을 하고, 음식을 하기에 그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질문이라는 걸 다들 알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강형우는 친절하게 이야기했다.
“여러 가지로 실험을 해봤거든요. 감자밥이라든가, 고구마밥 같은 거요.”
박미희는 메모를 하다 그대로 굳어버렸다. 종류가 한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밤, 대추, 인삼, 감자, 호박 등등에 기장, 콩, 흑미 같은 잡곡으로도 밥을 지어봤단다. 그 과정에서 수분과 전분, 밥이 내는 향과 밥알의 색이 물드는 정도까지 수십 수백 번을 테스트해 봤다는 것이다.
그 결과가 지금의 밥이라고 했다.
“와, 분식집 밥맛이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는데, 여긴 아니었네?”
“그러게. 어째 밥맛이 다르다 했더니, 이렇게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거였어.”
“나는 그냥 맛이 좋다고만 생각했는데…….”
아주머니들이 고개를 끄덕이는데, 대부분의 반응이 무척 긍정적이었다.
그걸 본 박미희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1차 지원자들은 아파트 내에서도 나름 손맛(?)이 있다는 아주머니들이었다. 전문 요리사까지는 아니지만 제법 음식 한다는 소리도 들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다들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급이 다르다는 것을.
박미희는 다음 과정에 더욱 집중했다. 그러다 또다시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고작 김밥 한 줄인데, 그 과정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곧 있을 수능 시험보다 더 어렵다는 느낌까지 들었던 것이다.
***
“후아, 끝났다.”
강신원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중간에 한 번, 강형우와 바톤 터치를 했다. 그 과정에서 여유를 되찾았고 나중에는 아주머니들과 가벼운 농담까지 할 수 있었다.
물론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맛간장에 재료를 넣을 때마다 박미희가 꼬치꼬치 캐물었다.
왜 먹지도 못하는 양파 껍질과 파 뿌리가 들어가느냐.
북어 대가리는 울 엄마가 해장국 끓일 때나 쓰더라.
특히 통마늘과 생강을 한 주먹씩 넣을 때는 인상까지 잔뜩 찌푸렸다.
다행히 강형우의 어시스트가 있었다.
맛간장의 깊이를 내기 위해서, 시원한 맛을 더하기 위해서, 또 비린 맛을 잡고 향을 강하게 내기 위해서 등등의 조언을 해주었던 것이다.
가장 당황스러웠던 건 이거였다.
맛간장은 그 맛이 완전히 혼합되기까지 숙성이 필요하다. 그래서 미리 냉장고에 준비한 걸 꺼내어 보여줬는데 겁도 없이 맛을 보겠다며 한 숟가락을 다 먹어버린 것이다.
연이어 기침을 하는데, 진짜 숨넘어가는 줄 알았다.
그때 공지혜가 미지근한 물을 마시게 해서 겨우 위기를 탈출할 수 있었다.
그 직후 강형우가 웃으면서 말했다.
이건 농축된 기본 베이스라고.
물을 섞고 추가로 맛을 보충해야 조리에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걸 겁도 없이 한 숟가락을 다 먹었으니, 소금 한 움큼의 염분을 입에 집어넣은 거나 마찬가지라 했다.
결국 미희는 어머니한테 또 다시 등짝을 맞아야 했다.
이후의 과정은 순조로웠다.
베이스에 물을 풀어서 농도를 희석시키고, 매실청과 맛술을 추가해 잡맛을 날린다.
여기에 가다랑어를 우려서 감칠맛을 더하고 참기름을 추가해 기름 맛도 더했다.
그게 완성된 조림용 간장이었다.
이걸로 우엉을 졸이고, 나물을 데쳐서 볶고 하는 식으로 하나하나 설명하니, 오전이 후다닥 가버렸다.
점심은 실습이었다.
공지혜가 김밥을 말자 아주머니들이 탄성을 터뜨렸다. 그 숙련된 동작에 넋이 나가 버린 것이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지성분식 본점에서부터 지금까지, 무려 이 년 반 넘게 김밥을 말았다. 적게는 하루 수십 줄에서, 많게는 수백 줄을 만들었으니 그 실력이 남달랐던 것이다.
그걸 보고 박미희가 도전했다가, 김밥 옆구리를 세 번이나 터뜨리고 말았다.
그만큼 등짝에 불이 난 건 당연했고.
어쨌든 아주머니들끼리 김밥을 말고, 서로 맛을 보고 하면서 점심을 마무리 지었다.
강형우는 마지막으로 짧은 강의를 했다. 다소 무거울 수 있는, 김밥이란 음식의 시대적 흐름에 대해 설명을 시작한 것이다.
“원래 김밥은 정성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음식입니다.”
이어진 이야기에, 강신원은 몇 번이나 놀라야 했다.
틈틈이 그리고 꾸준히 공부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강형우는, 상상했던 것 이상의 괴물이었다.